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5 봄.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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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

홍현재 | 회원,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차장

“안녕하세요! 저는 OO에서 온 OOO입니다.”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된 주부터 매주 토요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광장에는 대규모의 군중이 밀집했다. 윤 대통령 탄핵 시위가 대중화된 첫날인 12월 7일부터 1월 한강진 집회까지, 초창기(?) 광장은 각종 차별과 불평등, 재난과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자유 발언으로 가득 찼다. 자신을 소개하며 발언을 시작하는 참가자들 중에는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발언자도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발언자에게 할당된 시간을 훨씬 지나치고, 결국 사회자의 안내로 발언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발언자도 있었다. 이후에는 집회를 주최하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비상행동’) 측이 집회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사전에 참가자 발언을 정돈하면서 이런 ‘날 것의’ 집회 분위기가 많이 없어지기는 했다.

 

청년 여성들의 연대와 민주노총과의 ‘역전된’ 관계

민주노총 지역본부 간부로서 정제된 ‘공적인’ 발언에 익숙했던 필자에게 이렇게 사적이면서도 솔직한 발언은 오랜만이었다. 발언을 들으며 사람들이 ‘윤석열’로 대표되는 억압적인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분노를 공적으로 표출할 공간도 기회도 없었다는 점에 얼마나 답답해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탄핵 광장은 시민들에게 해방과 포용, 연대의 공간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특히 1박 2일 진행된 남태령 집회에서의 청년 여성과 농민 간 연대는 약자 간 확장된 연대의 사례로 주목받았다. 또래 여성으로서 이런 활발한 연대는 신기하기도 했다. ‘소확행’, ‘워라밸’과 같은 예전의 유행어가 시사하듯 청년 집단은 개인의 욕구를 중심으로 일상을 구성하는 데 익숙한 세대다. 그런데도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말 겨울 길거리에서 기꺼이 연대하기로 선택했다.

 

이들의 발언을 듣거나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서 조금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2030 여성들은 탄핵 광장으로 “길을 열어준” 민주노총에게 감사함과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광장 곳곳에서 장애인, 농민 등 다양한 취약계층의 요구를 접하고, 투쟁하는 주체들에게 연대함으로써 이들에게 힘을 나눠주는 한편 스스로의 정치적 체념과 피로감을 극복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인지 2030 여성의 연대는 남태령을 넘어서 서울지역 투쟁 사업장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 시민이 ‘전국투쟁지도’를 제작해 전시하면서, 청년 여성들 사이에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들의 이야기가 입소문을 탔다. ‘전국투쟁지도’는 온라인 워크스페이스에 정리한 전국 곳곳의 투쟁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리스트이며, 각 투쟁 사업장의 투쟁 배경과 요구안을 알 수 있다. 일부 청년·여성들은 트위터 등 SNS로 이러한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며 노동조합 투쟁 일정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이 일련의 현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2030 여성들의 담론에서는 기존의 조직된 노동운동 세력이 이들의 연대에 도움을 받는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스스로 ‘말벌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능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꿀벌을 공격하는 말벌을 쫓아버리는 ‘말벌 아저씨’에서 따온 것이다. 즉, 자신들은 ‘꿀벌’인 민주노총 혹은 조직된 세력을 공격하는 ‘말벌’, 즉 공권력과 기업 등을 연대의 힘으로 쫓아버리는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민주노총 입장에서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것인지 돌이켜 봐야 한다. 전국투쟁지도의 투쟁 사업장들을 살펴보면, 사측의 탄압이나 폐업 등 어려운 상황에서 활로가 보이지 않아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는 곳들이 많다. 지불력이 없는 작은 사업장이거나 법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사업주까지 완강하게 노조를 거부하고 있다면 기업별 노동조합 및 교섭 체계를 통한 해결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가 확장되는 것은 반갑고 힘이 되는 일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이러한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교섭과 투쟁 전략, 연대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가’겠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산별 교섭 실질화, 전략조직화 등 혁신 전략을 충분히 진척시키지 못한 현실에서, 취약한 조건에 놓인 노동조합의 난관에 ‘말벌 아저씨’동지들의 시선과 연대가 닿은 상황으로 보인다.

 

‘말벌 아저씨’ 동지들이 대개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기 쉬운 청년 여성 노동자들임을 고려하면 민주노총의 공백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느낌이 든다.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터에서 발언권을 갖거나 처우를 개선하지 못할 텐데,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써온 민주노총이 오히려 이들의 일터 밖에서 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렇게 ‘역전된’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청년위원회, 여성위원회가 <성평등한 광장에서 성평등한 일터로> 집담회를 열어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가자는 민주노총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청년들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사전 실태조사로 파악한 집담회 참가자들의 노동 조건을 분석하고, 여성위원회에서 제작한 여성의날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 이후 이어진 토크 콘서트 및 플로어 토론 자리에서 한 참가자가 교육 영상에 대한 소감으로 “학습지 교사와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활동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집담회를 기획할 때부터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과 민주노총은 광장 밖의 각자의 삶과 활동이 어떤지 모르니, 시민들이 민주노총을 광장 밖 자신의 일상에서도 함께할 수 있는 세력으로 여기게 하자’는 것이 취지이기는 했다. 그리고 역시 현실은 노조 밖 노동자들, 즉 시민들이 민주노총을 단순히 ‘잘 모른다’는 것 이상이었다. 집담회 참가자의 소감은 민주노총이 대기업·정규직·공공부문 밖의 많은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자신이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와 같이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은 가장 강력한 ‘반(反)윤석열’ 세력이지만, 본인의 일터와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아니다. 탄핵 광장에서 민주노총을 접한 노조 밖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노조 가입 문의는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광장의 열기와 해방감이 가신 뒤에 노조 밖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 남을 민주노총의 모습은 민주노총이 더욱 ‘포용적인 노동자 상’(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내란 세력 청산”을 넘어, 더 나은 정치를 위해

필자는 거의 매주 주말 탄핵 집회에 참여하면서 탄핵 반대 진영과의 마찰과 갈등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두 진영 간 갈등이 전면적으로 폭발한 국면은 1월 초 한강진역 인근 집회에서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탄핵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양 집회 참가자들이 욕설이나 고성을 주고받는 모습, 참가자 간 다툼을 경찰이 막아서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다수 목격했다. 이견은 이견대로 놔두지 못하고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하는 탄핵 반대 진영의 모습은 그들이 상대를 악마화하는 세계관에 갇혀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이런 폭력으로 피해를 입었다. 1월 11일 토요일, 경복궁 집회 참가 중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로 의심되는 남성이 갑자기 필자 얼굴에 휴대폰 렌즈를 들이밀고 촬영했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으나, 그 사람이 가버리기 전에 붙잡고 사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남성이 “사진을 촬영하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에 필자가 “그럼 저도 선생님 얼굴 촬영해도 되나요?”라고 하며 휴대폰을 꺼내자 그제야 사진을 지웠다는 것은 덤이다.

 

사진을 지우는 과정에서 휴대폰 사진첩을 보니,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집회 참가자들까지 근거리에서 몰래 일방적으로 촬영한 사진이 여럿 보였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차’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필자의 사진만 지우고 가버렸다. 이미 놓친 사람을 잡을 수는 없었기에 비상행동에 의견을 제출했다. 집회 주최 측은 다음 집회부터는 동의 없는 근거리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일 이후에 필자는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마스크를 꼭 착용했다. 그 일이 벌어진 날 당일에는 분노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었는데, 그로부터 8일 뒤에 서부지법 폭동이 벌어진 것을 보고 ‘도촬’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폭력까지 저지르는 과도한 적대감은 총선 부정선거론 등 “종북 극좌 세력”이 국가 전복을 꾀하고 있으며, 주요 국가 기관은 이미 장악되었다는 음모론적·과대망상적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한편 젠더 갈등과 반페미니즘적인 기류 역시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반페미니즘적인 정서가 집회 참가 동력으로 작용한 경우가 있다는 것으로 짐작 가능하다. 탄핵 정국 중반 정도까지 유튜브 채널 ‘신남성연대’에서 탄핵 반대 집회 참가를 조직했던 사실이나, “페미니스트들이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집회 참가자 인터뷰가 그 사례다.

 

이들의 심리적 특성과 세계관 이면에는 정치적 박탈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필자는 백래시에 대한 강연에서, 강연자가 반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남성에게 활동의 결과로 본인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때 효능감을 느낀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현재 탄핵 반대 진영 청년들의 심리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적으로 소외된 집단에게 (자신의 권리와 무관하더라도) 집단적 행동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확인할 때 느끼는 효능감이 동기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사회운동은 이러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제어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을 어떻게 조직할지, 그로써 어떻게 정치를 복원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탄핵 집회에서 외치는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구호에는 계엄을 정당화하고 선관위, 헌법재판소 등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일부 정치 세력에 대한 분노와, 그런 정치 세력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계엄에 동조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에도 10만여 명이 참여하는 현실에서 이들을 모두 ‘내란범’으로 몰아 ‘청산’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의 상황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가 원인이므로 “내란 세력 청산”은 분노의 외침일 뿐 한국 정치를 복원하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전략이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사회운동이 대안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조직함으로써 정치적 토양을 바꿔야 한다. 정치적 갈등의 심화와 그 영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노동자와 시민의 요구를 진단하고 조율해 사회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는 조직적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탄핵 시위에서 개별적인 발언으로 드러난 분노를 실질적인 사회적 개혁으로 모아낼 방안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가령, 시위에서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특정 언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이번 계엄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총체적 난국을 보면 사회적·정치적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십분 이해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고안되고 설계된 제도를 폐기한다면 민주주의는 퇴행할 뿐이지 회복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산발적인 요구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더 나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부재하다 보니 기존 제도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집회에서 활동가들의 발언을 통해 요구안을 공유하거나, 시민 공론장을 열어 요구를 모아내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회복과 사회 개혁을 진지하게 시도하고자 한다면, 사회적·정치적 제도에 대한 교육과 토론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

 

2024년 12월 9일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참가자

중간 중간 시민들이 손수 만든 피켓이 보인다.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는 시민들이 깃발과 응원봉 등 기존 집회 문화와 다른 재기발랄한 선전물을 들고 나온 점이 눈에 띄었다. (사진출처: 민주노총)

2025년 3월 8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에서 개최한<성평등한 광장에서 성평등한 일터로!> 집담회

이 날 집담회 프로그램은 ▲참가자 노동 조건 실태조사 결과 발표, ▲민주노총 서울본부 여성위원회가 제작한 교육 영상 1부 <광장을 지켜온 청년 여성, 그들이 원하는 평등>과 2부 <“여자가 하는 일”의 위험> 시청, ▲패널들의 노조 활동 경험을 공유하고 민주노총·서울본부 여성사업을 소개하는 토크콘서트, ▲참가자들의 경험과 민주노총에 바라는 활동을 듣는 플로어토론으로 구성됐다.

주제어
정치
태그
민주노총 민주주의 탄핵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