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영화산업노조 인터뷰
1(일)요일은 쉬자! 4대보험 들자! 8시간 일하자!
<인터뷰 정리> 박준도| 인천지부 집행위원*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사회운동: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월간 『사회운동』 63호(2006년 4월)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를 가지고 회원쟁점토론을 기획한 바 있습니다. 당시 좀 급하게 기획을 하다 보니까 전국영화산업노조(이하 영화노조) 동지들을 미처 모시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못내 아쉬웠고,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영화노조를 따로 뵙고 영화산업의 현실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이번에 영화노조에서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우선 영화노조에 관한 간략한 소개, 특히 노조 출범을 전후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현호: 영화노조가 출범한 것 자체는 2005년 12월 15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바로 생긴 것은 아니고, 그 전부터 조직화 흐름이 있었지요. 발단은 지난 2001년 몇몇 스탭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개설한 ‘비둘기 둥지’라는 카페였는데, 이들이 대종상 시상식장 앞에서 스탭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임으로써 영화노동자들의 현실을 처음으로 사회화했습니다. 그 후 조감독, 촬영조수, 조명조수, 미술조수 협의회 등이 꾸려지는데, 이를 중심으로 2002년 한국영화조감독협회와 한국영화촬영조수협회가, 2003년 한국영화조명조수협회 등이 설립되었습니다. 이것이 2003년 4부 조수연합으로 이어지고 2004년에는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가 결성되기에 이릅니다. 이때,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현장영화인실무교육이 시작되었고, 영화 스탭들의 부당한 대우를 해결하기 위한 영화인신문고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기초해서 노조가 결성된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저희 위원장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 쪽방에서 지상 사무실로 이사하고 전화기도 생겼을 때, 이제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작년 조수연대회의 시절 노동조합 결성 과제를 각 단위별로 동의받고 결의하기 위하여 스탭들을 설득하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아직 시기가 이르다, 영화인들이 과연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겠는가 등 걱정 어린 시각도 많았습니다. 노동조합 창립총회 후 영화스탭들의 노동자성을 둘러싼 다양한 법적 해석 속에서 노동부에서 순순히 설립필증을 내줄지 걱정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다행히도(?) 서울노동청에서 설립필증을 내주었습니다.
출범을 전후해서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아무래도 조직화입니다. 노동조합은 쪽수가 힘이라고 봅니다. 저희 규약에서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자를 가입대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규정이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제작 현장에 있는 스탭들이 가입대상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현재 연출, 촬영, 조명, 녹음, 미술, 분장, 의상, 제작, 소품, 작가, 특수효과, 편집, CG, 지미집, 그립 이상 15개 지부가 있습니다. 지부로 편성은 되어 있지 않지만, 배우들도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습니다. 물론, CGV 등과 같은 상영관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가입대상이 됩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준비를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 영화노조가 출범한 후 주위 반응은 어떻습니까? 또 노조 활동에서 특히 어렵게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김현호: 현장에서는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큰데,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를 ‘영화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경험 자체가 부족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를 자각하는 과정 자체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영화 작업 자체가 워낙 다양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까 경험이 상당히 불균등한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스탭들의 내재적인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조합원 교육과 다른 산업 노동자들과의 연대 등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외부에서도 영화 스탭들의 노동조합 출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 말 영화산업노조 출범과 관련된 인터넷과 신문기사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스탭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여론화 된 측면도 있을 것이고, 영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상징성이 그런 관심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후자의 측면만을 볼 때 정말 힘들고 어렵게 투쟁하는 노동조합 동지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사용자들도 스탭들의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해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스탭들의 문제가 대두되어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체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제작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화노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계약직입니다. 구조적인 고용불안으로 조직화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또 세트장과 촬영장이 전국 곳곳에 산개해 있어서 조합원들이 한 번에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노동조합 출범 이후 올 초에 각 지부별 임원진 선출을 위하여 전국 순회투표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투표를 마치기 위한 최선책은 결국 촬영현장을 순회하며 투표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아마도 다른 기업별 노조의 활동과 다른 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현장을 순회하면서 투표도 했습니다만, 자주 볼 기회가 없는 조합원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노동조합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기회로도 활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현장에는 이른바 ‘영화판’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서로 다 ‘식구’ 또는 ‘선후배’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감독이나 제작자들 중에는 ‘막내’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노사관계 설정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이것 자체가 하나의 과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어서 저희는 제작자 측과 얘기할 때 최대한 문서나 공문을 사용하려 합니다. 사실 전부터 말로는 처우 개선 다 해 준다고 했지만, 정작 서면 합의 등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기피해 왔거든요.
사회운동: 영화현장의 인력구조나 노조조직률 등을 알고 싶습니다.
김현호: 영화현장인력구조는 아주 크게 보면 촬영, 조명, 연출 등 제작현장에 종사하는 자와 CG, 현상소 등과 같은 후반 작업군에 종사하는 자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영화산업노조는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산업이란 개념을 일반영화ㅁ만화영화ㅁ비디오영화제작으로 넓게 볼 수도 있으며, HD영화 제작으로 방송과 영화간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조직화 방향은 보다 넓은 틀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소위 극장에 걸리는 장편극영화에 한정해서 살펴보면, 현재 1년에 만들어지는 영화를 100편으로 잡고, 영화 1편당 스탭이 50명 정도 일한다고 보면 5000명인데, 이중 1년에 두 편 이상 찍는 노동자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작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대략 3~4000명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촬영, 조명 스탭은 대략 800여명 정도 되는데, 촬영, 조명 등과 같은 엔지니어 스탭의 경우 사실상 거의 대부분 조직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번 임단협에서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무엇입니까?
김현호: 우선 1!4!8, 즉 ‘일요일은 쉬자, 4대 보험들자, 8시간 일하자’입니다. 제작현장에 있는 스탭들의 경우 4대보험 가입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1명만 고용해도 4대보험을 가입해야 함에도 그동안 제작사들이 방관해 왔습니다. 얼마 전 조합원 한 분이 산재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어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승인 통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제작사가 사무직원들에 한해 4대보험을 가입하였던 회사로, 미가입 사업장 재해로 인한 별도의 추징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스탭들이 4대보험을 적용받는 데 난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 측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봅니다.
시간 관련해서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저희가 지금 당장 다른 직업들처럼 하루 8시간만 일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1일 노동시간의 기준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준 노동시간을 넘었을 때 초과수당 등을 산정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것 없이 장시간노동을 무작정 강요당해 왔습니다. 또 계약금/잔금식의 임금지급관행을 탈피하고, 주급제가 됐든 월급제가 됐든 정기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중요한 요구 사항입니다.
이와 함께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영화현장에서 사용되는 스탭고용계약서는 스탭 일방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작사 측의 문제 때문에 영화 제작이 중단되어도 스탭들이 계약금을 반납해야 합니다. 물론, 민사소송과 같은 상당히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구제받을 수 있지요. 그래서 저희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근로계약서의 조항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노조와 제협 양쪽에서 공증을 한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이걸 영화현장에 뿌리고 이걸 가지고 계약을 맺자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아니지만,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에 속한 제작사가 만든 영화의 경우에는 엔딩 크레딧에 전국영화산업노조의 로고를 삽입하자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알리자는 차원인데, 실제로 미국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사회운동: 앞서 말씀하신 영화현장의 관행을 고려할 때, 임금지급 방식이나 노동시간 문제를 건드리면 영화산업 전체에 큰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김현호: 큰 변화가 생겨날 것입니다. 현재 같은 경우는 촬영 기간이 주로 배우의 스케줄에 따라 좌우됩니다. 스케줄이 맞으면 한 달에 20~25일 정도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한 달에 고작 5일 밖에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작사 측의 준비가 미흡해서 제작이 길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계약기간이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편당 임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약기간 동안 다른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손해 이상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만일 주급이 됐든 월급이 됐든 정기적으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계약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식으로 제작기획을 대충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배우 스케줄의 문제도, 제작사가 매니지먼트사와 상의를 하는 등, 제작자 쪽에서 누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강제 받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제작이 ‘합리화’되겠지요.
사실 이 얘기는, 작년 강우석 감독과 몇몇 배우 간의 분쟁이 있은 후 표준제작매뉴얼을 만들자는 식으로, 제작사 스스로 제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영화산업 내 처우개선의 핵심적 사안이거니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요구가 관철되면 영화산업 자체가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번 임단협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임금상승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지요. 실제로 저희가 계산을 해 보니까 임금지급방식이 바뀐다 하더라도, 초과수당을 별도로 친다면, 기본급기준으로 임금이 상승된다거나 하는 효과는 크게 없습니다. 하지만 노동시간의 경우, 결국 노동시간에 대해 노조가 일부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니까 충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는 주 60시간, 1일 12시간을 노동시간의 상한선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노동연구원 연구자료에 따르면 현재 평균노동시간은 주당 58.4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주 60시간을 상한선으로 정하는 것은 제작사 측에서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1일 12시간을 상한선으로 설정하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현재 24시간 풀로 돌아가는 제작 관행에 제한을 가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작사뿐만 아니라 감독의 권한과 충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교섭과정에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임금ㅁ노동시간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사항들을 저희로서는 양보할 수 없기 때문에,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이를 쟁취하기 위해 파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투쟁 수단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운동: 현재까지 임단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김현호: 일단 저희는 단체교섭대상으로 제협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노동교육원에서 지원한 노사발전프로그램에 따라 제협과 노조가 작년 내내 노사교섭을 위한 연구테이블을 꾸준히 가진 바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공청회를 두 차례나 가졌구요.
저희는 지난 4월 제협 쪽에 사용자단체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4월 27일 제협 측에서 상견례를 제안해서 이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제협 쪽에서는 임시총회를 개최해 사용자단체 구성 여부를 결의하고, 이에 입각하여 2005년 기준으로 실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40여 개 사로부터 단체교섭에 관한 위임장을 수령하여 단체교섭에 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2일 열린 제협 임시총회는 사용자단체 구성을 결의하지 않고 이 문제를 운영위원회로 일임했습니다. 아직 준비가 부족하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저희는 이미 충분히 기다려 줬습니다. 작년 내내, 그리고 올해도 4월 이후 한 달 여를 기다려 줬구요. 저희로서는 지금 제협 쪽이 이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보는데, 글쎄 이걸 진지하지 않다고 봐야 할지 무지하다고 봐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임시총회에서 제협은 노조와 교섭하기 전 투자사/감독조합/매니지먼트/노동조합 등 다자간 테이블을 구성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결국 교섭 대상이 누구냐 하는 문제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올해 초 공청회 등에서 기본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제작사 사장들은 잘 모른다, 학습하겠다 이런 얘기를 되풀이하면서 자기네끼리 무슨 팀을 꾸렸다고 합니다. 자기들 말로는 사용자 안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미 노조안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교섭을 하면서 토론할 게 있으면 토론하고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지금 제협 측에서 정확히 무엇을 준비하려고 하는지 불분명합니다.
현재 저희는 5월 24일자로 1차 교섭을 제안했는데, 아시다시피 현재가 깐느영화제 주간이라서 운영위원 거의 대부분이 거기에 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문제에는 성실하게 응하지 않으면서 다수의 운영위원이 깐느에 가 있는 게 좀 답답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래 제안된 날짜에 제대로 일이 추진될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제협 측에서도 5월 가기 전에는 하자는 게 중론이라고 합니다.
사회운동: 영화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말할 때, 제작자들이 흔히 ‘자정능력’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많이들 대답하는데,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현호: ‘믿고 싶다’는 생각입니다(웃음). 영화제작사 사장들 중에 80년대 운동권 출신들도 있습니다. 소위 386세대 혹은 민주화세대라고 부르죠. 하지만 조합원들의 경험에 기반해 볼 때 기대감은 없습니다. 사실 제작사의 마인드라는 게 단적으로 이렇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주는 생수 값이 아까워서 생수 병을 비운 다음에 음식점에서 물을 받아가지고 주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리고 연출부, 제작부의 경우 몇 개월 혹은 1년여 걸친 프리단계(프로덕션 이전단계를 말함)의 경우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며, 그나마 지급받아야 할 임금도 떼이기 일쑤입니다. 물론, 일부 제작사에 국한된 사례라고 보고 싶지만, 작년과 올해 영화인신문고에 접수되는 사례를 보면 결코 일부 제작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 영화가 산업화가 안 된 것은 아닙니다. 당장 P&A 비용 10억을 제외하고 순제작비만 평균 28억인데, 이런데도 산업화가 안 되었다면 웃기는 얘기지요. 또 후반 작업의 경우 스탭들의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일부 배급사의 경우 해외에 직접 배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작현장만 오면 ‘영화판’이니 ‘식구’니 하는 전근대적 마인드가 판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회운동: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김현호: 유인물에 나와 있듯, 우리는 아주 소박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을 보장하라, 식사시간을 준수하라, 4대보험 가입하라, 임금은 주급제로 지급하라, 법정근로시간 8시간 준수하라,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라, 연장․야간근로수당 지급하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라’는 우리의 요구안을 보십시오. 이러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도 보장해 주지 못하면서, 한국영화가 당당히 영화관에 걸릴 자격이 있을까요. 저희는 그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희는 지금 관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투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웃음).
사회운동: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앞으로 이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할 기회를 꼭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 가장 뜨거운 사회적 쟁점 중 하나는 스크린쿼터 축소와 이에 대한 영화인들의 저항이었다. 수많은 스타들이 거리로 나왔고 1인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정부의 악 선동이 영향을 끼쳤지만, 한국영화산업의 해묵은 모순도 적지 않은 몫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얘기만 무성했을 뿐 거의 다뤄지지 않은 한국영화산업의 모순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국영화산업노조가 있다. 몇 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 해 건설된 전국영화산업노조는 스크린쿼터 투쟁의 중요한 한 축으로 나서면서 조직의 출범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제 이들은 제작자들과의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더욱 분명히 내려 하고 있다. 『사회운동』은 스크린쿼터 사수 146일 장외철야농성을 진행 중인 전국영화산업노조 김현호 정책실장을 만나 노조 출범을 전후한 저간의 사정과 임단협 계획을 들어 보았다.
사회운동: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월간 『사회운동』 63호(2006년 4월)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를 가지고 회원쟁점토론을 기획한 바 있습니다. 당시 좀 급하게 기획을 하다 보니까 전국영화산업노조(이하 영화노조) 동지들을 미처 모시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못내 아쉬웠고,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영화노조를 따로 뵙고 영화산업의 현실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이번에 영화노조에서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우선 영화노조에 관한 간략한 소개, 특히 노조 출범을 전후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현호: 영화노조가 출범한 것 자체는 2005년 12월 15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바로 생긴 것은 아니고, 그 전부터 조직화 흐름이 있었지요. 발단은 지난 2001년 몇몇 스탭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개설한 ‘비둘기 둥지’라는 카페였는데, 이들이 대종상 시상식장 앞에서 스탭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임으로써 영화노동자들의 현실을 처음으로 사회화했습니다. 그 후 조감독, 촬영조수, 조명조수, 미술조수 협의회 등이 꾸려지는데, 이를 중심으로 2002년 한국영화조감독협회와 한국영화촬영조수협회가, 2003년 한국영화조명조수협회 등이 설립되었습니다. 이것이 2003년 4부 조수연합으로 이어지고 2004년에는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가 결성되기에 이릅니다. 이때,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현장영화인실무교육이 시작되었고, 영화 스탭들의 부당한 대우를 해결하기 위한 영화인신문고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기초해서 노조가 결성된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저희 위원장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 쪽방에서 지상 사무실로 이사하고 전화기도 생겼을 때, 이제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작년 조수연대회의 시절 노동조합 결성 과제를 각 단위별로 동의받고 결의하기 위하여 스탭들을 설득하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아직 시기가 이르다, 영화인들이 과연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겠는가 등 걱정 어린 시각도 많았습니다. 노동조합 창립총회 후 영화스탭들의 노동자성을 둘러싼 다양한 법적 해석 속에서 노동부에서 순순히 설립필증을 내줄지 걱정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다행히도(?) 서울노동청에서 설립필증을 내주었습니다.
출범을 전후해서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아무래도 조직화입니다. 노동조합은 쪽수가 힘이라고 봅니다. 저희 규약에서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자를 가입대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규정이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제작 현장에 있는 스탭들이 가입대상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현재 연출, 촬영, 조명, 녹음, 미술, 분장, 의상, 제작, 소품, 작가, 특수효과, 편집, CG, 지미집, 그립 이상 15개 지부가 있습니다. 지부로 편성은 되어 있지 않지만, 배우들도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습니다. 물론, CGV 등과 같은 상영관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가입대상이 됩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준비를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 영화노조가 출범한 후 주위 반응은 어떻습니까? 또 노조 활동에서 특히 어렵게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김현호: 현장에서는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가 큰데,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를 ‘영화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경험 자체가 부족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를 자각하는 과정 자체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영화 작업 자체가 워낙 다양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까 경험이 상당히 불균등한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스탭들의 내재적인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조합원 교육과 다른 산업 노동자들과의 연대 등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외부에서도 영화 스탭들의 노동조합 출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 말 영화산업노조 출범과 관련된 인터넷과 신문기사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스탭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회여론화 된 측면도 있을 것이고, 영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상징성이 그런 관심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후자의 측면만을 볼 때 정말 힘들고 어렵게 투쟁하는 노동조합 동지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사용자들도 스탭들의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해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스탭들의 문제가 대두되어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체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제작이 프로젝트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화노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계약직입니다. 구조적인 고용불안으로 조직화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또 세트장과 촬영장이 전국 곳곳에 산개해 있어서 조합원들이 한 번에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노동조합 출범 이후 올 초에 각 지부별 임원진 선출을 위하여 전국 순회투표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투표를 마치기 위한 최선책은 결국 촬영현장을 순회하며 투표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아마도 다른 기업별 노조의 활동과 다른 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현장을 순회하면서 투표도 했습니다만, 자주 볼 기회가 없는 조합원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노동조합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기회로도 활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현장에는 이른바 ‘영화판’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서로 다 ‘식구’ 또는 ‘선후배’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감독이나 제작자들 중에는 ‘막내’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노사관계 설정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이것 자체가 하나의 과제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어서 저희는 제작자 측과 얘기할 때 최대한 문서나 공문을 사용하려 합니다. 사실 전부터 말로는 처우 개선 다 해 준다고 했지만, 정작 서면 합의 등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기피해 왔거든요.
사회운동: 영화현장의 인력구조나 노조조직률 등을 알고 싶습니다.
김현호: 영화현장인력구조는 아주 크게 보면 촬영, 조명, 연출 등 제작현장에 종사하는 자와 CG, 현상소 등과 같은 후반 작업군에 종사하는 자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영화산업노조는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산업이란 개념을 일반영화ㅁ만화영화ㅁ비디오영화제작으로 넓게 볼 수도 있으며, HD영화 제작으로 방송과 영화간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조직화 방향은 보다 넓은 틀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소위 극장에 걸리는 장편극영화에 한정해서 살펴보면, 현재 1년에 만들어지는 영화를 100편으로 잡고, 영화 1편당 스탭이 50명 정도 일한다고 보면 5000명인데, 이중 1년에 두 편 이상 찍는 노동자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작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대략 3~4000명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촬영, 조명 스탭은 대략 800여명 정도 되는데, 촬영, 조명 등과 같은 엔지니어 스탭의 경우 사실상 거의 대부분 조직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번 임단협에서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무엇입니까?
김현호: 우선 1!4!8, 즉 ‘일요일은 쉬자, 4대 보험들자, 8시간 일하자’입니다. 제작현장에 있는 스탭들의 경우 4대보험 가입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1명만 고용해도 4대보험을 가입해야 함에도 그동안 제작사들이 방관해 왔습니다. 얼마 전 조합원 한 분이 산재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어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승인 통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제작사가 사무직원들에 한해 4대보험을 가입하였던 회사로, 미가입 사업장 재해로 인한 별도의 추징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스탭들이 4대보험을 적용받는 데 난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 측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봅니다.
시간 관련해서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저희가 지금 당장 다른 직업들처럼 하루 8시간만 일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1일 노동시간의 기준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준 노동시간을 넘었을 때 초과수당 등을 산정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것 없이 장시간노동을 무작정 강요당해 왔습니다. 또 계약금/잔금식의 임금지급관행을 탈피하고, 주급제가 됐든 월급제가 됐든 정기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중요한 요구 사항입니다.
이와 함께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영화현장에서 사용되는 스탭고용계약서는 스탭 일방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작사 측의 문제 때문에 영화 제작이 중단되어도 스탭들이 계약금을 반납해야 합니다. 물론, 민사소송과 같은 상당히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구제받을 수 있지요. 그래서 저희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근로계약서의 조항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노조와 제협 양쪽에서 공증을 한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이걸 영화현장에 뿌리고 이걸 가지고 계약을 맺자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아니지만,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에 속한 제작사가 만든 영화의 경우에는 엔딩 크레딧에 전국영화산업노조의 로고를 삽입하자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알리자는 차원인데, 실제로 미국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사회운동: 앞서 말씀하신 영화현장의 관행을 고려할 때, 임금지급 방식이나 노동시간 문제를 건드리면 영화산업 전체에 큰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김현호: 큰 변화가 생겨날 것입니다. 현재 같은 경우는 촬영 기간이 주로 배우의 스케줄에 따라 좌우됩니다. 스케줄이 맞으면 한 달에 20~25일 정도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한 달에 고작 5일 밖에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작사 측의 준비가 미흡해서 제작이 길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계약기간이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편당 임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약기간 동안 다른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손해 이상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만일 주급이 됐든 월급이 됐든 정기적으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계약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임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식으로 제작기획을 대충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배우 스케줄의 문제도, 제작사가 매니지먼트사와 상의를 하는 등, 제작자 쪽에서 누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강제 받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제작이 ‘합리화’되겠지요.
사실 이 얘기는, 작년 강우석 감독과 몇몇 배우 간의 분쟁이 있은 후 표준제작매뉴얼을 만들자는 식으로, 제작사 스스로 제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영화산업 내 처우개선의 핵심적 사안이거니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요구가 관철되면 영화산업 자체가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번 임단협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임금상승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지요. 실제로 저희가 계산을 해 보니까 임금지급방식이 바뀐다 하더라도, 초과수당을 별도로 친다면, 기본급기준으로 임금이 상승된다거나 하는 효과는 크게 없습니다. 하지만 노동시간의 경우, 결국 노동시간에 대해 노조가 일부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니까 충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는 주 60시간, 1일 12시간을 노동시간의 상한선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노동연구원 연구자료에 따르면 현재 평균노동시간은 주당 58.4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주 60시간을 상한선으로 정하는 것은 제작사 측에서도 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1일 12시간을 상한선으로 설정하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현재 24시간 풀로 돌아가는 제작 관행에 제한을 가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작사뿐만 아니라 감독의 권한과 충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교섭과정에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임금ㅁ노동시간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사항들을 저희로서는 양보할 수 없기 때문에,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이를 쟁취하기 위해 파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투쟁 수단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운동: 현재까지 임단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김현호: 일단 저희는 단체교섭대상으로 제협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노동교육원에서 지원한 노사발전프로그램에 따라 제협과 노조가 작년 내내 노사교섭을 위한 연구테이블을 꾸준히 가진 바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공청회를 두 차례나 가졌구요.
저희는 지난 4월 제협 쪽에 사용자단체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4월 27일 제협 측에서 상견례를 제안해서 이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제협 쪽에서는 임시총회를 개최해 사용자단체 구성 여부를 결의하고, 이에 입각하여 2005년 기준으로 실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40여 개 사로부터 단체교섭에 관한 위임장을 수령하여 단체교섭에 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2일 열린 제협 임시총회는 사용자단체 구성을 결의하지 않고 이 문제를 운영위원회로 일임했습니다. 아직 준비가 부족하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저희는 이미 충분히 기다려 줬습니다. 작년 내내, 그리고 올해도 4월 이후 한 달 여를 기다려 줬구요. 저희로서는 지금 제협 쪽이 이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보는데, 글쎄 이걸 진지하지 않다고 봐야 할지 무지하다고 봐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임시총회에서 제협은 노조와 교섭하기 전 투자사/감독조합/매니지먼트/노동조합 등 다자간 테이블을 구성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결국 교섭 대상이 누구냐 하는 문제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올해 초 공청회 등에서 기본 공감대를 형성한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제작사 사장들은 잘 모른다, 학습하겠다 이런 얘기를 되풀이하면서 자기네끼리 무슨 팀을 꾸렸다고 합니다. 자기들 말로는 사용자 안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미 노조안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교섭을 하면서 토론할 게 있으면 토론하고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하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지금 제협 측에서 정확히 무엇을 준비하려고 하는지 불분명합니다.
현재 저희는 5월 24일자로 1차 교섭을 제안했는데, 아시다시피 현재가 깐느영화제 주간이라서 운영위원 거의 대부분이 거기에 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문제에는 성실하게 응하지 않으면서 다수의 운영위원이 깐느에 가 있는 게 좀 답답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래 제안된 날짜에 제대로 일이 추진될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제협 측에서도 5월 가기 전에는 하자는 게 중론이라고 합니다.
사회운동: 영화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말할 때, 제작자들이 흔히 ‘자정능력’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많이들 대답하는데,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현호: ‘믿고 싶다’는 생각입니다(웃음). 영화제작사 사장들 중에 80년대 운동권 출신들도 있습니다. 소위 386세대 혹은 민주화세대라고 부르죠. 하지만 조합원들의 경험에 기반해 볼 때 기대감은 없습니다. 사실 제작사의 마인드라는 게 단적으로 이렇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주는 생수 값이 아까워서 생수 병을 비운 다음에 음식점에서 물을 받아가지고 주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리고 연출부, 제작부의 경우 몇 개월 혹은 1년여 걸친 프리단계(프로덕션 이전단계를 말함)의 경우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며, 그나마 지급받아야 할 임금도 떼이기 일쑤입니다. 물론, 일부 제작사에 국한된 사례라고 보고 싶지만, 작년과 올해 영화인신문고에 접수되는 사례를 보면 결코 일부 제작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한국 영화가 산업화가 안 된 것은 아닙니다. 당장 P&A 비용 10억을 제외하고 순제작비만 평균 28억인데, 이런데도 산업화가 안 되었다면 웃기는 얘기지요. 또 후반 작업의 경우 스탭들의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일부 배급사의 경우 해외에 직접 배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작현장만 오면 ‘영화판’이니 ‘식구’니 하는 전근대적 마인드가 판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회운동: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김현호: 유인물에 나와 있듯, 우리는 아주 소박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을 보장하라, 식사시간을 준수하라, 4대보험 가입하라, 임금은 주급제로 지급하라, 법정근로시간 8시간 준수하라,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라, 연장․야간근로수당 지급하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라’는 우리의 요구안을 보십시오. 이러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도 보장해 주지 못하면서, 한국영화가 당당히 영화관에 걸릴 자격이 있을까요. 저희는 그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희는 지금 관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투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웃음).
사회운동: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앞으로 이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할 기회를 꼭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