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67호
더욱 완강한 투쟁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 김진배 단장 인터뷰
포항건설노조 투쟁이 두 달을 넘어서고 있다. 임금 인상, 임금 삭감 없는 주5일제 실시, 시공책임자 제도 폐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 등 일반적인 단체협상의 요구를 바탕으로 시작된 파업투쟁은 정부, 포항시, 경찰, 언론 등의 노조말살 책동과 포스코의 대체인력 투입에 대항하면서 포스코 점거투쟁으로 이어졌다. 9일간의 점거농성은 포항건설노조 투쟁을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었지만 공권력의 고사작전으로 인해 노조는 농성을 풀었고 이는 대량 구속사태로까지 커졌다. 더욱이 지난 7월 16일 집회 과정에서 경찰은 살인적인 폭력진압을 자행하여 하중근 조합원을 끝내 사망하게 했다. 건설노동자의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과 열사 투쟁이 겹쳐진 이번 투쟁은 포항을 넘는 전국적인 문제이며 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살인 폭력 정권을 규탄하고 건설노동자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의 한복판에서 상경투쟁단을 이끌고 있는 김진배 단장을 만나 이번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일시> 2006년 8월 30일
<장소> 광화문 열린시민마당 농성장
<정리> 정영섭 (노동국장)
사회운동: 투쟁이 두 달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 동안의 경과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김진배: 포스코 본사점거 농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포스코 자본이 놓은 덫에 걸려 우리가 미끼를 물어 투쟁이 힘들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투쟁의 연장선에서 흩어진 조직력을 복구하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쟁취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치밀한 판단 속에서 투쟁이 이뤄지지 않아 곤란을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 하중근 동지의 죽음이 발생하였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열사에 대한 책임, 동지에 대한 애정 등으로 이 투쟁을 접을 수 없다는 공동의 인식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것이 이번 투쟁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포항만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연대가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역에서 시청, 포스코, 노동부 등 온갖 곳을 압박하고 항의했지만 포항 지역에 한정된 투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상경투쟁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상경투쟁단은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고, 하중근 동지 사건과 노동조합 탄압에 대해서 알려내는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노조의 역사가 18년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지금까지 이러한 투쟁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지금 투쟁의 요구가 예전에 비해 높은 것이라서 투쟁이 커진 것 인지요?
김진배: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올해의 요구사항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 철폐라든지 시공참여자 문제 폐지 등 이제까지 건설업 내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정당한 것입니다. 즉 산업재해나 부실공사, 고된 노동강도 등을 초래한 고질적인 문제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 또 일제 때부터 내려왔던 오야지(팀장) 구조를 합법화시켜 이들을 사업자로 만들어 모든 책임을 지우는 시공참여자 문제를 제기한 것이죠. 실제 공사가 한 단계 한 단계 내려오는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발생합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런 부분을 시행하여 건실한 건설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를 방기하고 있고, 이 문제를 건설의 일 주체인 건설노동자들이 제기하고 싸우고 있는 겁니다. 너무나 정당합니다. 또 하나는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실질임금, 생활임금에 근접한 임금 요구안이 있었습니다. 이는 교섭과정에서 충분히 협상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절대 무리한 요구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하나가 주 5일 근무에 대한 것인데요, 우리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이대로 주 5일제가 되면 하루의 노동에 대한 대가가 빠져서 임금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이전과 비교해도 절대 무리한 것이 아니고, 어떤 측면에서는 건설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올해 싸움은 특별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사측이 단체협약 개악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18년 노조 역사에서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포스코가 이미 건설노동자를 길들이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었는데, 포스코 농성 과정에서 발견된 유관기관 대책회의, 즉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 속에서 제안된 노조탄압 프로그램을 보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언론, 시, 노동부, 경찰 등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 건설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동향을 포스코에 보고하는 게 발견되었고, 언론은 포스코가 세운 계획에 의해 날짜별로도 일치할 만큼 노조에 부정적인 보도를 했습니다. 이런 걸로 봐서는 올해 포스코가 반드시 노조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자본의 노동조합 말살책동에서 지금과 같은 투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회운동: 조합원들은 현재 상태가 어떠합니까? 하중근 열사에 대한 생각이나, 투쟁에 대한 태도, 현실적인 생계 문제 등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김진배: 저는 이전 집행부의 상근 간부였습니다. 이번에는 지도부가 아니었지만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을 하고 내려오면서 착잡한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습니다. 기나긴 전경들의 숲을 지나가면서 온갖 생각이 났습니다. 18년 조직이 어떻게 난관을 딛고 일어설 것인가, 조합원들의 속마음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착잡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반수가 모였습니다. 3500조합원 중에 180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놀라기도 했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2200이 모이고 그 다음날 2500이 모이는걸 보면서 우리 조합의 조직력, 우리 조합의 18년 역사가 녹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공권력의 살인에 의해 죽어간 하중근 동지에 대한 동지적 책임감, 18년 노동조합을 책임지고자 하는 동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가짐을 볼 때, 아무리 포스코 자본의 말살책동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리고 조합원 부인의 너무나 가슴 아픈 유산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 벌어졌던 경찰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작태들이 있었습니다. 유산한 부인에게 찾아와 조용히 살고 싶으면 서약서를 쓰라고 협박을 했고, 돈다발을 들이밀었습니다. 어린아이를 잃고 몸도 마음도 편치 않은 그 부인과 가족에게 행했던 행위는 우리 조합원 마음 속에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분노를 남겼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잊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투쟁을 더욱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또, 분명히 자진해산하면 사법처리를 최소화하겠다고 정부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점거농성에서 내려오자마자 58명을 구속하더니 그 이후 67명까지 구속했습니다. 두 명이 수배상태고 지난 월요일에 10명의 지도부들에게 또 다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총 80명 정도가 구속되었거나 구속이 예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부가 행하고 있는 비열한 작태입니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이렇게 구속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아직도 병원에서 투병중입니다. 그 중에는 2명의 중상자가 있습니다. 방패에 찍혀 입 부위가 완전히 함몰되어 전체 치아를 갈아넣어야만 하는 조합원이 있고, 장기가 파열되어 세 차례에 걸친 수술에도 불구하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조합원이 있습니다. 또 점거농성 과정에서 지독한 두려움, 고립된 상황 속에서의 위협감 그런 것 때문에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바로 찜질방에 갔을 때 긴장이 풀리면서 돌아가신 조합원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조합원들은 투쟁의 열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61일째를 맞이하는 오늘, 조합원들은 표현하지는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생계비 대출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용노동자들이 모아놓은 돈이 어디 있겠으며, 잘 살지도 못하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손 벌리는 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렇지만 하중근 동지나 많은 부상자, 희생자들을 보면서 생계문제에 대해서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막이 찢어지고 고막이 찢어지고 입이 함몰된 부상자들이 있고, 다리에 깁스를 한 동지가 낫기도 전에 깁스를 풀고 투쟁에 나서고, 아픈 동지들도 상경 투쟁에 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눈물겹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내고 투쟁을 전개하는 동지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끈끈한 동지애가 생깁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포스코의 새로운 대응이 나오는 지금 시점에서 투쟁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이번 주를 기점으로 다음 주에는 분명히 표출될 것입니다. 어차피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죽느니 싸움 속에서 죽자는 선택으로 몰린 상황이라는 판단입니다. 그 속에서 싸움이 배치될 것 같고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도 많은데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고 조합원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포스코나 정부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텐데요. 포스코나 정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무응답으로 일관하면서 귀를 틀어막고 있습니다. 어제도 임산부 유산 문제로 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총리면담을 신청했는데, 그것도 거부하는 실정입니다. 정부가 노조 죽이기에 침묵하고, 오히려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하중근 열사 문제만이 아니라 하반기에 벌어질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 투쟁이나 비정규 노동자 투쟁 등에 대해 승기를 잡겠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따라서 하중근 열사 투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투쟁과 연대해서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운동: 작년 울산 플랜트노조나 올해 대구경북 건설노조 투쟁, 지금의 포항건설노조 투쟁에 이르기까지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최근에 이렇게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진배: IMF 외환위기 때부터 문제가 되었는데요. 외환위기 당시에 일이 없어서 우리 20~30년 된 기능공들이 공공근로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 일마저도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계고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자살했습니다. 자살 뿐 아니라 그 당시 이혼율도 엄청났습니다.
지금도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은 집에 내가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많은 가정이 편부가정입니다. 구속자 가정도 볼 것 같으면, 한창 예민한 사춘기 중고생들이 아버지 없이 혼자 다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있고 어린 애들은 이집 저집을 떠도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계형 이혼도 많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정부청사를 방문해서 일거리를 달라, 대책을 수립하라고 했을 때 정부는 건설일용 노동자들의 규모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노조나 건설연맹에서 숫자를 말하면 바로 다음날 언론에 그것이 보도될 정도로 대책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았고, 세금은 내지만 국민이 아닌 국민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러한 현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 광양플랜트노조, 여수플랜트노조, 울산플랜트노조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런 대단위 플랜트노조가 생기다보니까 대책이 없는 정부가 노조의 요구사항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강력대응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건설업계에는 소위 ‘검은 돈’이라는 정치자금 문제가 있습니다. 건설업이 정치자금의 절반 정도를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노가다들의 싸움 때문에 정치자금줄이 끊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거죠.
대체근로를 둘러싸고 싸움이 있으니 응징을 하는 거죠. 노가다가 욕을 하니, “감히 너희가 그렇게 요구할 수 있냐,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죠.
자본과 권력의 탄압, 노조말살 책동에 의해 우리의 대응 수위도 결정되지 않겠습니까. 건설노조를 지키고 노동자 생존권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싸움이 강력하고 처절하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운동: 이번 투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텐데요, 이번 투쟁이 포항건설노동자와 전체 건설노동자에게, 그리고 노동운동진영에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진배: 건설노동자라고 하면, 우리 연맹에도 건설사무노련이 있어서 기업노조라고 할 수 있는 데가 있고요. 우리처럼 지역업종협의회라고 해서 지역노조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건설플랜트가 있고 전기원노조가 있고 토목건축협의회가 있고, 레미콘, 덤프, 타워크레인으로 대표되는 건설기계 부분이 있습니다.
이제껏 포항건설노조는 유일하게 전문건설회사와 정식 단체협약을 맺어왔습니다. 건설노동자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깃발이 되었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속에서 포항의 싸움에 대한 각 지역 노동자들의 관심과 애정을 우리가 한 발 한 발, 뗄 떼마다 느낄 수 있습니다.
연대 부분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은 정말 우리와 같이 상복을 입을 상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중근 열사 죽음 이후 30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민주노총에 연대를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 씁쓸하고 너무나 답답합니다. 하물며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거론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공대위가 계획을 세우고 계속적으로 민주노총에 문제제기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실질적으로 주체인 민주노총의 움직임이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에 비해 너무 늦지 않은가 합니다. 노동자의 죽음, 그것도 대낮에 벌어진 공권력에 의한 살인은 없지 않았습니까? 물론 고문에 의한 박창수 열사의 죽음이 있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민이 보는 와중에 노동자가 죽었는데 이렇게 쓸쓸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은 상주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조차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의 강력한 투쟁으로 연대전선으로 불러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 투쟁의 고삐를 더 당겨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노조에 여성분회도 있던데, 그 분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조합 내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요?
김진배: 여성분회는 올해 생겼는데요. 공구실에서 일하면서 공구를 나눠주거나 현장 내 청소 같은 일을 합니다. 토목건축이나 보온 직종의 분회에도 기능공 여성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많이 가부장적이지 있지 않습니까. 노조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식사나 여러 가지 잔일을 챙기시는 일을 합니다. 조합 내 여성들은 100여 명 됩니다.
현장에 원래 성차별이나 여성 비하 발언이 많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노조가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장 노동자 아니면 관리자들한테 또 한 번 왜곡 당하는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조에서 여성동지들을 조직했습니다. 그 동지들의 제안도 있었지만 그 제안을 받아서 노동조합이 먼저 주도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현장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노조가 받아 안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리직이나 이런 사람들이 아랫사람으로 보기도 했고 거기에 대해 하소연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운동: 지난 번 촛불집회 때, 포항 시민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김진배: 8월 9일의 투쟁은 제2의 광주를 연상시키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날 180명 가까운 조합원이 다쳤습니다. 평택을 전쟁도가니로 만들었던 1077, 1078 그 살인 폭력 부대가 우리 건설노동자들을 짓이겼습니다. 보다 못해서 말리던 시민들이 300~400명 있었습니다. 그 중에 그 시민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시민이 머리에 방패를 맞고 쓰러졌다는 조합원의 절규가 있었습니다. 많은 조합원들이 그것을 목격했지만 우리는 쫓기고 있었고 조합원들도 방패에 찢기고 넘어지고 있어서 그 시민을 인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서 경찰이 중상을 입은 그분을 데리고 갔습니다. 상황실에 보고하고 그 이후 계속 도내 병원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런 중상 입은 시민이 입원하고 수술 받은 사실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그 분의 상태가 위독해서 경찰이 철저하게 막은 것 같고 막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긴 것 같았습니다. 지지난 주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집회를 할 때 어느 시민이 와서는 그 분의 장례가 치러졌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습니다. 공권력에 의한 살인 만행, 임산부 유산에 대한 경찰의 비열한 은폐 시도 등을 볼 때, 그 시민은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고 정부는 이를 감추고 가족을 협박해 알려지지 않도록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 포항에서 관제 데모가 여러 번 있었고 1만 명, 2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언론에서 전문건설업체들의 부도위기를 보도했는데 실제로 그러한가요?
김진배: 관변 단체들은 정부 정책이 나오면 끌어 모아서 일당을 주고 동원을 하는 항시적인 인원들이고요, 또 하나는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들입니다. 그 날 일을 안 시키고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저희가 그 때 포항시청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포항공설운동장에서 그 쪽이 집회를 하다가 시청으로 행진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내부에서 반발이 있어서 행진이 취소됐데요. 어쩔 수 없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반발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는 그 쪽에 크게 신경 안 씁니다.
포항의 교통 결절지로 오거리라고 있는데 거기에 죽도시장이 있습니다. 그 상인들과 상가 쪽 시민들에게 저희가 얘기하면서, 실질적으로 재래시장들의 소비자들이 누구인지, 우리 같은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이 재래시장을 이용하지 있는 놈들이 이용하겠냐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관제데모에 대해 그게 정말 상인들의 입장이냐, 그렇다면 다시는 이 시장에 발을 안 붙이겠다고 했을 때 상인들은 자기네 입장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쪽 상층은 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에게 설명을 하고 상가를 돌면서 홍보전을 하면서 그 분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밑바닥 주민들은 노동조합 쪽입니다.
전문건설업체들은 대부분 공사가 정지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과의 교섭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문건설업체들도 노조가 생긴 이후에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오히려 포스코에 대해서 싸워 달라기도 합니다. 자기들도 IMF때는 설계가의 30%도 안 되는 공사대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음 공사를 위해서 그 정도에 받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반항도 할 수 없고요. 실제로 전문건설업체들을 조이는 것은 원청인 포스코 건설과 그 위의 포스코입니다.
사회운동: 끝으로 지금까지의 투쟁에 대한 간략한 평가와 이후 전망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진배: 명백한 살인에 대해서 민주노총이 빠르게 반응할 줄 알았기 때문에 우리의 대응은 포항에 국한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응이 느린 민주노총의 연대구조를 알았다면 우리 투쟁은 처음부터 중앙으로 집중되었을 것입니다. 중앙으로 집중해서 촉구를 하고 연대를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포항에 국한된 투쟁이었고, 내용도 포항을 대상으로 하여 그렇게 강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연대대오가 붙을 거라고 생각했고 연대대오와 수준과 내용을 맞춰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커다란 성과 없이 60일을 지내왔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 판단으로는 하중근 열사 투쟁이 수위에 오르면서 증가된 조직력으로 교섭과 열사투쟁 모두 풀어갈 여지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하는데 현재 그 두 가지를 모두 놓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8월 말을 기점으로 포스코에서는 새로운 노동조합 죽이기 전략을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 전문건설업체의 공사 포기각서를 받아내고 원청(포스코건설)을 바꾸고, 대규모 대체인력을 투입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불법대체 인력으로 보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합니다. 오늘부터 시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포스코의 상징적 장소인 삼문 앞에 천막을 설치했습니다. 강력한 투쟁으로 압박해서 우리의 요구를 받아내야 합니다. 이후 투쟁은 더 완강해야지요. 진짜 우리가 책임지고 새롭게 다짐하는 투쟁으로 갈 것입니다. 구속도 각오하고 결사하는 투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