구조적 위기와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세계경제
1. 세계경제 전망: 정책 전환과 세 가지 위협
1) 인플레이션 완화와 통화정책 전환
지난해 발표한 2024년 경제전망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세계경제가 “여전히 인플레이션 위협이 상존한 가운데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전반적으로 가계·기업의 부채와 정부의 재정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았다. 올해가 마무리되는 현재 시점에서도, 비록 인플레이션율이 꾸준하게 하락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이 유지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고금리-고부채-중물가’ 시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트럼프의 귀환이 상징하듯, 규칙 기반 세계질서와 다자간 공조가 더욱 퇴조하면서 전반적인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먼저 인플레이션 전망을 살펴보자.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2022년부터 이어진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점차 휴전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세계경제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3분기에 9.4%로 정점에 도달한 뒤, 2023년 6.7%로 하락한 데 이어 올해는 5.8%, 내년인 2025년에는 4.3%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전망과 비교할 때, 선진국은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보다 더 빨리 인플레이션율이 중앙은행의 정책목표인 2%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유럽(유로존)은 빠르면 2025년 초, 미국은 2025년 말에 인플레이션율이 2%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율의 급등은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붕괴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다, 대유행 시기 급격한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한 이후 회복기에 강력한 수요 증가와 견조한 고용 상황이라는 요인이 결합하여 발생한 것이었다. 따라서 공급 차질이 점차 완화되고 각국 중앙은행이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을 펼치자, 인플레이션은 급격한 경기침체나 성장률 하락 없이 어느 정도 진정될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해, 올해와 내년에도 세계경제 성장률은 3.2%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경기순환 불균형이 완화하면서 실제 경제성장률과 잠재 경제성장률이 점차 일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격차, 나아가 각국 간의 편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은 성장률과 고용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인플레이션 안정세는 명확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와 내년에도 1% 내외의 저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경제 회복세는 서비스 부문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산업 부문은 여전히 회복세가 저조하여, 독일과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의 경기 침체가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가 3.1% 상승하며 1982년 이래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2.6%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임금인상을 장려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한편, 기준금리를 3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0.1%에서 0.25%까지 인상했다. 2013년 디플레이션과 장기침체 탈출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펼쳤던 ‘아베노믹스’ 기조가 변화하고 있다. 한편,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대규모 생산 감소와 통화정책의 불안정이 지속하면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나아가 많은 나라에서 인구 고령화나 생산성 저하와 같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은 하반기로 넘어가면서부터,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율 하락과 함께, 경기 침체로 전환될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유럽 중앙은행은 올해 6월 0.25%p 인하한 데 이어 9월 0.6%p, 10월 0.25%p 인하하여, 12월 초 현재 기준금리는 3.4%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올해 9월과 11월에 기준금리를 각각 0.5%p, 0.25%p 인하한 데 이어 12월에도 0.25%p 추가 인하해 기준금리는 4.25~4.5%다.
다만 지난해에 전망했던 대로,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전환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내년에도 금리 인하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은 2025년 4분기까지 약 0.5%p 추가 인하하여 4.0% 내외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플레이션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에 드리우는 위협의 증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2) 세계경제에 드리우는 세 가지 위협
첫째, 인플레이션 고착화 내지는 재발생 우려다. 주요국에서 인플레이션율 하락은 대체로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수준이 고착화되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가격 변동이 심한 농산물이나 에너지를 제외한 품목의 물가상승률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지수가 여전히 경직적인 가운데, 선진국은 명목임금 상승을 반영해 서비스 부문의 인플레이션이 4.2%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2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신흥국은 식량과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크게 받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팬데믹, 기상이변,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공급망이 붕괴하거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물가 상승과 생산량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는 충격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상품가격 변동의 세계적인 동조화가 심화했다.
특히, 산업 원자재 가격 변동에서 공통 요인(세계적 요인)의 역할이 상당히 증가했고, 이러한 추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예를 들어, 지난 4년간 에너지 가격 변동의 41.7%, 비금속(卑金屬, base metal) 가격 변동의 61.4%를 공통 요인이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이나 분쟁과 같은 요인이 각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의 동반 상승으로 쉽게 이어져 다시금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규칙 기반 세계질서의 후퇴와 트럼프의 귀환이다. 2007~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강군몽을 이루기 위해 군민융합을 내세우며 ‘중국제조2025’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는 중국이 자유무역 질서에 깊이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불공정한 기술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를 악용해 배타적인 민족적 이익을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나아가, 미국에서는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와 이를 가능케 하는 세계 무역질서가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제조업의 위기와 각종 사회적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한 트럼프가 광범위한 탈세계화 정서를 등에 업고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문제에서 양자 간 거래를 선호하는 한편 다자간 규칙 기반 세계질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17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미국이 거부하면서 2019년부터 그 기능이 정지된 것을 들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이어가되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훼손된 규칙 기반의 다자적 질서와 동맹 질서를 복원하고자 했다. 다만 WTO 분쟁 조정 기능이 여전히 사실상 정지 상태인 가운데,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무역·노동·디지털 경제 표준 정립, 공급망 회복력 제고, 청정에너지 발전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발족했지만, 아직 뚜렷한 활동과 성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다른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통상정책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노동자 중심 무역정책’을 제기하면서 인권·노동권과 무역을 연계해 독자적인 규제와 제재를 강화했는데, 여기에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다. 나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G7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국제 질서의 분절화는 더욱 심화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러한 서방의 제재가 오히려 국제법에 반하는 일방적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카잔 선언에 그대로 담겼다. (브릭스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룬다.)
요컨대, 2020년대는 세계적 수준의 상호의존성과 모순은 여전히 심화하고 있지만 대안세계화의 가능성은 요원한 상황에서, 기존의 신자유주의 규칙 기반 세계질서에 대한 미국의 후퇴와 러시아·중국의 교란·도전이 중첩되어 무질서와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는 정세라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블록 간 무역량보다 블록 내 무역량이 늘어나고 있고, 많은 국가가 일방적인 보호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곧바로 급속한 탈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공급망의 복원력을 떨어뜨리고 불확실성을 증대하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2025년 트럼프의 복귀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할 것이다.
셋째, 장기저성장 시대에 가중되는 재정위기와 부채위기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와 부채를 크게 늘렸다. 이후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 이어진 가운데서도 공공부채는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표한 ‘부채 세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전체의 공공부채 규모는 2022년 대비 5.7% 늘어난 97조 달러(약 13경 원)다.
보고서는 특히 세계경제의 부진하고 불균등한 성장으로 인해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서 두 배 빠른 속도로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전체 부채 규모에서 개발도상국의 부채 규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의 16%에서 빠르게 커져 2023년 30%(약 29조 달러)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많은 개발도상국이 빚을 갚는 것과 국민을 위한 의료·복지·교육에 투자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IMF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과 중국의 부채위기가 지속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 역시 강조한다. 양국 모두 현재까지 쌓인 절대적인 부채 규모가 이미 막대할 뿐만 아니라, 고금리로 인해 이자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여전히 대규모 재정적자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부채위기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룬다.) 여기에 더해,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난 8월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서 금리 인상 정책으로 선회한 가운데 미국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자, 일본 금융기관에서 저금리로 엔화를 빌린 뒤 이를 달러로 바꾸어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이른바 ‘앤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 미국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변하는 일이 있었다. IMF는 이러한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의 확대가 금융 여건을 긴축하면서 부채위기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장기저성장 시대에 가중되는 부채위기는 역으로 투자와 성장을 저해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그린다고도 지적한다. 결국, 부채위기가 2020년대 세계경제에 중대한 기저질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미국경제: 트럼프주의의 불확실성과 가중되는 구조적 위기
1) 견조한 거시경제 지표에 가려진 양극화
미국경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면서, 선진국 가운데 가장 양호한 흐름을 보인다.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2022년 7월 6.6%를 정점으로 올해 10월 2.1%까지 하락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PCE 물가지수가 2024년 4분기에 2.4%, 2025년 4분기에는 2.3%일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을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인플레이션 완화 속도가 둔화하고 물가 수준이 고착할 우려를 떨칠 수 없다. CPI는 올해 10월 2.6%로 나타났는데, 특히 근원 CPI가 전달보다 0.3%p 오른 3.3%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근원 상품 물가상승률은 0%에 근접했지만 근원 서비스 물가상승률과 주거비 인플레이션이 약 4%여서, 서비스 물가와 주거비 상승이 인플레이션 대부분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업률은 지난해 말 3.9%에서 소폭 상승한 4.1%인 가운데,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취업자 수 증가세가 대폭 축소하고, 그간 민간소비 회복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던 초과저축이 대부분 고갈되면서, 전체적인 경기는 둔화하는 방향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연준은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2024~27년에 연간 2.0% 수준에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이렇게 비교적 견조한 거시경제 지표와 달리, 미국인의 여론은 전반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인식하는 ‘바이브세션’(vibecession) 현상이 올해 내내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6%가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졌다고 답변했고, 72%가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고 있다고 답변했으며, 58%가 바이든 행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하반기 미국 대통령 선거와 상하원 선거가 트럼프와 공화당의 승리로 귀결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이러한 현상이 미국경제 내의 양극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거시경제가 성장하고 금융시장이 호황이지만, 일반 미국 가계는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물가상승률과 물가 수준을 구별해야 하는데, 가계가 체감하는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 속도’보다는 ‘물가 수준’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한 2021년 1월의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이라고 할 때, 최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0으로 20% 상승했으며, 특히 필수구매 항목에 해당하는 에너지(41%), 교통(40%), 주거(22%), 식료품(21%)의 가격 수준이 두드러지게 상승했다. 요컨대, 기본 생필품 물가 수준의 대폭 상승이 인플레이션율의 하락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런 가운데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2년에 미국인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득의 20.8%와 전체 개인 부의 35%를 소유한 반면, 하위 50%는 각각 10.3%와 1.5%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본 내 격차 역시 심화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00대 기업 가운데 7대 주요 기술 기업(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테슬라)의 연간 수익성장률은 2023년에 58%였고 2024년에는 20.8%일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나머지 493개 기업의 연간 수익성장률은 2023년에는 오히려 2% 감소했고 2024년에는 6.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금리 정책이 장기화하는 가운데서도 기업 시가총액을 총실물자본 구입 가격으로 나눈 ‘토빈의 Q’가 올해 1월 1.48로 역사적 고점을 기록할 만큼 미국 주식시장 열광이 계속되고 있다(역사적 평균은 0.83). 이렇게 미국 기업 주식이 실제 자산 가치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는 현상 역시 거의 전적으로 7대 주요 기술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비금융 기업 부문과 중소기업은 수익 감소와 높은 이자율로 인한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중소기업의 약 37%가 지난 3개월 동안 수익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세계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과 비슷한 수치다. 나아가 미국 비금융 기업 부문의 부채 규모는 2021년 GDP 대비 약 0.9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23년 말에도 약 0.75% 수준이다. 2025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 부채의 규모가 1.8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평균 이자율은 2024년에 4.3%에서 2025년 4.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 돌아온 트럼프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이런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미국경제에 거대한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추진할 경제정책의 방향이 불확실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트럼프주의 경제정책이 미국경제의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연방정부의 재정위기와 부채위기를 악화하는 방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그러한 정책의 속도와 강도가 어느 정도 수준일 것이며 그에 따라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있다. 그리고 국가 간 관계나 국내 경제 문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간주하며 불확실성을 무기로 일회성 거래를 극대화하려는 트럼프의 태도가 정책결정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마지막으로, 저물가·저금리·약달러를 선호하면서도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내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가, 저물가·저금리·약달러를 강제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결정에 얼마나 개입하려 할지가 미국 거시경제에 미칠 중요한 불안 요소다.
지난 가을호 글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경제정책의 위험성」에서 살펴보았듯,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추진하고자 하는 경제정책의 핵심은 ‘감세와 관세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이번 선거로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입법을 통해 감세정책과 관세정책을 취임 직후부터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공화당은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한 뒤 100일 이내에 감세 법안을 연장하는 입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에 입법된 ‘감세와 일자리법’(TCJA)은 최고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고 개인 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7%로 내리는 것이 골자였다. 이 법안의 개인 소득세율 인하 항목은 내년에 만료될 예정인데, 공화당은 이를 연장하는 한편 최고 법인세율을 트럼프 공약에 따라 15%까지 낮추는 입법안을 빠르게 처리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으로 관세정책 전망을 살펴보자.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치 아래 ▲ 미국 제조업 부흥 ▲ 무역적자 축소 ▲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 확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위해 관세를 중심으로 하는 보호무역 조치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국가를 상대로 10%p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대국이 미국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관세율을 상대국 수입 상품에 부과하는 상호주의 관세, 그리고 중국에 대한 60%에 이르는 고율의 관세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11월 25일에 트럼프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 첫날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두 나라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특히 펜타닐)과 불법 이민자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이러한 관세를 유지할 것이며, 중국에 대해서도 중국에서 생산돼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모든 중국산 상품에 10%p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자신의 관세 확대 정책을 지지하는 하워드 러트닉과 스콧 베센트를 각각 2기 행정부의 상무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러트닉을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맡으면서 관세 및 무역 의제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에 따라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함께 상무부와 USTR이 실제로 어느 정도 속도와 강도로 관세정책을 추진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공화당 역시 상호주의 관세법 제정을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입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다만 수출에 민감한 주 출신 의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극단적인 관세정책에 대한 당내 이견이 있어서, 감세 입법과 비교할 때 관세 입법의 속도는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을 상대로 하여 행정명령을 통해 구체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1기 행정부 시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하거나 협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미국의 무역과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1기 행정부나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비해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산업정책에서는 급격한 방향 전환의 가능성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전망이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신종 녹색 사기’이며 화석연료 채굴과 사용을 억제해 에너지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입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관련 기금을 회수하고 화석연료 채굴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인플레이션감축법을 완전히 축소하거나 폐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화당 지지가 강한 지역 중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태양광·풍력 발전이나 전기차에 지급되는 보조금의 혜택을 받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입법된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ct)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 역시, 공화당과 민주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를 완전히 무효로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3) 스태그플레이션과 부채위기 결합의 가능성
이렇게 감세와 관세를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 경제정책의 속도와 강도가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일 것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정책이 임기 초부터 시행되어, 미국경제의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를 악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할 감세정책은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확대해 부채위기를 가중할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3조 1천억 달러로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뒤 2024년에도 1조 8천억 달러(GDP 대비 6.4%)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다.
미국 책임있는 연방 예산위원회(CRFB)는, 트럼프의 공약이 시행되면 미국의 재정적자가 향후 10년간 최대 15조 5천억 달러 증가할 것이고, 장기 국채금리가 상승해 순이자 지급액도 1조 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역사적으로 장기 국채금리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1%p 상승할 때 약 2~3bp(1bp는 0.01%p) 상승하는데, 한국은행은 트럼프의 공약이 향후 10년간 장기 국채금리를 43bp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장기 국채금리의 상승은 다시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에 따라, CRFB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현재 97%(전체 국가 부채 규모는 36조 달러)에서 2035년 최대 161%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는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입 감소를 앞서 언급한 보편적 기본관세·상호주의 관세나 대중국 고율 관세와 같은 관세정책으로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관세 규모는 연간 약 800억 달러(전체 세입의 약 2%) 수준이며, 트럼프가 제안하는 보편적 기본관세·상호주의 관세법을 시행하더라도 관세 규모는 최대 2천2백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관세 인상을 통한 세입 증가액은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입 감소액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관세정책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할 대규모 관세정책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그에 따라 금리 상승 압력을 높여 부채위기를 가중할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주의 관세가 시행되면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1.8%p~3.6%p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고, 특히 상대국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았다. (한편, 경제정책의 영역은 아니지만, 트럼프가 대선 시기 공언한 대규모 이민자 추방 계획 역시 미국경제에 노동력 공급 충격을 가해 인플레이션 상승과 경제성장률 하락이 결합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연준의 금리 인하를 가로막아 고금리를 장기화하는 효과를 미칠 것이다.
향후 3년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0%에 수렴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과 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지속 불가능한 재정적자와 이자 지출 부담이 확대하며 부채위기가 가중하는 상황은 미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보여줄 따름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저물가 상황에서 고용 없는 회복이 문제였던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와 다른 정세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세와 관세의 결합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정책결정의 불확실성을 증대하는 한편,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를 가중함으로써 미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더욱 심화할 것이다.
3. 중국 경제: 성장 둔화에 대응하는 국가자본주의 강화
1) 장기화하는 부동산 부문 침체와 내수 부진
중국 경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지 않는 대신, 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의 침체와 부채위기가 지속하면서 경기회복이 부진한 상태다. 중국의 2024년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1분기에 5.3%를 달성했지만 2분기에 4.7%, 3분기에는 4.6%로 하락하면서, 3분기까지 누적 성장률은 4.8%를 기록했다. 4분기에도 성장률이 반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에, 2024년 연간 경제성장률은 중국 정부의 목표치인 5%에 미달하는 4% 후반일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이러한 성장세 둔화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져, 2025년 경제성장률은 4.5%일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내수가 둔화하면서 소비와 투자의 성장기여도가 큰 폭으로 축소하는 가운데 순수출이 성장률을 그나마 뒷받침하고 있다. 소매판매는 전년동기대비 1분기에 4.7% 증가했으나,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2.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비의 성장기여도 역시 1분기 3.9%p에서 2분기 2.2%p와 3분기 1.3%p로 계속해서 하락했다.
투자 역시 부동산투자가 부진하고 인프라투자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3분기에 3.4% 증가하는 데 그쳤고, 성장기여도 역시 1.3%p로 하락했다. 특히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정책지원 덕에 국유기업 투자는 7%대를 유지했지만, 민간투자는 2분기 0.1% 성장하는 데 그쳤고 3분기에는 –0.2%를 기록했다. 수출 확대 역시 국내 수요가 부진하면서, 낮은 가격으로 수출 물량을 확대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요컨대, 지난해에 이어 계속해서 민간부문이 위축된 상태에서 국유 부문이 중국 경제의 성장을 떠받치고 있다.
이러한 경기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하반기 들어서 연달아 경기부양 정책을 발표했다. 9월 24일에는 중국 인민은행을 비롯한 주요 금융부처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을 완화하고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 부양을 위한 정책 계획을 발표했다. 먼저 은행 지급준비율을 50bp 인하(10월에 25bp 추가 인하)하고 단기 정책금리인 7일물 역레포 금리도 1.7%에서 1.5%로 인하해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갔다. 또한 부동산 대출우대금리를 50bp 인하하고 지방 국유기업의 주택 매입 대출 지원을 확대했다. 그리고 자격을 갖춘 증권사·펀드·보험사가 자산을 담보로 인민은행에서 국채나 중앙은행 어음과 같은 유동성 자산을 확보해 주식 보유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5천억 위안 규모의 스왑 프로그램(SFISF)을 개시했다.
이어 10월 8일과 12일에는 발전개혁위원회가 내년도 예산을 2천억 위안 조기 할당하여 올해 10월 말까지 ‘양중’(兩重, 국가 중대 전략과 안전·안보 관련 중점 분야) 건설 프로젝트와 정부 투자 계획 실행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기부양 정책을 발표했으며, 재정부 역시 국채 발행을 대폭 늘려 지방정부 부채를 감축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11월 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방정부 부채한도를 6조 위안 확대하고 4조 위안의 지방정부 특수채를 발행해 음성부채를 양성화하는 데 지원하겠다고 결정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 정부가 이번 하반기에 발표한 경기부양 정책은 이전 시기와 달리 직접적인 대규모 재정투여보다는,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정부 투자 확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요를 촉진하는 한편 지방정부 부채를 관리하는 안정화 정책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전체 세입의 약 20%를 차지하는 토지매각수입이 3년 연속 크게 줄면서 대규모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칠 여력이 줄어든 가운데, 향후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도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과 부채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위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중국 경제는 계속해서 부채에 의존하며 중앙정부로 부담을 집중하는 경로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2) 집중통일영도 체제와 국가자본주의 강화
지난해 경제전망 글에서 정리한 것처럼, 최근 중국 경제가 마주하고 있는 성장 둔화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유 부문과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부채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경제 전반에 대한 당의 통제와 관리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22년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와 2023년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거쳐 시진핑 1인 지도체제를 확고히 했다. 아울러 올해 7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에서 시진핑 3기 지도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중국공산당은 개혁·개방 이후 10년 주기로 3중전회에서 장기 정책방향을 담은 「결정」을 발표했는데, 이번 3중전회에서는 「중공중앙의 진일보한 전면적 개혁 심화 및 중국식 현대화 추진에 관한 결정」을 발표했다. 대내적으로는 부동산 부문 침체로 인한 지방정부 부채위기와 내수 부진에 대응하고 대외적으로는 미중 전략적 경쟁 심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경제 전반에 대한 당의 통제와 관리를 심화하겠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이를 시진핑 집권 1기인 2013년 18기 3중전회의 「결정」과 비교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결정」에서는 2035년까지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전면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기본 목표 아래 △ 새로운 질적 생산력 제고 △ 국유자본 집중 강화 △ 공급망과 안보 강화 △ 부동산 개혁 △ 당의 집중통일영도 강화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먼저, 시진핑 주석이 직접 강조한 ‘새로운 질적 생산력’은 8대 전략산업인 차세대 정보기술, 인공지능, 항공우주, 신에너지, 신소재, 첨단장비, 바이오의약 및 양자기술에 국가자원과 정부투자를 집중하고 이를 지역별로 특화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아울러 이러한 전략적 신흥산업과 국가·경제안보의 핵심 분야에 대한 국유자본의 집중을 강조했다. 이는 국유자본이 통제하는 영역을 자연독점 산업으로 국한했던 2013년 18기 3중전회와 비교할 때, 국가전략에서 국유자본의 중요성을 더욱 증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유자본 중심의 산업고도화를 통해, 중국이 취약한 반도체와 산업 소프트웨어 부문의 공급망 안전성과 경제안보를 강화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심화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한편, 이번 「결정」에서 부동산 개혁을 거시경제나 금융개혁의 영역이 아니라 민생 부분의 사회보장제도 개혁 영역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주택 과잉 공급과 주택 수요의 구조적 축소를 감안해, 이전과 같이 부동산 개발투자에 지원하기보다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중 주택을 매입하여 보장성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부동산 발전 방식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동산 부문 침체로 두드러진 지방정부의 부채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부동산세와 도시토지사용세 입법화를 추진하고 국세인 소비세 징수권한을 지방정부로 이관해 지방정부의 세입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개혁 과정에서 당 중앙의 결정이 모든 지역과 부서에서 효과적으로 시행되도록 중앙의 집중통일영도를 강조했다. 지난 2022년 1중전회에서 당 헌장에 추가된 ‘집중통일영도’는 기존 중국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를 대체하여 시진핑 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1인 지도체제를 의미함과 동시에, 국가 전반에 대한 당의 직접적 관리와 통제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당내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해 기존에 국무원 산하의 과학기술부가 수행하던 과학기술정책을 통솔하도록 했다. 요컨대, 성장동력 소진과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심화를 마주한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와 당 중심의 통치를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3) 미국의 탈동조화와 중국의 위험억제
중국이 당과 시진핑 중심의 집중통일영도와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은 강경한 대중국정책을 공약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향후 미중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가을호 글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경제정책의 위험성」에서 살펴본 것처럼, 트럼프 대선 캠프는 중국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의 ‘위험억제’(de-risking)를 넘어서 더 강도 높은 단절을 추구하는 ‘전략적 탈동조화’(strategic decoupling)를 위한 경제정책과 무역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으로부터의 필수품 수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안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중용도기술 분야에서 모든 협력과 교류를 중단하며,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항구적 정상무역관계)를 폐지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정책 역시 그 속도와 강도가 얼마나 될지 현재로서 확언하긴 어렵지만, 동맹국 간 공조나 다자적 규칙 기반 질서가 아닌 일방적이고 양자적인 방식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적 상호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은 관세 부과, 투자 제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강화라는 방식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모든 중국산 상품에 10%p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취임 첫날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정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초당적 합의로 이어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심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전략적 경쟁은 좁은 의미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현실적 이익을 증대한다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국가자본주의와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국제질서를 교란하려는 흐름에 대응하여 자유주의적 다자간 국제질서를 재편한다는 측면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관세 조치와 투자 제한을 심화하면서도 무역·노동·환경·디지털 분야에서 다자적인 규칙 기반의 질서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그런데 트럼프 캠프와 최근 공화당의 대중국정책에서는 후자의 문제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미국 우선주의를 고수하며 스스로 규칙 기반 세계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은 기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속도와 강도에 따라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에 벌어진 무역 분쟁처럼,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대응하여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 기업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거나, 위안화 환율을 절하하는 보복 조처를 할 수 있다. 다만, 스위스 투자은행 UBS의 중국 수석 경제학자 왕타오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대담에서, 이번에는 중국이 곧바로 보복관세나 환율 절하로 강력히 대응하기보다는, 내수를 증대하고 수출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중국이 여전히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대내적으로 내수를 키우고 대외적으로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강화하면서도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와 위험을 축소하는 ‘쌍순환’ 전략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등장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2020년대 주요 전략으로 본격화했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이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중국의 대응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중국의 미 국채 투자 잔액 감소다. 중국의 미 국채 투자 잔액은 올해 6월 약 7천8백억 달러로, 3년 전인 2021년과 비교할 때 26.5% 감소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전체 외환보유액 중 미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31.7%에서 역대 최저 수준인 22.6%로 하락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2010년대부터 외환보유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며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비중을 2010년 65%에서 2024년 52%로, 점진적으로 축소했다. 그런 가운데 2015년 대규모 자본유출 시기와 최근 3년간 환율 절하 압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 국채 매도가 두드러졌다. 정치적으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대응해 미국이 러시아에 전방위적인 금융제재를 시행하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는 미 국채 보유가 중국의 경제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고조되었다. 미중갈등이 지속되면서 중국의 미 국채 보유 축소 역시 점진적으로 이어질 전망인데, 미중관계에 대한 중국식 위험억제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4. 브레튼우즈 체제 80년과 브릭스의 미래
1) 전후 국제질서의 위기와 브릭스의 부상
2020년대 세계경제와 국제질서는 어떻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과 함께, 브레튼우즈 체제 80주년이자 브릭스가 외연적 확장을 시도한 첫해인 올해에는 미국 헤게모니 하에 구성된 전후 국제질서가 해체되는 것인지, 브릭스가 주도하는 다극질서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주목받았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중심으로 재건된 국제통화체제를 말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렇게 재형성한 국제통화체제를 위협하는 각국의 자의적 통화가치 변동과 보호무역주의를 방지하기 위해, 참여국이 경제 규모와 무역 규모에 비례해 출연금을 내고 국제수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다자개발은행인 세계은행(WB)을 설립하고, 규칙에 기반을 둔 자유무역 질서를 확립하고자 향후 세계무역기구(WTO)로 발전하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맺었다. 1973년 미국이 금 태환을 정지하면서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지만, 탈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확대되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자유무역과 금융질서는 큰 틀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20년대 들어 미중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국제질서에서 이탈하면서, 탈냉전 이후 신자유주의가 내세웠던 규칙 기반의 다자간 질서와 공동지배가 분절화되고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와 이어진 세계적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선진국과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로 지칭되는 개발도상국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전후 국제질서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한계와 모순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다자주의를 내세우며 외연을 확장하기 시작한 브릭스가 전후 국제질서와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세계 인구의 약 44%와 세계 명목 GDP의 26%를 차지하는 브릭스 회원국이 미국의 달러 패권과 국제통화체제를 비판하며 진정으로 평등과 호혜에 기반한 주권국가 간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논지다.
그러나 브릭스가 대안적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지 또는 적어도 여러 국가가 주도권을 나눠갖는 다극세계의 한 축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려면, 브릭스가 달러를 대체하는 국제통화체제를 구축하는지, 그러한 국제통화체제를 재생산하는 무역질서와 금융질서를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각국 사이의 상품·서비스, 자본, 노동의 이동과 교환을 완전히 단절할 것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와 원리로 국가 간 체계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브릭스는 어떤 원리와 구상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최근 브릭스 정상회의의 주요 논의 내용을 살펴보며 파악해보자.
2) 16차 브릭스 정상회의와 카잔 선언
올해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개최된 16차 브릭스 정상회의 주제는 ‘공정한 글로벌 개발·안보를 위한 다자주의 강화’였고, 9개 회원국은 △ 더 정의롭고 민주적인 세계질서를 위한 다자주의 강화 △ 세계 및 지역의 안정과 안보를 위한 협력 강화 △ 정의로운 세계 발전을 위한 경제·금융 협력 증진 △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인적교류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카잔 선언을 채택했다.
카잔 선언에서 세계경제 또는 국제질서에 관련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다자주의를 지지하며 신흥 개발도상국의 대표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유엔과 브레튼우즈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이고 국제법에 반하는 경제제재와 2차 제재를 해제할 것을 촉구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와 신장위구르 탄압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겨냥한 것이다.
둘째, 브릭스 회원국 간의 경제와 금융 협력을 증진하자고 선언했다. 경제협력에서는 천연자원과 식량 주요 생산국이 모인 브릭스 내에 별도의 거래 플랫폼을 구축하자는 제안이 담겼다. 금융 부문에서는 포용적이고 공정한 국제금융제도가 필요하다면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대당하는 신개발은행(NDB)을 새로운 브릭스 투자 플랫폼으로서 발전시키자는 제안과 브릭스 국가 간 자국통화 결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자는 제안이 담겼다.
종합해보면, 현재 시점에서 브릭스는 달러를 대체하는 대안적 국제통화제도나 금융체계를 구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러시아가 미국의 달러 패권을 비판하며 브릭스 단일통화나 암호화폐 사용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카잔 선언에 그러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브릭스가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3차 정상회의에서 ‘탈달러’를 선언하며 여신·공여협정을 체결해 브릭스 간에 돈을 빌려줄 때 달러가 아닌 각국 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한 이후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발적이고 구속력 없는 브릭스 국경 간 자국 통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해 보자는 정도의 제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브릭스가 유럽연합과 같은 화폐동맹을 구축한다거나 나아가 대안적 국제통화제도를 추구한다기보다는, 미국과 서방의 금융제재를 회피하거나 달러를 우회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역 역시, 새로운 무역질서를 구축한다거나, 관세동맹을 추진해 브릭스만의 경제블록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브릭스 회원국인 브라질과 인도를 비롯해 올해 브릭스 파트너국으로 참여한 튀르키예·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은 최근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을 강화하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지난해 9월 중국산 전기차 면세 혜택을 종료하고 3년에 걸쳐 관세를 35%까지 인상하기로 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중국산 저가 철강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년간 기존 10%대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인도는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각각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합금 로드 휠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5년 연장했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4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올해 6월에는 이를 모든 중국산 자동차에 확대 적용했다. 태국은 올해 7월 전자상거래를 통한 중국산 저가 수입품 유입을 저지하기 위해 1500밧 이하 수입품에 7%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데 이어, 8월에는 중국산 합금 열연코일에 대해 30.9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 외에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중국산 철강 일부 품목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고, 인도네시아는 중국산 수입 직물에 최대 20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 중국이 내수가 부진하고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줄이는 과정에서 신흥국으로 저가의 수출 물량이 쏠리는 것에 대한 대응이다. 결국 브릭스 역시 회원국 간의 자유무역을 확대하거나 블록 경제를 형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을 강화하며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의로운 발전을 내세우며 글로벌 사우스를 포용하겠다는 브릭스의 구상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개발도상국의 부채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브릭스 국가의 출연금으로 세운 신개발은행이 비교적 주목받고 있지만, 브릭스 전체 경제 규모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이 경제성장의 한계를 마주한 상황에서, 브릭스가 각국의 부채위기를 해결하며 경제성장을 이루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크다. 오히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서 드러난 중국식 ‘부채의 덫’ 문제, 즉 상환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투자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갚지 못하면 자원이나 시설 운영권을 가져가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렇게 볼 때, 브릭스 회원국 간의 경제와 금융 협력이 갖는 실제적 의미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과 서방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이를 우회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길을 미국과 서방에 비판적인 신흥국과 함께 모색해 보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브릭스의 등장과 외연 확장은 분명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한계와 모순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브릭스의 중심인 러시아가 전후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중국이 이를 사실상 묵인하는 오늘날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브릭스가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대안세계화 내지는 대안적 세계질서에 가까운 미래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5. 결론
2020년대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준 코로나19 팬데믹과 그에 이은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지난해를 거쳐 올해까지 다소 진정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장기저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끈적한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가 앞으로 세계경제에 명확하지만 해법은 뚜렷하지 않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25년에는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전쟁을 비롯해 빈발하고 있는 분쟁과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전환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이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추가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은 유일한 대안으로 재정적자를 줄이고 부채를 관리하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역설하지만,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양대 경제인 미국 경제와 중국 경제 모두 그러한 개혁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세계경제가 마주한 위협은 뚜렷한 가운데, 내년 1월로 다가온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는 미국경제를 비롯한 세계경제에 거대한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아래 추진할 관세정책과 감세정책의 결합은, 아직은 그 수준과 속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불확실하지만, 미국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과 부채위기를 가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정책에 직간접적인 개입을 시도할 경우, 불확실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나아가, 트럼프와 트럼프주의자가 제시하는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으로 인해 길게는 2차 세계전쟁 이후, 짧게는 1990년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시대에 미국이 주도했던 규칙 기반 다자적 질서가 최종적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세계화는 지속되지만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러시아의 교란과 중국의 도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 미국이 먼저 기존 국제질서로부터 퇴각하거나 오히려 교란하면서, 국제공조를 통한 관리와 조정의 여지가 더욱 축소하고 경계에서의 분쟁과 혼란이 증대하리라는 것이다. 중국이 권위주의와 국가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넘어 전략적 탈동조화를 추구하고 다자적 질서 수립이 아닌 일방적이고 불확실성이 높은 거래에 몰두한다면,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대국이 ‘공공악’(public bads)을 제공하는 ‘G 마이너스 2’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리 없는 금융세계화와 불안전성 심화의 시대를 곧바로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하는 대안적 세계가 도래하는 시대라고 여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브릭스가 주도하는 다극질서가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질서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단계에서 브릭스는 현실적으로 새로운 국제 통화·금융 질서나 무역 질서를 구축할 의지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 카잔 정상회의에서 논의된 브릭스 회원국 간의 경제와 금융 협력은 미국과 서방의 제재와 달러 결제를 우회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려는 정도일 따름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듯 러시아가 주권과 영토의 완결성을 내세우며 전후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중국이 이를 사실상 묵인하는 가운데, 이들이 주도하는 브릭스가 그리는 다극질서라는 미래가 과연 진정으로 평등과 호혜에 기반한 대안적 세계질서일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오랫동안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면서도, ‘반세계화’가 아니라 국제적 노동기준 형성이나 금융거래과세와 같은 요구를 매개로 노동자운동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회운동이 오늘날 국제정세에서 대안세계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와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주의와 다극질서가 제기하는 위협을 직시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