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진단과 과제
1. 역대 정부 노동정책의 일관된 기조: ‘유연안정성’과 ‘노조의 약화’
지난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내외적인 정치, 경제 질서의 위기를 언급하며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경쟁력을 높이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동개혁을 역설했는데, 핵심적으로 부각되는 내용은 “노동 유연화를 통한 유연근로제 확산”이다.
언론에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공정한 노동시장”(국정과제50)과 “노사상생의 노동시장”(국정과제51)이 주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과제 이행과제 (2022. 4)
- 근로자와 경영진에게 모두 유리한 근로시간 유연화 실현
-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노사관계 추진
- 세대상생형 임금체계로 개선과 확산
- 시간선택형 정규직 시행, 근로시간 선택지 다양화
- 노사 자율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일하는 방식 혁신
- 참여협력적 노사관계 기반 구축
- 원하청 상생 노사협의회 확산
- 체계적 노사갈등 예방·조정기능 강화
각종 언론 매체들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기조를 전면 뒤집는”, “완전한 시장주의와 친자본적 편향이 특징”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며, 역대 정부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연장선에 있다. 노동정책은 거시경제 작동에 필요한 노동의 수요공급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제도를 통칭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노동정책은 독자적이거나 자율적이지 못하고 거시경제정책 하부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재편 이후 변화한 한국의 주류적 경제정책하에서, 역대 모든 정부들의 노동정책은 고용과 실업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노동유연화를 관철시키는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한국 정부 노동정책의 기조는 ‘유연안정성’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노동유연화로 부각되자 측근 노동전문가들은 ‘안정성’ 정책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동정책에 주요하게 개입하고 있는 일자리연대 토론회 “새 정부에 바란다: 노동개혁과 일자리 정책”은 “노동 유연성(Flexibility)보다는 노동 이동성이나 사회안전망 정책을 포괄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지만 연세대학교 교수)이라 말했다. 한편 ‘윤석열 노동교사’로 알려져 있고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전문위원으로 합류했던 정승국 교수는 노동 국정과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석”이라 평가하며 “내부노동시장 일부를 바꾸는 것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효과적인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을 통해 내부노동시장의 바깥에 기능적 등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유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이것은 다른 여러 안정성 정책들을 동반하여 작동 가능하게 설계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 주도로 노동 유연화 중심의 노동시장 구조 재편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심화된 고용불안과 실업에 대처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유연화와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만들었다. 먼저 국가 차원에서 일자리 창출계획을 주도하고, 고용서비스와 직업훈련, 사회 안정망 확대를 노동정책으로 입안했다. 또한 노동시장 유연안정성은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경로를 동반하며 사회적인 합의지반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유연화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안정성 정책과 사회적 대화라는 정책 패러다임이 노동정책에서 일종의 공식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노동정책 패키지는 역대 정권들의 정치적 성향과 경제정세에 따라 미시적으로 변주되어 강조점이 달랐을 수는 있어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까지 큰 틀에서는 일관된 기조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도 “취약계층을 위한 노동권 보호”가 강조되어 있고, 국정과제 52~55번까지 ‘구직자도약 패키지’ 등 고용서비스 혁신, 산업별·지역별 노동전환서비스 제도 관련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안정성을 추구하는 정책들은 유연화 전략의 파괴적 결과인 불안정 고용과 실업, 소득불평등 문제를 실효성 있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연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려는 시도 역시 노사정 주체들의 주체적, 객관적 조건이 부실하여 이미 형해화된 상태다. 따라서 유연안정성을 추구하는 노동정책은 그 자체로 노동시장 개혁에 미달하다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했고, 노동계와의 갈등과 대립을 항상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기조하에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적응하는 노동생산성 증대”를 위해서는 유연화가 필수적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하려는 노동유연화는 오히려 기존 정부들보다 덜 급격한 내용을 담고 있는 편인데, 이미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상당히 관철되어 완비단계에 와있다는 배경 때문이다. 고용유연화의 경우 사용자들은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대신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일정하게 대응할 수 있고, 노동시간의 유연화도 기본 뼈대는 지난 정권들에서 거의 완성되었다. 현재는 실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한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 제도의 추가적 정비와 보완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유연화가 사회복지, 일자리 창출 등 안정화 정책과 동시에 진화하고 있는 현상 이면에는, 노동시장에서 노조가 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교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지와 권한이 훨씬 좁아졌다는 사실도 있다. 실제 신자유주의 재편과 유연화가 관철된 많은 나라들에서 노조의 교섭력은 분권화되었고 전체적으로 노동의 힘은 약화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었는데,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 직후 전국적·산업적 교섭체계를 갖추기도 전에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의 거센 폭풍을 감당해야 했다. 또한 노총과 산별노조가 사회적으로 안착화되기 전에 세계적 수준의 반노조 정책, 노조 분권화, 비정규직 확대에 직면하기도 했다. 즉 “정부정책의 과잉, 노조역할의 과소”가 유연안정성의 결과다.
유연화 전략은 궁극적으로 노동의 집단성 해체를 노린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개인들의 ‘개별적 효율성’이 노조의 집단적 규율보다 우선시 되어야 유연화 정책을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역대 정부들은 노조의 권리를 축소하며, 미조직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개별적 노사관계 유연화에 집중해왔다. 즉 집단적 노사관계를 확대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은 제한하면서 고용, 임금, 노동시간에서 개별적인 유연화 정책은 꾸준히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를 계승하여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를 개별화하는 유연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확대한다거나 단체교섭권을 확장하는 정책은 회피하는 대신, 노동조건, 노사관계에서 노동자 개인의 선택을 부각하는 것이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과반수 노동조합의 권한을 축소하며 노동시간·임금체계 변화에 대한 “노사 자율의 선택권 확대”와 “절차적 합리화”를 제시하는데, 이는 노조를 우회하는 전략을 관철하려는 방식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서 집중해야 할 대목은 노동유연화 그 자체보다는, ‘노조 대표성의 상대화, 집단적 노동의 개별화’라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략이다.
2. 주요 정책 평가
1) ‘시간 선택권’을 앞세운 노동시간 유연화 : 집단적 노동의 해체 위험
국정과제 이행계획에서는 〈노사 상생의 노동시장〉 하부과제로 “근로자와 경영진에게 모두 유리한 근로시간 유연화 실현”, “실근로시간을 꾸준히 단축하면서 근로시간제도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해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을 내놓았다. 주요 정책은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 마련”,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 “스타트업, 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 지원”, “시간선택형 정규직 확산을 통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다. 시기별로는 2022년에 기업, 업종별 컨설팅 등 유연근로제 활용을 지원하고, 노사 의견을 수렴하여 2023년 상반기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노동시간 정책 방향이 “디지털 전환시대에 따른 근로시간과 임금규정의 경직성에 대해 시간, 장소의 해체, 성과 중심의 근무방식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IT·스마트 기업 및 R&D 신기술 개발의 경쟁력, 생산성과 노동자 개인의 시간 선택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강조한다.
선택적 근로시간 확대 등 윤석열 정부의 유연근로제도 정비는 문재인 정부 시기 추진되었던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한 반대급부로 관철된 유연화의 연속선상에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노동시간 유연화와 병행될 수밖에 없었는데, 노동운동의 요구였던 실노동시간 단축 정책으로서 주 52시간 상한제는 시장의 반격으로 인해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 기간 확대의 명분이 되었다. 2019년부터 실시된 주 52시간 상한제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적용과 특별연장근로인가 법 개정으로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특히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에서 2020년 인가 사유를 확대한 이후, 인가 건수가 폭증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가제도는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고용노동부가 자체 지침으로 재량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시간 단축의 법적 규율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제시하였는데, 스타트업 분야를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대선 시기 공약을 현실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또 전문직과 고액연봉자를 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한다거나 초과근로시간을 적립하여 필요시에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국정과제에 담겨있다. 윤석열 정부 정책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과거 노동시간에 있어 특이하고 예외적인 변수로 취급되었던 제도들을 정당화하여, 일괄적이고 경직적인 노동시간 규율을 유연화할 근거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IT·스마트업 및 사무전문직 등 변화하는 노동환경을 명분으로 전체 노동시간 유연화의 당위성을 확립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정부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강행할 수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 확대,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 확대 등은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특별연장근로에 스마트업 포함, 전문직과 고액연봉자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 적용제외 등은 행정부 권한으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현장 적용이 바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개별적 선택권’은 사용자의 노동 통제 재량권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오늘날 현장의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사용자의 압도적인 힘에 좌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일부 사무 전문직 노동자 개인의 선택권이 보장된다 해도 유연근로제는 또 다른 집중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제도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특히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비록 노동자 개인이 스스로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일시적 연장 노동이 정산 기간 내 1주 평균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법정노동시간을 준수한 것이 되므로, 얼마든지 집중·장시간 노동에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다. 또 현재 윤석열 정부는 개인적 노동으로 간주되는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 확대만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 정책이 시행된다면 집단적 노동조건인 탄력적 근로시간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IT·스마트 기업 및 R&D 신기술 개발의 경쟁력, 생산성 향상이나, 유연근로제에 대한 해당 업종 노동자들의 개별적 이해와 요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이러한 변화는 집단적 노동을 약화, 해체하는 제도로 작동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데, 이는 한국 사회 노사관계의 오래된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다.
유연근로제에 대한 노조의 비판은 한국 사회 노사 간 권력이 불균형한 조건에서, 사용자의 재량권에 맞서 그나마 노조가 방어해온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연근로시간의 확대는 노동자를 개별화, 파편화하여 노조를 통한 노동조건 규율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의 집단성이 해체된다는 것은 노동 현장에서 사용자 주도권이 완벽하게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유연화 전략이 끝까지 관철된다면 헌법상 보호하고 있는 노동권은 무력화될 위험이 있다.
2) 상생형 임금체계: 격차 축소인가, 노조 공격의 수단인가
윤석열 정부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 확산’을 또 다른 핵심 의제로 내세운다. 한국 사회 대기업·공공기관을 표상하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대선공약부터 “연공형 임금체계는 보수의 공정성과 성과혁신 동기를 저하할 뿐 아니라, 세대·고용형태 간 임금 격차 확대로 중장년층 조기 퇴진 압박요인을 작용함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정과제 “상생형 임금체계” 정책목표는 “최근 산업, 고용형태, 세대 등 급변하는 노동시장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노동시장 격차 완화”라 제시한다.
박근혜, 문재인 정권 시기에서도 연공급 임금체계 개혁을 시도하는 정책은 이미 있었다. 이는 주로 정부 주도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나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방식이었다. 과거 정권들이 대기업, 공공기관 고임금체계의 변화에 대해 “공공기관 효율화”나 “공공기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시도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청년 세대 ‘공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대기업·공공기관 노조 기득권의 상징으로 호봉제라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정과제 곳곳에 있다. 가령 공무원의 보수체계도 근무연수 자동승진을 성과 중심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대목이나, “국민 모두의 형평성 제고를 위한 상생의 연금개혁”을 추진한다는 것, 또 임금체계 결정 과정을 과반수 노조의 단체협약으로서가 아니라 개별, 부문별 자율적 노사합의로 열어두는 ‘부분 근로자대표제’ 등에서 기득권-공정성 대립 구도를 일관되게 적용한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러한 반발을 일축해왔다. “임금체계는 기본적으로 “노사 자율의 영역”이므로 정부는 인프라 확충, 현장여건 조성 등으로 지원하겠다는 언급도 있지만, 이정식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이 바람직한 방향”(2022년 5월 4일 인사청문회)이라고 밝혔다. 국정과제 이행계획에는 올해까지 “직무·직업별 임금정보를 제공”하고 “업종별 직무평가 도구·활용 매뉴얼 개발”하며, 내년까지 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보급하고 2024년에는 입법하겠다는 계획까지 담겨있다.
‘상생형 임금체계’는 그 취지대로 노동시장 격차를 축소하고 세대 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인가? 대기업·공공기관 고임금체계가 한국사회 양극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제라는 정부의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간 영역까지 포함해 전체현황에서 임금체계를 통해 고용과 노후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이들 부문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부문이 누리던 특권을 없애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호봉제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상 일반적으로 대다수 사업장은 임금체계조차 갖추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공 체계 개혁은 공공기관·대기업이라는 특수한 일부에 집중된 소득 불균형 문제일 뿐만아니라, 민간 전체 영역을 아울러 한국사회 주류적인 임금결정방식을 어떻게 개혁할 수 있느냐는 심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역대 정부에서도 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지만 결국 첨예한 갈등에 직면해 어떠한 해법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문제를 풀어갈 주체인 정부, 자본, 노동 모두 단기적이고 피상적으로 문제를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왜 이처럼 불균등한 임금체계가 제도화되었는지, 호봉제가 어떻게 대기업·공공기관만의 전유물이 되었는지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늘날 임금격차는 자본 간의 생산성 격차를 반영하는 지표다. 자본간 격차가 이처럼 급격히 커진 이유는 재벌 중심 경제체제에서 대기업과 하청 간의 지불능력 차이와 함께, 서비스·자영업으로 밀려난 실업인구로 인해 광범위한 저생산성·저임금 부문이 확대된 것에 있다. 공공부문 고임금 체계는 정권이 지지기반을 위해 임금인상을 수용하는 대신 다수의 노동을 외주화함으로써, 최소고용·최대임금이라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된 결과다. 한편 노조는 초기업적인 임금교섭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별로 임금인상에 대응했다. 그 결과 자본의 규모와 능력에 따라 차별적인 노사관계가 형성되었고, 임금협약의 포괄범위는 기업외부로 확장하지 못했다. 초기업적·산별교섭이 정부와 자본에 의해 억압된 것은 사실이지만, 노조 역시 기업별 체계를 넘어 무체계 사업장 등 전체적인 임금체계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일관된 입장이 없었다. 중소영세 비정규 부문 임금체계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호봉제로 ‘상향평준화’ 하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대공장의 임금체계를 방어하는 주장에만 집중했다.
임금격차는 한국 자본주의 체계가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경제적 모순과 노사관계의 분권화가 낳은 결과다. 따라서 단순히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격차를 확대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의 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 방향이다. 한계기업, 영세자본의 생산성 문제를 해결할 산업의 재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초기업적 교섭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대면하여 해결하려면 산업 전반의 재편과 사회적 수준의 논의, 광범위한 합의 지반이 필요하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상생형 임금체계” 정책의 실질적 대상이 대기업·공공부문 노조라는 사실이다. 이전 정부부터 추진된 유연화 정책의 결과, 유연근로제나 연봉제 등 성과 중심 임금체계는 대부분 노조의 영향력이 없는 민간부문 화이트칼라에서 이미 안착해 있다. 생산직과 공공부문 등 노조가 강하게 방어하고 있는 곳만 아직 관철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부문 노조와의 첨예한 쟁점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향후 주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진지하게 논의를 제안하고 갈등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대기업·공공기관 노조에 대해 ‘강성노조’ 프레임을 씌우고 도덕적 비난만을 앞세우고 있다. 청년 세대의 공정성과 노조의 기득권을 대립시키는 것은 노조를 사회적으로 고립시켜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기업·공공부문 노조 운동은 거시경제와 산업정책에 있어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 노동계의 핵심부문일 수밖에 없다. 이들을 배격하며 노동시장을 개혁한다는 주장은 노조의 현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한편 코로나19 위기 이후 K자 회복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대기업·공공기관 노조가 임금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 역시 심각한 퇴행이다. 노조 역시 실질적인 임금교섭권을 산별노조에 위임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고 전체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단체협약과 적용방안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
3) 근로자대표제도 정비와 과반수 노조의 상대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두드러지는 대목은 노동조합 대표성을 보장하는 법 제도를 변형·정정하겠다는 것이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결정하는 절차를 “합리화”하겠다는 취지로 현행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과 임금체계의 변화에 필수요건인 “사업장 내 과반수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서면동의” 절차를 직무·직급별 해당 부문 노사합의로 대체하여 절차를 ‘합리화’하겠다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개인이) 법적으로 자율적 선택에 따라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데, 반드시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는 자만 결정 권한을 갖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과반수노조 대신 ‘부분 근로자대표’를 인정하게 되면 노조의 대표성과 단체협약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국정과제에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독립성 강화 등 ‘노사협의회 활성화’를 포함하고 있다. 근로자 참여법에 따라 노조의 단체교섭과 별개로 노사협의회를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근로자 직접투표로 선출토록 하여 근로자위원 선출 원칙(직접·비밀·무기명)을 명시하고, 선출 절차 명확화”하여 기존 노조 대표자가 아니어도 노사협의회 참가대상의 예외조항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직접투표 선출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2020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근로자대표제도 개선안이 합의 된 바 있고, 관련한 근로자참여법 개정안이 발의되어있는 상태다. 당시의 경사노위 합의 사항은 과반수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 노사협의회 ‘근로자 위원’은 전체 노동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한다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따르면, 일단 국회에 계류된 근로자참여법 개정안 통과를 지원하고 2025년 상반기에 ‘노사협의회 대표성·독립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 및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러한 방향이 궁극적으로 과반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근로자대표의 위촉권한을 없애겠다는 취지인지에 대한 것이다. 노동계는 노동조건의 집단적 결정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하며 영향력을 억제하는 공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부각하고 있는 ‘부분근로자 대표제’나 노사협의회 활성화라는 정책이 목적으로 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단체교섭이 부차화되어 노조에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전체 노동기조를 봤을 때, 이러한 정책의 목적은 직접적으로 노동계와 정면 대결하여 노조를 파괴하려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노동유연화를 최대한 관철시키는 우회로를 마련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연화 전략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노동시간과 임금체계의 ‘개별화’를 통한 노동 내부 경쟁의 격화와 이를 통한 노동생산성 제고에 있다. 또한 유연화의 종착지는 결국 집단노동 정체성의 해체라는 사실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미조직 노동자 개인이나 과반을 넘지 못하는 부문의 노동자 조직에도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해 다양한 방식의 유연안정성 정책이 관철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노동시장 정책 용어로 구분하자면, 개별 노사관계의 유연화를 통해 집단적 노사관계를 유연화 하겠다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정책에서 노조 대표성은 계속 쟁점으로 부각되어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최근 왜 이런 문제를 특히 강조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산업 변화 과정에서 새로운 직무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런 직무에 기존 직무의 노동시간, 임금체계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있다. 소위 ‘MZ세대 노조’는 이런 변화를 반영한 현상인데, 작년 초 SK하이닉스에서의 성과급 논란에서 시작되어 최근까지 전자 IT업계의 기업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지금까지 노조운동이 제기하지 않았던 △성과급 책정 기준 △연봉 인상률 기준 △인사평가제 시스템 △차등적 복지 문제 등을 요구한다. 이처럼 IT·스마트 기업의 사무·전문직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선호하며, ‘집단적 성과급’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기존 생산직 노조의 단체협약 결정 방식에 대해 ‘공정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편 ‘MZ노조’들의 요구가 자본 측의 현실적 이해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IT·첨단산업 고임금 직종에서의 잦은 이직이라는 인력 수급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과급과 유연근로시간을 매개로 인력을 잡아두어야 하는데 기존의 생산직 단체협약이 장애가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이런 노사의 요구를 반영하여 근로자대표제를 행정해석이나 시행령으로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국정과제에는 “임금체계는 노사 자율의 영역으로 임금 인프라 구축 및 정보제공 강화 등 현장의 자율적 개편 지원”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겠다는 내용으로 담겨있다. 따라서 여소야대로 근로기준법이 개정하지 못한다 해도 일부에서 직무, 직종별 노사교섭의 대표성을 별도로 부여하는 부분 근로자대표제가 실행될 여지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스마트·IT계에서의 전문직을 중심으로 부문별 노사합의의 관행이 만들어져 개별적 임금체계의 변화가 전체 제도를 바꿀 근거가 될 수 있다.
기존 생산직 중심의 단체협약은 단결을 저해하는 유연근로제를 제어하고, 경쟁을 유발하는 성과급 요소를 배제하는 장치로서 그 존재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노조의 저항 여부와 관계없이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세대와 직군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단적 노동이 규율하는 노동조건의 ‘원칙적 기준’이 약화되고 ‘예외적 상황’이 많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 대표의 권한과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노동조건의 예외적 사례가 일정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임금체계, 노동시간에 대한 표준을 누가 어떻게 관장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의 연공급제 개편이나 유연근로제 확대를 노동조합이 원칙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이 자신들의 의도를 근로자 대표 분할이라는 방식으로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결국 노조의 유무에 따라 노동시간과 임금체계의 격차가 확대될 수 있고, 이는 노동조합을 고립시키거나 공격할 수 있는 근거로 작동될 수 있다.
4) 공공기관 정책의 주요 쟁점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분야는 공공기관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올 하반기 공공기관 정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공공기관의 ① 업무 재조정과 방만 경영을 개선, ② 재무건전성 확보, ③ 보수체계 합리화를 위한 직무급 도입 확산이 주요 내용이다. “공공기관 방만 경영”에서 주요 쟁점은 문재인 정부시기 확대된 공공부문에 대한 고용억제와 통폐합이다. 여기에 조직·인력·예산, 과도한 복리후생 등에 대한 정부의 상시감독 시스템 강화라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는 공공기관 기능성 테스트, 민간위탁 업무확대, 기관 신설을 최소화하는 내용이다. 재무건전성은 공공기관 경상경비, 총인건비를 억제, 재무위험이 높은 기관에 대한 집중관리제 도입, 기관별 건전화 계획 수립 및 출자, 인력 자금관리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의 특징은 ‘적극적인 긴축’과 ‘효율성 중심의 조직재편’으로 요약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맥락을 “문재인 정부시기 공공부문 확대로 인해 부채누적과 수익성이 악화되었고,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국가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비정통적 경제정책이 실패한 상황에서 주류적인 경제정책을 채택한다. 또, 11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기관 혁신을 통해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라고 제시한다. 민간과 경합하는 공공기관 업무의 조정, 인력 효율화와 출자회사 정리, 기관 신설 자제로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포함된다.
이에 노동진영은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민영화-구조조정-노동개악”의 재현이라 비판하고 있다. “방만경영을 인력구조조정의 빌미로 삼을 것”,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역진하는 민간위탁의 재추진”, “인력 효율화와 출자회사 정리 인센티브(국정과제에는 명시되었으나 이행계획서에는 삭제)는 사실상 자회사 정규직 구조조정”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와 무조건 등치시키는 비판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권들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역시 국가부채와 공공기관 수지상황에 근거하여 경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행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은 애초 민영화를 포함하고는 있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시행된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2008~09)은 인력감축과 통폐합 등 경영효율화로 변경된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대책〉(2013)은 이명박 정부 시기 세계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확대된 재정 적자에 대한 ‘정상화’ 조치라는 맥락이 있었다. 물론 두 보수 정부가 추진한 구조조정은 노조탄압을 동반하는 방식이었고, 정부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추진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의 확장적 재정 정책, 공공부문 확대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운 거시경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비판하려면, 경제정세의 변화를 주목하고 정확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22~23년 경제정세의 불확실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이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있어 이러한 이슈들을 중요한 변수들로 고려하게 될 것이다.
물론 노동계가 우려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에 많은 쟁점이 잠복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문재인 정부 시기에 누적된 국가 및 공공기관 부채 감축 대책의 맥락에서 추진될 일부 기관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예상된다. 경기침체와 잠재성장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위기에서 손실보상을 위한 재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긴축적 운영이 쟁점이 될 것이다. 공공기관의 경상경비나 총인건비 등 지출을 억제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정부의 공공부문 고용확대와 정규직 전환 정책이 역진될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 노조와 정부의 첨예한 대립이 형성될 수 있다. 특히 이와 맞물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이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노동조합의 저항이 본격화될 것이다. 그 밖에도 문재인 정부 시기의 공공기관 정책 실패나 비리 관련 사안이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공직기강 강화나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포함한 공공기관 관리체계 정비도 예상된다. 이외에 에너지 정책 전환에 따른 관련 공기업 정책변화, 사회보험 기관 정비, 국가 R&D 개혁에 따른 정부출연연구기관 지배구조 등 산업 부문별 변화도 전망된다. 이러한 공공기관 정책들의 추진의 속도와 진행방식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 상황이나 지난 정부에 대한 ‘학습효과’로 그 완급은 일정 조절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방적 추진보다는 기존 경사노위 또는 재편될 새로운 노사정 기구 등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적 협의, 명분 확보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쟁점들은 공공성과 노동권에 대한 침해와 공격으로 이해될 수 있는 소지가 매우 많고 첨예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기관 정책이 해당 노동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노동조합과 협의하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된다면 곧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실제 정책추진에서 공공성이나 노동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도 크다.
5) 법치와 노사관계라는 쟁점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서 주목할 대목은 “법과 원칙에 기반한 노사관계”다. 노동개혁의 목표로 공정성 제고를 첫 번째로 꼽고 있는데 ‘노동존중’ 에서 ‘공정노동’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노사관계는 “법치에 의한 행위규범을 준수하고 노노간 근로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정한 처우를 추구”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국정과제에서는 〈공정한 노동시장〉이라는 주제 아래 공정채용 법·제도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인데, 세부적으로는 채용과정의 공정성을 위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실체적·내용적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정채용법」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체협약상 불공정 채용 시정조치가 포함된다. 정부는 2022년 전문가 포럼을 통해 입법 방향을 마련하고 2023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 입법을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 법에는 단체협약상 불공정채용이라는 쟁점이 포함된다. ‘정년·장기근속자 자녀 우선·특별채용’ 등 불공정채용 조항 관련 시정조치를 추진하고, 불공정 채용조항이 단체협약으로 체결되지 않도록 지도하며, 단체협약 신고 시 불공정 채용조항은 위법한 것으로 심사·시정명령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사를 불문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기준·원칙 정립” 한다는 대목에서는 “사용자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노조의 불법파업, 사업장 점거 등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여 공정한 쟁의질서 확립 지원” 한다는 내용도 명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건설현장 불법행위 범정부 TF’가 운영되어, 건설노조를 채용절차법·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지목하는 등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공정채용법 확대개정의 경우, 건설이나 화물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조의 고용안정 투쟁 자체가 불법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진영은 이에 대해 “법치주의를 앞세운 노동 배제·통제의 강화”라고 비판한다. 사용자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도 엄정 대처한다고 하지만 이는 노사 간의 힘의 불균형이 고려되지 않은 기계적 균형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과거 정부의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 대상은 결국 노동조합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노동’은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경제 활성화”라는 경제기조 하에 공정한 노사·노노관계로 생산성 증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가 중시하는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일관된 맥락이다. 그러나 보수 정부의 법치와 공정은 노동자에게 비민주적 노동 탄압일 경우가 많았다. 역대 정부들의 노동 개혁은 자본 편향적 이해를 반영해 헌법상 노동3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이 때문에 노동진영이 법치와 공정이 노동계급에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쟁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출범 직후 경영계는 노동 개혁에 기대를 표하면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이나 “쟁의행위 시 사업장 점거 규제”, “노조 불법행위 엄단과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확립” 등 요구를 내놓고 이것이 노동개혁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법치와 공정의 가치를 노사관계에 적용하려면 노동의 헌법적 권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법치와 노사관계’라는 쟁점 역시 세계적 차원의 경제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정세에서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는 최근 건설업이나 화물운송업에도 영향을 미쳐 건설 전문 업체들의 적자로 인한 공사 지연이나, 화물차 유류세 인상 등이 노동현장을 새롭게 압박하고 있다. 경제적 불안을 심화하는 변수들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고용과 일감을 둘러싼 경쟁을 격화하는 상황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경제 불안이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동 현장들은 여전히 합리적 노사관계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자본 측 이해만을 반영한 편향적인 규율이 지배하고 있는 노동 현장에서 생존권을 둘러싼 노조의 집단적 요구와 투쟁이 필요한데, 윤석열 정부가 이를 ‘법치와 공정’의 잣대로 제압하려 할 수 있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윤리적 우위를 점하고 선제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당한 노조탄압은 강력히 저항하고 투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향후 노조의 조직된 힘 자체가 공정성과 법치주의라는 쟁점 앞에 민감하게 부상하거나 산업현장에서 노조의 존재 자체가 “공정성을 위반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표상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록 노동운동이 힘의 열위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노조나 조합원의 특혜를 맹목적으로 옹호하게 되면 노조운동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정세에서 고용과 임금에 대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발 빠르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조합의 조직된 힘을 조합원의 이익을 넘어 공익에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동자운동 자체의 입장과 계획이 필요하다. 법치와 공정에 대한 노조의 대안을 분명히 제시할 때, 노동자운동이 윤석열 정부의 조직노동에 대한 공세에 맞서 고용과 임금문제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3. 노동자운동의 대응 방향
윤석열 정부는 유연안정성 정책기조로 산업구조 변화에 최적화된 노동의 조직형태와 이데올로기를 주문하고 있다. 즉 생산성 증대를 위한 개별적 노동의 효율화를 추구하고, 노사관계와 노동조건의 경직성을 탈피하는 노조를 원하며, 시장의 원리에 협조적인 노동운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노조가 이를 거부한다면, 정부가 노조의 저항을 우회하고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경우 정부는 노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산업분야와 직종에 유연화를 선제적으로 관철시키고 노동자 개인의 자율적 선택 영역을 넓혀 노사관계를 ‘효율화’하는 논리와 명분을 구사할 것이다.
한편 윤석열 정부가 한국노총을 정책 파트너로 삼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국노총 출신 이정식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임명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 경사노위 주요 실무자였던 권기섭 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을 차관으로 등용했다. 이러한 인사는 상당히 의외였는데, 보수적이고 매파적인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예상을 벗어나 노총 출신 노동운동가가 장관으로 임명되고 문재인 정부 시기 노동정책 책임자급이 차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번이나 한국노총을 찾아 “늘 한국노총의 친구가 되겠다, 어느 때 보다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노총 역시 문재인 정부 시기 경사노위를 활용했던 기반을 계속 이어가려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중 첨예한 쟁점이 되고있는 ‘공공기관 직무·성과급제 도입’이나 ‘과반수 노조 근로자대표 권한’은 이미 문재인 정부 시기에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통해 정부와 합의한 선례도 있다. 2020년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의 ‘공공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공공기관위원회 합의문’이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합의를 상기해 봤을 때, 윤석열 정부 역시 한국노총과 경사노위(또는 재편된 노사정 기구)를 통해 주요한 쟁점들에 대한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추진의 주요 파트너가 한국노총과 경사노위(또는 재편된 노사정 기구)가 되고 ‘상생형 임금체계’, ‘부분근로자 대표제’에 대해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위협적인 이유는 그동안 민주노총 등 노조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취약한 쟁점을 파고들어 사회적 고립을 유도하고 노조의 존립 기반을 약화한다는 데 있다. 향후, “산업재편에 조응하는 노동방식의 변화”, “공정성-기득권 등 세대, 고용형태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쟁점은 윤석열 정부의 유연안정성 정책과 더불어 대기업·공공부문 노조를 압박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유연화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과제도 있지만, 동시에 저성장과 저출생이라는 경제정세에서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과제도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제기하는 ‘세대적 불의’나 ‘공정성’이라는 비판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이 그보다 더 윤리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사회적 논의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운동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노동조합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취하는 주류적 태도는 구체적인 분석에 근거한 비판보다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반노동,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은 친노동’이라는 대립적 프레임을 제시하는 데 갇혀있다. 일부에서는 “120시간 노동” 등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일부 발언을 선정적으로 부각시키며 낙선한 이재명 후보의 노동 관련 공약의 진정성을 기대한다는 주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선에 불복한 민주당이 주도하는 반보수전선이라는 정치적 구도에 활용될 위험이 있다. 윤석열의 노동정책을 정확히 비판하는 것과 ‘친노동-반노동’이라는 반보수구도의 프레임 정치에 휩쓸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노동자운동은 이 차이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저성장이라는 정세에서 정부의 경제·노동정책에 대항하는 노동자운동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부 정책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유연화 공세에 맞선 ‘단결의 확대’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결함과 한계에 대항하여, 가장 올바르고 합리적인 정세적 대안을 제시하고 노조의 존재 의미인 계급적 단결의 힘을 광범위하게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