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조 2항의 쟁점을 통해서 본 노동자운동의 혁신방향
지난 6월 산별 총파업 투쟁을 전개했던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노조가 산별합의안 10조 2항을 계기로 파행을 겪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본조는 서울대병원노조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산별합의안 도출과정이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태는 점점 악화 일로를 치닫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노조는 보건의료노조 ‘조건부 탈퇴’라는 자신들의 결정이 옳았음을 공론화하는 입장서를 각 단체에 호소하고 있고, 지난 8월 28일에는 금속노조, 과학기술노조 등 (소)산별과 비정규노조들로 구성된 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를 초청해 토론회를 가진바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올해 투쟁과정을 살펴보면, 3월 1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산별교섭과 산별투쟁, 5월 25일 쟁의조정신청, 6월 10일 산별 총파업 돌입, 23일 산별교섭 잠정합의에 이은 지부교섭 전환, 7월 27-29일 전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78.6%라는 찬성으로 산별교섭 잠정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파업 시 ’산별기본협약 쟁취, 의료 공공성 강화, 온전한 주 5일제쟁취, 비정규직차별철폐, 노동연대기금 등 5대 핵심요구를 중심으로 13일간의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13일간 파업투쟁을 결과로 총 10장에 걸친 산별교섭 잠정합의안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잠정합의안에 대하여 서울대병원노조를 비롯해 경북대병원노조 등이 문제를 제기했고, 공론화를 목적으로 10장 2조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현재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는 집행위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적 결정에 대해 문제제기의 방법과 명예훼손’을 이유로 서울대병원지부 징계를 결의한 상태이다.
산별협약 10장 2조가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선 서울대지부의 문제의식을 살펴보기 전에 산별협약 잠정합의안의 내용을 살펴보자.(현재는 공식합의문) 산별협약 잠정합의안은 총 10장에 걸쳐 구성되어있다. 1)산별기본협약 전문 2)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 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의료 공공성 강화’ 3) 주 5일제 노동시간 단축 4) 4대 보험적용과 단계적 정규직화에 노력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요구’ 5) 병원의 사회적 노력 6) 최저임금제 7)‘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 위원회 구성 8) 병원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 9) 임금인상 10) 협약의 효력
하지만 서울대병원 지부는 13일간의 산별총파업과 30여 일간의 지부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지난 7월 27일부터 3일간 보건의료노조 조건부 탈퇴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하여 89.9%의 찬성율로 가결시켰다. 그리고 서울대병원 지부는 다음과 같은 결정사항을 내렸다.
* 산별협약 제10장 <협약의 효력> 2조와 관련하여, 보건의료노조가 이조항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식 의결기관을 통해 차기 년도 단체교섭에서 이를 삭제키로 결의하지 않는 한,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고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 변경한다.
<산별협약 10장 협약의 효력>
1) 산별교섭 합의 내용을 이유로 기존 지부 단체협약과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
2) 단, 제9장(임금), 제3장(노동시간단축), 제1조(근로시간단축), 제5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협약 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
산별협약 10장 2조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10장 2조는 노동자들간의 임금격차와 근로조건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임금인상율을 기본급 2%로 동일하게 적용한다(9장1조)’는 것은 근로조건 평준화나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를 전혀 해소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상박하후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서 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을 대폭 올리거나, 정액임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모를까 현재와 같이 일률적인 소폭의 인상만으로는 애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결국 이 조항은 노동조건의 통일도 이루어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노동자간 단결은커녕 분열만 초래하였다.
둘째, 10장 2조는 단위노조 또는 지부투쟁을 제약한다. 잠정합의안이 체결되고 나서 서울대병원노조의 요구에 대해 서울대병원 사측은 10장 2조를 이유로 일체의 교섭을 거부하며, ‘지부에서 진행하는 파업이 불법이고, 본조 간부와 지부교섭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본조는 분명한 대응을 하지 않았고, 10장 2조 삭제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장기투쟁에 따른 생계비와 투쟁지원 요청마저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향후에도 본조와 의견이 다를 경우 소속 단위노조의 투쟁에 대해서는 지원을 거부하거나 제한된 지원만을 하겠다는 의사로써 노동자의 단결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10장 2조는 단위노조의 자율성과 현장성을 침해하고, 산업별합의주의의 단초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건의료노조 본조는 이번 서울대병원지부 파업에 대하여 산별노조에서 맺은 산별협약 잠정합의안과 이견이 있는 쟁의 행위에 관하여 ‘이중쟁의행위 금지’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합의안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서울대병원노조 쟁의 행위에 대한 보건의료노조의 입장과 행동으로 볼 때 이러한 경향은 충분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이중쟁의행위 금지’라는 형태는 전형적으로 유럽식 산별노조 모델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특히 독일과 같은 산별노조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독일의 산별노조에서는 지부파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산별노조 하에서 지부의 파업은 와일드 캣으로 규정되어 정부로부터 불법파업으로 규정되고, 본조로부터 조직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로 인식되어 파업기금과 물량지원, 언론요청 등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거나 소외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쟁취과정에서 이러한 경향이 존재하였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과도한 것일까?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산별협약에 대한 평가를 분명히 달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협약에 대한 성과로 산별교섭 시대의 개막을 열었음을 강조하고 1)노동운동의 의제 확장과 사회적 파급력이 확대되고 2) 기업별노조가 규모와 조직적 편차를 넘어 연대와 평등으로 가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었다는 점 3) 금속노조의 손배 가압류 금지 합의와 함께,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쟁점이 되어왔던 직권중재 없이 노사자율교섭에 의한 타결원칙을 산별기본협약에서 합의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노조를 정부와 정책협의를 강화하고, 노조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발전된 일반적인 조직형태로 본다. 이는 노동운동의 위기가 현재 무조건적인 산별노조건설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평가하지 못한 오류이다. 이러한 관점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산별교섭은 단지 교섭형태를 바꾸는 실무·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철학적, 전략적 문제이다(’보건의료노조 2004년 산별교섭 무엇을 남겼나‘ 중). 그리고 서울대병원노조에서 보건의료노조 본조에 보낸 공문 ‘내년 단체협상 시 10조2항을 삭제할 수 있도록 투쟁한다’라는 약속을 요청했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이에 대해 절차상에 문제가 없는 합의안이기 때문에 10조 2항의 존재가 상관없다고 답변하였다. 이는 현재 10조 2항과 산별협약이 전체 노동운동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평가
1)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해결하는 것은 전체노동자의 몫이다
더욱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합의안의 평가는 10조 2항에 머물면 안 되는 이유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산별노조건설의 도정에 있는 수많은 연맹이나 노조들에게 제약된 평가를 심어줄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써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합의가 그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있어 5장과 같은 합의는 이제까지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을 위하여 지난하게 싸워온 간접고용노동자들의 투쟁과정과 성과를 무색케 하는 합의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점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의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는 보건의료노조만의 한계는 아니다. 그런데 논의가 점점 더 선과 악의 대결로 그려지다 보니 모든 잘못은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에 있고, 지도부를 단죄하면 그만인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보건의료노조의 산별노조 건설과정을 지도부의 탓으로만 돌릴 경우에는 현재 노조운동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것에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이 합의문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4장 비정규직 요구>
1) (직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개선 및 고용안정)
①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상보험법과 4대 보험(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을 적용한다.
②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임금을 포함한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③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가능한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도록 노력한다.
④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담당했던 업무가 조정되거나 해고 사유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한한 고용보장이 되도록 노력한다.
⑤ 직접고용 1년 미만 비정규직에 대하여 월1회의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5장 병원의 사회적 노력>
사용자는 용역회사 직원들의 직접사용자는 아니지만 고용안정이라는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용역업체가 변경될 경우 가급적 이전 용역회사 직원들의 해고 문제가 발생될 경우 새로운 용역회사에 채용될 수 있도록 계약 체결 시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6장 최저임금제>
1) (보건의료산업 최저임금제 도입)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산업분류 : 보건업)의 최저임금은 노동부 ‘매월 노동통계 조사보고서’에 의거한 월 평균 정액급여의 40%를 산업별 최저임금으로 정한다.
산별협약은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하여 제4 , 5장, 6장에 걸쳐 적지 않은 면을 할애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에는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관점이 녹아 들어가 있지 않아, 오히려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관점이 민주노조투쟁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4장의 ‘비정규직 요구’의 장에서 요구한 내용들인 직접고용노동자의 4대 보험 가입은 많은 부분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써 별 실효가 없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조항이 ‘노력한다’라는 추상적인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조차도 직접고용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조항이라는 점은 이 합의의 약점이다. 그리고 5장 ‘병원의 사회적 노력의 장’의 ‘사용자는 용역회사 직원들의 직접사용자는 아니다’를 합의한 것은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써 간접고용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조항이다. 이 조항은 파견·용역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인 건설일용노동자, 방송사비정규직노동자가 지난하게 투쟁해온 과정을 무색케하는 조항으로 극복되어야할 지점이다. 그리고 병원에는 수 없이 많은 도급, 하청,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이는 현재 그리고 향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투쟁이 제약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비정규직 투쟁, 할 말 많지만... 작년에 비해 요구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요구??넣지 않으면 민주노조가 아니??라고 할까봐 말로만 떠드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자’ - 금속노조신문 제09호 특집 글 ‘반성하고 새롭게 출발하자’ 중 -
2) 전반적으로 산별협약안이 병원산업발전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고용방어와 노사협력의 성격이 강하고, 산업별 합의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하는 것 역시 병원산별노조의 몫이자 전체노동자운동의 과제이다.
<2. 의료 공공성 강화>
조합과 사용자는 ‘의료공공성 강화와 환자권리 확보’를 위하여 다음의 사항을 합의한다.
1) (환자 권리장전) 노사는 환자 권리를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환자 권리 장전'을 만들어 선포하고, 이를 공동 실천한다.
① 환자는 인격적인 대우와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② 환자의 알권리는 보장되어야한다.
③ 환자는 진료상의 개인 신상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④ 환자는 언제나 필요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고 받을 권리가 있다.
2) (적정 병실면적 및 시설) 사용자는 병실을 법정기준 이상으로 확보하고, 환자 편의와 쾌적한 환경을 위해 적정규모 병실면적과 시설을 확보하도록 노력한다.
3)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 운영)
조합과 사용자는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참여를 요청한다. 동 위원회에서는 건강보험 제도개선, 의료기관 공공성 강화, 보건의료예산 확대 등 의료공공성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7.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 위원회 구성>
1) 조합과 사용자는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모성보호, 의료산업 발전’ 등의 용도로 보건연대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노사 동수 각 3인이 참여하는 ‘보건연대기금 노·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 조성방법, 운영방안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여 노·사 합의 후 시행한다.
2) 동 위원회는 위원회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위원회 참여와 기금 지원 등을 요청한다.
<8. 병원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
노사는 역사적인 산별교섭 원년이후, 산별중앙교섭 타결과 함께 지부교섭도 상호 신의와 성실 교섭으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발전적이고 안정적 노사관계 구현이 국민건강권 실현과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이라는 본 협약의 정신에 부합됨을 공히 인식하고 이를 위해 상호 노력한다.
제2장, 7장, 8장의 내용들은 산별협약을 맺기 위해 병원 사용자측의 입장을 고려했더라도 지나치게 노사협조적이며 병원산업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나,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의 목적은 병원산업의 발전과 기존 조합원의 고용안정 등에 맞추어져 있다. 이는 ‘병원이라는 사측이 살아야 노조도 산다’라는 경제위기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노동자운동의 운동적 관점을 탈각하고, 노사협조주의를 양산하는 합의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합의문은 대체로 경제가 어려우니 노조도 산업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도 전체노동자운동을 놓고 보면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닌데, 올해 자동차노조에서 선보인 ‘산업발전과 사회공헌기금’ 요구안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산업은 달라도 금속부문에서는 산업공동화로 병원산업에서는 병원통폐합으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구상은 적당치 않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운동의 운동적 관점을 극복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에 대하여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 하는 자세부터 필요한 때이다.
3) 애초 노동자단결과 주체형성이라는 산별노조 건설취지를 살려야 하는 과제가 존재한다.
<3장 주 5일제 노동시간 단축>
제1조(노동시간 단축)
사용자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기준 근로시간으로 하며 1주 5일 근무를 기본으로 한다. 다만 토요일은 휴무일로 한다.
제5조(연·월차휴가 및 연차수당)
1) 기존 근로기준법에 따른 월차휴가와 연차휴가를 폐지하고,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
2) 시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 대하여 기존 연월차 산정일수에서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한 연차 산정일수를 뺀 일수를 임금으로 보전하되 계산식은 다음과 같이하여, 시행일 기준으로 금액을 확정하여 수당(통상임금에서 제외)으로 보전한다.
[(기존 근기법상 연·월차 휴가 합산일수-개정근기법상 산정한 연차 휴가일수) X 기 보상기준]
* ‘기 보상기준’은 각 병원 및 사업장별로 시행하던 보상기준을 적용한다.
3) 시행일 현재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인 직원에게는 연차휴가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하여 수당을 지급한다.
제6조(생리휴가)
1) 사용자는 여성노동자에게 월 1회의 무급생리휴가를 부여한다. 단, 사용시 월 기본급에 3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한다.
2) 시행일 현재 재직 중인 여성노동자에게는 월 기본급의 30분의 1일 해당하는 금액을 확정하여 월정액의 보건수당(통상임금에서 제외)으로 지급한다.
3) 위 2)의 보전기준보다 상회하는 병원 및 사업장의 경우 기존 지급액을 유지한다.
<9장 임금인상>
1) 2004년 주 5일제 시행대상 병원 및 사업장은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병원의 비용부담 증가 등을 고려하여 기본급 2%를 인상한다.
2) 2004년 주 5일제 시행 대상이 아닌 병원 및 사업장은 기본급 5%를 인상한다.
3) 기 인상해서 지급하고 있는 병원 및 사업장은 기 인상액을 인정한다.
제3장과 9장은 산별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많은 노조와 연맹에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제3장과 9장은 전반적으로 기존의 근로조건보다 개악된 합의안이 주를 이룰 뿐만 아니라, 노동자단결이라는 애초 산별노조 건설 취지에 걸맞지 않게 ‘재직 중인 직원’과 ‘신규 노동자’에게 차별적인 근로조건을 적용한다. 기왕의 산별노조라고 하면 그 적용범위가 협약을 맺은 산업의 전 노동자나 산별협약을 맺은 사업장의 전 노동자가 되어야 함이 마땅한데도, 적용범위에서 본다면 이러한 산별협약은 온전한 산별협약에는 충분히 함량 미달이다. ‘무엇이 산별협약 기준이다’라는 모범 협약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조항만을 놓고 보면 산별노조건설의 취지에 적합한 산별협약 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제3장과 9장은 노동자의 단결을 해치는 조항의 성격뿐만 아니라 신규노동자에 대한 생리휴가 무급화와 연월차휴가 축소, 일률적인 소폭의 임금인상폭 등 실질적인 근로조건의 후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는 지난 시기 노동시간단축투쟁에 이어 전개된 주5일제 투쟁이 결국 노동유연화를 강제하는 노동법개악으로 이어져 힘이 약한 노조들에게는 기존 근로조건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현실을 결과했던 뼈아픈 과거의 패배가 그대로 반영된 내용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이 산별노조 건설의 문제를 조직건설의 문제로만 치환 해버릴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4) 올해 산협협약합의안은 산별협약 성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로써, 이를 극복하는 길은 향후 노동자운동의 운동적 관점을 복구·실천하는 것이다.
96년 병원노련이 만들어지고, 98년 보건의료노조가 민주노총 내에서 최초의 산별노조 형태로 출범한 후 외환위기 속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다가왔다.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보건의료노조는 여기에 대처할 만한 역량과 노선이 부재한 가운데 낮은 조합원들의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의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협약안은 조직전환 후 산별노조에 걸 맞는 조직적 확대는 차치하더라도 병원통폐합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비정규직 등 구조조정저지투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고용안정과 조직 강화 둘 다 잡지 못한 한계를 반영한 합의문이다. 이러한 내·외부적 압박과 조합원들의 비판은 무엇인가 성과를 내야한다는 집착으로 다가갔고, 결국 하향평준화된 산별협약안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4. 반성해서 새롭게 출발하자.
우선 무엇보다도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교훈은 산별노조 그 자체 건설의 당위성만 고집하는 현실을 극복하고, 산별노조 건설의 실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노조의 조건부탈퇴를 두고 대기업이기주의를 넘어서 산별교섭 무용론이나, 산별총파업투쟁 성과 폄하, 심지어 서울대 패권론까지 말하며 서울대병원노조를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조운동의 위기만을 심화시켜 결국 노동자운동의 분열을 양산시키고 고립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서울대병원노조의 문제제기가 해결되는 상황은 노동자운동의 밑그림을 그리고,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틀을 구성하기 위한 과정 안에서 사고되어야만 중요한 평가를 남기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단순히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와 서울대병원노조만의 갈등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지금이 새로운 것을 실현하기 위한 모두의 반성이 요구되며, 조직건설투쟁을 운동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노조운동의 내용이 토론되고 실천되어야 할 시점이다. PSSP
보건의료노조의 올해 투쟁과정을 살펴보면, 3월 1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산별교섭과 산별투쟁, 5월 25일 쟁의조정신청, 6월 10일 산별 총파업 돌입, 23일 산별교섭 잠정합의에 이은 지부교섭 전환, 7월 27-29일 전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78.6%라는 찬성으로 산별교섭 잠정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파업 시 ’산별기본협약 쟁취, 의료 공공성 강화, 온전한 주 5일제쟁취, 비정규직차별철폐, 노동연대기금 등 5대 핵심요구를 중심으로 13일간의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13일간 파업투쟁을 결과로 총 10장에 걸친 산별교섭 잠정합의안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잠정합의안에 대하여 서울대병원노조를 비롯해 경북대병원노조 등이 문제를 제기했고, 공론화를 목적으로 10장 2조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현재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는 집행위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적 결정에 대해 문제제기의 방법과 명예훼손’을 이유로 서울대병원지부 징계를 결의한 상태이다.
산별협약 10장 2조가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선 서울대지부의 문제의식을 살펴보기 전에 산별협약 잠정합의안의 내용을 살펴보자.(현재는 공식합의문) 산별협약 잠정합의안은 총 10장에 걸쳐 구성되어있다. 1)산별기본협약 전문 2)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 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의료 공공성 강화’ 3) 주 5일제 노동시간 단축 4) 4대 보험적용과 단계적 정규직화에 노력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요구’ 5) 병원의 사회적 노력 6) 최저임금제 7)‘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 위원회 구성 8) 병원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 9) 임금인상 10) 협약의 효력
하지만 서울대병원 지부는 13일간의 산별총파업과 30여 일간의 지부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지난 7월 27일부터 3일간 보건의료노조 조건부 탈퇴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하여 89.9%의 찬성율로 가결시켰다. 그리고 서울대병원 지부는 다음과 같은 결정사항을 내렸다.
* 산별협약 제10장 <협약의 효력> 2조와 관련하여, 보건의료노조가 이조항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식 의결기관을 통해 차기 년도 단체교섭에서 이를 삭제키로 결의하지 않는 한,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고 독립된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 변경한다.
<산별협약 10장 협약의 효력>
1) 산별교섭 합의 내용을 이유로 기존 지부 단체협약과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
2) 단, 제9장(임금), 제3장(노동시간단축), 제1조(근로시간단축), 제5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협약 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
산별협약 10장 2조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10장 2조는 노동자들간의 임금격차와 근로조건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임금인상율을 기본급 2%로 동일하게 적용한다(9장1조)’는 것은 근로조건 평준화나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를 전혀 해소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상박하후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서 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을 대폭 올리거나, 정액임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모를까 현재와 같이 일률적인 소폭의 인상만으로는 애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결국 이 조항은 노동조건의 통일도 이루어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노동자간 단결은커녕 분열만 초래하였다.
둘째, 10장 2조는 단위노조 또는 지부투쟁을 제약한다. 잠정합의안이 체결되고 나서 서울대병원노조의 요구에 대해 서울대병원 사측은 10장 2조를 이유로 일체의 교섭을 거부하며, ‘지부에서 진행하는 파업이 불법이고, 본조 간부와 지부교섭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본조는 분명한 대응을 하지 않았고, 10장 2조 삭제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장기투쟁에 따른 생계비와 투쟁지원 요청마저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향후에도 본조와 의견이 다를 경우 소속 단위노조의 투쟁에 대해서는 지원을 거부하거나 제한된 지원만을 하겠다는 의사로써 노동자의 단결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10장 2조는 단위노조의 자율성과 현장성을 침해하고, 산업별합의주의의 단초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건의료노조 본조는 이번 서울대병원지부 파업에 대하여 산별노조에서 맺은 산별협약 잠정합의안과 이견이 있는 쟁의 행위에 관하여 ‘이중쟁의행위 금지’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합의안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서울대병원노조 쟁의 행위에 대한 보건의료노조의 입장과 행동으로 볼 때 이러한 경향은 충분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이중쟁의행위 금지’라는 형태는 전형적으로 유럽식 산별노조 모델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특히 독일과 같은 산별노조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독일의 산별노조에서는 지부파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산별노조 하에서 지부의 파업은 와일드 캣으로 규정되어 정부로부터 불법파업으로 규정되고, 본조로부터 조직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로 인식되어 파업기금과 물량지원, 언론요청 등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거나 소외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쟁취과정에서 이러한 경향이 존재하였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과도한 것일까?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산별협약에 대한 평가를 분명히 달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협약에 대한 성과로 산별교섭 시대의 개막을 열었음을 강조하고 1)노동운동의 의제 확장과 사회적 파급력이 확대되고 2) 기업별노조가 규모와 조직적 편차를 넘어 연대와 평등으로 가는 중요한 계기로 만들었다는 점 3) 금속노조의 손배 가압류 금지 합의와 함께,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쟁점이 되어왔던 직권중재 없이 노사자율교섭에 의한 타결원칙을 산별기본협약에서 합의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노조를 정부와 정책협의를 강화하고, 노조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발전된 일반적인 조직형태로 본다. 이는 노동운동의 위기가 현재 무조건적인 산별노조건설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평가하지 못한 오류이다. 이러한 관점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산별교섭은 단지 교섭형태를 바꾸는 실무·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철학적, 전략적 문제이다(’보건의료노조 2004년 산별교섭 무엇을 남겼나‘ 중). 그리고 서울대병원노조에서 보건의료노조 본조에 보낸 공문 ‘내년 단체협상 시 10조2항을 삭제할 수 있도록 투쟁한다’라는 약속을 요청했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이에 대해 절차상에 문제가 없는 합의안이기 때문에 10조 2항의 존재가 상관없다고 답변하였다. 이는 현재 10조 2항과 산별협약이 전체 노동운동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주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평가
1)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해결하는 것은 전체노동자의 몫이다
더욱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합의안의 평가는 10조 2항에 머물면 안 되는 이유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산별노조건설의 도정에 있는 수많은 연맹이나 노조들에게 제약된 평가를 심어줄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써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합의가 그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있어 5장과 같은 합의는 이제까지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을 위하여 지난하게 싸워온 간접고용노동자들의 투쟁과정과 성과를 무색케 하는 합의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지점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의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는 보건의료노조만의 한계는 아니다. 그런데 논의가 점점 더 선과 악의 대결로 그려지다 보니 모든 잘못은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에 있고, 지도부를 단죄하면 그만인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보건의료노조의 산별노조 건설과정을 지도부의 탓으로만 돌릴 경우에는 현재 노조운동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것에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이 합의문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4장 비정규직 요구>
1) (직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개선 및 고용안정)
①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상보험법과 4대 보험(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을 적용한다.
②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임금을 포함한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③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가능한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도록 노력한다.
④ 사용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담당했던 업무가 조정되거나 해고 사유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한한 고용보장이 되도록 노력한다.
⑤ 직접고용 1년 미만 비정규직에 대하여 월1회의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5장 병원의 사회적 노력>
사용자는 용역회사 직원들의 직접사용자는 아니지만 고용안정이라는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용역업체가 변경될 경우 가급적 이전 용역회사 직원들의 해고 문제가 발생될 경우 새로운 용역회사에 채용될 수 있도록 계약 체결 시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6장 최저임금제>
1) (보건의료산업 최저임금제 도입)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산업분류 : 보건업)의 최저임금은 노동부 ‘매월 노동통계 조사보고서’에 의거한 월 평균 정액급여의 40%를 산업별 최저임금으로 정한다.
산별협약은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하여 제4 , 5장, 6장에 걸쳐 적지 않은 면을 할애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에는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관점이 녹아 들어가 있지 않아, 오히려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대한 관점이 민주노조투쟁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4장의 ‘비정규직 요구’의 장에서 요구한 내용들인 직접고용노동자의 4대 보험 가입은 많은 부분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써 별 실효가 없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조항이 ‘노력한다’라는 추상적인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조차도 직접고용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조항이라는 점은 이 합의의 약점이다. 그리고 5장 ‘병원의 사회적 노력의 장’의 ‘사용자는 용역회사 직원들의 직접사용자는 아니다’를 합의한 것은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써 간접고용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조항이다. 이 조항은 파견·용역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인 건설일용노동자, 방송사비정규직노동자가 지난하게 투쟁해온 과정을 무색케하는 조항으로 극복되어야할 지점이다. 그리고 병원에는 수 없이 많은 도급, 하청,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이는 현재 그리고 향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투쟁이 제약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비정규직 투쟁, 할 말 많지만... 작년에 비해 요구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요구??넣지 않으면 민주노조가 아니??라고 할까봐 말로만 떠드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자’ - 금속노조신문 제09호 특집 글 ‘반성하고 새롭게 출발하자’ 중 -
2) 전반적으로 산별협약안이 병원산업발전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고용방어와 노사협력의 성격이 강하고, 산업별 합의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하는 것 역시 병원산별노조의 몫이자 전체노동자운동의 과제이다.
<2. 의료 공공성 강화>
조합과 사용자는 ‘의료공공성 강화와 환자권리 확보’를 위하여 다음의 사항을 합의한다.
1) (환자 권리장전) 노사는 환자 권리를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환자 권리 장전'을 만들어 선포하고, 이를 공동 실천한다.
① 환자는 인격적인 대우와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② 환자의 알권리는 보장되어야한다.
③ 환자는 진료상의 개인 신상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④ 환자는 언제나 필요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고 받을 권리가 있다.
2) (적정 병실면적 및 시설) 사용자는 병실을 법정기준 이상으로 확보하고, 환자 편의와 쾌적한 환경을 위해 적정규모 병실면적과 시설을 확보하도록 노력한다.
3)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 운영)
조합과 사용자는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참여를 요청한다. 동 위원회에서는 건강보험 제도개선, 의료기관 공공성 강화, 보건의료예산 확대 등 의료공공성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7.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 위원회 구성>
1) 조합과 사용자는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모성보호, 의료산업 발전’ 등의 용도로 보건연대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노사 동수 각 3인이 참여하는 ‘보건연대기금 노·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 조성방법, 운영방안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여 노·사 합의 후 시행한다.
2) 동 위원회는 위원회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위원회 참여와 기금 지원 등을 요청한다.
<8. 병원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
노사는 역사적인 산별교섭 원년이후, 산별중앙교섭 타결과 함께 지부교섭도 상호 신의와 성실 교섭으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발전적이고 안정적 노사관계 구현이 국민건강권 실현과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이라는 본 협약의 정신에 부합됨을 공히 인식하고 이를 위해 상호 노력한다.
제2장, 7장, 8장의 내용들은 산별협약을 맺기 위해 병원 사용자측의 입장을 고려했더라도 지나치게 노사협조적이며 병원산업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나,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의 목적은 병원산업의 발전과 기존 조합원의 고용안정 등에 맞추어져 있다. 이는 ‘병원이라는 사측이 살아야 노조도 산다’라는 경제위기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노동자운동의 운동적 관점을 탈각하고, 노사협조주의를 양산하는 합의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합의문은 대체로 경제가 어려우니 노조도 산업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도 전체노동자운동을 놓고 보면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닌데, 올해 자동차노조에서 선보인 ‘산업발전과 사회공헌기금’ 요구안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산업은 달라도 금속부문에서는 산업공동화로 병원산업에서는 병원통폐합으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구상은 적당치 않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운동의 운동적 관점을 극복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에 대하여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 하는 자세부터 필요한 때이다.
3) 애초 노동자단결과 주체형성이라는 산별노조 건설취지를 살려야 하는 과제가 존재한다.
<3장 주 5일제 노동시간 단축>
제1조(노동시간 단축)
사용자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기준 근로시간으로 하며 1주 5일 근무를 기본으로 한다. 다만 토요일은 휴무일로 한다.
제5조(연·월차휴가 및 연차수당)
1) 기존 근로기준법에 따른 월차휴가와 연차휴가를 폐지하고,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
2) 시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 대하여 기존 연월차 산정일수에서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한 연차 산정일수를 뺀 일수를 임금으로 보전하되 계산식은 다음과 같이하여, 시행일 기준으로 금액을 확정하여 수당(통상임금에서 제외)으로 보전한다.
[(기존 근기법상 연·월차 휴가 합산일수-개정근기법상 산정한 연차 휴가일수) X 기 보상기준]
* ‘기 보상기준’은 각 병원 및 사업장별로 시행하던 보상기준을 적용한다.
3) 시행일 현재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인 직원에게는 연차휴가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하여 수당을 지급한다.
제6조(생리휴가)
1) 사용자는 여성노동자에게 월 1회의 무급생리휴가를 부여한다. 단, 사용시 월 기본급에 3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한다.
2) 시행일 현재 재직 중인 여성노동자에게는 월 기본급의 30분의 1일 해당하는 금액을 확정하여 월정액의 보건수당(통상임금에서 제외)으로 지급한다.
3) 위 2)의 보전기준보다 상회하는 병원 및 사업장의 경우 기존 지급액을 유지한다.
<9장 임금인상>
1) 2004년 주 5일제 시행대상 병원 및 사업장은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병원의 비용부담 증가 등을 고려하여 기본급 2%를 인상한다.
2) 2004년 주 5일제 시행 대상이 아닌 병원 및 사업장은 기본급 5%를 인상한다.
3) 기 인상해서 지급하고 있는 병원 및 사업장은 기 인상액을 인정한다.
제3장과 9장은 산별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많은 노조와 연맹에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제3장과 9장은 전반적으로 기존의 근로조건보다 개악된 합의안이 주를 이룰 뿐만 아니라, 노동자단결이라는 애초 산별노조 건설 취지에 걸맞지 않게 ‘재직 중인 직원’과 ‘신규 노동자’에게 차별적인 근로조건을 적용한다. 기왕의 산별노조라고 하면 그 적용범위가 협약을 맺은 산업의 전 노동자나 산별협약을 맺은 사업장의 전 노동자가 되어야 함이 마땅한데도, 적용범위에서 본다면 이러한 산별협약은 온전한 산별협약에는 충분히 함량 미달이다. ‘무엇이 산별협약 기준이다’라는 모범 협약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조항만을 놓고 보면 산별노조건설의 취지에 적합한 산별협약 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제3장과 9장은 노동자의 단결을 해치는 조항의 성격뿐만 아니라 신규노동자에 대한 생리휴가 무급화와 연월차휴가 축소, 일률적인 소폭의 임금인상폭 등 실질적인 근로조건의 후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는 지난 시기 노동시간단축투쟁에 이어 전개된 주5일제 투쟁이 결국 노동유연화를 강제하는 노동법개악으로 이어져 힘이 약한 노조들에게는 기존 근로조건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현실을 결과했던 뼈아픈 과거의 패배가 그대로 반영된 내용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이 산별노조 건설의 문제를 조직건설의 문제로만 치환 해버릴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4) 올해 산협협약합의안은 산별협약 성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로써, 이를 극복하는 길은 향후 노동자운동의 운동적 관점을 복구·실천하는 것이다.
96년 병원노련이 만들어지고, 98년 보건의료노조가 민주노총 내에서 최초의 산별노조 형태로 출범한 후 외환위기 속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다가왔다.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보건의료노조는 여기에 대처할 만한 역량과 노선이 부재한 가운데 낮은 조합원들의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의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협약안은 조직전환 후 산별노조에 걸 맞는 조직적 확대는 차치하더라도 병원통폐합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비정규직 등 구조조정저지투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고용안정과 조직 강화 둘 다 잡지 못한 한계를 반영한 합의문이다. 이러한 내·외부적 압박과 조합원들의 비판은 무엇인가 성과를 내야한다는 집착으로 다가갔고, 결국 하향평준화된 산별협약안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4. 반성해서 새롭게 출발하자.
우선 무엇보다도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교훈은 산별노조 그 자체 건설의 당위성만 고집하는 현실을 극복하고, 산별노조 건설의 실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노조의 조건부탈퇴를 두고 대기업이기주의를 넘어서 산별교섭 무용론이나, 산별총파업투쟁 성과 폄하, 심지어 서울대 패권론까지 말하며 서울대병원노조를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조운동의 위기만을 심화시켜 결국 노동자운동의 분열을 양산시키고 고립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서울대병원노조의 문제제기가 해결되는 상황은 노동자운동의 밑그림을 그리고,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틀을 구성하기 위한 과정 안에서 사고되어야만 중요한 평가를 남기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단순히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와 서울대병원노조만의 갈등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지금이 새로운 것을 실현하기 위한 모두의 반성이 요구되며, 조직건설투쟁을 운동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노조운동의 내용이 토론되고 실천되어야 할 시점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