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파업,무엇을 남겼는가?
NG에 대하여
가끔 TV에서 영화 촬영장면이 나오곤 한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멋들어진 대사를 읆조리던 배우가 갑자기 버벅거리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NG가 난것이다. 일순간 촬영장은 웃음바다로 바뀌고 감독의 한마디. ??다시 합시다.??
그렇게 영화는 찍다가 NG가 나면 다시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에서 NG가 나면 그걸로 상황은 끝나버린다. 죽었다 깨나도 다시 찍을 수는 없다. 그런 NG가, 영화라면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은 NG가 우리 눈앞에서 나버렸다. 한달전 지하철 3호선 지축 차량기지에서 허섭 위원장이 낸 NG는 그렇게 우리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지하철 파업은 정말 그렇게 허섭위원장의 NG로 인해 끝나버린 것인가? 그저 단 한사람의-그가 위원장이긴 했지만 그 발언을 하던 때, 그는 철저히 개인이었다-실수로 인해 역사상 최초라는 전국 지하철 공동 총파업이 무너져버린 것인가? 혹시 NG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가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역사가 한사람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음을, 책을 통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역사를 끌어가는 것은 이름없는 이들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하철 파업의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것인가?
영화는 87년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한달전 본 영화는 87년 그 뜨겁던 여름에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던 그때, 노동자 민중의 뜨거운 함성이 메아리치고 눈돌리는 곳마다 파업이 벌어지던 그때를 우리는 본격적 노동운동의 시작으로 기억한다. 87년의 노동자대투쟁은 비참한 현장의 노동현실에서 시작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옳았고, 지극히 정당했으며 투쟁들은 점차 발전하여 89년 전노협을 결성했고 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민주노총은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남한 노동자들의 든든한 조직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발전한 만큼 지배계급 역시 착취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97년 IMF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를 겪고 나서부터 위기의식을 느낀 자본은 새로운 착취의 방식, 자본주의의 새로운 조절방식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공격을 의미했다. 이제 겨우 민주노조운동을 안정화 궤도에 올리고 본격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려던 그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태풍을 만나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렸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명제를 뒤집고 노동자를 둘로, 셋으로, 셀 수 없이 분할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원청과 하청, 특수고용, 계약직, 이루 말할 수 없이 세분화는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그런 분할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렸다. 그나마 저항할 힘이 있던 이들은 버틸 수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실업과 불안정의 나락으로 떨어졌고 더 이상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명제는 항상 옳은 것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신과 나는 다른 노동자??라는 인식 속에 노동자 내부의 분할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연봉 1500만원과 4000만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은 의식적 노력 없이는 메워지기 힘든 것이었다.
지하철 파업은 왜 이기주의로 매도되었는가?
지하철 노동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번 파업이 임금인상 파업이 아니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대중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음을. 사실 파업의 조건이 그랬다.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주 5일 근무제가 핵심 쟁점이었고 이에 대해 노와 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주 5일 근무제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대규모 인력충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과거처럼 임금인상에 갇혀버릴 수 있는 파업이 아니었다. 거기에 덧붙여 지하철 노동자들은 인력충원을 통한 실업문제 해결, 시민 안전 문제까지 파업의 요구에 넣었다. 공공사업장이기에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파업의 핵심 요구에 대사회적 요구들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는가? 왜 사람들은 지하철 파업을 두고 ??시민을 볼모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파업??이라 말했는가? 왜 파업의 쟁점이 노조의 요구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임금인상과 이기주의로 인식되었는가? 단순히 선전을 못해서, 언론 이용을 잘 못해서, 사람들에게 지하철 노동자들의 진심이 안 알려져서라고 평가하지 말자. 오히려 평가의 지점은 지극히 실리주의적으로 흘러온 민주노조운동 그 자체에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의 정당성으로 끊임없이 확인해왔던 계급적 관점과 사회 변혁을 위한 노력을 폐기하는 그 순간 민주노조운동은 이익집단의 운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조짐들은 지난 몇 년을 지나면서 우리 노동운동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더구나 이런 흐름은 앞에서 언급한 노동자 분할 전략과 맞물리면서 노동운동을 내부로부터 분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은 이런 전반적 과정들이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대다수 노동자들-특히 영세, 하청 등 불안정 노동층은 이미 경험을 통해 이러한 노동운동의 현실을 알고 있다. 이들이 볼 때 지하철 파업 역시 그렇고 그런 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러운 파업이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억울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 노동의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공공 사업장 노동자로서의 책임감, 현장의 절박함속에서 공동파업투쟁을 진행했던 지하철노동자들로서는 가진자가 아닌 못 가진자들의 비판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눈감고 노동운동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인터넷에 넘쳐났던 글들을 잠깐 살펴보자.
너무 하십니다.
지금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방에서 뒹구는 실업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받는 연봉 절반만 주세요. 1년 365일 매일 근무할께요. 그리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다 떠나세요. 그래야 저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해마나 되풀이되는 파업. 이제는 질렸습니다.
당신들이 없으면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는데 오산입니다. 지금이라도 대체인력을 양성하여 파업참가자를 전부 물갈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노동자라면 다른 노동자 소외받고 힘없는 노동자들도 생각해주시고 그렇게 철저하세 소외감을 가지고 일하게만든 법개정등을 먼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좀 해주시면 이글을 쓰는 아느것 없고 무식한 이놈은 노조분들 하시는 모든일에 쌍수들고 찬성찬성대찬성 하리다.
용역.일용.계약...이것이 철폐되기 전에는 여러분 지지도는 별로 안좋을것 같네요. 나도 연봉 3000넘게 받고 싶네요 그래서 그돈으로 저축도 좀하고 외식도 좀 하고 ..... 주위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 소외된사람들 한번만 이라도 돌아보고 한번만 생각해보고 말이라도 용기를 좀 주세요.
-궤도연대 공투본 자유게시판에서
파업투쟁 기간동안 궤도연대 공투본 게시판에 넘쳐났던 이런류의 글들을 단지 언론의 악선전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면 우리에게 발전의 가능성, 연대의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목소리들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간취해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한국사회 노동분할의 이데올로기와 이로 인해 같이 싸워야 할 노동자들로부터도 소외되어버린 자신들의 처지이다.
지속가능한 위기는 없다.
지하철 파업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하철 파업이 패배로 끝난 것을 지도부의 잘못이나, 전술의 오류 때문으로 환원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지금 우리는 조금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하철 파업의 쟁점이 결코 이기주의적 내용들로 채워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보았듯이 ??귀족노동자들의 이기주의적 파업??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실리주의적 내용으로 채워졌던 우리 노동운동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결과이자 동시에 더 이상 지금처럼 노동운동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동운동은 분명 위기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 불안정하게 노동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근본적인 운동의 변화 없이는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과감한 실천이 필요할 때다. 불안정노동의 확산이라는 변화된 조건을 반영하는 새로운 계급 주체 형성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지 비정규 투쟁을 하는 동지들만의 몫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전략이 노동자 분할이라면 역으로 그것을 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투쟁은 분할에 맞선 공동투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금보다 활발하게 벌어지고 이들의 투쟁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을 때 우리 운동의 위기는 조금씩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파업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그만큼 지하철 파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뜻일게다. 승리한 투쟁은 성과를 남기고 패배한 투쟁은 과제를 남긴다. 지하철 파업의 패배는 지하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지하철 파업이 남긴 노동운동의 위기극복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한다.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그림같은 액션으로 반전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바로 당신과 나, 우리다.
가끔 TV에서 영화 촬영장면이 나오곤 한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멋들어진 대사를 읆조리던 배우가 갑자기 버벅거리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NG가 난것이다. 일순간 촬영장은 웃음바다로 바뀌고 감독의 한마디. ??다시 합시다.??
그렇게 영화는 찍다가 NG가 나면 다시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에서 NG가 나면 그걸로 상황은 끝나버린다. 죽었다 깨나도 다시 찍을 수는 없다. 그런 NG가, 영화라면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은 NG가 우리 눈앞에서 나버렸다. 한달전 지하철 3호선 지축 차량기지에서 허섭 위원장이 낸 NG는 그렇게 우리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그러나,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지하철 파업은 정말 그렇게 허섭위원장의 NG로 인해 끝나버린 것인가? 그저 단 한사람의-그가 위원장이긴 했지만 그 발언을 하던 때, 그는 철저히 개인이었다-실수로 인해 역사상 최초라는 전국 지하철 공동 총파업이 무너져버린 것인가? 혹시 NG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가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역사가 한사람의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음을, 책을 통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역사를 끌어가는 것은 이름없는 이들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하철 파업의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것인가?
영화는 87년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한달전 본 영화는 87년 그 뜨겁던 여름에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던 그때, 노동자 민중의 뜨거운 함성이 메아리치고 눈돌리는 곳마다 파업이 벌어지던 그때를 우리는 본격적 노동운동의 시작으로 기억한다. 87년의 노동자대투쟁은 비참한 현장의 노동현실에서 시작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옳았고, 지극히 정당했으며 투쟁들은 점차 발전하여 89년 전노협을 결성했고 95년 민주노총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민주노총은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남한 노동자들의 든든한 조직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발전한 만큼 지배계급 역시 착취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97년 IMF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를 겪고 나서부터 위기의식을 느낀 자본은 새로운 착취의 방식, 자본주의의 새로운 조절방식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공격을 의미했다. 이제 겨우 민주노조운동을 안정화 궤도에 올리고 본격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려던 그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태풍을 만나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렸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명제를 뒤집고 노동자를 둘로, 셋으로, 셀 수 없이 분할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원청과 하청, 특수고용, 계약직, 이루 말할 수 없이 세분화는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그런 분할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렸다. 그나마 저항할 힘이 있던 이들은 버틸 수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실업과 불안정의 나락으로 떨어졌고 더 이상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명제는 항상 옳은 것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신과 나는 다른 노동자??라는 인식 속에 노동자 내부의 분할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연봉 1500만원과 4000만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은 의식적 노력 없이는 메워지기 힘든 것이었다.
지하철 파업은 왜 이기주의로 매도되었는가?
지하철 노동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번 파업이 임금인상 파업이 아니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대중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음을. 사실 파업의 조건이 그랬다.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주 5일 근무제가 핵심 쟁점이었고 이에 대해 노와 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주 5일 근무제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대규모 인력충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과거처럼 임금인상에 갇혀버릴 수 있는 파업이 아니었다. 거기에 덧붙여 지하철 노동자들은 인력충원을 통한 실업문제 해결, 시민 안전 문제까지 파업의 요구에 넣었다. 공공사업장이기에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파업의 핵심 요구에 대사회적 요구들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는가? 왜 사람들은 지하철 파업을 두고 ??시민을 볼모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파업??이라 말했는가? 왜 파업의 쟁점이 노조의 요구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임금인상과 이기주의로 인식되었는가? 단순히 선전을 못해서, 언론 이용을 잘 못해서, 사람들에게 지하철 노동자들의 진심이 안 알려져서라고 평가하지 말자. 오히려 평가의 지점은 지극히 실리주의적으로 흘러온 민주노조운동 그 자체에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의 정당성으로 끊임없이 확인해왔던 계급적 관점과 사회 변혁을 위한 노력을 폐기하는 그 순간 민주노조운동은 이익집단의 운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조짐들은 지난 몇 년을 지나면서 우리 노동운동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더구나 이런 흐름은 앞에서 언급한 노동자 분할 전략과 맞물리면서 노동운동을 내부로부터 분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은 이런 전반적 과정들이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대다수 노동자들-특히 영세, 하청 등 불안정 노동층은 이미 경험을 통해 이러한 노동운동의 현실을 알고 있다. 이들이 볼 때 지하철 파업 역시 그렇고 그런 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러운 파업이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억울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 노동의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공공 사업장 노동자로서의 책임감, 현장의 절박함속에서 공동파업투쟁을 진행했던 지하철노동자들로서는 가진자가 아닌 못 가진자들의 비판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눈감고 노동운동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인터넷에 넘쳐났던 글들을 잠깐 살펴보자.
너무 하십니다.
지금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방에서 뒹구는 실업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받는 연봉 절반만 주세요. 1년 365일 매일 근무할께요. 그리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다 떠나세요. 그래야 저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해마나 되풀이되는 파업. 이제는 질렸습니다.
당신들이 없으면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는데 오산입니다. 지금이라도 대체인력을 양성하여 파업참가자를 전부 물갈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노동자라면 다른 노동자 소외받고 힘없는 노동자들도 생각해주시고 그렇게 철저하세 소외감을 가지고 일하게만든 법개정등을 먼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좀 해주시면 이글을 쓰는 아느것 없고 무식한 이놈은 노조분들 하시는 모든일에 쌍수들고 찬성찬성대찬성 하리다.
용역.일용.계약...이것이 철폐되기 전에는 여러분 지지도는 별로 안좋을것 같네요. 나도 연봉 3000넘게 받고 싶네요 그래서 그돈으로 저축도 좀하고 외식도 좀 하고 ..... 주위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 소외된사람들 한번만 이라도 돌아보고 한번만 생각해보고 말이라도 용기를 좀 주세요.
-궤도연대 공투본 자유게시판에서
파업투쟁 기간동안 궤도연대 공투본 게시판에 넘쳐났던 이런류의 글들을 단지 언론의 악선전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면 우리에게 발전의 가능성, 연대의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목소리들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간취해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한국사회 노동분할의 이데올로기와 이로 인해 같이 싸워야 할 노동자들로부터도 소외되어버린 자신들의 처지이다.
지속가능한 위기는 없다.
지하철 파업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하철 파업이 패배로 끝난 것을 지도부의 잘못이나, 전술의 오류 때문으로 환원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 지금 우리는 조금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하철 파업의 쟁점이 결코 이기주의적 내용들로 채워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보았듯이 ??귀족노동자들의 이기주의적 파업??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실리주의적 내용으로 채워졌던 우리 노동운동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결과이자 동시에 더 이상 지금처럼 노동운동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동운동은 분명 위기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 불안정하게 노동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근본적인 운동의 변화 없이는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과감한 실천이 필요할 때다. 불안정노동의 확산이라는 변화된 조건을 반영하는 새로운 계급 주체 형성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지 비정규 투쟁을 하는 동지들만의 몫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전략이 노동자 분할이라면 역으로 그것을 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투쟁은 분할에 맞선 공동투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금보다 활발하게 벌어지고 이들의 투쟁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을 때 우리 운동의 위기는 조금씩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파업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그만큼 지하철 파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뜻일게다. 승리한 투쟁은 성과를 남기고 패배한 투쟁은 과제를 남긴다. 지하철 파업의 패배는 지하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지하철 파업이 남긴 노동운동의 위기극복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한다.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그림같은 액션으로 반전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바로 당신과 나,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