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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문제와 다시 한 번 대결하는 사회운동이 필요합니다

마르코 베를링구어 인터뷰

장진범 | 편집부장

편집자주

주: 인터뷰에 응해 준 마르코 베를링구어(Marco Berlinguer)는 지난 2007년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른 사회운동들과 함께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를 발의한 <트랜스폼! 이탈리아>(Transform! Italia) 활동가이며, 이탈리아 <공산주의 재건당> 당원이기도 하다. 두 조직의 문제의식을 상세히 말해 주고 다른 활동가들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통역까지 해 준 마르코 베를링구어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 인터뷰는 2007년 10월에 진행했다.


사회운동: 지난 2007년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과 세계화’라는 주제로 회합이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트랜스폼! 이탈리아>가 이 회합을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마르코 베를링구어: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2007년 나이로비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른 노조 및 사회운동들과 함께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를 제안했습니다. 이는 세계사회포럼에서 노동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최초의 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애초 유럽사회포럼 및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일환, 즉 노동자운동을 새로운 운동에 개방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탈리아에서 CGIL의 여러 연맹들과 논의를 가졌습니다. 이 논의 결과 우리는,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약점 중 하나가, 노동 문제에 초점을 충분히 두지 않는다는 것,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노동의 차원을 복원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행위자, 주체, 자율적 관점으로서 노동이 소멸하고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반작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사회운동은 지배 권력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세계에서 노동이라는 쟁점을 정교히 할 수 있는 토론과 공간을 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노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가 창출한 새로운 세계에서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발명하는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 세계사회포럼에서 활동하는 서로 다른 노조들을 연결시키는 것, 그 이전에 이 프로세스에 노조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 자체가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는데,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 생각에 진정한 도전은, 노동의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개념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현실을 대표할 수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노동의 정치적 주체성을 재발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주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예를 들어 비아 캄페시나, 세계여성행진, 아프리카 비공식노동자 조직,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불안정노동자 등과 접촉하고 연계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노동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그렇지만 전통적인 노조의 조직이나 문화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열고, 세계화 속에서 노동이 어떻게 조직될 수 있는가 라는 쟁점을 재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착상입니다.
두 번째 착상은, 전략적으로 노조 운동과 새로운 운동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운동이란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물결의 사회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이들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을 실로 새로운 공적인 무대에 진입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노조 운동들은, 경제 및 자본주의 생산의 변혁, 노동자들의 재생산 조건의 변화로 인해, 역사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양자의 만남은, 한편으로 전통적인 노조의 문화를 혁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운동에게 노동 쟁점을 제기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보다 야심적이고 보다 강력한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헤게모니와 정치적 대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조건이 되는 노동의 문제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로비에서 최초의 공간을 창출한 것은 이 같은 야심적이고 어려운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회합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200명 이상 참여했고, 100명 정도가 개입을 했습니다. 그들 모두 매우 다양한 범위의 운동, 조직, 문화의 경험을 표현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 세계의 노동이 얼마나 복합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이 회합에서, 서로간의 연결을 만들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시도, 그리고 거대한 능력을 느꼈습니다.
마르코 베를링구어
물론 이는 최초의 시도일 뿐이며, 아직까지는 이 네트워크를 통한 아주 약한 연결과 접촉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유럽 차원에 도입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단 아시다시피 2008년에는 세계사회포럼이 없고, 대신 9월에 유럽사회포럼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세계와 유럽 차원 모두에서 이 같은 문제의식을 접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럽 차원의 시도는 필수적이고 긴급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쉬운 면이 있는데, 아무래도 공통의 토대가 있고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는 스톡홀름에 모여 이 프로세스를 유럽 차원에서 접합시킬 계획을 논의한 바 있는데, 동시에 세계적 차원에 개입하기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세계적 차원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당시 두 가지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우선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의 세계적 소통 공간을 확보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종류의 세계 네트워크든, 훌륭한 온라인 소통 틀을 통해서만 조직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이 네트워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종류의 소통을 만들 것인가를 해명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존의 것들을 연결하고 재생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의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대 네트워크를 조사하고, 네트워크와 함께 새로운 온라인 수단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의 첫 번째 세계 회의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현재 독일 금속노조 등의 초청으로 2008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여기서 다뤄질 문제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결정된 바 없는데, 몇 가지 제안할 만한 주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의 세계에서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이들, 예컨대 비아 캄페시나, 중심부 불안정노동자, 한국 노동조합, 아프리카 비공식노동자들과 함께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노동의 조건들을 공유하는 한편, 이러한 복합성에서 새로운 공통적 동일성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일 것입니다. 이와 함께 네트워크 자체에 관한 토론이 심화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네트워크인가, 이를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기능을 이 소통과 접촉의 공간에 현실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들 말입니다.

사회운동: 당신은 공산주의 재건당(이하 재건당)의 당원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건당은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 중도좌파 연립정부에 참여하면서 사회운동들의 비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재건당과 사회운동의 관계에 관해서 듣고 싶습니다.

마르코 베를링구어: 재건당은 새로운 사회운동과 매우 독창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전통적인 정당-사회운동의 위계적 관계와 달리, 사회운동을 존중하는 접근을 했다는 점입니다. 베르티노티 전(前) 총서기는, 정당은 운동의 주권 곧 무엇을 할지에 관한 결정권을 인정해야 하며, 정당은 다만 이 운동의 일부로서 이 의사결정 과정에 다른 운동들과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그동안 재건당은 정치 활동가와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몇 년에 걸쳐 함께 작업하는 혼합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건당은 서로의 문화를 뒤섞고 장벽을 깨뜨리며 혁신하는 혼합의 프로세스를 진행해 왔습니다. 사회운동들은 이탈리아 정치 무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재건당은 이 사회운동들 안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에 관한 독창적인 입장을 정교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우리 고민의 중심에 정치의 위기와 정치의 재건이라는 개념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든 답을 아는 양 가장하지 않고, 전통적 정당 개념이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않은 다른 이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점 역시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재건당은 사회운동이 마주친 어떤 궁지라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는 사회운동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는데요. 곧 사회운동은 어떻게 정치적 차원을 정복할 것인가, 어떻게 정치에서 주변화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종속되지 않을 것인가라는 난문이 그것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급진적인 우파 정부 하에서 사회운동이 공적 무대에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재건당은, 제도 정치에 개입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전면화하면서, 이 프로세스에 사회운동의 에너지와 지도자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사회운동의 매우 많은 활동가들이 의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 재건당은 한편으로 우파를 물리치기 위해 중도 좌파와 동맹을 맺고, 다른 한편으로 제도 정치 및 정치 체계 전반에 대한 사회운동의 참여와 압박을 통해 이를 변화시키려는 프로세스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이를 평가해 보자면, 결과적으로 이 프로세스는 운동들 안에서 정치적 분열을 낳았습니다. 물론 이 정치적 갈등들은 이미 이전부터 운동들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 프로세스를 통해 이 갈등이 더욱 강화되어 운동이 분열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선 후, 이 정권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가 운동들 안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등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화와 종속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대응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사회운동이 제도 정치, 의회로 진입하면서, 사회운동의 에너지가 제도 정치로 많이 흡수되었고, 또 정치의 중심이 사회운동이 아니라 그 곳이라는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 프로세스가 만들어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는 전통적인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만큼 역관계가 바뀌지 않은 데도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점에서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 면에서는, 지금 상황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저는 사회운동들이 그냥 제도 정치에서 철수하고, 그 곳 바깥에서 비타협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의 위기라는 오늘날의 객관적 조건을 고려할 때, 제도 정치에 흡수되는 것은 타락의 프로세스에 동참하는 것일 뿐이라는 강한 느낌 역시 갖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극단을 헤쳐 나가는 것이, 정당과 사회운동을 막론한 모든 운동에게 제기된 거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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