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4 겨울.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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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자유와 민주주의 보장을 위한 설계도

『미국 헌법을 읽다』

이형호 | 조직국장
오늘날 우리는 올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판단할 때 헌법을 기준으로 삼는다. 어떤 정치인을 평가할 때도 그가 헌법을 다루는 태도가 어떤지 살핀다. 또한, 그런 헌법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헌법이 현실 정치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의 혼란하고 급박한 정치 상황에서, 헌법을 이해하는 것은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2024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중대사는 대의정치의 위기를 넘어 헌정과 법치의 위기를 보여주었었다. 트럼프의 재선 승리로 막을 내린 미국 대선이 대표적이다. 현대의 많은 권력자와 정치인이 헌법의 수호자를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헌정의 퇴행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권력자와 정치인이 거시적 차원에서는 헌법을 따르나 그 정신을 교묘히 왜곡하는 ‘헌법적 강경 태도’로 헌법의 본래 목적을 침식시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합법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상은 법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여 민주주의에 내상을 입히고 헌정사에 오점을 남긴다는 것이다.

헌법은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정의 복원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최근 정세에서, 시민들의 비판적인 문제인식과 자성 촉구가 더욱 절실하다. 대만의 대표적 인문학자 양자오가 『미국 헌법을 읽다』를 집필한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시민들이 이미 민주와 자유를 당연시하며 어쩌면 민주와 자유가 무엇인지 개의치 않고 안심하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면 힘겹게 쟁취한 소중한 것들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현대를 가능하게 하고 또 일궈내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전해지는 현대 고전으로서 헌법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최초의 민주국가를 세운 미국의 헌법을 탐구함으로써 자국의 헌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활동 공간이 대만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수 있다. 대만 역시 대외적으로 양안 관계가 불안정하며 대내적으로 이와 연결된 정치적 갈등이 고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만의 현대사와 헌정사는 한국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이후 40년 가까이 양장(장제스와 장징궈) 시기를 거쳐 1987년에 이르러서야 계엄령 시대의 막을 내렸다. 당시 대만 시민에게는 총통과 시장을 선출할 권리가 없었다. 입법원은 정부를 실질적으로 감독할 수 없었고 정부의 임용, 재정, 정책 기획 및 집행까지 모두 불투명한 까닭에 특권을 왜곡할 여지도 많았다. 민주 체제가 세워지고 운용되는 것은 대만인에게 불과 30년 안팎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빠르게 일어난 사회정치적 변화는 불행히도 20년 후 오늘날 대만인의 기억에서 지워진 듯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대만이 왜 그리 쉽게 자각을 잃고 진지한 사고와 토론을 계속하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헌법, 특히 미국 헌법에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는 최초의 현대적 민주 국가가 그 근간을 다지는 현장 속으로 돌아가 헌법을 조목조목 풀이하며 각 조문이 등장하게 된 맥락과 조문의 의미를 정리한다. 헌법은 일국의 근본 가치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 사회구성원의 요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헌법에 담긴 의미와 헌법이 만들어진 역사를 알면, 그 국가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미 헌법의 기저에 흐르는 당대의 이론이 정치제도로 현실화하는 과정을 파헤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해설을 바탕으로 미국 헌법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본다. 먼저, 미국 독립선언서 조인일부터 시작해 헌법과 미국, 그리고 미국 인민이 탄생하기까지 역사적 배경을 정리한다. 다음으로는 헌법의 궁극적 목표인 인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을 위해서 설계된 시스템, 특히 삼권분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히며 헌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1. ‘연방’으로서 미합중국과 헌법의 탄생

 
미국 건국사는 한마디로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였다. 미국의 ‘시작’은 ‘그 끝’에 서 있는 우리 현대인이 가진 미국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선언서를 조인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영국에 대항한 아메리카 13개 식민지 각각이 독립적인 정치 실체로서 ‘연합’(Confederation)을 조직해 만장일치의 입장을 발표한 것이라는 점은 조금 생소하다. 당시 각 주는 연원과 성격이 제각각이었고, 외교 관계도 달랐으며, 자체 해군을 보유하기도 했다. 당연히 주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대표하는 대통령도 없었다.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인 조지 워싱턴은 독립선언 이후 13년이 지나고서야 취임했다. 독립선언은 단지 각 주가 자유로운 선택으로 영국의 식민 법률과 정치의 관할을 거부하겠다고 선포한 사건이다. 즉,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세운 것은 아직 아니었다.

연합에는 최고 권력 기구인 연합대표회의만 있을 뿐 의회도 없었고, 각 주 대표의 수·자격·임기·선출 방식과 관련한 그 어떤 규정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주는 한 장의 표만 행사하고 과반(7개 주)의 대표가 출석하면 연합대표회의를 열 수 있다는 원칙만 있을 뿐이었다. 비교하자면, 연합은 오늘날 유럽의회보다도 느슨했다. 이처럼 연합이 각 주의 내정에 관여하지 않고 각 주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지위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 바로 연합의 정신이었다.

느슨하게 조직된 연합은 13개 주가 단합하여 영국에 맞서도록 했으나, 각 주 간에 벌어지는 분쟁은 조금도 해결할 수 없었다. 특히 인구가 많은 주와 적은 주 사이의 관계나 서쪽의 광활한 미개발 토지에 대한 소유권 다툼이 계속 문제가 됐다. (각 주 사이의 치열한 갈등은 19세기까지 이어졌고, 노예제를 지지한 남부의 15개 주의 연합 탈퇴 시도는 마침내 남북전쟁(1861~1865년)으로 비화한다.) 1785년에 이르러, 연합규약을 검토하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고치자는 의견이 제출됐다. 이후 1786년 제1차 토론회의에서는 ‘1787년 5월 2일에 별도의 회의를 열어 각 주 사이의 상업과 무역 관계를 검토하자’고 결론 냈다. 이 1787년 회의가 바로 훗날 ‘제헌 회의’로 기록될 ‘필라델피아 회의’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업 및 무역 관계 검토’라는 그리 대단하지도 해롭지도 않아 보이는 명목 덕에 헌법 초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각 주 대표들은 별 기대 없이 필라델피아 회의에 나왔다. 작은 주들은 이런 회의가 자신에게 이로울 리 없고 큰 주에 맞서기도 어렵다고 봤다. 차라리 회의에 불참해 회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겨 대표를 잘 파견하지 않았다. 회의는 대략 55인의 대표가 대략 127일간 진행했다. 정해진 체계와 절차가 없어 많은 참석자가 출결을 반복하거나 여유를 부리며 지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회의를 여는 건지, 누가 참석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무슨 수로 결론을 낼지 등 모든 게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어설픈 회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작용해, 기존의 정치사상과 체제를 철저히 바꿔놓을 걸작이 탄생했다.

먼저,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이 회의장을 지켰다. 대표들은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워싱턴을 존중했고 감히 그를 공격할 수 없었다. 이후 연방 대통령직을 만들거나 행정부 권력의 범위를 정할 때도 대표들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워싱턴을 의식해 공공연히 반대할 수 없었다. 한편 고령의 프랭클린은 일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온 기질을 발휘했다. 둘째, 유럽이 해외 식민지 확장에 열성인 와중에 각 주가 단결해야 안전이 담보되는 정세적 조건이 있었다. 셋째, 언제든 앞선 결의 사안을 번복하여 기 표결된 안건을 재토론할 수 있다는, 언뜻 보면 황당한 규정 덕분에 오히려 사안을 차분히 판단하고 입장을 모을 수 있었다. 넷째, 이 비공개회의에 대중이 큰 관심을 가졌다. 대중은 대표들이 매우 중차대한 일을 다룬다고 생각했고, 이제 아무런 결론 없이 회의를 끝낼 수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플랜이 있었다. 필라델피아 회의에 큰 기대를 건 제임스 매디슨은 버지니아의 대표들과 사전회의를 열고 국가를 새로 세우자는 건의서 초고를 작성했다. 매디슨은 연합보다 더 힘 있는 국가 조직을 건설하려면 중앙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플랜이 회의 주제를 주도하게 되었고, 실제로 플랜은 훗날 헌법 초안의 골간이 된다.

이렇게 나온 초안은 아직 헌법이 아니었다. 초안은 각 주의 헌법인가회의를 통과해야 했는데, 초안에 반대하는 대표는 자기네 주로 돌아가 통과를 저지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대표들은 대중의 비판과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결국 초안을 통과시켰다. 장기간 회의로 지칠 대로 지친 대표들은 각 주의 이기적인 계산이 제거된 균형 잡힌 조문을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대중은 대표들을 이기심 없는 영웅으로 여겼지만, 저자가 보기에 대표들은 사심 없는 고귀한 영웅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시콜콜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소인배도 아니었다. 저자는 그들의 진정한 모습이 공평무사와 철저한 계산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불명확하거나 복잡하고 에두른 구절은 곧잘 논쟁을 일으키며 삭제됐고, 헌법은 지극히 핵심적인 규범 7개 조항만을 남겼다. 미국 헌법의 탄생 과정에는 많은 우연이 작용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이념과 정치과정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2. ‘미합중국’과 ‘미국 인민’을 만든 미국 헌법

 
헌법은 1788년까지 9개 주에서 인가되어 미합중국을 정식 수립했고, 1790년 로드아일랜드를 끝으로 13개 주가 모두 인가를 마쳤다. 헌법이 통과하는 동안 미국인들은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헌법 발효를 위해 9개 주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각 주가 어떻게 제헌의회를 열고 어떤 절차로 헌법을 통과시킬지도 전혀 정해지지 않았기에 토론에 열성적으로 몰두했다. 그러자 많은 이들도 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각양각색의 정치적 견해도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이 과정은 곧 인민이 국가와 정부 조직에 대해 새로이 사고하고 질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헌법에 대한 해석을 최초로 제시한 『연방주의자 논고』도 이때 출간된다. 헌법과 연방을 지지하는 85편의 논문을 수록한 이 문헌은 최초로 민주의 구체적 실천과 현실 운용을 토론한 책이자 제헌자의 생각에 가장 근접한 책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오늘날까지도 『논고』를 떠나 현실의 민주를 논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헌법의 인가 과정은 투표권을 대폭 개방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13개 주 가운데 11개 주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 제헌 대표 선거를 규범화했는데, 이때 대다수 주는 투표 자격을 크게 완화하여 많은 이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헌법에 예속될 개개인은 자신의 투표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자격에는 각종 제약이 붙었다. 여성과 노예, 일정 수준의 재산을 증명하지 못한 자에게는 여전히 투표권이 없었다. 미 헌법의 역사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 헌법은 ‘민의’에 기반을 두고 ‘인민’을 강조한다. 능력, 권력, 지혜로운 결정력을 갖췄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주 의회 선거로 선출되어 입법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게, 제헌에는 ‘우리 인민들’의 의사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미 헌법이 말하는 인민은 무엇이며, 정부와 인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우선 미 헌법은 루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주권재민의 실현이 인민의 입법권에 달려 있으며 헌법은 ‘주권을 규범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주권재민의 국가에서는 정부 조직이나 정부와 인민의 관계가 군주의 주관적 의사가 아닌 인민의 입장에서 세워진 근본법의 규제를 받는다.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오직 이 규범에 따라 권리를 소유·행사할 수 있고, 그랬을 때 인민의 주권이 비로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소의 정치이론과 미 헌법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루소는 지혜로운 자가 민주 법규를 만들고 그것을 정부가 실시하면 인민은 그 속에서 서서히 민주시민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미국은 미국 인민들 스스로 자신이 속한 국가의 근본 규칙을 제정했다고 천명한다. 둘의 차이는 헌법의 서언에서 두드러진다.
 
우리 합중국 인민은 더욱 완전한 연맹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우리와 우리 후손이 누릴 자유의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합중국을 위하여 이 헌법을 제정하고 확립한다.

위 서언이 작성될 때까지도 ‘우리들 합중국 인민’과 ‘미합중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헌법이 통과해야 미합중국이 성립되고, 사람들은 비로소 미국 인민이 된다. 또한 그들은 헌법을 제정해 미합중국을 존재케 하고, 동시에 자신이 미합중국 인민이 된다. 이 순환 속에서 미국은 외부의 개입 없이 온전히 ‘미국 인민’의 미국이 된다.

헌법을 갖게 된 연방은 이제 주권을 가진 조직이 되고, 필연적으로 주의 주권과 긴장 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연방주의자와 주권(州權)주의자의 대립과 타협의 소산인 헌법은 주에 속한 권리를 연방에 양도하고 주의 경계를 지워 ‘합중국 인민’을 낳고 이들을 대표한다. 헌법에 따라 이제 각 주는 연합의 ‘그들’에서 연방의 ‘우리’가 된다. ‘state’의 의미도 ‘나라’에서 ‘주’로 변화하고, 연방헌법보다 먼저 존재했던 각 주 헌법의 지위도 다소 약해진다. 그러나 연방헌법은 각 주의 헌법을 파기할 수 없다. 그저 주 헌법의 내용 가운데 연방헌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무효가 된다고 규정할 뿐이다. 미국은 이렇게 주와 연방이 모두 헌법을 가지며, 미국 인민은 위계가 둘로 나뉜 이중 주권을 갖게 되었다.
 
 

3. 미국 헌법의 핵심, 삼권의 분립

 
지금까지 미 헌법과 미합중국, 그리고 미국 인민이 주조되는 역사적 배경을 살폈다. 그렇다면 미 헌법의 핵심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했을까? 여기에 답하려면, 헌법이 설계한 미국 정치체의 뼈대로서 권력 삼부와 이들의 관계를 헌법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 헌법 제1조는 입법권, 제2조는 행정권, 제3조는 사법권을 규정한다. 미국의 통치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실제로는 입법권이 가장 중요하고 높은 권력이며, 인민주권은 주로 입법권을 통해 실현된다. 다만 이것이 의회가 행정부나 사법부에 일일이 간섭하거나 모욕을 주어도 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필라델피아 회의 참가자들은 최선의 정부형태를 채택하기 위해 몽테스키외와 루소의 아이디어를 빌렸다. 몽테스키외는 인구·지리·전통 등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따라 적합한 정부형태를 찾아야 한다고 봤고, 삼권분립론을 세웠다. 루소는 인류사에 존재한 여러 정치제도에서 장점을 골라 만든 혼합물을 사고했다. 즉 민주제를 입법권의 원칙으로, 군주제를 행정권의 원칙으로, 귀족제를 사법권의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인민주권을 행사해 법을 만드는 것은 인민의 일에 속하지만 일단 법이 성립되면 법의 집행은 행정부가 맡고, 사회적 정서를 벗어나 냉정하고 한결같은 시비 판단은 사법 전문가가 맡는다. 이것이 바로 삼권의 분업이다. 

미 헌법은 본질적으로 민주적 헌법이며, 삼권의 근본정신을 구상하는 일에 고심을 거듭했다. 상이한 세 가지 제도의 장점을 모았고, 세 제도의 원칙을 하나로 결합한 시스템을 창조했다. 이제 헌법이 규정하는 삼권 고유의 기능과 성격은 무엇인지, 그러한 삼권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의회

미 의회는 영국 의회와 마찬가지로 양원제로 운영되나 차이가 있었다. 영국은 귀족 신분의 상원과 선거구 인민의 대표인 하원으로 구성되지만, 미국은 각 주의 대표인 상원과 모든 인민의 대표인 하원으로 구성된다. 먼저, 미 하원은 모든 인민의 대표로서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되고 임기는 2년이다. 이는 인민과 단절되어 대표성을 상실했음에도 유령 지역구에서 주권을 행사하거나 13년간 대표의 교체 없이 ‘장기 의회’가 열리는 영국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식민지 시기 영국 의회에 대표를 진입시키지 못한 대륙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한편 연방 하원 선거의 유권자 범위를 주 의회 선거의 유권자 범위보다 축소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더 넓은 민의 기반을 얻도록 했다. 이후 1868년 헌법 제14조 수정조항으로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

건국의 주역이자 2대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는 하원이 미국의 축소판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능한 자들만이 아니라 인민의 평균과 비슷한 수준의 자들로 구성된 하원을 이상적인 하원이라고 보았다. 하원 의원은 현자가 아니라 대표이며, 다원사회를 꾸린다면 하원 역시 다원적으로 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원성에 대한 고려는 제헌 과정에서 형성된 민주적인 발상이었다.

이와 달리 엘리트로서 지혜로운 조언자이자 연방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상원은 임기가 6년이다. 상원의원은 주의 대표로서 한 표의 투표권을 갖는데, 주의 명령에 따르는 게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의사와 판단에 따라 연방 입법에 참여한다. 상원은 과거에 간접선거로 선출되었는데 1913년 헌법 제17조 수정조항에 따라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이로써 상원이 주의 인민을 대표한다는 헌정 정신에 더욱 부합해졌다. 하원은 사회를 반영하므로 선악이 공존할 수 있는데, 고문자로서 상원은 하원의 우둔이 국가나 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했다. 이처럼 역할이 다른 양원은 서로를 견제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 헌법은 상·하원 의원의 자격을 느슨하게 규정하여, 주로 재산 기준 미달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던 이들의 지혜와 공헌도 마다하지 않았다. 의원들은 임기가 비교적 짧고 유권자의 검증을 받은 것만으로도 헌법의 정신은 이미 보장되기에 연임 횟수도 정하지 않는다. 다만 선대 정치인의 후광에 기대어 젊은 나이부터 의원이 되는 정치 세가의 폐단을 막기 위해 최저연령 제한을 둔다(하원 25세, 상원 30세). 사생활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호주제 대신 10년 주기의 인구 총조사로, 자신의 선거구에 살지 않는 부재중 의원의 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고 의원이 각자의 선거구 기반 위에 존재토록 했다.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1/3은 2년마다 선거를 치르는데, 대통령 임기 중 치러지는 중간 선거는 정치적 감독 효과를 낳았다. 주기적인 의원 교체로 새로운 에너지와 의견을 수혈하고, 10년마다 인구통계를 내어 선거구와 하원 의석수를 조정하며 사회적 변동을 반영하는 것은 헌법이 만든 정치 흐름의 순환 원리다. 헌법은 모든 법의 기반이 되는 법으로 한번 제정되면 쉽게 바꿀 수 없고 고정된다. 하지만 순환 원리에 따라 헌법 조문이 불변하면서도 동시에 시대 변화를 충분히 인식한다는 점은 놀라운 역설이다. 미 헌법은 1789년 제1대 의회 이래로 단 27개의 수정조항만 추가되고 그중 단 1개, 수정 제18조 금주법만 폐기됐을 뿐이다.

수정조항 중 초대 의회가 통과시킨 처음의 10개 조항을 ‘권리장전’이라고 한다. 본 조항이 인민의 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보면, 이제 막 설립된 의회가 다른 일을 제쳐두고 자기 권력을 축소한 셈이다. 여기에는 특수한 맥락이 있다. 원초 제헌자들은 정부가 무얼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규범화하는 데에 집중했다. 인민이 어떤 권리를 지니는지는 굳이 규정할 필요가 없었다. 삼부에 위임한다고 명시되지 않은 모든 사항이 인민이 지닌 자연적인 권리였다. 그러나 인민의 절대적 불가침권을 첫머리부터 명시했던 대다수 주 헌법과 그렇지 않은 미 헌법에 차이가 있던 것에 대표들은 불만이었다. 그로 인한 불협화음을 피하고자 초대 의원들은 권리장전 통과에 착수한 것이다.

물론 앞서 통과한 헌법 역시도 인민의 권리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 인민의 권리를 열거한 권리장전이 없다고 하여 인민의 권리가 없다는 뜻도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헌법 조문 중 가장 긴 제1조 제8절은 의회의 권력을 18개 항으로 열거하여, 의회가 주권재민을 실현하는 중추 기관이고 주권과 관련한 권력은 의회를 통해 행사되어야 함을 보였다. 헌법 제1조 제9절은 의회가 법적으로 성립되는 근거가 인민주권에 있기에 이를 제한하는 사권 박탈법과 소급 적용법을 입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어찌 됐든 헌법과 권리장전은 모두, 의회가 스스로 권력을 제한하고 인민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의지를 규정으로 보여준다.


2) 대통령

대통령의 행정권을 규제하는 헌법 제2조에는 당시 제헌 대표들이 대통령제를 채택했을 때의 고민이 녹아있다. 앞서 본 제1조는 “헌법이 부여하는 ‘모든’ 입법권은 의회에 속한다”며 입법 권한을 조목조목 나열한다. 의회의 권력은 나열된 것들이 전부다. 반면 제2조는 “행정권이 대통령에 속한다”라고만 서술하고, 행정 권한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는다. 당시 불안정한 정세를 고려했을 때, 제헌 회의 대표들은 수시로 작동하며 정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부와 집중된 행정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행정권의 범위와 크기를 입법권에 비해 훨씬 탄력적으로 규정했고, 대통령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부여됐다. 대통령은 군사·행정·검찰에 대한 권한을 갖고, 의회가 휴회 중일 때 임시 입법권도 갖는다.

한편 미 대통령은 영국의 왕과 차이가 있다. 영국 국왕은 취임 시 반드시 “의회가 동의한 법령에 의거해” 정치할 것을 선서하는 반면, 미 헌법은 대통령에게 의회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통령 권력의 궁극적 원천은 인민주권을 대표하는 헌법이다. 대통령은 의회가 인민주권의 뜻을 모아 만든 법률을 위배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그것을 집행할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의회가 내민 법률을 부결시킬 수 있고, 독립적으로 위헌성을 판단해 법률 집행을 거부할 수도 있다.

제2조 제1절 1항은 대통령의 임기를 의원의 임기와 적절히 비례하게 4년으로 정하여 행정권과 입법권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한편 대통령의 임기 역시 의원과 마찬가지로 연임 제한이 없었는데 워싱턴이 두 번의 임기만 수행한 후 깔끔히 사퇴하자 대통령은 재선까지만 하는 것으로 관례가 굳어졌고, 이후 헌법에 반영된다.

대통령과 공직자는 취임 시 헌법 제2조 제1절 8항에 따라 ‘취임 선서’를 거쳐 헌법에 대한 신앙을 반드시 공표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헌법은 곧 종교다. 취임을 선서하는 자는 헌법에 어긋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 언제나 헌법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업무상 옳고 그름을 가리는 궁극의 척도로 삼아야 하고, 각 권부가 위헌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헌법의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직자는 헌법을 통해 인민의 신임을 얻고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 좋은 사례로 2대 대통령 제퍼슨이 선동죄법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 법률이라며 집행을 거부한 일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취임 선서는 헌법을 견고하게 보장하는 방법이자, 헌법의 등한시나 권한의 오남용을 막는 일상의 방어선이다.

영국의 의원내각제에는 여러 장관 중 가장 앞자리를 점하는 수상이 있고 그 위에 국왕이 존재하며, 정치적 책임은 정당에 묻는다. 내각제 모델에서 벗어난 미국 헌법은 대통령 일인이 행정권을 주관하도록 하여 장관들은 대통령의 비서가 된다. 정치적 책임은 다른 곳에 전가할 여지 없이 대통령 개인이 떠맡는다. 대통령은 직무 수행 능력을 거듭 증명하지 못하면 헌법 제2조 제1절 6항에 따라 신분을 잃을 수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강력한 권한을 주고 이를 엄격한 헌정 시스템으로 제약을 가하려면 서로 다른 권력이 뒤섞여서는 안 된다. 이 명확한 논리는 행정기관에 소속된 그 누구도 의회 의원을 겸할 수 없게 했다. 헌법의 목적을 이루려면 그를 충분히 이해하고 신뢰하고 존중하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는 많은 국가는 미국의 모델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헌법을 대폭 수정했는데, 그 가운데 헌법의 정신을 수호하지 못한 국가는 헌정을 타락시켰다. 막강한 행정권을 일인에게 위임하기 어렵다면 집단으로 행정권을 보유하는 의원내각제가 낫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헌법의 정신을 결여한 채 외형만 갖춘 반쪽짜리 대통령제는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 헌법을 모방한 한국 헌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헌법을 독재자의 집권 영속화를 위한 수단으로 쓰거나 그의 입맛에 따라 헌법을 고치며 ‘법에 의한 지배’를 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1987년 개헌도 정치 최상층권 내부에서 이뤄진 쟁투의 결과가 반영되면서, 한국 정치에는 대통령 일인이 권력의 정점에 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구조적으로 고착했다. 

물론 미국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데, 시간이 갈수록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면서 정부의 규모와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행정국가화는 권부 간 권력의 균형을 깨기 쉽다. 결국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제대로 된 헌법뿐 아니라 헌정을 지키는 준법 사회가 필요하다.
 

3) 사법부

의회가 각종 법을 제정하고 행정부가 법을 집행해 시스템이 가동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사법권이 능력을 펼친다. 법원의 조직 근거는 의회가 마련하고, 법관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심사 및 동의로 부임한다. 따라서 입법권 없이는 사법권도 없고, 행정권과 입법권의 정상적인 작용 없이는 법관도 없다. 사법권은 헌법 제3조에서 다룬다.

합중국의 사법권은 하나의 최고 법원과 의회가 수시로 제정 및 설립하는 하급 법원들에 속한다. 최고 법원 및 하급 법원의 법관은 성실히 직무를 이행하는 한 그 직위를 보유한다. 또한 그 복무의 대가로 정기적인 보수를 받으며, 그 보수는 재임 중에 삭감되지 않는다.

위 제3조 제1절을 살펴보자. 여기서 규정하는 법관의 직위 보유 기준은 ‘성실히 직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굉장히 느슨하다. 법관에게는 능력 평가도 존재하지 않고, 정해진 임기도 없다. 물론 법관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탄핵 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가장 기본적인 직무 이행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만일 법관이 각종 공격에 따른 위협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독립적이고 초연한 법 집행은 어렵기 때문에 법관에게 높은 지위를 보장해 준다. 법관은 재임 중 봉급도 삭감되지 않는다. 그런데 헌법은 입법권(의회의 예산권)이 법관의 급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사법권에 사실상 뇌물을 주는 것은 막지 못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런 식의 헌법 우회가 빈발하자 권부 간 상호 견제 메커니즘은 이익 교환과 제휴로 대치되기도 했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일지라도 헌법이 원초 의도한 권력분립을 방만히 한다면 헌정질서는 깨지고 민주주의는 정상 작동하지 않으며 종국적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뒤이어 헌법 제3조 제2절은 연방 사법권이 관할할 수 있는 안건을 상세히 열거한다. 이는 각 주의 사법권과 연방 사법권을 분명히 구분 짓고, 연방이 주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음을 보증하기 위함이다. 조문에 열거된 항목 이외의 소송은 각 주가 자체적으로 심리한다. 즉, 연방법원은 각 주의 상소 법원이 아니며, 연방법원과 각 주 법원은 상하관계가 아닌 대등한 분업 관계다. 제2절은 재판의 기본원칙과 방식도 명확히 규정한다. 형사재판은 그 범죄가 발생한 주에 해야 하는데(3항) 미국의 광활한 땅, 많은 인구, 지역별 차이를 고려함으로써 각 주의 인민이 다른 주에 가서 재판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

제3조 제3절에서는 반역죄를 다룬다. 반역죄는 합중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거나 적에게 가담해 원조나 편의를 제공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이 조항에 따라 기존에 각 주 헌법들이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던 반역죄들은 무효가 된다. 반역죄는 증인 2인의 증언이나 공개 법정에서 자백이 있어야만 유죄를 선고할 수 있게 하고 반역자의 재산 몰수는 금지함으로써 사적 원한에 따른 복수를 막았다. 반역죄는 사상이나 정서 등 심증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로써 헌법은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사법권을 규범화하는 조문은 단 3개 절뿐이다. 솔직히 제헌 회의 대표들은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법권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제헌 당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사법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다. 사법권의 변화는 주로 제3조 제1절이 규정하는 “의회가 수시로 제정, 설립하는 하급 법원들”에서 기인한다. 의회는 언제든 입법을 통해 새로운 하급 법원을 세울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법 체계의 규모는 부단히 확대되며 사법권의 부상을 촉진했다.

“최고 법원”의 역할 확대도 사법권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본래 헌법은 법원의 등급을 나눠, 종심을 내리는 법원을 단순히 최고 법원이라고 칭했다. 원래 미 헌법에서 사법권은 다른 두 권력에 비해 확연히 지위가 낮다. 의회의 의장이나 행정부의 대통령처럼 권부를 대표하는 최고 직위도 사법권에는 없다. 사법부의 인사를 지명하는 권한도 사법권 내에 없다. 하지만 훗날 설립된 연방 최고 법원이 ‘헌법 해석’이라는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헌법이 부여한 적 없는 강대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제 최고 법원은 주법(州法)과 연방의 법이 서로 어긋나는 사안뿐 아니라, 연방의회가 제정한 법률까지도 심리하여 위헌인 법률의 효력을 취소할 수 있게 됐다. 

특히 20세기 들어, 최고 법원의 헌법 해석은 종종 미국 사회에 개혁을 촉진하기도 했다. 예로, 인종 분리 조치에 대한 위헌 판정은 흑인민권운동에 큰 물결을 일으켰다. 사실 헌법은 법원에 입법권을 전복할 최고 권력을 부여한 적이 없다. 하지만 19세기부터 몇몇 열정 있는 대법관은 법원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운용·확장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에 위헌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판례가 축적되자, 사람들은 이것이 삼권분립의 기본정신에 걸맞은 일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사법부의 권력 확대를 불러온 또 다른 요소는 다른 두 권부에 비해 사법권이 더 많은 신임을 인민으로부터 얻었다는 것이다. 의회 의원 및 행정관료의 각종 부패와 추문으로 인민은 이들을 차마 믿지 못하는 반면, 법관은 정치꾼으로 취급하지 않고 존중한다. 사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망각했지만, 헌법은 헌법에 충성 선서를 한 공직자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헌법을 심사할 권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의원이나 관료의 헌법 관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 이들은 중요한 일을 점차 법관에게 맡기려 한다. 사법권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삼권이 더 균등해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보다 더 나아가 정치적 사안을 법원의 판단에 맡겨 해결하려는 ‘정치의 사법화’는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두 현상 모두 헌법이 본디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4) 입법권과 행정권, 그리고 사법권의 긴장 관계

지금까지 삼부 각각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각 권부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까? 요컨대, 입법권이 헌법을 위배하는 법률을 제정하면 행정권은 서명 또는 집행하지 않고 입법 기관으로 되돌려보낸다. 행정권이 헌법을 위배하면 입법 기관은 질의하거나 법을 수정하고 심지어 탄핵을 발의할 수 있다. 사법권은 입법권과 행정권이 작동하는 중에 발생한 위헌 상황을 조사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법관은 헌법을 위배한 법률로 판결해서는 안 되며, 사법권에 속하는 대배심과 배심원단 역시 그러한 법률로 누구를 기소하거나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거부해야 한다. 각 권력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일 때는 대법관이 마지막 판정을 맡는다. 다만 삼권이 상호작용하는 도중에 자연스레 의견 차이가 좁혀지기도 한다. 이 같은 프로세스는 각 권부가 늘 긴장한 상태에서 서로를 감독하고 견제하도록 한다. 헌법은 한 권부가 다른 권부를 제압하지 못하게 하며, 최종적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했다. 먼저 입법권과 행정권의 관계부터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앞서 언급했듯 입법권은 한도가 있는 권력으로, 의회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 가운데 헌법에 명확히 열거되지 않은 것은 인민에 속한다. 행정권은 인민주권이 입법권을 통해 부여한 임무를 집행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좋은 수단을 찾으려면 정부는 충분히 재량적이어야 한다. 즉, 입법권은 규칙을 정하고, 행정권은 정해진 규칙하에서 자유재량의 권한을 가진다. 물론 대통령은 수시로 국정 전반을 의회에 보고할 책임이 있다. 한편 특수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회 소집 권한은 의회에 대한 정부의 주요 감독 기능이다. 만약 양원이 협의에 이르지 못하면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영역은 ‘인사’다. 행정관료는 그 무게에 따라 임기가 있는 직위와 없는 직위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 직위가 보장되므로 대통령이 면직하거나 교체할 수 없다. 임기 제도가 있는 기관은 ‘독립 기관’이라고 하는데, 의회는 정부의 직접적 간여로부터 독립한 독립 기관을 규범화해 행정권을 견제한다. 반면 임기가 없는 직위의 임용권은 실질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의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인선을 부결하거나 자격 심사를 거칠 순 있지만, 인선을 직접 지명하거나 대통령에게 이를 수용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군대와 관련해서도 입법권과 행정권은 상호 견제의 원리가 적용된다. 서언에 적힌 헌법의 목적인 ‘정의 확립, 국내 안녕 보장, 공동 방위 도모, 국민 복지 증진, 자유 확보’는 의회의 권력과 역할을 통해 달성된다. 가령 의회는 공동 방위 도모를 위해 선전포고권을 갖고 육·해군의 규모와 배치를 결정할 권력도 갖는다. 대통령에게는 이 권한이 없다. 다만 집단 결의 체제인 의회의 특성상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전쟁의 책략을 처리하기에 부적합하기에 대통령에게 지휘권을 부여한다. 다만 대통령이 군사력을 오남용하려 할 때 의회는 병력 배치를 거부할 수 있다. 이처럼 의회의 군대 배치권과 대통령의 군대 지휘권을 분리해 상호 견제하도록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군대 통제권은 2년마다 치르는 의회 선거에서 유권자가 쥔다.

헌법은 행정권과 사법권 사이의 관계도 규정한다. 미국의 재판은 배심원이 범행의 성립 여부와 유무죄를 심리해 1심 결정을 내리는 사실심과 법관이 법조문에 따라 양형하는 법률심으로 나뉜다. 행정권에 속하는 검찰권은 증거를 수집해 사법권에 속하는 배심원에게 제공하고 피고인이 유죄임을 설득해야 한다. 사실심에서 검찰권이 배심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피고인은 무죄이고 법률심은 진행하지 않는다. 검찰권과 재판권의 엄격한 구분은 피고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자, 행정권과 사법권이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헌법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헌법은 공직자에게 법률적 책임 외에도 정치적 책임을 더 얹는다. ‘탄핵’은 정치적 책임을 심판하는 제도다. 정치적 책임을 확인해야 하는 안건이 발생하면 의회는 ‘탄핵 법정’으로 변하는데, 하원은 임시 검찰관이 되고 상원은 임시 배심원이 된다. 탄핵 대상이 대통령이면, 상원 원장인 부통령 대신 최고 법원의 수석 대법관이 탄핵 심판을 주재한다. 만약 대통령이 범한 잘못이 “반역죄, 수뢰죄 또는 그 밖의 중대한 범죄”일 경우 사법적 기준과 정치적 기준이 일치하므로 판결하기 쉽다. 그러나 제2조 제4절이 밝힌 탄핵 사유에서 “경범죄”는 무엇으로 정의할지가 논쟁적이다. 여기서 ‘경범죄(부당행위)’는 본래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가리킨다. 탄핵이 정치적 심판의 성격을 지님을 강조한 것이다. 핵심은 공직자의 위법 그 자체라기보다는, 부적절한 행위가 공직 및 공권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한편, 탄핵이 당파 싸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므로 신중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1868년 의회와 관계가 나빴던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탄핵안은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기각됐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탄핵이 의회와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 차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4. 헌법과 헌정질서를 위하여 

 
통념상 헌법은 인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제하는 문건이라고 오인되지만, 적어도 미국 헌법의 전반에서 드러나는 입헌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민이 국가에 교부하는 권리를 규범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를 조직하고자 했다. 각 주의 경계나 기존 연합의 차원을 넘어서는 연방이 더 큰 권한을 양도받으려면 인민을 설득해야 했기에, 연방이 인민으로부터 어떤 권리를 가져오고 그 권리를 어떻게 운용할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고로 미 헌법의 규제 대상은 인민이 아니라 공권력이었다. 인민의 의무에 대해서는 헌법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수정헌법 제1조는 정부가 어떤 자유를 갖지 못하는지를 규정함과 동시에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 헌법에서 인민은 자유롭고 정부는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에 양도한다고 적히지 않은 권리는 본래 인민에 속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헌법은 인민의 동의하에 양도된 권리를 정부가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요구하는 일종의 차용증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헌법의 근본정신이다.

미국 헌법은 본문 7개 조와 수정조항 27개 조로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으나, 이 조문들이 구현하는 정치제도 하나하나에는 수많은 권력 요소가 얽혀 있다. 삼권의 관계에 대해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은 헌법이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도록 한다. 신중한 논리와 정교한 설계로 제정된 미 헌법은 훗날 미국 정치사의 변천과 발전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민주적 정치 구상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미국 헌법을 모방한 여러 국가는 헌법의 정신과 논리까지 진정으로 계승하기 어려워했다. 다른 나라의 명목적 헌법 내지는 장식적 헌법은 “헌법”이라고 이름만 붙였을 뿐, 조문이 서로 부합하지 않거나 현실을 규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헌법을 자주 뜯어고쳐 권력자의 구미에 맞게 자의적으로 바꾸면서 헌법의 존엄과 신뢰를 손상하는 일도 빈번했다. 미국에서 정부의 권력은 오로지 헌법에 기반을 두고 헌법의 제약을 받으며 행사될 수 있는 것이지만, 헌법을 수단 삼아 막강한 권력을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다른 나라의 제왕적 대통령은 종종 이를 무시한 채 헌법적 제약을 ‘극복’하려 한다.

한편, 한국과 대만을 포함해 여러 국가의 헌법 저변에는 ‘인민에게 권리가 있는 만큼 의무도 있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논리를 따르는 국가는 납세의 의무, 병역의 의무, 국민교육을 받을 의무 등 이것저것을 덧붙여 헌법전이 두껍다. 한국의 헌법은 전문과 10장 130조에 더해 부칙 6조로 구성되고, 대만 헌법은 전문과 14장 111조에 더해 부칙(수정증보조문) 전문과 12조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미 헌법은 이렇게 길지도 않고, 이런 헌법들과 유사한 조문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 헌법이 구사하는 화법은 인민이 본디 자유롭고 모든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를 헌법에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이 직관적으로는 좋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능사는 아니다. 헌법에 기입한 권리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헌법에 따로 기입하지 않은 모든 권리가 인민에게 있는 편이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또한 인민이 어떤 권리를 갖는지 정하고자 한다면, 정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권리의 확장에도 효과적이고 민주주의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이 설계한 제도를 현실 사회에 정착시키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권력에 대한 민주적 사고와 논리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대 이상적으로 꿈꾼 이론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여 비교적 안정적인 헌정질서를 창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헌정질서를 지키는 일에 진심으로 고민하고 헌법이 내포하는 정신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 것은 미국이 200여 년 사이에 강력히 부상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제헌 대표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드는 데에 비교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역시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계속되어야만 가능하다. 이는 저자가 속한 대만 사회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다. 필자가 보기에,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헌법과 헌정사에 관한 토론이 끊임없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 논쟁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데, 아마도 역사가 유구해서 혹은 역사를 정쟁의 소재로 소환하려는 세력이 많아 그럴 것이다. 그에 비해 현대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에 대해서는 논쟁이 부족하다.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대통령 선거처럼 전국적 사건이 일어나는 그때뿐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 반면 미국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그래서 혹자는 미국을 역사라고 할 것이 거의 없는 나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에서 한 가지 일에서만큼은 역사가 신성에 가까운 구속력을 가진다. 바로 헌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둘째, 헌법이 규정하는 정치질서가 제 목표를 이루려면, 시민이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문제인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민에 대한 공권력의 책임성, 즉 수평적 책임성이 보장되려면 국가기관 간 상호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부정과 태만을 제재하는 감사원 같은 독립적 기구의 권위적 역할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들의 기능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주기적 선거 기제로 대표를 통제하고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감독하는 수직적 책임성(사회적 책임성)도 실현해야 한다.

셋째, 헌법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해, 각 권부와 권력자는 서두에서 언급한 ‘헌법적 강경 태도’를 지양하고, 헌법을 당리당략에 맞게 재단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한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설령 권력 행사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을 한껏 휘두르지 않는 ‘제도적 자제’도 필요하다. 정치적 중용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 관용의 자세 역시 헌법을 지키는 모두에게 해당한다.

헌법에 담긴 규범이 형해화하고 정치가 기능부전인 작금의 상황에서 미국 헌법이라는 현대 고전이 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언제나 헌법과 그것이 보장하려는 인민의 자유와 권리가 무엇인지 상기하는 전통, 민주주의에 얽히고설킨 권력 원칙을 이해하는 일, 헌정이 위협받을 때 이를 알아차리고 사리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우리는 이를 추구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의 정치는 한결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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