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위하여
: 2006년 노동자운동 평가와 2007년 전망
지배 세력의 시각
정부 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2006년을 ‘전환기적 불안정성’과 ‘노사정 합의형성 취약’으로 평가한다. 정부가 초점을 두고 있는 노사관계의 안정이나 노사정 합의에 기반하여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하 지배 세력의 최대 목적은 계속되는 불안정과 위기를 적은 비용을 들여 관리하는 것이다. 노동의 불안정화를 촉진하고 착취를 강화하는 한편 이에 반발하는 저항을 유연하게 무마하거나 체제내화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을 지속적으로 제도화하려고 하였으며 결국 2006년에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운동의 전투적 부위를 거세하고 협조적인 분파를 포섭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노사관계를 재편하자면서 지속적으로 대기업노조를 공격하고, 비정규 투쟁을 비롯한 노동자투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등 전투적 부위를 탄압하면서도, 노사정대표자회의나 지역노사정협의회와 같은 기제를 통해 대화의 모양새를 취하면서 상층부나 일부 분파를 포섭하려 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해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비정규직 확대와 빈곤의 심화가 말해주듯이 노동자의 권리 해체와 생존 조건에 대한 공격은 대중의 불만을 키우기 때문에, 위기관리 정책으로는 예방할 수 없는 저항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정성과 합의 형성은 끊임없이 위기에 봉착하며 노동자운동의 대응 여하에 따라 전체 구도 자체를 뒤집을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자운동은 변혁운동성의 복원, 계급주체의 형성을 지향한다. 정부나 자본과의 안정 추구나 합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 여부가 우리의 평가 기준인 것이다. 몇 가지 평가 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006년 평가의 쟁점
1) 사회적 교섭 vs 총파업 투쟁?
2005년 사회적 교섭 참여를 둘러싼 충돌과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에 이어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가 사퇴했는데,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들어선 조준호 집행부 역시 노사정 교섭 참여에 비중을 두고 내부의 반발을 무릅쓴 채 2006년 6월부터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전격 참여했다. 2005년의 노사정 교섭 참여가 비정규직 법안에 관해 협상하기 위해서였다면, 2006년의 참여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협상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공통적인 참여 요인은 총파업을 통해서는 법안을 저지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즉, 가능한 최대치를 따내기 위해서라도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여한 6월부터 입법이 예고되는 11월까지 교섭만 있었고 투쟁은 병행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 과정에서 특수고용 문제나 공무원 노동3권 문제를 의제화했다거나 로드맵의 일부 조항을 현행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 등을 성과로 자평했지만, 핵심적인 사안들을 바꾸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는 설득력이 없었다. 결국 로드맵 법안은 수정안을 둘러싼 혼란 사태까지 거쳐 △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2009년 12월까지 3년 유예 △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혈액공급, 항공관제로 확대, 합법 파업에 대해서도 파업참가 인원 50%까지 대체근로 허용 △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 60일에서 50일로 축소 △ 부당해고 형사 처벌규정 삭제 △ 부당해고 판정 시 원직복직 대신 금전보상 인정 등의 내용으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노동운동 내 좌파들이 주로 공격하는 지점이다. 내용인즉슨, 노사정 교섭 자체도 문제지만 6월부터 9월까지 투쟁조직화를 사실상 방기했다는 것이다. 노사정 교섭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 9. 11 야합은 예견된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실상 합의했다는 정황도 있다. 아무튼 9. 11 야합은 민주노총이 투쟁기조로 돌아서는 데 호재였다. 그러나 한국노총과의 연대 단절, 노무현 정권 퇴진을 기조로 세우고 총파업 투쟁을 조직했지만 여전히 총파업의 실질적인 조직화에는 실패했다. 더욱이 12월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이 통과될 마지막 시점에는 명분을 쌓으려는 상징적 행동만 있었으며, 로드맵 수정안을 둘러싼 혼란으로 총체적인 무기력을 확연히 드러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만들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난 쟁점은,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노사정 교섭을 중시할 것인지 총파업을 중시할 것인지 였고, 노동운동 내 좌우파 간의 대립도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사정 교섭이 잘못되었고 조합원 대중의 행동을 촉발시킬 수 없다는 집행부 반대 진영의 비판은 옳은 것이었음에도,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투쟁과 조직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총파업이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즉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한 사회변혁운동으로의 복원은 미뤄진 채, 당면 상황에서 투쟁이냐 교섭이냐의 대립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사회적 교섭과 총파업 투쟁이라는 쟁점 이면에 있는 핵심 문제는 노동자 대중운동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이다. 노동자운동의 고민은 여기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한편, 노사정 교섭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올해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파탄은 지난 10년간 지배 세력과 노동운동 내 일부 세력이 추진해 온 협상기제 제도화 노력이 잠정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성 측면에서도 대중적 측면에서도 노사정 교섭은 이제 아무런 동력이 없으며 향후에도 전국적 수준의 사회적 대화 기제를 시도할 요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2) 형해화된 총파업투쟁
총파업 투쟁의 실질적 성사 여부는 민주노총 설립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된 쟁점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노동운동의 퇴조 속에서 무너진 현장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의 문제는 노동운동 내 세력을 막론하고 부닥치는 문제이다. 올해 민주노총은 열 몇 번의 총파업을 벌였다고 할 정도로 많은 총파업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 자체 집계를 보아도 이는 총파업이라고 보기 힘들다.
<표1>민주노총 파업총계
* 전국노동자대회 참여 - 36,060명
* 총파업 찬반투표 - 총 590,943명 중 총 투표자수는 319,954명
- 투표율 54.14% (2005년도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 투표율 51.6%) / 찬성율 61.93%
*민주노총 6차 중앙위(12.22일)자료 재구성
민주노총의 파업 집계는 파업과 집회참가 등을 합하여 총계를 내는 방식이다. 따라서 실제 파업 인원은 총계보다 적다. 금속연맹에서 파업을 하면 10만을 넘고 그렇지 않으면 수만 명 수준이 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예컨대 좌파 진영이 주로 모인 ‘투쟁단위 연석회의’에서도 파업을 앞두고 금속 중심의 파업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으나 구체적인 조직화를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대중운동의 복구 없이 계속되는 동원식 일정박기식 총파업 투쟁은 총파업 자체를 형해화한다. 더욱이 법안 상정 여부에 따라 파업대기와 해제를 반복하면서, 그나마 있는 동력마저 갉아 먹는 방식은 동원식 총파업과 결합되어 폐해를 증폭시켜 왔다. 이러한 총파업은 총파업의 효과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거니와, 운동 역량을 확대하고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 문제는, 총파업을 대정부 교섭력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사고하는 데 있다. 총파업은 대중 주체의 형성과 지속적인 조직화, 전사회적 연대를 통한 노동자운동의 운동성·변혁성 강화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위로부터 조합원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복원, 투쟁의 기운 형성이 우선되어야만 파업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법안 저지를 위해 국회 일정에 따라 국회 앞에서 집회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방식이 수년 간 비판받아 왔지만 2006년에도 반복되었다. 특히 로드맵 법안 수정안에 민주노총이 사실상 합의하고 국회 내에서 표결을 할 때 밖에서는 국회 진격을 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대중적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국회 밖에서 투쟁을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로드맵 수정안에 대해 합의했다는 것은 원외투쟁과 원내투쟁의 결합이라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국회 일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투쟁 형태를 더 이상 지속할 대중적 동인도 없고 그러한 전술을 계속해서도 안 될 것이다.
3) 더욱 확장되어야 할 비정규직 투쟁
기륭, KTX, 하이닉스매그나칩, 대구경북건설노조 포항건설노조, 현자/기아 비정규직지회 등 2006년에도 주요한 노동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이 개별 투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쟁점화가 된 경우도 있지만 비정규직의 문제로 전 사회적으로 제기되지 못하고 개별 사안 투쟁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정권과 자본 측에게 비정규직은 사활적 문제였기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 투쟁에는 어김없이 공권력을 투입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그 결과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열사가 경찰에 얻어맞아 사망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묶어세워 전국적인 연대전선을 구축해 내지 못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치장된 비정규직 확산법안이 1년 내내 국회에 계류되어 있었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인 인식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법안 문제를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전체적인 투쟁으로 상승시키려는 기획과 노력을 전개하지 못한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이 여전히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비정규직 법안 통과 등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길이 열렸다는 식의 이데올로기 조장이 강화되는 상황은 비정규직 투쟁이 앞으로 더 어려운 조건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은행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직군을 따로 만든다거나,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근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무늬만 정규직화하는 방식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포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규직노조가 양보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한층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사회적인 연대운동이 맞물려서 비정규직 법안과 정부 비정규직 대책의 허구성을 지속적으로 폭로하며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해당 사업장 내에서의 정규직화에만 목표를 두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확장시키는 지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4) 조직전환이 중심이 된 산별노조 건설
현대자동차가 6월 30일 산별전환 투표를 가결하면서 산별노조 흐름은 탄력을 받고 진행되었고 금속의 경우 9년 만에 산별노조를 건설했다. 두 번의 대의원대회를 거쳐 규약과 체계를 확정했고 12월 27일 금속연맹은 해산했다. 금속산별완성을 위한 대의원대회의 주요 결정은 1) 모든 투쟁과정의 불이익과 보복성 비정규직 계약해지에 대해서도 신분보장기금 지급 2) 단위 사업장 쟁의권 인정 3) 현장공동화 방지를 위한 현장위원 제도 4) 간부 관료화 방지를 위한 상근 및 연임 제한 제도 5)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등 할당제 6) 지역지부 체계로 하되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 등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조직체계 문제였는데, 대의원대회에는 1안)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 2안) 지역지부 즉각 재편 3안) 지역본부 구성 등 세 개 안이 제출되어 논란 끝에 1안과 2안 가운데 6:4 비율로 1안이 채택되었다.
규약은 지역 단위로 지부를 편재하기로 되어 있으나, 경과 규정을 두어서 '2009년 9월까지, 3개 시도에 걸쳐 있고 조합원이 3,000명 이상일 경우 기업 지부를 인정'했다. 즉 전체 14만 4천 명의 66%인 9만5천여 명(현자, 기아, 대자, 쌍용, 만도,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3년간은 기업지부로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3년 동안 기업지부해소위원회를 두어 해소를 준비하게 했으나 3년 뒤 과연 해소할 수 있을지 우려도 크고, 또한 산별완성 논의와 조직체계 결정 과정에서 1안과 2안 진영의 대립도 심각했다. 6:4 비율에서도 보이듯이 지역지부 즉각 재편안이 예상보다 상당한 찬성을 얻었는데, 이를 발의한 좌파진영에서는 전진 그룹이 지지해 주었다면 통과되었을 것이라고 비판했고, 전진 그룹은 한시적 기업지부를 인정하지 않으면 산별노조 자체를 건설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논리를 댔다. 산별건설 과정의 대립은 금속노조 초대 위원장 선거에 무려 5개 선본이 출마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공공산별의 경우 공공서비스노조로의 전환과 함께 운수노조(궤도, 화물, 택시, 버스)와도 통합하는 이중의 과정이었는데, 내부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 공공서비스노조는 업종과 지역의 이중체계로 결정되었고 그마저도 전환이 더디다. 11월 30일 발기인대회를 거친 공공서비스노조는 45개 노조 3만여 명으로 출발한 상황이다. 더욱이 운수노조와의 통합 과정에서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한 기형적 논란이 표출되어 4개 연맹 통합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우여곡절을 거쳐 2007년 1월에야 통합 연맹을 건설했다.
이러한 산별건설 과정은 주로 조직 전환과 그에 따른 규약 마련에 집중된 나머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전략,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 활성화 방안, 사회운동과의 연대 등 실제로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을 복구하고 대중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와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다.
5) 노동자운동 혁신의 흐름
2006년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받았던 한 해였다. 2005년 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 계속된 무기력한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인 민주성과 자주성, 연대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들이었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는 과정이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성이 후퇴하는 과정이었고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민주노총의 노선과 계급투쟁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더욱 증폭되면서 지연된 위기가 터져 나온 것이다. 비정규직 확산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까지 막지 못해서 이제는 더 이상 위기를 지속시킬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민주노조운동의 이념, 조직, 운동을 변화시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 제대로 반격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에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을 새롭게 하기 위한 몇 가지 흐름들이 있었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조직 재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산별전환과 직선제 도입을 비롯한 조직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 확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미조직·비정규직에 대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전략조직화 사업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민주노총 차원에서 비정규기금을 모으고 조직활동가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업은 현재 서울만 해도 10여개 사업이 진행 중이고 서울지역 전략조직화 사업단에서 이러한 흐름을 모아내고 있다. 전략조직화 사업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을 노동자운동의 중심에 놓고자 기존의 노동조합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조직을 혁신하고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초기업단위 노조로 조직하며 지역을 중심에 두고 지역운동을 강화한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내오지 못하고 있는데, 노조의 소극적 대응, 주체들에게만 맡겨지는 현실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조 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역량을 더욱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07년 전망과 과제 -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위하여
1)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정립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97년 IMF에 이르기까지 10년, IMF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비정규직 법안과 로드맵 법안이 통과된 2007년까지 10년으로 노동자운동을 시기 구분한다면 2007년부터는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공세에 계속 밀려온 상황에서 비정규직 법안과 로드맵 법안 통과 이후 노동자운동의 전망에 대해 각 세력마다 모색을 진행하고 나름의 내용을 내놓을 것이다. 이는 특히 민주노총 선거에서부터 개진되었다. 이러한 전망 논쟁은 크게 볼 때 2006년 투쟁 평가, 민주노총 혁신 방안, 노동자운동 이념과 노선, 비정규직과 로드맵 문제, 산별문제, 연대전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2006년 투쟁 평가에서는 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논쟁이 핵심적이었다. 기존 집행부 진영의 경우 교섭력의 한계, 실질적인 투쟁 동력의 부재, 정파적 대립을 근거로 들어 노동운동 진영의 통합과 단결을 주장하며 노사정 중층적 교섭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성적 평가를 결여하고 있으며 교섭 중심주의의 폐해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이다. 2006년의 노사정 교섭 전술이 철저히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나아가 지난 10년간 오락가락하며 이를 지속시킨 책임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 타협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복원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 혁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안이 쏟아지고 있는데, 핵심적으로는 임원, 대의원 직선제로 모아지고 있다. 차기 선거부터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입장이 수렴되고 있는데, 직선제가 조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지만 제도 자체가 운동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하나의 계기점으로 사고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선거에서의 승자 독식구조 개선, 지역본부 위상강화 방안, 부패방지 방안, 재정자립 방안 등이 제출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결의하고 통과시키지 못했고 다음 대의원대회로 넘겨지게 되었다.
조직 체계나 제도 혁신은 운동 혁신의 일부라는 점에서 여전히 이를 넘어서는 혁신의 과제가 있다. 이는 특히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새롭게 세우는 것과 관련된다. 지금까지는 계급적 전투적 노동운동이냐 협상과 교섭을 병행하는 타협 노선이냐의 대립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이러한 구도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을 새로이 정립하는 과제일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한 철저한 인식, 국제주의 및 페미니즘과의 결합, 반전·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과의 개방적인 교류와 연대, 노동자 대중의 자기 교육과 학습운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연대와 일상적 정치활동 등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이번 선거를 출발로 87년에서 20년, IMF에서 10년이 되는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전망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더욱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2)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활로 개척
11월 30일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노동위원회법’이다. 각각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 파견노동, 차별 구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간제는 2년 이내에서 사용할 수 있고 2년 초과시 무기계약으로 간주하게 되어 있으며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된다. 즉 2007년 7월 1일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갱신하거나 기존 근로계약 연장시 적용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화보다는 해고를 선호할 것이므로 7월 1일 이전에 대량의 계약해지 사태가 예상된다. 벌써 비정규직 법안 통과 직후부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차별 시정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노동위원회를 통해 차별구제를 할 수 있게 하였으나 이는 2007년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 2008년 7월 1일 100~300인 사업장, 2009년 7월 1일 10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예정이다. 비정규직의 85%가 100인 미만 사업장이므로, 차별시정 적용 자체도 2009년이 되어야 가능하다. 더욱이 비교 가능한 정규직이 없을 수 있고, 합리적 차별이라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시정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파견대상 업무는 시행령을 통해 대상 업무를 확대하게 된다. 파견 역시 2년 이내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2년 초과 사용 시에는 고용의무만 적용되고 불이행시 과태료만 부과된다.
이러한 비정규직 법안 시행의 문제는 최대의 갈등 요인이 될 것이다. 예컨대 자본가 단체인 대한상의의 ‘2007년 노사관계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존 비정규직 근로자를 어떻게 관리할 계획인지를 묻는 설문에 대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계약 해지하겠다'는 응답이 63.6%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비정규직 업무 자체를 아예 아웃소싱하겠다'는 응답도 17.4%로 나타나 비정규직 입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을 불안하게 하거나 비정규직 일자리 자체를 없애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특수고용 문제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2006년 10월에 발표된 특수고용 대책은 노동자성에 대한 인정 없이 경제법적으로 일부 보호하는 내용이었으므로 노동자성 보장에 대한 제기는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대량 계약해지, 외주화에 대해 투쟁과 조직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법안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음을 제기하고 다시금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사회적인 투쟁으로 들고 나가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은 단순히 신규조합원을 조직하는 문제를 넘어 새로운 운동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하고 투쟁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자운동의 혁신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지역 연대투쟁의 기풍 강화, 사회운동과의 결합, 일상적인 교육과 학습 체계 등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응에서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령 작성 과정이나 차별시정 기준을 만드는데 개입하는 것을 중심에 놓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은행권을 필두로 비정규직을 별도의 직군으로 묶어 고용을 보장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다음 단계는 임금과 복지 등에 있어서의 차별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그러한 분리직군이 주로 여성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분리직군제는 수용하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분리직군제 도입이 성과급제도를 전제로 하고 있고, 정규직 임금 동결이라는 ‘정규직 책임론’에 기반해 있으며, 자본측이 비정규직법안의 차별금지 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또 다른 비정규직일 뿐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는 임금유연화를 자본측이 준비하고 있음을 볼 때, 직군제는 직무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직군제는 오히려 여성차별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고 이전의 여행원제도를 다른 형태로 부활시키는 방안이라는 것을 정확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과 빈곤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 서비스 일자리에 대한 대응 역시 중요하다. 주로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간병, 보육, 가사노동 등의 분야에 대해 NGO,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인데, 대부분 저임금 여성노동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빈곤여성들이 60~70만원의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어 노동하는 빈곤층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서비스 일자리 문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들 부문의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고 노동권을 옹호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3) 산별시대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 창출
대부분의 산별 전환이 형식적인 조직통합과 체계 개편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노조의 구체적인 운영과 활동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코퍼러티즘의 기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은 적극적으로 산별노조를 제도화하기보다는 이를 노동자운동의 급진적인 흐름을 최대한 제어하는 계기로 삼고자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노조의 인정, 제도화가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로 등장할 것이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는 임단협 투쟁을 기점으로 산별교섭/투쟁의 상과 현실화 문제, 산별교섭과 각 지역/기업지부 및 지회 등 산별노조 산하 조직의 보충교섭/투쟁의 범위와 관계 문제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보다 큰 틀에서는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맞물려, 한 편으로 산별노조를 교섭력의 증대와 정부와의 협상력 증대를 위한 방향으로 강화하려는 입장, 다른 한 편으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극복하고 통합력을 확대하며,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강화하려는 입장이 대립할 것이다. 산별 전환을 현장중심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 체계와 제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운동적 기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즉, 각 기업현장단위들의 지역적 차원의 연대활동의 강화, 현장을 넘어선 사회정치적 의제에 대한 개입과 일상적 정치활동 실현, 민주노총 지역본부 및 각 산업노조 지역지부의 연대운동 센터로서의 역할 강화 등이 주요한 과제이다. 기업과 업종을 넘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고양하고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지역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 조직화 운동, 빈곤 문제에 대한 지역 차원의 개입 등을 들 수 있다.
4)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과의 연대 강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민중 생존의 피폐화, 노동자 권리의 해체, 빈곤의 심화, 여성 이중부담의 증가 등은 전체 운동진영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연대전선을 굳건히 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이 위기관리의 책임을 분산시키거나 고통을 떠넘기기 위해, 혹은 저항이 분출하는 것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지배 체제의 일부로 운동을 끌어들이거나 활용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연대전략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중요시하는 노동자운동의 연대는 반신자유주의 운동 주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5) 교육과 학습을 중심으로 운동 주체 혁신
운동 주체의 혁신, 특히 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이 운동 혁신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특히 각급 노동조합 단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넘치는 실무, 성과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업, 팍팍한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관성화되거나 운동적 자신감을 지속시키기 어려울 때가 많다. 또한 기존의 운동방식과 내용에 비판적이면서도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해 지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테두리 안에만 갇혀서 자기 단위의 실리적 고민에만 묻히기도 한다. 운동 혁신은 운동 주체의 혁신을 당연히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를 통해 활동가들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과 교육이 가장 유력한 매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역사적 노동자운동에 대한 진단과 평가, 노동자운동을 포함하여 사회운동의 세계적인 흐름과 쟁점, 현실 노동자운동의 구체적 문제 등을 개방적인 교육과 학습을 통해 토론하고 흡수해야 할 것이다. 지역과 부문, 자기 활동공간에서 스스로 학습팀이나 교육팀을 구성하거나 정기적인 포럼과 같은 사업을 통해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 학습지역차원의 교육사업으로 이어져서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복무하는 활동가군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부 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2006년을 ‘전환기적 불안정성’과 ‘노사정 합의형성 취약’으로 평가한다. 정부가 초점을 두고 있는 노사관계의 안정이나 노사정 합의에 기반하여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하 지배 세력의 최대 목적은 계속되는 불안정과 위기를 적은 비용을 들여 관리하는 것이다. 노동의 불안정화를 촉진하고 착취를 강화하는 한편 이에 반발하는 저항을 유연하게 무마하거나 체제내화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을 지속적으로 제도화하려고 하였으며 결국 2006년에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운동의 전투적 부위를 거세하고 협조적인 분파를 포섭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노사관계를 재편하자면서 지속적으로 대기업노조를 공격하고, 비정규 투쟁을 비롯한 노동자투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등 전투적 부위를 탄압하면서도, 노사정대표자회의나 지역노사정협의회와 같은 기제를 통해 대화의 모양새를 취하면서 상층부나 일부 분파를 포섭하려 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해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비정규직 확대와 빈곤의 심화가 말해주듯이 노동자의 권리 해체와 생존 조건에 대한 공격은 대중의 불만을 키우기 때문에, 위기관리 정책으로는 예방할 수 없는 저항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정성과 합의 형성은 끊임없이 위기에 봉착하며 노동자운동의 대응 여하에 따라 전체 구도 자체를 뒤집을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자운동은 변혁운동성의 복원, 계급주체의 형성을 지향한다. 정부나 자본과의 안정 추구나 합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 여부가 우리의 평가 기준인 것이다. 몇 가지 평가 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006년 평가의 쟁점
1) 사회적 교섭 vs 총파업 투쟁?
2005년 사회적 교섭 참여를 둘러싼 충돌과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에 이어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가 사퇴했는데,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들어선 조준호 집행부 역시 노사정 교섭 참여에 비중을 두고 내부의 반발을 무릅쓴 채 2006년 6월부터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전격 참여했다. 2005년의 노사정 교섭 참여가 비정규직 법안에 관해 협상하기 위해서였다면, 2006년의 참여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협상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공통적인 참여 요인은 총파업을 통해서는 법안을 저지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즉, 가능한 최대치를 따내기 위해서라도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여한 6월부터 입법이 예고되는 11월까지 교섭만 있었고 투쟁은 병행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 과정에서 특수고용 문제나 공무원 노동3권 문제를 의제화했다거나 로드맵의 일부 조항을 현행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 등을 성과로 자평했지만, 핵심적인 사안들을 바꾸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는 설득력이 없었다. 결국 로드맵 법안은 수정안을 둘러싼 혼란 사태까지 거쳐 △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2009년 12월까지 3년 유예 △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혈액공급, 항공관제로 확대, 합법 파업에 대해서도 파업참가 인원 50%까지 대체근로 허용 △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 60일에서 50일로 축소 △ 부당해고 형사 처벌규정 삭제 △ 부당해고 판정 시 원직복직 대신 금전보상 인정 등의 내용으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노동운동 내 좌파들이 주로 공격하는 지점이다. 내용인즉슨, 노사정 교섭 자체도 문제지만 6월부터 9월까지 투쟁조직화를 사실상 방기했다는 것이다. 노사정 교섭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 9. 11 야합은 예견된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실상 합의했다는 정황도 있다. 아무튼 9. 11 야합은 민주노총이 투쟁기조로 돌아서는 데 호재였다. 그러나 한국노총과의 연대 단절, 노무현 정권 퇴진을 기조로 세우고 총파업 투쟁을 조직했지만 여전히 총파업의 실질적인 조직화에는 실패했다. 더욱이 12월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이 통과될 마지막 시점에는 명분을 쌓으려는 상징적 행동만 있었으며, 로드맵 수정안을 둘러싼 혼란으로 총체적인 무기력을 확연히 드러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만들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난 쟁점은,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노사정 교섭을 중시할 것인지 총파업을 중시할 것인지 였고, 노동운동 내 좌우파 간의 대립도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사정 교섭이 잘못되었고 조합원 대중의 행동을 촉발시킬 수 없다는 집행부 반대 진영의 비판은 옳은 것이었음에도,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투쟁과 조직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총파업이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즉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한 사회변혁운동으로의 복원은 미뤄진 채, 당면 상황에서 투쟁이냐 교섭이냐의 대립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사회적 교섭과 총파업 투쟁이라는 쟁점 이면에 있는 핵심 문제는 노동자 대중운동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이다. 노동자운동의 고민은 여기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한편, 노사정 교섭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올해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파탄은 지난 10년간 지배 세력과 노동운동 내 일부 세력이 추진해 온 협상기제 제도화 노력이 잠정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성 측면에서도 대중적 측면에서도 노사정 교섭은 이제 아무런 동력이 없으며 향후에도 전국적 수준의 사회적 대화 기제를 시도할 요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2) 형해화된 총파업투쟁
총파업 투쟁의 실질적 성사 여부는 민주노총 설립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된 쟁점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노동운동의 퇴조 속에서 무너진 현장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의 문제는 노동운동 내 세력을 막론하고 부닥치는 문제이다. 올해 민주노총은 열 몇 번의 총파업을 벌였다고 할 정도로 많은 총파업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 자체 집계를 보아도 이는 총파업이라고 보기 힘들다.
<표1>민주노총 파업총계
파업참가인원 | 단체행동 | 계 | |
---|---|---|---|
11월15일 | 137,910 | 7,991 | 145,901 |
11월22일 | 160,691 | 43,772 | 204,473 |
11월23일 | 19,739 | 13,300 | 33,039 |
11월24일 | 15,059 | 11,600 | 25,215 |
11월29일 | 113,705 | 46,087 | 159,792 |
11월30일 | 79,388 | 42,230 | 121,618 |
12월1일 | 93,803 | 42,330 | 136,133 |
* 전국노동자대회 참여 - 36,060명
* 총파업 찬반투표 - 총 590,943명 중 총 투표자수는 319,954명
- 투표율 54.14% (2005년도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 투표율 51.6%) / 찬성율 61.93%
*민주노총 6차 중앙위(12.22일)자료 재구성
민주노총의 파업 집계는 파업과 집회참가 등을 합하여 총계를 내는 방식이다. 따라서 실제 파업 인원은 총계보다 적다. 금속연맹에서 파업을 하면 10만을 넘고 그렇지 않으면 수만 명 수준이 된다. 이 같은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예컨대 좌파 진영이 주로 모인 ‘투쟁단위 연석회의’에서도 파업을 앞두고 금속 중심의 파업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으나 구체적인 조직화를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대중운동의 복구 없이 계속되는 동원식 일정박기식 총파업 투쟁은 총파업 자체를 형해화한다. 더욱이 법안 상정 여부에 따라 파업대기와 해제를 반복하면서, 그나마 있는 동력마저 갉아 먹는 방식은 동원식 총파업과 결합되어 폐해를 증폭시켜 왔다. 이러한 총파업은 총파업의 효과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거니와, 운동 역량을 확대하고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 문제는, 총파업을 대정부 교섭력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사고하는 데 있다. 총파업은 대중 주체의 형성과 지속적인 조직화, 전사회적 연대를 통한 노동자운동의 운동성·변혁성 강화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위로부터 조합원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복원, 투쟁의 기운 형성이 우선되어야만 파업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법안 저지를 위해 국회 일정에 따라 국회 앞에서 집회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방식이 수년 간 비판받아 왔지만 2006년에도 반복되었다. 특히 로드맵 법안 수정안에 민주노총이 사실상 합의하고 국회 내에서 표결을 할 때 밖에서는 국회 진격을 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대중적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국회 밖에서 투쟁을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로드맵 수정안에 대해 합의했다는 것은 원외투쟁과 원내투쟁의 결합이라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국회 일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투쟁 형태를 더 이상 지속할 대중적 동인도 없고 그러한 전술을 계속해서도 안 될 것이다.
3) 더욱 확장되어야 할 비정규직 투쟁
기륭, KTX, 하이닉스매그나칩, 대구경북건설노조 포항건설노조, 현자/기아 비정규직지회 등 2006년에도 주요한 노동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이 개별 투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쟁점화가 된 경우도 있지만 비정규직의 문제로 전 사회적으로 제기되지 못하고 개별 사안 투쟁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정권과 자본 측에게 비정규직은 사활적 문제였기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 투쟁에는 어김없이 공권력을 투입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고 그 결과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열사가 경찰에 얻어맞아 사망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조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묶어세워 전국적인 연대전선을 구축해 내지 못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치장된 비정규직 확산법안이 1년 내내 국회에 계류되어 있었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인 인식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법안 문제를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전체적인 투쟁으로 상승시키려는 기획과 노력을 전개하지 못한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이 여전히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비정규직 법안 통과 등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길이 열렸다는 식의 이데올로기 조장이 강화되는 상황은 비정규직 투쟁이 앞으로 더 어려운 조건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은행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직군을 따로 만든다거나,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근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무늬만 정규직화하는 방식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포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규직노조가 양보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한층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사회적인 연대운동이 맞물려서 비정규직 법안과 정부 비정규직 대책의 허구성을 지속적으로 폭로하며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해당 사업장 내에서의 정규직화에만 목표를 두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확장시키는 지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4) 조직전환이 중심이 된 산별노조 건설
현대자동차가 6월 30일 산별전환 투표를 가결하면서 산별노조 흐름은 탄력을 받고 진행되었고 금속의 경우 9년 만에 산별노조를 건설했다. 두 번의 대의원대회를 거쳐 규약과 체계를 확정했고 12월 27일 금속연맹은 해산했다. 금속산별완성을 위한 대의원대회의 주요 결정은 1) 모든 투쟁과정의 불이익과 보복성 비정규직 계약해지에 대해서도 신분보장기금 지급 2) 단위 사업장 쟁의권 인정 3) 현장공동화 방지를 위한 현장위원 제도 4) 간부 관료화 방지를 위한 상근 및 연임 제한 제도 5)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등 할당제 6) 지역지부 체계로 하되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 등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조직체계 문제였는데, 대의원대회에는 1안)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 2안) 지역지부 즉각 재편 3안) 지역본부 구성 등 세 개 안이 제출되어 논란 끝에 1안과 2안 가운데 6:4 비율로 1안이 채택되었다.
규약은 지역 단위로 지부를 편재하기로 되어 있으나, 경과 규정을 두어서 '2009년 9월까지, 3개 시도에 걸쳐 있고 조합원이 3,000명 이상일 경우 기업 지부를 인정'했다. 즉 전체 14만 4천 명의 66%인 9만5천여 명(현자, 기아, 대자, 쌍용, 만도,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3년간은 기업지부로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3년 동안 기업지부해소위원회를 두어 해소를 준비하게 했으나 3년 뒤 과연 해소할 수 있을지 우려도 크고, 또한 산별완성 논의와 조직체계 결정 과정에서 1안과 2안 진영의 대립도 심각했다. 6:4 비율에서도 보이듯이 지역지부 즉각 재편안이 예상보다 상당한 찬성을 얻었는데, 이를 발의한 좌파진영에서는 전진 그룹이 지지해 주었다면 통과되었을 것이라고 비판했고, 전진 그룹은 한시적 기업지부를 인정하지 않으면 산별노조 자체를 건설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논리를 댔다. 산별건설 과정의 대립은 금속노조 초대 위원장 선거에 무려 5개 선본이 출마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공공산별의 경우 공공서비스노조로의 전환과 함께 운수노조(궤도, 화물, 택시, 버스)와도 통합하는 이중의 과정이었는데, 내부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 공공서비스노조는 업종과 지역의 이중체계로 결정되었고 그마저도 전환이 더디다. 11월 30일 발기인대회를 거친 공공서비스노조는 45개 노조 3만여 명으로 출발한 상황이다. 더욱이 운수노조와의 통합 과정에서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한 기형적 논란이 표출되어 4개 연맹 통합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우여곡절을 거쳐 2007년 1월에야 통합 연맹을 건설했다.
이러한 산별건설 과정은 주로 조직 전환과 그에 따른 규약 마련에 집중된 나머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전략,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 활성화 방안, 사회운동과의 연대 등 실제로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을 복구하고 대중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와 토론이 이뤄지지 못했다.
5) 노동자운동 혁신의 흐름
2006년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받았던 한 해였다. 2005년 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 계속된 무기력한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인 민주성과 자주성, 연대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들이었다. 물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는 과정이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성이 후퇴하는 과정이었고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민주노총의 노선과 계급투쟁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더욱 증폭되면서 지연된 위기가 터져 나온 것이다. 비정규직 확산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까지 막지 못해서 이제는 더 이상 위기를 지속시킬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민주노조운동의 이념, 조직, 운동을 변화시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 제대로 반격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에는 기존의 노동자운동을 새롭게 하기 위한 몇 가지 흐름들이 있었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조직 재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산별전환과 직선제 도입을 비롯한 조직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 확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미조직·비정규직에 대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전략조직화 사업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민주노총 차원에서 비정규기금을 모으고 조직활동가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업은 현재 서울만 해도 10여개 사업이 진행 중이고 서울지역 전략조직화 사업단에서 이러한 흐름을 모아내고 있다. 전략조직화 사업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을 노동자운동의 중심에 놓고자 기존의 노동조합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조직을 혁신하고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초기업단위 노조로 조직하며 지역을 중심에 두고 지역운동을 강화한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내오지 못하고 있는데, 노조의 소극적 대응, 주체들에게만 맡겨지는 현실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조 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역량을 더욱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07년 전망과 과제 -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위하여
1)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정립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97년 IMF에 이르기까지 10년, IMF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비정규직 법안과 로드맵 법안이 통과된 2007년까지 10년으로 노동자운동을 시기 구분한다면 2007년부터는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공세에 계속 밀려온 상황에서 비정규직 법안과 로드맵 법안 통과 이후 노동자운동의 전망에 대해 각 세력마다 모색을 진행하고 나름의 내용을 내놓을 것이다. 이는 특히 민주노총 선거에서부터 개진되었다. 이러한 전망 논쟁은 크게 볼 때 2006년 투쟁 평가, 민주노총 혁신 방안, 노동자운동 이념과 노선, 비정규직과 로드맵 문제, 산별문제, 연대전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2006년 투쟁 평가에서는 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논쟁이 핵심적이었다. 기존 집행부 진영의 경우 교섭력의 한계, 실질적인 투쟁 동력의 부재, 정파적 대립을 근거로 들어 노동운동 진영의 통합과 단결을 주장하며 노사정 중층적 교섭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성적 평가를 결여하고 있으며 교섭 중심주의의 폐해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이다. 2006년의 노사정 교섭 전술이 철저히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나아가 지난 10년간 오락가락하며 이를 지속시킨 책임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 타협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복원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 혁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안이 쏟아지고 있는데, 핵심적으로는 임원, 대의원 직선제로 모아지고 있다. 차기 선거부터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입장이 수렴되고 있는데, 직선제가 조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지만 제도 자체가 운동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하나의 계기점으로 사고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선거에서의 승자 독식구조 개선, 지역본부 위상강화 방안, 부패방지 방안, 재정자립 방안 등이 제출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결의하고 통과시키지 못했고 다음 대의원대회로 넘겨지게 되었다.
조직 체계나 제도 혁신은 운동 혁신의 일부라는 점에서 여전히 이를 넘어서는 혁신의 과제가 있다. 이는 특히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새롭게 세우는 것과 관련된다. 지금까지는 계급적 전투적 노동운동이냐 협상과 교섭을 병행하는 타협 노선이냐의 대립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이러한 구도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을 새로이 정립하는 과제일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한 철저한 인식, 국제주의 및 페미니즘과의 결합, 반전·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과의 개방적인 교류와 연대, 노동자 대중의 자기 교육과 학습운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연대와 일상적 정치활동 등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이번 선거를 출발로 87년에서 20년, IMF에서 10년이 되는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전망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더욱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2)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활로 개척
11월 30일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노동위원회법’이다. 각각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 파견노동, 차별 구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간제는 2년 이내에서 사용할 수 있고 2년 초과시 무기계약으로 간주하게 되어 있으며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된다. 즉 2007년 7월 1일 이후 근로계약을 체결·갱신하거나 기존 근로계약 연장시 적용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화보다는 해고를 선호할 것이므로 7월 1일 이전에 대량의 계약해지 사태가 예상된다. 벌써 비정규직 법안 통과 직후부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차별 시정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노동위원회를 통해 차별구제를 할 수 있게 하였으나 이는 2007년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 2008년 7월 1일 100~300인 사업장, 2009년 7월 1일 10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예정이다. 비정규직의 85%가 100인 미만 사업장이므로, 차별시정 적용 자체도 2009년이 되어야 가능하다. 더욱이 비교 가능한 정규직이 없을 수 있고, 합리적 차별이라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시정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파견대상 업무는 시행령을 통해 대상 업무를 확대하게 된다. 파견 역시 2년 이내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2년 초과 사용 시에는 고용의무만 적용되고 불이행시 과태료만 부과된다.
이러한 비정규직 법안 시행의 문제는 최대의 갈등 요인이 될 것이다. 예컨대 자본가 단체인 대한상의의 ‘2007년 노사관계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존 비정규직 근로자를 어떻게 관리할 계획인지를 묻는 설문에 대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계약 해지하겠다'는 응답이 63.6%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비정규직 업무 자체를 아예 아웃소싱하겠다'는 응답도 17.4%로 나타나 비정규직 입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을 불안하게 하거나 비정규직 일자리 자체를 없애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특수고용 문제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2006년 10월에 발표된 특수고용 대책은 노동자성에 대한 인정 없이 경제법적으로 일부 보호하는 내용이었으므로 노동자성 보장에 대한 제기는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대량 계약해지, 외주화에 대해 투쟁과 조직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법안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음을 제기하고 다시금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사회적인 투쟁으로 들고 나가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은 단순히 신규조합원을 조직하는 문제를 넘어 새로운 운동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하고 투쟁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자운동의 혁신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지역 연대투쟁의 기풍 강화, 사회운동과의 결합, 일상적인 교육과 학습 체계 등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응에서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령 작성 과정이나 차별시정 기준을 만드는데 개입하는 것을 중심에 놓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은행권을 필두로 비정규직을 별도의 직군으로 묶어 고용을 보장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다음 단계는 임금과 복지 등에 있어서의 차별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그러한 분리직군이 주로 여성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분리직군제는 수용하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분리직군제 도입이 성과급제도를 전제로 하고 있고, 정규직 임금 동결이라는 ‘정규직 책임론’에 기반해 있으며, 자본측이 비정규직법안의 차별금지 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또 다른 비정규직일 뿐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는 임금유연화를 자본측이 준비하고 있음을 볼 때, 직군제는 직무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직군제는 오히려 여성차별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고 이전의 여행원제도를 다른 형태로 부활시키는 방안이라는 것을 정확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과 빈곤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 서비스 일자리에 대한 대응 역시 중요하다. 주로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간병, 보육, 가사노동 등의 분야에 대해 NGO,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것인데, 대부분 저임금 여성노동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빈곤여성들이 60~70만원의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어 노동하는 빈곤층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서비스 일자리 문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들 부문의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고 노동권을 옹호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3) 산별시대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 창출
대부분의 산별 전환이 형식적인 조직통합과 체계 개편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노조의 구체적인 운영과 활동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코퍼러티즘의 기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은 적극적으로 산별노조를 제도화하기보다는 이를 노동자운동의 급진적인 흐름을 최대한 제어하는 계기로 삼고자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노조의 인정, 제도화가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로 등장할 것이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는 임단협 투쟁을 기점으로 산별교섭/투쟁의 상과 현실화 문제, 산별교섭과 각 지역/기업지부 및 지회 등 산별노조 산하 조직의 보충교섭/투쟁의 범위와 관계 문제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보다 큰 틀에서는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맞물려, 한 편으로 산별노조를 교섭력의 증대와 정부와의 협상력 증대를 위한 방향으로 강화하려는 입장, 다른 한 편으로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극복하고 통합력을 확대하며,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강화하려는 입장이 대립할 것이다. 산별 전환을 현장중심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 체계와 제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운동적 기획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즉, 각 기업현장단위들의 지역적 차원의 연대활동의 강화, 현장을 넘어선 사회정치적 의제에 대한 개입과 일상적 정치활동 실현, 민주노총 지역본부 및 각 산업노조 지역지부의 연대운동 센터로서의 역할 강화 등이 주요한 과제이다. 기업과 업종을 넘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고양하고 지역 중심의 연대운동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지역의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 조직화 운동, 빈곤 문제에 대한 지역 차원의 개입 등을 들 수 있다.
4)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과의 연대 강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민중 생존의 피폐화, 노동자 권리의 해체, 빈곤의 심화, 여성 이중부담의 증가 등은 전체 운동진영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연대전선을 굳건히 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이 위기관리의 책임을 분산시키거나 고통을 떠넘기기 위해, 혹은 저항이 분출하는 것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지배 체제의 일부로 운동을 끌어들이거나 활용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연대전략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중요시하는 노동자운동의 연대는 반신자유주의 운동 주체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5) 교육과 학습을 중심으로 운동 주체 혁신
운동 주체의 혁신, 특히 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이 운동 혁신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특히 각급 노동조합 단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넘치는 실무, 성과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업, 팍팍한 인간관계 등으로 인해 관성화되거나 운동적 자신감을 지속시키기 어려울 때가 많다. 또한 기존의 운동방식과 내용에 비판적이면서도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해 지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테두리 안에만 갇혀서 자기 단위의 실리적 고민에만 묻히기도 한다. 운동 혁신은 운동 주체의 혁신을 당연히 포함하는 것이므로 이를 통해 활동가들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과 교육이 가장 유력한 매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역사적 노동자운동에 대한 진단과 평가, 노동자운동을 포함하여 사회운동의 세계적인 흐름과 쟁점, 현실 노동자운동의 구체적 문제 등을 개방적인 교육과 학습을 통해 토론하고 흡수해야 할 것이다. 지역과 부문, 자기 활동공간에서 스스로 학습팀이나 교육팀을 구성하거나 정기적인 포럼과 같은 사업을 통해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 학습지역차원의 교육사업으로 이어져서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복무하는 활동가군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