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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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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롤러코스트

윤태곤 | 회원, 참세상기자
참여정부에 봄바람이

스텔스기가 군산에 배치되고 6월 위기설이니 7월 위기설이니 하며 긴장이 높아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반도에는 완연한 훈풍이 분다. 6.15 5주년 행사로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4시간 반 동안 회담을 가졌다. ‘직접 전력 공급’이라는 ‘대북 중대제안’이 공개됐다. 한나라당 정형근의원(!) 마저 ‘전력 지원은 아주 긍정적이며 국회 동의절차도 필요 없다’고 맞장구 쳤다.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연일 상승해 2005년 7월 21일 종가가 1074.65를 기록했다. 이제 1000선 안착을 넘어서 1994년 11월8일 기록했던 사상 최고점 1138.75를 돌파하게 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5년 7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 함께한 오찬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된 이래 경제 등 많은 점에 있어 아직도 꾸중을 많이 듣고 있지만 어느 분야도 옛날보다 후퇴했거나 위험을 가중시키지 않았다"며 "경제, 북핵 위기, 한미동맹 등 한 군데도 상황을 악화시킨 곳은 없고 미래 성공의 전략도 대개 이대로 5년, 10년 문제없이 간다고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게 장담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05년 7월, 대통령 취임 2년 5개월이 지나 집권 하반기로 접어드는 즈음에 6자 회담은 재개되고 주가는 오르더니, 환율하락에 힘입어 수출마저 호조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폭등, 비정규직 확산, 전기세 못내 촛불 켜고 살던 여중생의 화재사망, 보건의료노조 직권중재, 평택미군기지반대집회 폭력진압 등 민중 생존권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참여정부’는 잘 나가고 있는 셈이다.
집권 초반기 “남북관계만 잘 풀면 딴 건 좀 깽판 쳐도 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직설적 표현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연초 우리는 6월이 노무현 정권 중반기의 최고의 분수령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2005년은 을사보호조약 체결 100년, 해방 60년, 6.15 남북공동선언 5년이 되는 해로 ‘민족’이 중심에 설 것으로 예측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롤러코스터를 타왔나

탄핵으로 솟구쳤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연초 십 퍼센트 대까지 급락한 이후 다시 40%대로 극적 반등을 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일본이었다. 시마네현이라는 자치단체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후쇼사의 극우적 역사교과서,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이 삼박자로 한번에 터져 준 것이다. 일본과 일대 일로 붙기는 좀 겁나는 차였는데 다행히 고이즈미 정부는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로, 러시아와는 북방 4개 섬으로 전방위적 영토 분쟁을 시도했고 교과서 분쟁은 한일 양국의 문제에서 동북아의 문제로 떠올랐다.
힘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연일 대일 강성발언을 쏟아냈고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할말은 하는 한국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는 등 인기는 국경을 넘어서 또 하나의 한류 스타로 떠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버였을까? 대만무력침공의 길을 여는 ‘반분열법안’이 중국 전인대에 상정되던 때에 즈음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공군사관학교 졸업식(2005.3.8) 자리에서 ‘동북아 균형자’ 발언을 내뱉으며 주한미군의 전략기동군화에 제동을 걸고 양안 분쟁에 개입할 수 없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5월 일본의 야치 외무성 차관이 "북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을 불신하고 있어 일본이 미국에서 받은 정보를 한국에 주는 것은 문제“라며 미국을 업고 견제하고 나서자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론은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나섰고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동북아 역내 최후의 균형자는 바로 미국“이라고 평소 자세로 돌아섰다.

4월 30일, 국회의원·기초자치단체장·광역의원 등 각급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23대 0이라는 경이적 스코어로 패배한 즈음이었다. 4월말에서 5월 정부 여당은 정말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재보선 결과는 23대 0이지요, 힘들여 민주노총하고 한국노총을 노사정 테이블로 끌어 댕겼지만 결국 비정규 법안 처리는 못했지요, 부동산은 뛰지요, 기세 좋게 할 말 할 때는 좋았는데 부시 행정부는 세모눈을 치켜뜨고 쳐다보지요, 열린우리당은 지리멸렬인데 한나라당 인기는 올라가지요, 경제성장률 4% 넘는다고 장담은 해놓았는데 쪽팔리게도 3%대로 수정했지요. 이 밖에도 악재가 산적했지만 숨차서 더 꼽지 못하겠다.
게다가 북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스텔스기 배치 때문에 615명으로 합의됐던 6.15 5주년 행사 방북 인원도 일방적 통보해 절반 규모로 확 줄었는데, 밤이 깊다는 것은 바로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이라크 전쟁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지고 있는 미국에서 네오콘의 영향력은 퇴조하고 ‘자칭 실리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 직후 뉴욕채널이 재가동돼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와 조셉 디트러니 국무부 대북특사는 은밀히 회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별안간 불러 4시간 반 동안 환담을 나눴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돌아온 정동영 장관 왈, “곧 6자 회담이 재개될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베이징에서 북미는 은밀한 접촉을 가졌고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천명했고 서울에서는 ‘전력 200만 KW 직접 지원’ 계획이 발표됐다.

대통령의 속마음은 과연…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연정도 좋고 개헌도 좋다며 소매를 걷고 나섰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나라당과 손잡으면 대연정이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 손잡으면 소연정이라 정리했다. 그런데 이 연정 드라이브가 재밌는 것은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고 상대가 받든 안 받든 그것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사실 그 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애초부터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관심이 많았다’며 ‘획기적인 개혁제안’을 내놓았다.
그 다음 과녁은 전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과 교육이다. 아파트 원가 공개를 해볼만 하다 싶은 생각도 든다며 대통령은 말을 바꾸고 보수언론과 극우파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사회주의적’이라고 쌍심지를 짚고 나섰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인 것이, 그들의 공격으로 인해 대통령은 다시 ‘서민의 친구’가 될 기반을 반은 마련한 셈이다. 물론 ‘헌법만큼이나 바꾸기 힘든 부동산 대책’이 8월말에 발표된다지만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내용은 종잡기가 어렵다.
이어 서울대가 대통령을 도와주고 나섰다. 국립대 평준화안을 비롯한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에는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고 ‘대학은 산업’이라며 일찍이 이기준 전 서울대총장을 교육부총리에 임명했던 대통령이지만 서울대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또 ‘서민의 친구’로 떠올라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서울대나 부동산 문제에서 다시 대통령은 ‘강고한 기득권층’과 외롭게 싸우는 ‘개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 할 발판을 찾은 것이다. 심지어 파란 눈의 한국인이자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박노자 마저도 국립대 총장이 감히 대통령에게 ‘항명’ 한다고 비판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대학 서열화를 혁파할 수 있는 대안은 온대 간대 없고 앙상한 ‘본고사 금지’만 남았다.
이제 오롯이 전선은 개혁 대 수구, 민족 대 반민족으로 다시 재편될 조짐을 보인다. 차기 대선까지 이 전선이 유지되기야 힘들겠지만 롤러코스터 타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또 한 번 큰 승부를 걸 것이다.


전망은 어둡다

하반기 전망은 극히 어둡다. 비정규직, 노동, 사회안전망 등 반신자유주의 전선에서나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등으로 대표되는 일반 개혁 전선 양측 모두. 이목희 의원과 열린우리당 환노위 의원들 말마따나 이 정권에서는 비정규개악안도 보호법안도 아무 것도 없이 뭉개고 넘어갈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이닉스 매그나칩,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등 비정규·특수고용직의 싸움은 처절하게 각지에서 벌어지지만 수렴·통합되지 못하고 각개 격파 당하는 형국이다.
그나마 비리로 직전 위원장은 구속됐고 사무총장은 수배 중이어 체면은 구길 대로 구겼지만, 역사상 최초로 투쟁의 현장에서 열사까지 나온 한국노총은 ‘자신의 범위 내’에서 대정부 대립 각을 세워 나갈 것이다. 이용득 위원장 말마따나 “이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차이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사정위는 물론이고 모든 노정 협의 기구에서 탈퇴한 한국노총 따라 민주노총이 노동위원회를 탈퇴했다. 어쩌다가 믿을 것은 한국노총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대통령도 ‘사회적 양극화는 정말 고민’이라 말하고, 전기세 없어 촛불 켜고 살다가 불나 죽고, 그야말로 빈곤이 이 시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빈곤’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가난 구제는 하늘도 못 한다’는 속담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자이툰 부대? 외환은행 CF배경으로 나오는 거기? 가끔 자이툰 부대 외곽이 공격 받았다는 소식이 합참으로부터 흘러나오지만 그 흔한 프리랜서 언론인 하나 이라크에 없어 자이툰 부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합참 공식 발표에 따르면 ‘오발’로 쿠르드 족 현지 민병이 죽었다는 뉴스도 5개월이 지나야 귀에 들어올 정도다. 영국 테러? 범인은 이슬람계 영국인이란다. 이 틈에 테러방지법이나 통과 안 되면 다행이다.
하반기, 박정희 시대의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비롯해 줄줄이 ‘과거사 정국’이 기다리고 있다. 민족 전선 혹은 개혁-반개혁 전선이 강화 될 전망이 높고 한나라당 조차 이른바 홍준표 국적법이 웅변하듯, 민족적·개혁적 아젠다에 뛰어들고 있다.
항공사 파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보여주듯, 정권과 자본은 큰 힘을 안 들여도 언론과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힌 인터넷 여론에 의해 노동자의 투쟁은 적절히 제어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앞서 살펴봤듯, 노무현 대통령은 탁월한 승부사고 아젠다를 설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따를 만한 사람이 어쩌면 전 지구상에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정말 쉽지 않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과잉대표성을 헤치고 나가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아닌가? 대중의 역능을 모아 아래로부터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겠지만 이 글은 모범답안을 내놓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져보면 외환위기 정국 이후 대중적인 수준에서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정서는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립서비스겠지만 최근 국회 정보위원장으로 컴백한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조차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개혁에 정부여당이 나서야 된다고 말해 강경 친노세력의 박수를 받을 정도고 경총 조사에서도 ‘노동자의 60% 정도가 자본주의가 최선의 경제체제가 아니’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반마저 지속적으로 수구VS개혁 전선으로 인입당해 거시적인 측면에서 현 집권세력의 기반으로 소비됐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저들의 약한 고리를 찾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추문으로 참여연대의 훨씬 뒤쳐버린 경실련이 최근 부동산 한 놈만 패고 있는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경실련의 대안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슈파이팅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에 대한 경실련의 문제제기와 집중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잡았고 심지어 속내야 어떻든 한나라당에서도 ‘일부 개혁적’인 부동산 정책들이 나오게 만들었다.
혹시 삼성은 참여연대나 한겨레의 몫이라고 생각해오지 않았나? 참여연대와 특수 관계인 아름다운 재단에 재벌이 한 몫을 하고 한겨레 사장이 이건희 명예철학박사 파동 당시 “삼성이 싫으면 삼성에 안 가면 되는 것”이라며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 한 사실은 왜 이슈로 삼지 않았을까? 카더라 통신이 실체를 드러낸 이른바 X파일-삼성 이학수와 홍석현의 대화가 담긴-에 대해 왜 운동진영은 입을 열지 않고 있을까?
물론 이것도 어렵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 충분히 화두로 삼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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