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민주노총 정책대회 참관기
민주노총은 30주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2024년 11월 27~29일 강원도 정선에서 민주노총 정책대회가 열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혁신·강화, 조직운영과 혁신, 사회변화에 따른 노동운동 대응 전략’을 주제로 하여 해외 노총의 초청 강연과 다양한 토론 및 강좌를 준비했고,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모색하고자 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오랜만에 많은 민주노총 간부·조합원이 모인 행사였다.
서른 살 민주노총의 정책대회, 잘 모인 잔치 한 번으로 끝나고 만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제대로 된 미래의 청사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인지 지켜봐야할 시점이다. 글에서 이번 정책대회에서 주로 다뤄진 주제인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운동을 두 축으로 하여 소감을 밝히고, 정책대회에서 제시한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한 대응 전략에 대해 논평하고자 한다. 나아가, 30주년을 맞이한 민주노총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1. 정책대회 확대해 보기 ① - 정치세력화
1) 길을 잃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 정책대회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제로 다룬 일정이 꽤 많았다. 특히 정책대회의 백미라 할 수 있었던 두 차례의 해외 노총 초청 강연은 모두 이와 연관된 내용이었다. (‘2024 프랑스조기 총선과 노총의 역할’, ‘브라질 노총의 노동자 계급 정치세력화 전략’). 둘째 날 오전에는 사전에 실시한 ‘조합원 정치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기초로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관해 토론하는 세션도 열렸다. 일각에서는 작년부터 이어진 정치·총선방침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토론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그동안 양경수 집행부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을 꾸준히 비판해왔다. 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한 순환이 끝났다는 인식 하에, 당분간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각자 독자적 역량을 기르고 사회적 위상을 재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이러한 평가에 기초하여 정책대회에서 나온 논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조합원의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프랑스노총
‘2024년 프랑스 조기 총선과 노총의 역할’은 첫 번째 세션 중 하나로 개막식이 열린 컨벤션홀에서 진행되었다. 해외 노총의 견해를 듣고 토론할 기회가 드문 만큼, 넓은 장소가 거의 찰 만큼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손지승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이 프랑스 상황을 설명한 후, 프랑스노총(CGT) 국제국 아시아태평양 지역담당 실뱅 골드스테인(이하 실뱅)의 강연이 이어졌다.
실뱅은 먼저 아미엥 헌장과 CGT 규약에 대해 설명했다. 아미엥 헌장은 노동자와 자본가 간 계급 투쟁에 대한 인식, 노동자의 복지 향상과 사회 변혁이라는 ‘이중의 임무’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인상적인 점은 이 헌장이 정당, 철학, 종교로부터 노조의 독립성과 조합원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옹호한다는 점이다.
한편, CGT 규약 6조는 “사용자, 공권력, 정부, 정치·철학·종교 및 기타 조직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표방하며, “조합 외부의 정치활동 또는 선거활동에서 조합원의 자격이나 조합 내 직위를 이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때 특정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고수했고, 간부 직함을 지니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게 일반적인 민주노총 입장에서 굉장히 낯선 내용이다.
이어 실뱅은 좀 더 구체적으로 CGT와 정당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우선 ‘정치’의 여러 측면, 즉 정치적인 것(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과 위치), 정책(특정 분야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방침), 실제 정치(정치활동, 정당정치와의 관계)를 구분하여 제시했다. 더불어 노조가 사회 변혁을 목표로 확립된 요구와 조직적 지향에 기초하여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현실 정치에서 사회의 다른 조직이나 선출직 관료들과의 관계는 불가피하지만, 그 관계 역시 노조가 자율성을 유지할 때만 성립 가능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자면, 그는 노조가 독자적인 지향과 전략을 확고히 하는 한에서만, 노조가 실제 정치에 유능하게 개입하며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고 강조한 셈이다.
실뱅은 극우세력이 부상하는 프랑스의 현재 상황이 긴축정책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긴축정책은 좌·우파 어느 쪽이 집권하더라도 유지·확대되었으나, 국민 대다수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투표율이 하락하며 다수당이 존재하지 않게 되자, 극우세력이 캐스팅보터가 되어 사실상 정부 정책을 좌우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극우세력의 득표는 확대되어 1995년 450만 표에서 최근 대선에서는 1060만 표에 이르렀다.
실뱅은 이들이 기성 정치세력과 다른 것처럼 차별화하지만, 본질은 노조, 여성, 이민자를 혐오하는 위험한 집단이라고 폭로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국민연합(RN)의 경우 이들이 사회적 의제로 보이는 구호를 내세우나, 결국 자본의 편에 서서 거대한 사기극을 벌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CGT는 이러한 인식아래 2024년 6월 열린 조기 총선에서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극우 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열띤 강연 후 곧바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프랑스에서 극우세력에 대한 노동자들의 지지 여부, 노조에 대한 탄압과 국민 여론 등 일반적인 질문이 있었다. 한편, 노조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조하는 CGT의 원칙이 신기했던 탓인지, 이와 관련된 질문도 다수 나왔다. 먼저 조합원의 정당 가입 비율과 노조 간부들의 정당 활동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실뱅은 정당 가입 비율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또 CGT에서는 조합원에게 정당 가입을 요구하지 않으며, 정당에 소속된 채로 간부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과 민주노총의 상황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 질문들도 있었다. 먼저, CGT와 달리 민주노총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중심으로 정치방침을 결정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질문이 있었다. 실뱅은 민주노총과 CGT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며 구체적 언급을 삼갔다. 다만, CGT는 정당과 독립적이라는 점을 다시 언급하며 조합원들의 일상적 활동이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음으로, 올해 한국 총선 때 집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민주당과의 연합 전술을 두고 논란이 많았고, 민주당에 대한 반대 의견 때문에 민주노총 내에서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어려웠다며, CGT는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어떻게 모아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은 프랑스 조기총선에서 CGT의 신인민전선 지지를, 진보당의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 결정과 유비하려는 의도를 담은 듯 했다.
실뱅은 극우집권을 막기 위해 마크롱에 반대하는 좌파연합을 설득하려 노력했다면서도, 결국 노조의 독자적 입장과 실력을 갖추는 게 더 중요했다고 답변했다. CGT가 다른 정치 세력에 대한 의존 없이 확고한 자기 실력을 기반으로 극우 정당 저지에 기여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3) 집권당으로부터 노총의 독립성을 잃지 않은 브라질노총
저녁식사 후 열린 ‘브라질노총의 노동자 계급 정치세력화 전략’ 강연에서는 브라질노총(CUT) 국제관계 사무국 조정자 페르낭두 비첸지 비바우두(이하 비바우두)가 연사로 나섰다. 비바우두는 CUT와 노동자당(PT)이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브라질의 역사를 간단히 설명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늦게 노예제를 폐지한 국가로, 혼란스러운 정치변동을 겪었다. 1930년 바르가스 대통령 집권기에 노동권을 획득하기도 했지만, 1964년부터 거의 20년간 이어진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파업은 금지되고 노조는 어용 지도부에게 장악되었다. 이 시기 룰라가 조직한 ‘신노동운동’은 독재에 맞서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투쟁했다. 또한 노조는 임금 투쟁에 그치지 않고 여러 부문·직종의 노동자를 아울러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고, 사회운동과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투쟁 속에 1983년 CUT가 설립되었다. 룰라는 세 번의 대선 도전 패배 끝에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PT가 집권하게 된다. 비바우두는 이 승리에서 CUT의 핵심적 역할은 공식지지 선언이나 선거운동보다는 노동자계급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CUT는 사회운동과 함께 직접 투쟁하면서도 이를 제도적 투쟁과 결합하고,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계급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는 특히 노조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CUT가 PT로부터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집권기에도 독립성은 유지되었다. 2016년 지우마 대통령 탄핵, 룰라 대통령 구속으로 2018년 극우 보우소나루 정부가 집권하는 위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2년 가까운 투쟁 끝에 룰라 대통령이 석방되고 2022년에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현재 CUT는 민주주의 수호와 극우 세력 퇴치, 노동자 계급 대표성 확대, 기후변화, 디지털화 대응 등의 과제를 이어나가고 있다.
엄미경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사회로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은 매우 뜨거웠다. 실제 집권에 성공한 브라질에 대한 호기심에 더해, 앞선 CGT의 강연처럼 노조의 정치적 자율성을 강조한 점이 참가자들에게 큰 인상을 준 듯했다.
질문은 CUT와 PT의 관계에 집중되었다. 먼저 CUT 조합원 중 PT 당원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비바우두는 숫자로 말하긴 어려우나 많이 참여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어 다른 좌파 정당은 없는지, CUT에서 PT하고만 전략적 관계를 갖는 것에 조합원들의 불만은 없는지 질문도 이어졌다. 비바우두는 다른 좌파 정당들도 있으며, 이들과 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룰라 임기 때 PT에서 새로운 정당이 창당되어 나가기도 했으나, 최근 탄핵, 룰라 수감 사태를 겪으며 전보다 PT와 함께 단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누군가 CUT 내에서 다른 좌파 정당을 지지하면 단결이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비바우두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물론 이견이 있을 때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CUT는 조합원이 원하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답변했다. 이 질의응답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질문은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에 익숙한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집권까지 성공한 CUT에 특별한 답변을 구하고자 한 듯하다.
그러나 비바우두의 답변을 볼 때, 그는 오히려 CUT가 조합원의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도로 질문을 받아들인 것 같다. 그는 노총의 정치·선거 방침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그는 노조의 정치적 자율성을 확고히 옹호하는 답변을 이어나갔다. 비바우두는 CUT와 PT 간 정기적 협의 테이블도 없으며, 정치후원금도 금지되어 있으나, 노총과 당이 각자 맡은 역할을 잊지 않으며 서로 존중할 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4) 조합원이 생각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둘째 날 오전에는 ‘설문조사로 본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세션이 열렸다. 전날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쏟아진 관심을 반영하듯 자리가 부족해 일부 참가자들은 바닥에 앉을 정도였다. 먼저 사전에 실시한 조합원 정치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정경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발표가 있었다. 2,008명의 조합원이 응답한 이 설문조사는 평소 지지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 개념, 평가, 과제 등에 대한 정치의식을 살펴보고자 실시되었다. 다만 설문조사 참가자의 소속 가맹조직(서비스연맹 18.0%, 공공운수노조 15.4%, 보건의료노조 11.8%, 금속노조 9.5%, 건설산업연맹 9.3%, 민주일반연맹 8.9% 등), 지역(수도권 53.4%)이 다소 편중되어 있어, 이를 고려하여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
설문조사 결과, 2022년에 비해 평소 지지정당으로 진보정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지지율이 낮아지고(52.3% → 46.9%), 민주당계(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24.0% → 30.7%)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개념에 대해서는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여 집권하도록 만드는 것’이 46.5%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고, ‘노동자의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20.9%로 뒤를 이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평가에 대해서는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진보정당이 노동자·대중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서’와 같은 요인이 가장 많이 꼽혔다. 정치(선거)방침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높았으나, 간부에서 평조합원으로, 고연령대에서 저연령대로 갈수록 필요하다는 응답률이 낮아졌다. 과제로는 민주노총이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연대하여 노동중심의 진보정치세력 연합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은 점도 눈에 띈다.
정경윤 연구위원은 결론 및 시사점에서 먼저 노동정책에서 성별, 고용형태, 연령대, 가맹조직 등에 따라 선호도가 다른데, 이는 노동문제가 복합적이며 단편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개념은 평조합원과 상층간부 간, 가맹조직 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평가와 관련해서도 기층까지 노동조합 정치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조합원 대중과 진보정당의 거리가 멀어져 있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고 언급한다. 정경윤 연구위원은 이상을 종합하여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진보정치 강화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따라 조합원의 정치의식이 변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민주노총이 마주하고 있는 대내외적 현실이 매우 복잡하고, 기층으로부터 진보정치의 필요성·효용성이 의문을 받는 상황임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어 참가자들이 조별 토론을 거쳐 의견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올라온 의견에 참가자들이 ‘좋아요’를 누르면, ‘좋아요’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의견이 게시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사업과 관련해 가장 잘한 점으로는 민주노동당 창당이 꼽혔다. 마침 세션에 참가하고 있던 권영길 지도위원의 발언도 있었다. 권영길 지도위원은 전날 프랑스노총 강연을 듣고 자칫 오해할 수도 있겠다며 우려를 표하면서도, 분당에 이르렀던 지난 기간을 성찰하고 민주노총이 앞장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자고 당부했다. CGT에서 노조 밖의 정치활동에서 노조 직위를 활용할 수 없다고 언급한 점이 참가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기에, 프랑스와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못한 점으로는 초반에는 ‘정치방침 결정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정파갈등으로 인한 분열’이 1위를 차지했다. 민주노총 내 정파 간 경쟁구도가 심화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조율할 구조가 부재한 가운데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관련해서 참가자들의 발언도 있었다. 어떤 참가자는 민주노총이 정치방침을 결정하지 못한 게 문제라면서, 그새 조합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어렵더라도 방침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순히 방침을 올곧게 세워내면 모든 문제가 풀릴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중에는 정치(선거)방침의 ‘실효성’ 문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편, 한 참가자는 정파가 다르면 인사도 안 받는다고 토로하며, 이러한 행위가 민주노총 내 단결을 저해한다고 지적하였다. 우리 내부를 돌아보며 정당 내부 절차적 민주주의를 복원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전날 브라질노총 강연 내용을 언급하며, 많은 좌파 정당이 있었음에도 집권에 성공했던 브라질처럼 우리도 지금 있는 정당들을 인정하고 민주노총이 조합원 총의를 모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5) 무리한 방침보다 노총의 실력 강화에 집중해야
정책대회에서 이뤄진 토론을 볼 때, 민주노총 내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당 지지철회 논란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각의 주장대로 방침을 제대로 세우자는 식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해외 노총의 사례는 매우 일관되게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즉, 노총이 계급 대표성을 제대로 확보하고, 자신만의 독자적 노선과 실력을 갖출 때에만 현실 정치에 유능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CGT가 노조의 정치영역을 여러 차원으로 구분하며, 조합원의 일상적 활동이야말로 정치활동이라고 언급한 점은 참으로 곱씹어볼만 하다. 지금은 무리한 방침보다 민주노총이 계급적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쇄신을 고민할 때다.
2. 정책대회 확대해 보기 ② - 산별노조 운동
이번 정책대회에는 ‘산별 운동의 혁신·강화’가 세션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산별노조’라는 노동운동 전략이 민주노총 30년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도, 이후 30년의 과제를 정선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의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첫날에는 ‘산별노조 혁신강화 토론회’가 진행됐고, 다음 날에는 ‘산별교섭 강화를 위한 프랑스노총의 전략’ 초청 강연과 ‘초기업 교섭의 경험과 과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먼저 프랑스노총의 강연 내용을 싣고, 각 산별노조의 발표와 토론을 소개한 후, 평가와 이후 과제를 제시하겠다.
1) 약화하고 있는 프랑스의 노동법과 제도, 대안은 노총의 대표성 확보와 사회 세력화
“산별교섭 강화를 위한 프랑스노총의 전략” 강연은 CGT의 드니 그라부일(중앙서기, CGT 단체교섭·고용·연금·실업보험 담당)이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초청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3%, 단체협약 적용률 역시 딱 그만큼이지만,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이 11%인 데 반해 협약의 적용률은 90% 이상으로, 프랑스노총은 사회적 영향력이 높다. 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바로 프랑스의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인데, 한국 사회에도 초기업 교섭 제도화 투쟁의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단체협약은 고용계약이 있는 노사 당사자 간 계약의 의미를 넘어 보편적인 규범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협약의 ‘일반적용’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단체협약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를 중심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별 혹은 지역별 다수 사용자와의 단체협약’의 포괄범위에 있는 사용자가 고용한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이 협약의 효력확장은 협약 체결 당사자 중 노사 각각 과반이 요구하면 노동부장관이 법령으로 공포하는데, 이를 단체협약효력 확장제도라 부른다.
드니 그라부일 서기는 단체협약의 층위를 ‘직종 간 협약’(inter-professional), ‘산별 업종별 협약’, ‘기업별 협약’으로 나눠 소개했다. 이 중 특히 모든 산업을 망라하는 전국 협약인 ‘직종 간 협약’은 법률에서 정해진 내용과 임의 주제에 관한 협약으로, 사회 보장제도 운영에 관한 사항과 기후위기나 생태 등 새로운 의제에 관한 것으로 구성된다. (즉, 한국의 경우 경사노위나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다루는 의제다.) 이날 강연에서는 ‘산업 생태 전환에 관한 CGT의 22대 정책 제안’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이 할애되었는데, 단체협약이 위상이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법령에 가깝기에, 노총과 산별노조가 큰 책임감을 갖고 교섭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한, 좋은 협약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CGT처럼 뜻있는 노조가 대표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각 산별에서도 과반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대표노조’가 체결한 협약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도록 하고, 대표노조의 선출은 (비조합원을 포함하여) 전체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가 참여하는 ‘직업선거’에서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제도 때문이다. 따라서 CGT는 대표노조로서, 또는 대표노조 중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직업선거에서 이겨, 비조합원들로부터의 지지를 확인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CGT는 조합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하도록 강제 받게 된다.
한편, 그는 협약효력 확장제도가 처한 위기 역시 자세히 소개했다. 마크롱 정권의 노동법 개정으로 인해 산별 협약보다 ‘기업별 협약’이 우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프랑스 노동법에서는 기업별 협약과 산별 협약이 충돌할 경우, 기업별 협약에는 산별 협약보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원칙만 포함될 수 있도록 하여 갈등을 조정했다.
그러나 노동법 개정안은 이러한 ‘유리성 원칙’을 뒤집어,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경우나 산업별 협약에서 명시적인 금지조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기업별 협약에 노동자에게 더욱 불리한 조항을 포함해도 되고, 이것을 더욱 우선으로 적용해도 되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산별교섭을 위축시키고 규범이 극단적으로 파편화될 수 있도록 하며, 무엇보다 중소영세 기업에서 노측 교섭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며 헌법 49조 3항을 들어 의회 표결 절차를 ‘생략’함으로써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고, 결국 극우가 득세할 길을 열어준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CGT는 당장은 극우에 맞서는 투쟁이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회의 권한을 늘리는 것 역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유의미한 산별 협약을 쟁취하는 것이 아직은 미완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CGT의 금속노동자연맹은 1936년부터 르노 공장 점거를 포함한 대규모 파업을 통해 180여 개의 ‘지역’ 산별 협약을 쟁취했다. 그런데 이는 임금 면에서 지역별 격차로 이어졌고, 이를 인식한 노동조합이 1937년부터 전국적 단체협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지만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실패하게 된다. 경제위기 이후 노사관계가 분권화되고 불안정 고용이 더욱 확대되자, 금속산업에서 다양한 노조들과의 통합적이고 전국적인 단체협약은 이후의 여러 시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CGT는 마크롱 정부가 산별 협약 통합 요구에 대해 하향평준화로 대응하자 이를 거부하고, 더 나은 협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 중이다.
강연 전반에 거쳐, (프랑스의 노동법과 효력확장제도에 대한 해설보다는) 차츰 분권화되는 교섭 구조, CGT의 대표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도전과 혁신이 강조되었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유럽연합 입법 지침을 선도적으로 쟁취했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결국, 노총과 산별노조의 거시적인 비전, 통일된 전술, 전투력, 정치개혁과 정치투쟁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고려하여 지금 우리의 산별노조 운동을 진단한다면, ‘단체협약 확대 적용’을 가능케 하는 특정한 법 제도의 쟁취를 강조해야 할 단계인지 의문이다. 이미 민주노총은 2023년 ‘초기업(산별) 교섭 활성화 입법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기존에 노조가 포괄하지 않았던 광범위한 미조직노동자까지 포괄하는 협약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노동자 내부 갈등의 도화선으로 단숨에 비약할 수 있다. 효력확장을 주장하기 이전에, 비조합원에게 대표성을 검증받고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정 법제도 쟁취만을 산별노조 영향력 확대의 유일한 경로로 설정할 경우, 노총의 전략이 ‘진보정당 집권’이라는 간단한 해결책으로 수렴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2) 사용자 단체를 교섭장으로 이끌어내는 힘, 민주노총의 ‘초기업 교섭’ 전략
다른 토양과 역사에서 자라난 해외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한국 현실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단계적이고 실행가능한 초기업 교섭의 모델을 구축하는 것부터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표적 산별 노조들은 현재 어떤 초기업 교섭을 추진하고 있으며, 어떻게 산별 운동의 발전 전망을 모색하고 있을까?
사실 지역과 현장의 간부들부터 중앙단위의 정책 담당자까지, 이번 정책대회의 산별노조 혁신·강화 세션의 참가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현실성’의 문제였다. 당장 사업장의 현안을 중심으로 교섭의 요구안이 마련되는 관성 속에서 공통의 요구를 토론하기 어려운 데다, 노동조합 조직률도 사업장의 규모별로 큰 격차가 있고, 대산별교섭이 협소하거나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날 정책대회에는 이러한 어려운 조건 가운데, 4개의 산별노조가 최근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초기업 교섭의 시도가 발표되었다.
먼저, 보건의료노조 최복준 정책실장은 ‘노동기본권 교섭’을 소개했다. 우선 보건의료 노동자의 상당수가 5인 미만의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표준화된 임금체계가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을 보호할 협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노조는 2022년부터 직종협회와 함께 노동자 근무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교섭의 관건은 사용자 단체의 구성이다. 노조는 의사협회, 병원협회, 한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가 책임있는 사용자 단체로 교섭에 참여할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또, 교섭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규모나 경영 상황, 지불여력에 관계없이 적용할 표준임금 및 표준 노동조건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이희태 전략조직국장은 산업단지 내 작업복세탁소와 작은사업장 공동휴게실 설치 요구 사례를 소개했다. 산업단지는 규모가 영세한 사업장이 밀집되어있고 만연한 불법 인력 파견과 잦은 이직으로 기업별 노동조합 설립과 교섭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산업단지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조합 조직화를 위한 돌파구로 초기업 교섭을 다양하게 모색해왔다.
산업단지 또한 교섭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교섭 테이블에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노조는 산업단지의 관리권자인 ‘입주기업 협의체’나 한국산업단지공단, 지자체를 대상으로 산업단지/지역 사회 협약 체결을 모색했다. 교섭 의제로는 산단 내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안, 입주 기업체들의 법 위반 사항을 압박할 수 있는 사안, 노동자들과 입주기업 모두에게 유익하고 산단 개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만한 사항으로 정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는 산업단지/지역 사회 협약 추진을 위해 산업단지 노동자 실태조사, 요구안 마련, 지속적 선전전, 지역 토론회, 면담 요청 및 압박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지자체 소통창구를 확보했으며, 작업복세탁소/공동휴게실 설치와 유지 관리 과정에 노동조합의 개입과 참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 정기적 협의 테이블 마련을 위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실질적 대책 마련에 대한 예산 책정 등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금속노조 중앙교섭의 합의안 효력이 산단의 작은 사업장 미조직노동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조가 직접 사각지대를 밝히고 집단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소중한 시도로서 이후에도 계속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화섬식품노조는 IT업계의 ‘포괄임금제 폐지에 특화한’ 공동요구안 사례를 소개했다. 화섬식품노조가 포괄하고 있는 IT업계는 2018년 네이버 조직화 이후 약 17,000명의 조합원이 가입하며 가파르게 조직됐다. 이들의 주요 요구에 포괄임금제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던 만큼, ‘현행 포괄임금제는 폐지하고, 포괄임금으로 포함되었던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법정수당은 기본급으로 전환한다’는 공동요구안을 준비하여 관철시켰다. 동일한 요구안을 이후 설립된 지회까지 적용하려는 투쟁이 진행됐고, 무노조 IT 업체에서도 자발적인 포괄임금제 폐지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동일자본 내 다수법인을 묶은 공동교섭, IT 지회 전체를 아우르는 산별교섭으로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어 택배노조 남희정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교섭 사례를 소개했다. 코로나 시기 많은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 하청업체인 대리점주와의 교섭만 가능한 문제, 정부 담당부처가 불명확한 문제로 인해 교섭이 아닌 사회적 합의 방식을 채택했다. 당시 여당, 정부, 택배사, 택배 대리점, 택배노조가 참여하는 대화기구를 구성하고, 결과적으로 택배요금의 건당 170원 인상, 분류 인력 투입 등을 합의했다.
이 사례들은 민주노총의 수많은 초기업 교섭 중에서도 이를 조직화 목표와 연결한 최신 사례로, 거대한 중앙 협약을 목표로 하기보다, 우선 지역과 업종을 중심으로 하여 사용자 단체를 교섭장으로 끌어내는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 특히 (IT노조를 제외하고는) 임금체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불안정·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초기업 교섭 모델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3) 산별노조 운동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
이외에도 정책대회에서는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의 노조 임원들을 토론자로 하여 30년 산별 운동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참가자가 많아 일부는 바닥에 앉아서 들어야 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당일 주목받은 발언들을 쟁점별로 소개해 보겠다.
먼저, 해당 노조의 지난 산별 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기획실장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과 노동조건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의 변화에 따라 받는 영향이 극심해, 산별적 ‘정책’으로 법·제도 개선, 예산확보 투쟁 방향이 필요하다는 내부적 합의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진행하고 있는 산별교섭의 다양한 형태로 전체가 참여하는 산별 중앙교섭과, 사회적 교섭 형태인 대정부교섭·대지자체교섭, 그리고 특성별 교섭(지방의료원 등)을 소개했다. 또한, 2004년 주 40시간제 쟁취 투쟁 당시 병원 사업장은 예외라는 사측 주장에 전체 보건의료노동자가 함께 산별 파업을 했었던 때처럼, 현재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는 산별 ‘표준임금’과 ‘표준노동조건협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운수노조의 권오훈 부위원장은 아직 조직형식적으로도 공공운수노조는 완성되지 않았다며, 공공운수노조와 공공운수연맹이 조직형식 상 공존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따라서 2026년에는 반드시 연맹을 해산하겠다는 목표로 철도, 지하철 사업장이 산별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각 산별노조가 시간이 지나며 몸집은 커졌지만 아직도 전체 노동자를 대표할 만큼의 조직률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1산업 1노조라는 원칙을 위반하고 민주노총 내 조직 경쟁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4개 노조 모두 미조직 전략 사업에 대한 투자는 공통적이었다. 금속노조 엄상진 사무처장은 대공장 사업장에서 매해 몇천 명씩의 퇴직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조직사업은 노조의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2021년부터 조합비의 2%를 미조직기금으로 조성하고 전략조직사업 전담 인력을 채용하여 1기, 2기 전략조직사업을 진행해왔고, 현재는 3기 전략조직사업의 방향을 전 조직적으로 토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기획실장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조직2실의 이름을 전략조직실로 바꾸고, 전략 조직 기금을 모아 ▲ 우리 사업장부터 (간접 고용 노동자를 포함) ▲ 미조직된 큰 병원과 공공병원부터 ▲ 5인 미만 중소 병·의원부터 세 방향으로 2020년 조직확대 전략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태평양에 돌 던지는 식’이 아니기 위해서, 조직화 사업단도 꾸려 운영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권오훈 부위원장 역시 오랫동안 미조직전략팀을 구성해 온 역사와 함께 최근 직장갑질 119를 통한 온라인 노조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했다. 서비스연맹의 김광창 사무처장은 현재 연맹에 7개의 업종전략팀이 있다며, 대산별 전망보다는 소산별(업종)로 접근하여 확실하고 빠른 조직확대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민주노총의 전략조직기금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집중점을 정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1산업 1노조 원칙과 조직 갈등에 관해서는 다소 솔직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기획실장은 정파 갈등 때문에 대중조직 운영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가 되는 면이 있다며, 노동조합에서는 대중조직의 규약과 규율에 입각한 운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 참가자는 플로어 토론에서, ‘더 광범위한 조직화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이 중도 세력까지 떠안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 부분에서만큼은 조합원들을 존중하고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비스연맹 김광창 사무처장은 하나의 산업에서 여러 개 노조가 공동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를 예시로 들었다. 세 노조(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 여성노조)가 현장에서의 조직 갈등에도 불구하고 투쟁할 때는 하나로 뭉치는 것이 민주노총을 통한 사후 규율 방식보다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당 토론회는 각 산별이 ‘산별 운동’이라는 노동운동의 전략이자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또한 어떤 실험을 전개할 수 있는지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드문 자리였다. 관련하여 이날 보건의료노조의 나영명 기획실장은 보건의료노조가 먼저 산별 임금체계와 표준노동조건 협약을 만들어서 정체된 산별 운동의 돌파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결의를 밝히면서, 또한 개별 산별로는 돌파가 안 되는 문제에 대해서 민주노총이 교섭·투쟁 전략을 짜야 하고, 산별노조를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총연맹 차원의 사업기획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산별 정신은 기업별로 각자의 조직력과 투쟁력에 따라 최대치의 임금을 인상하는 것만이 목표가 된 ‘각자도생’의 상태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민주노총의 계급 대표성을 사회적으로 제고하자는 비전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토론회에서는 최소한 ▲산별교섭을 통해 관철할 산별 ‘기준’을 연구하고 내부에서 합의할 것, ▲미조직 전략 조직사업에 대해 더욱 투자하고 실험할 것, ▲산별노조 간 갈등을 대중조직의 민주적 운영원리에 맞게 조정할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토론된 셈이다. 이날 사회를 보았던 민주노총 홍지욱 부위원장의 말처럼, 일회성 토론이 아니기 위해서는 사후 논의 로드맵을 통한 정기적 점검과 구체적 토론을 통한 전략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3. 정책대회 확대해 보기 ③ -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한 대응 전략 논의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과제를 살펴보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한 대응 전략도 곳곳에서 토론되었다. ‘피할 수 없는 미래, 인공지능과 생성형 AI’ 강연은 기술혁신과 노동의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저출산 현상과 성 불평등, 노동조합의 대응’은 저출산 현상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성 불평등의 문제와 젠더관계에 대해 살펴봤다. 이와 함께 기후, 기술, 인구구조 변화 속에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도 토론되었다.
‘피할 수 없는 미래, 인공지능과 생성형 AI’ 강연에는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GIST) AI정책전략대학원 원장이 연사로 나섰다. 최고 이슈인 AI에 대한 관심으로 강연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김준하 원장은 최근 2년간 150회가 넘게 같은 주제로 강연을 다녔음에도 매번 강연마다 내용 상당수를 바꿔야 할 만큼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김준하 원장은 영상, 광고, 음악까지 만들어주는 생성형 AI의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연사가 마법 같은 AI의 능력을 보여줄 때마다 참가자의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준하 원장이 단순히 ‘기술전도사’로 강연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놀라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다면서 AI윤리에 대한 고민을 던졌다. 인간 존엄성 원칙, 기술의 합목적성 원칙, 사회의 공공성 원칙과 같은 기준과 더불어 AI를 활용하고 또한 규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질의응답에서도 이어졌다. 기술발전으로 발생할 문제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이 많았다. AI 상담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을 뻔한 콜센터 노동자의 질문도 있었다. 김준하 원장은 과거 IT혁명의 시기에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드러났다고 강조하며, 투쟁할 것은 투쟁하면서 기술과 경쟁하기보다 인간 중심의 규제를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저출산 현상과 성 불평등, 노동조합의 대응’ 강연에서는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강사로 나왔다. 강연은 저출산 개념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일각에서 저출산이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을 여성으로 전제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성차별적인 용어라 지적하며, 출생아 숫자 자체가 감소하는 현상에 주목하자면서 저출생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용어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시스템을 성찰하고 이를 바꿔내는 것이다. 따라서 마경희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굳이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마경희 연구위원은 저출산이 경제적 불안, 불안정한 미래, 삶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등 다양한 사회변동의 산물이지만, 성 평등한 사회로 가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대책이 재정투여와 양적 확대로만 흘러가는 점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임신 출산 양육자의 관점에서 저출산 문제를 인식하고, 양육에 필요한 돌봄 노동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으로 몇 가지 제언이 있었다. 우선, 일터의 변혁으로 성평등 노동 추구를 위해 이상적 노동자의 상징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전제하는 성차별적 관점은 저출산 대책일 수 없다. 또한 돌봄 노동자가 차별받지 않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돌봄의 재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양질의 유급 돌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돌봄 경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돌봄 노동자의 근로 조건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늘어나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사회변화와 이주노동자 조직화 및 권리보장 토론회’도 열렸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급증하고 있으나, 이를 바라보는 인식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정책대회 사전에 진행된 조합원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조합원이 41.6%로 나타난 점은 이를 보여준다. 그동안 민주노총과 각 산별조직은 이주노동자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부족했던 게 현실이다. 따라서 토론에서는 조직 내적으로 이주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더 필요한 과제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민주노총이 기술변화, 저출산·인구감소, 이주노동과 같은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룬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주요 관심사인 고용, 임금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은 물론,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할 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향후에도 민주노총 내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토론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사회변화에 따른 노동운동 대응 전략’ 분과에는 새로운 시대의 대응 전략으로 다루기 의아한 세션도 있었다. 둘째 날 오전에 진행한 “WARmerica의 운명(미 제국의 운명)” 영화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는, ‘미국 패권이 위기와 반서방연대의 부상을 통해 다극화로 나아가는 세계’라는 정세 인식을 주내용으로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다극 세계로의 전환이 결코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 바 있다. 다극화로 나아가는 흐름을 사회변화에 따른 노동운동의 대응 전략으로 삼기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을 대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
4. 이번 정책대회는 얼마나 달랐는가
민주노총은 그동안 많은 전략논의 혹은 혁신논의를 진행했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2005년에는 ‘민주노총 조직혁신위원회’를 구성했고, 창립 20주년인 2015년에는 ‘민주노조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조직하고 2016년에 정책대의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외에도 2000년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2009년 노동운동혁신위원회가 있었다.
2005년 조직혁신위원회에서는 낮은 조직률과 정규직 중심의 노조활동으로는 더는 노동계급을 대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사회적 연대성과 계급 대표성의 확장, 정체에 빠진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추동을 토론했다. 민주노총의 위상과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2016년 정책대대에서는 조직혁신전략 각론으로 ‘전략투쟁과 의제’, ‘조직강화’, ‘조직확대’, ‘정치전략’ 등 4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앞의 세 가지는 비교적 무난하게 동의가 이루어졌으나, ‘정치전략’ 안건은 합의되지 못한 채 정책대대는 끝나고 만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전략을 복수 안으로 상정했던 것처럼 준비가 미흡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난 20년간 민주노총 운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20년을 설계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특정한 정치방침을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앞선 결과였을 것이다.
2023년 정치방침·총선방침 논의도 엄청난 조직 갈등을 일으켰고, 그 갈등이 아직까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정치세력화 문제를 또다시 정책대회의 핵심의제로 삼은 것은 발전 없는 반복일 뿐이었다.
2024년 민주노총 정책대회 개막식에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민주노총 창립 30년을 앞둔 지금 기후위기와 AI, 플랫폼, 인구변화, 국제질서 등 수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다가오는데, 시대 변화에 순응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도하는 민주노총이 돼야 한다”는 대회사로 정책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또한, “민주노총은 이전에도 전략적 방향 수립을 위한 시도를 했다. 정책대의원 대회, 조직발전전략을 논의했으나 상층논의와 문서에 머물러 결정과 합의 과정이 부족했다”라며 정책대회의 개최 취지를 밝혔다.
이와 함께 9월 24일부터 11월 9일까지 조합원 7,827명이 참여하여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응답자 특성을 볼 때 연령대의 경우 2/3 이상이 40~50대(5,279명/ 72.3%)이고, 소속으로 볼 때 서비스연맹(1,446명/19.8%), 민주일반연맹(1,196명/16.4%), 지역본부(967명/13.3%)의 간부 및 조합원이 설문에 응했다. 그래서 이 설문조사가 다양한 연령과 산별 조합원의 생각을 반영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 조합원의 일부가 민주노총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어 설문조사 발표를 지켜봤다.
‘사회변화에 따른 노동운동 대응 전략’이라는 설문조사 항목에서는 유의미하게 볼 내용이 있었다.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천천히, 저임금 노동자 임금을 빨리 올려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80%가 동의했다. 많은 조합원이 임금 격차 해소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또, 민주노총이 가장 중요하게 대응해야 할 사회변화 영역 1순위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34.6%가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노동환경 변화’라고 응답했다. 32.4%가 ‘산업구조변화로 인한 플랫폼노동 증가’를, 24.3%가 ‘AI 등 기술변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라고 대답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조합원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 정치세력화’ 항목은 마치 그동안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논의를 처음 하는 단계에서나 할 정도의 단순한 질문으로 구성됐다. 정치세력화가 왜 실패했는지, 정치세력화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다루는 핵심적 질문이 없었다. 노조의 다양한 정치활동이 있을 수 있는데, 정당을 통한 방식만으로 한정한 채 이미 정해진 결론으로 가고자 한다면 민주노총 내에서 이에 관한 논의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 68.0%는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관계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진보정치 세력의 연합정당을 만들어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가지며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가 46.8%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원화된 진보정당 현실에서 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보다 민주노총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직접정치, 광장정치와 정치사업을 전면화해야 한다’도 28.9%로 나타났다. 앞서 해외 노총 강연 사례에서 본 것처럼 조합원의 일상적 활동이 정치활동이고, 노총의 정치·선거 방침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닐 수 있다. 민주노총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문제의식은 설문으로만 그칠 고민은 아니다. 이를 어떻게 수렴할지도 계획으로 나와야 한다.
‘산별노조 혁신·강화’ 항목에서는 ‘민주노총은 내셔널센터로서 조합원과 노동자에게 이익이 된다면 사회적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응답이 54.7%로 나타났고, ‘산별교섭 법제화 등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사회적 대화를 모색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7.5%로 나왔다.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기에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자는 조합원들의 인식은 당연할 수 있는데, 사회적 대화에서 갖추어야 할 의제와 내용이 무엇인지 충분한 숙고 없이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냐 없냐는 단순한 질문이나, 조건이 안되면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질문 문항만으로 조합원의 의견을 단정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
이번 정책대회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민주노총 내에 대규모 공론장을 열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번 정책대회는 여러 측면에서 다소 미흡했다. 고민을 다 담지 못한 설문조사도 아쉬웠지만, 특히 토론 마당의 처리방식에 한계가 있었다.
일례로 ‘대전환시대 노동운동 대응전략 원탁회의’에서는 AI 도입과 저출산·고령화라는 사회변화에 대한 노동운동 대응,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와 같은 첨예한 주제를 조별 토론하여 그 결과를 웹에 게시하고,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의견만 발표할 수 있게 했는데, 주제를 막론하고 주로 ‘윤석열 퇴진’과 ‘진보정당 건설’이 결론으로 수렴했다. 이러한 인기투표 식 토론 방법이 운영상 효율적이었는지는 몰라도 ‘노동운동 대응전략’을 함께 숙의하기에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번 정책대회에서는 표결만 하지 않았을 뿐, 2016년 정책대대에서부터 과잉된 정치세력화 논의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과연 위원장의 대회사처럼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이 제1노총답게 어떤 전략을 마련할지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5. 민주노총의 미래
민주노총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토론하는 정책대회였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책대대가 아니라 정책대회로 기획되었다고 ‘열린’ 토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대회의 토론 과정을 보면서 결론을 정해놓고 토론을 수렴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한 순환을 마감한 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을 통한 집권이라는 방식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스스로가 사회 세력화와 계급 대표성을 구현하기 위한 실력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집중했어야 했다.
또한, 산별교섭 실질화를 위해 산별노조 운동의 현실적 방안을 토론하고 초기업노조 사례를 더 연구하며 실험해야 한다. 조직이 커질수록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직 갈등 문제를 자신은 반성하지 않은 채 상대 정파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합의의 기준점이 무엇인지 조정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이번 정책대회에서 진행된 토론 결과를 2025년 사업 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앞으로 2025년 대의원대회의 의제가 무엇일지 주목해 봐야 한다. 이번 정책대회를 통해 토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실패한 지점과 계승할 지점을 뼈아프게 돌아보며 그동안 민주노총 활동을 잘 복기했으면 한다. 그것이 혼란스럽지만 도약해야 할 2025년, 민주노총 30주년을 맞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