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의 현재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재수정안을 내기로 한 후 그 안이 나올 때까지 모두가 조용하다. 정부에서는 9월 정기국회 때 반드시 통과시키겠노라고 장담하는데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우리의 요구를 수정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이미 정해진 기조는 '노동법 개악 저지, 권리입법 쟁취'였기 때문에 쉽게 정권과 자본의 개악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조항 중심으로 재수정안을 낸다는 것은, 이 내용이 포함되기만 하면 정부의 개악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선언이기에 사실상 기조의 수정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기조 변화, 말장난으로 본질 흐리기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조항 중심으로 재수정안을 내는 것은 명백하게 투쟁 기조가 변한 것이다. 노동법 개악 자체를 저지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비정규직 권리 입법을 쟁취하겠다던 투쟁 기조가, 우리의 요구가 일부 들어가기만 하면 개악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 수정안은 정부의 ‘특별법’을 인정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기간제에 대한 정부의 입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다. 특별법을 통해 기간제를 일반적 고용형태로 만들려는 의도이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요구안은 ‘근로기준법’에 기간제 사유제한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사용사유만 명시하는 이상 새로운 법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수정안은 특별법을 인정하고 그 안에 사유제한을 넣자는 것이다. 이는 기간제에 대한 확대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특별법으로 기간제라는 고용형태를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게 되면 이후에는 이 법안의 시행령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기간제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파견법을 봐도 알 수 있다. 파견법은 처음 만들어질 때 26개로 허용업종을 제한했다. 하지만 이제 자본은 그 법안의 개정을 추진하면서 허용업종의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별법을 허용하면 ‘기간제’라는 고용형태가 일반화되고, 그 안에서 사용사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사유는 언제든지 확대되고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특별법을 인정하는 사유제한’은 결코 사유제한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였던 ‘근로기준법상의 사유제한’이 슬그머니 ‘특별법 상의 사유제한’으로 변질되고 있다.
재수정안 중 ‘고용의제 조항’(불법파견임이 확인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파견법에 넣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인사이트 코리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의 경우 몇 년간 일했는가와 관계없이 불법파견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그것은 지난한 투쟁의 성과였다. 그런데 재수정안에는 우리의 성과인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파견법에 명문화하는 대신 파견법 허용대상을 확대하는 정부의 안이 담겨 있다. 물론 정부의 안이 26개 허용업종을 그대로 두는 것일 수는 있으나, 시행령 등으로 파견허용 업종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파견허용 업종을 무한정 확대하는 것과 똑같다.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하더라도 고용의제 조항과 파견허용대상 확대는 결코 맞바꾸기를 할 것이 아니다.
고용의제 조항의 실효도 무척 의심스럽다. 검찰에서는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해서 합법파견이 확대되어야 불법파견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하겠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불법파견에 대한 제재는 파견법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에서는 몇 가지 시정조치 만으로 불법파견을 ‘진성도급’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제는 불법파견으로 인정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파견법 허용대상 확대와 불법파견의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서로 바꿔치기 하는 것은 노동자의 요구가 아니라 자본의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재수정안이 이런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기조는 여전히 ‘근로기준법 상의 기간제 사유제한’이고, ‘파견 허용업종 확대에 대한 저지’를 분명히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기를 원한다. 또는 민주노동당의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재수정안이 관철될 확률이 없기 때문에 단지 정부가 밀어붙이기로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재수정을 한다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어보자는 주장이 진심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부 법안의 수용이라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기조 변화의 과정
이런 기조 변화의 과정은 매우 불행하게도 각급 대중단위의 논의를 제대로 거치지도 않았다. 그냥 스리슬쩍 정부의 개악안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가면서도 마치 우리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스리슬쩍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기조의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매일노동뉴스 등을 통해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유포되었다. “명분만 갖고 투쟁하느라 실리를 잃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국 정부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 치기 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에서도 우리의 요구는 ‘노동법 개악 저지,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양대 노총 공조 복원을 논의하는 5월 14일 회의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기간제 사전 사용사유 제한’을 중심으로 비정규법안 재논의(재수정)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기조가 바뀐 것이다. 이런 기조변화의 근저에는 노사정위원회 재편과 복귀, 그리고 한국노총과의 공조복원이라는 입장이 깔려있었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를 통해 한국노총과의 공조를 이야기했고, 한국노총에서는 비정규권리입법을 제외하면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5월 9일 열린 상집 수련회에서 비정규법 재논의와 노사관계 민주화방안,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한·미 FTA 협상 저지 투쟁 등 5~8월 계획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결과, 양대 노총 공조 복원 추진을 재확인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5월 11일 양대 노총 사무총장 및 정책실무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양대 노총 공조복원과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재논의(재수정)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공유했다. 한국노총은 일관되게 정부 및 열린우리당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사실상 기간제 사유제한을 인정하지 않는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밀어 붙여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공조를 하고자 한다면 반노동자적인 한국노총의 기조를 변화시켜야지 민주노총의 기조가 변화되어서야 되겠는가?
15차 중집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한 이후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민주노총이 노동법 단일안을 만들어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사실상 정부의 법안을 수용하는 재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은 6월에 법안이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재수정을 통해서 정부의 입법을 받아들일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별다른 문제제기나 대중적 토론도 없이 투쟁의 기조가 슬쩍 변해버린 것이다.
왜곡된 특수고용 관련 논의
그런데다가 지금은 비정규직의 또 한 유형인 특수고용 관련 논의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뤄지고 있다. 중앙일보에 보도된 대로 정부는 이미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경제법상 보호’를 방침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공정거래법 등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점을 일부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정말로 ‘자영업자’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2000년 특수고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고 근로기준법을 어느 정도 적용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계속 후퇴했고, 법원의 판례도 반동적으로 기울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을 부정해왔다. 2003년 노사정위원회는 공익위원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직군을 분리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법 적용을 배제하고 ‘유사2권’을 주는 안을 내놓았다. '유사2권'이라 함은 노조가 아닌 단체를 결성할 권한을 준다는 것이고, 단체교섭에 대해서도 단체교섭의 효력을 인정하지는 않는 임의 교섭에 불과한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노동자성 완전 쟁취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특수고용 문제를 논의한다고 하면서 2003년도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도 ‘노동계의 합의라는 명분을 붙여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그동안 단결권이 워낙 심각하게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여를 해왔다. 그러나 이미 정부에서는 ’경제법상 보호‘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직군별로 분리를 해서 직군별로 다른 별도의 보호조치들을 약간씩 해주겠다고 하고 있다. 특수고용 논의에서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히려 왜곡과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정부의 의도가 관철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에서는 특수고용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노사정대표자회의의 논의를 통해 뭔가 특수고용을 위한 조치들이 나올 수 있을 것처럼 왜곡된 인식을 퍼뜨린다.
정부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현안으로 다루는 것에 합의한 이유는 ‘ILO 고용관계 권고안’에서 특수고용에 대한 노동자성을 명시했고, 정부는 이런 부담에 직면해서 ‘우리도 논의하고 있다’는 명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경제법상 보호’를 원칙으로 갖고 있는 정부 및 자본과는 아무리 논의해도 타협의 지점이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ILO 권고안에서 말한 바, 노동자성을 인정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을 통한 정세의 주도권 행사하기
정부에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재수정 논의를 진행하는 동안 나름대로 노동법 개악안 굳히기를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올해 초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차별 시정을 위한 기준을 정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이야기해왔다. 노동법 개정을 정부가 솔선해서 관철시키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2001년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입법 논의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노동계와의 합의를 통해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나옴으로써 이러한 기도는 무산되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이끌어내려고 했고, 이런 이데올로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이 선 2004년 9월 노동부가 단독으로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을 내밀면서 이것이 ‘비정규보호법안’이라고 거짓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이는 ‘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노동계와 합의의 외형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자신들이 다시 비정규 문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으로 표현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5만 4천명 정규직화’라고 주장하니 무척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법 개악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일부를 정규직화 함으로써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화할 수만 있다면 크게 손해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5만 4천명 정규직화’라는 주장도 허구적인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던 각종 구조조정 정부지침의 폐기 없이, 정부가 불법적으로 사용해온 비정규직들의 투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비정규노조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발표된 대책이 과연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화’라고 주장하지만 정규직화가 아니라 재정이 축소되면 얼마든지 계약해지 되는 ‘무기 계약 노동자’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부는 노동법 개악안 조항 중 하나인 ‘평생 계약직’으로 쓸 수 있는 노동자로 전환시켜서 계속 고용은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자를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상시업무 개념도 자신들이 마음대로 결정하여 사실상 상시업무인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처우도 개선되지 않고 ‘합리적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차별이 용인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합리적 외주화의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부문의 전 영역으로 외주화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비핵심업무는 외주화 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핵심업무에도 외주화를 할 수 있는 사유를 열어둠으로써 이제까지 진행된 외주화를 모두 정당화하고 이후에도 이루어질 모든 종류의 외주화를 합리화하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간제 노동자들은 이제 외주·용역·도급 등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공공부문 사유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뭔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면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 정세에서 주도력을 확보한다. 이 개악안이 뭔가 노동자에게 유리한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놓는다. 하지만 노동부의 ‘Q&A 자료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결국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안이다. 돈도 많이 안 들고 합리적인 차별을 만들고, 외주화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노동부 입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법 개악에 대비하는 자본가들의 발 빠른 행보
정부만 정세의 주도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은 이미 법안이 통과될 것에 대비하여 발 빠르게 대응을 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도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재계약을 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내리는가 하면, 서울대병원에서도 7년 이상 장기적으로 계약을 해왔던 노동자들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내고 있다. 이미 2년 이상 일해 왔던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간제 특별법이 ‘2년 이상의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법’이 아니라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법’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장기계약직들에게 자칫 혜택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기간제를 없애고 외주화로 가는 곳도 있다. 철도노조가 입수한 철도공사의 ‘비정규직 보호 법안 관련 비정규 계약직 대책 검토(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따르면 철도공사는 지난 7월 24일 기획조정본부 회의를 통해 상시업무 직접고용 계약직 노동자들을 2007년 1월 1일자로 전면 외주화 할 것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규모는 3,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정규직과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역무, 수송, 개집표, 종합안내, 홈안내, 방송원 등 모든 직접고용 계약직을 외주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나 공사에서 오히려 기간제 법안을 핑계삼아 기간제 노동자들을 외주화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은행권에서는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해서 ‘독립직군제’를 실시하면서 고용은 안정되지만 차별을 영구화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은행권이 말하고 있는 고용안정 논리는 허구이다. ‘독립직군제’는 노동자들을 2년 간 시험 사용을 해서 평점을 매기고 A, B, C, D 등급 중 C, D 등급을 받은 사람은 계약에서 탈락시키는 제도이다. 간신히 계약에 성공해서 무기계약 노동자가 된다 하더라도 승진도 없고 성과급제로 운영하면서 계속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나마 나중에는 도급화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파견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불법파견을 진성도급화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작업장에서의 몇 가지 조치, 예를 들어 도급 업체에서 관리자를 따로 두어서 작업 관리를 하게 하거나 자바라 등으로 작업장을 분리하는 것, 그리고 전환배치를 통해서 사내하청만으로 작업공정을 유지하는 것 등을 통해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될 여지 자체를 없애고 있다. 물론 예전처럼 도급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 통제는 여전하지만 음성적인 방식으로만 관리 통제가 이루어지고 눈에 드러나는 곳에서는 마치 도급업체가 전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견허용이 확대될 것에 대비해서 대기업들이 파견사업에 진출을 하고 있다. 아직 파견법이 개악되지 않아서 파견허용업종이 확대되지 않았는데도 파견이 가능하지 않는 곳에 이미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한 돈벌이가 횡행한다.
이렇게 노동법 개악이 진행되는 동안, 그 폐해는 이미 눈에 드러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2년에 한 번씩 잘라낼 준비를 하고, 차별을 합리화하고, 그리고 도급을 확대한다. 정부의 개악안이 통과되는 순간 우리 노동자들 앞에는 이런 고통이 기다린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고통을 보면서도 이런 고통을 양산하는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을 수용하자고 주장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법 개악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권과 자본의 노동법 개악을 막아낼 힘이 없을 수도 있다. 열심히 투쟁했으나 패배한다면 물론 우리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패배를 두려워하여 재수정 운운하게 된다면 우리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노동법 개악을 거부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는 길이 될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뒤집을 만한 힘이 없다면, 우리의 선택은 ‘명분이냐, 실리냐’가 아니다. 그 때 우리의 선택은 ‘명분과 실리 둘 다를 정부와 자본에게 내줄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저항으로 우리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후 투쟁의 가능성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심지어는 노동법 개악을 우리의 힘으로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노동계의 합의’라는 외형을 만들어서 정부에게 명분까지 달아주는 우를 범하지 말자.
그런데다가 우리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이 투쟁을 조직해오지 못했다. 형식적인 투쟁선언이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한 조직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투쟁 기조를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만드는 기간제 특별법은 당장에 폐기시켜야 한다. 파견법을 철폐할 힘이 없다면 개정안 자체를 상정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비정규직의 권리 입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국회 안에서의 타협 놀음에 조합원 대중을 동원하면서 말장난을 해왔던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힘을 발휘할 기회와 능력을 잃어버렸다. 투쟁의 힘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한 번 기조를 분명하게 하고 토론에 나서자.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투쟁할 것을 이야기하자. 조합원들에게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이 법안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득하자.
또한 이 투쟁은 노사관계 로드맵과 분리된 투쟁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은 애초부터 이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길들이기를 위해서 먼저 유연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완성하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비정규노동법 개악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노사관계 로드맵이었다. 지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결국 이것은 무산될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민주노총은 11월 투쟁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분리시키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서 투쟁 전선을 세우자. 끝까지 힘을 모으자.
뿐만 아니라 지금 정부의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서 이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투쟁의 주체를 새롭게 세우고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법상 보호’를 운운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을 내걸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쟁하려고 한다. 지금 기간제 노동자들은 정부 입법으로 인해서 벌써부터 해고를 당하고 있다.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이 노동자들의 해고와 고용불안은 계속된다. 이 투쟁에 힘을 다해야 한다. 집중해서 투쟁 주체를 세우고 맞서야 한다. 이 노동자들의 상황은 우리 전체 노동자들이 곧 경험하게 될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노동법 개악, 2년 간을 끌어온 개악안 저지투쟁 속에서 우리 모두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심지어는 무감각해졌다. 하지만 안정되게 일할 우리의 권리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송두리째 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재수정’이라는 미명 아래, 조금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자본과 정권에게 비정규직 전선의 주도력을 넘겨주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가 힘을 내는 만큼, 우리가 힘을 모으는 그만큼, 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에 균열을 만들고 투쟁을 예비할 수 있다. 그러니 작은 힘이라도 다시 모으고 다시 시작해보자.
물론 예전에도 이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이미 정해진 기조는 '노동법 개악 저지, 권리입법 쟁취'였기 때문에 쉽게 정권과 자본의 개악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조항 중심으로 재수정안을 낸다는 것은, 이 내용이 포함되기만 하면 정부의 개악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선언이기에 사실상 기조의 수정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기조 변화, 말장난으로 본질 흐리기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조항 중심으로 재수정안을 내는 것은 명백하게 투쟁 기조가 변한 것이다. 노동법 개악 자체를 저지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비정규직 권리 입법을 쟁취하겠다던 투쟁 기조가, 우리의 요구가 일부 들어가기만 하면 개악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 수정안은 정부의 ‘특별법’을 인정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기간제에 대한 정부의 입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다. 특별법을 통해 기간제를 일반적 고용형태로 만들려는 의도이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요구안은 ‘근로기준법’에 기간제 사유제한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사용사유만 명시하는 이상 새로운 법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수정안은 특별법을 인정하고 그 안에 사유제한을 넣자는 것이다. 이는 기간제에 대한 확대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특별법으로 기간제라는 고용형태를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게 되면 이후에는 이 법안의 시행령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기간제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파견법을 봐도 알 수 있다. 파견법은 처음 만들어질 때 26개로 허용업종을 제한했다. 하지만 이제 자본은 그 법안의 개정을 추진하면서 허용업종의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별법을 허용하면 ‘기간제’라는 고용형태가 일반화되고, 그 안에서 사용사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사유는 언제든지 확대되고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특별법을 인정하는 사유제한’은 결코 사유제한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였던 ‘근로기준법상의 사유제한’이 슬그머니 ‘특별법 상의 사유제한’으로 변질되고 있다.
재수정안 중 ‘고용의제 조항’(불법파견임이 확인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파견법에 넣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인사이트 코리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의 경우 몇 년간 일했는가와 관계없이 불법파견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그것은 지난한 투쟁의 성과였다. 그런데 재수정안에는 우리의 성과인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파견법에 명문화하는 대신 파견법 허용대상을 확대하는 정부의 안이 담겨 있다. 물론 정부의 안이 26개 허용업종을 그대로 두는 것일 수는 있으나, 시행령 등으로 파견허용 업종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파견허용 업종을 무한정 확대하는 것과 똑같다.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하더라도 고용의제 조항과 파견허용대상 확대는 결코 맞바꾸기를 할 것이 아니다.
고용의제 조항의 실효도 무척 의심스럽다. 검찰에서는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해서 합법파견이 확대되어야 불법파견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하겠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불법파견에 대한 제재는 파견법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에서는 몇 가지 시정조치 만으로 불법파견을 ‘진성도급’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제는 불법파견으로 인정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파견법 허용대상 확대와 불법파견의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서로 바꿔치기 하는 것은 노동자의 요구가 아니라 자본의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재수정안이 이런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기조는 여전히 ‘근로기준법 상의 기간제 사유제한’이고, ‘파견 허용업종 확대에 대한 저지’를 분명히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기를 원한다. 또는 민주노동당의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재수정안이 관철될 확률이 없기 때문에 단지 정부가 밀어붙이기로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재수정을 한다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어보자는 주장이 진심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부 법안의 수용이라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기조 변화의 과정
이런 기조 변화의 과정은 매우 불행하게도 각급 대중단위의 논의를 제대로 거치지도 않았다. 그냥 스리슬쩍 정부의 개악안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가면서도 마치 우리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스리슬쩍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기조의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매일노동뉴스 등을 통해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유포되었다. “명분만 갖고 투쟁하느라 실리를 잃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국 정부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 치기 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에서도 우리의 요구는 ‘노동법 개악 저지,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양대 노총 공조 복원을 논의하는 5월 14일 회의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기간제 사전 사용사유 제한’을 중심으로 비정규법안 재논의(재수정)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기조가 바뀐 것이다. 이런 기조변화의 근저에는 노사정위원회 재편과 복귀, 그리고 한국노총과의 공조복원이라는 입장이 깔려있었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를 통해 한국노총과의 공조를 이야기했고, 한국노총에서는 비정규권리입법을 제외하면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5월 9일 열린 상집 수련회에서 비정규법 재논의와 노사관계 민주화방안,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한·미 FTA 협상 저지 투쟁 등 5~8월 계획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결과, 양대 노총 공조 복원 추진을 재확인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5월 11일 양대 노총 사무총장 및 정책실무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양대 노총 공조복원과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재논의(재수정)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공유했다. 한국노총은 일관되게 정부 및 열린우리당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사실상 기간제 사유제한을 인정하지 않는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밀어 붙여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공조를 하고자 한다면 반노동자적인 한국노총의 기조를 변화시켜야지 민주노총의 기조가 변화되어서야 되겠는가?
15차 중집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한 이후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민주노총이 노동법 단일안을 만들어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사실상 정부의 법안을 수용하는 재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은 6월에 법안이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재수정을 통해서 정부의 입법을 받아들일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별다른 문제제기나 대중적 토론도 없이 투쟁의 기조가 슬쩍 변해버린 것이다.
왜곡된 특수고용 관련 논의
그런데다가 지금은 비정규직의 또 한 유형인 특수고용 관련 논의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뤄지고 있다. 중앙일보에 보도된 대로 정부는 이미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경제법상 보호’를 방침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공정거래법 등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점을 일부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정말로 ‘자영업자’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2000년 특수고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고 근로기준법을 어느 정도 적용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계속 후퇴했고, 법원의 판례도 반동적으로 기울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을 부정해왔다. 2003년 노사정위원회는 공익위원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직군을 분리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법 적용을 배제하고 ‘유사2권’을 주는 안을 내놓았다. '유사2권'이라 함은 노조가 아닌 단체를 결성할 권한을 준다는 것이고, 단체교섭에 대해서도 단체교섭의 효력을 인정하지는 않는 임의 교섭에 불과한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노동자성 완전 쟁취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특수고용 문제를 논의한다고 하면서 2003년도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도 ‘노동계의 합의라는 명분을 붙여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그동안 단결권이 워낙 심각하게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여를 해왔다. 그러나 이미 정부에서는 ’경제법상 보호‘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직군별로 분리를 해서 직군별로 다른 별도의 보호조치들을 약간씩 해주겠다고 하고 있다. 특수고용 논의에서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히려 왜곡과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정부의 의도가 관철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에서는 특수고용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노사정대표자회의의 논의를 통해 뭔가 특수고용을 위한 조치들이 나올 수 있을 것처럼 왜곡된 인식을 퍼뜨린다.
정부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현안으로 다루는 것에 합의한 이유는 ‘ILO 고용관계 권고안’에서 특수고용에 대한 노동자성을 명시했고, 정부는 이런 부담에 직면해서 ‘우리도 논의하고 있다’는 명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경제법상 보호’를 원칙으로 갖고 있는 정부 및 자본과는 아무리 논의해도 타협의 지점이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ILO 권고안에서 말한 바, 노동자성을 인정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을 통한 정세의 주도권 행사하기
정부에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재수정 논의를 진행하는 동안 나름대로 노동법 개악안 굳히기를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올해 초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차별 시정을 위한 기준을 정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이야기해왔다. 노동법 개정을 정부가 솔선해서 관철시키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2001년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입법 논의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노동계와의 합의를 통해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나옴으로써 이러한 기도는 무산되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이끌어내려고 했고, 이런 이데올로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이 선 2004년 9월 노동부가 단독으로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을 내밀면서 이것이 ‘비정규보호법안’이라고 거짓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이는 ‘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노동계와 합의의 외형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자신들이 다시 비정규 문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으로 표현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5만 4천명 정규직화’라고 주장하니 무척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법 개악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일부를 정규직화 함으로써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화할 수만 있다면 크게 손해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5만 4천명 정규직화’라는 주장도 허구적인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던 각종 구조조정 정부지침의 폐기 없이, 정부가 불법적으로 사용해온 비정규직들의 투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비정규노조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발표된 대책이 과연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화’라고 주장하지만 정규직화가 아니라 재정이 축소되면 얼마든지 계약해지 되는 ‘무기 계약 노동자’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부는 노동법 개악안 조항 중 하나인 ‘평생 계약직’으로 쓸 수 있는 노동자로 전환시켜서 계속 고용은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자를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상시업무 개념도 자신들이 마음대로 결정하여 사실상 상시업무인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처우도 개선되지 않고 ‘합리적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차별이 용인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합리적 외주화의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부문의 전 영역으로 외주화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비핵심업무는 외주화 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핵심업무에도 외주화를 할 수 있는 사유를 열어둠으로써 이제까지 진행된 외주화를 모두 정당화하고 이후에도 이루어질 모든 종류의 외주화를 합리화하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간제 노동자들은 이제 외주·용역·도급 등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공공부문 사유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뭔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면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 정세에서 주도력을 확보한다. 이 개악안이 뭔가 노동자에게 유리한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놓는다. 하지만 노동부의 ‘Q&A 자료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결국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안이다. 돈도 많이 안 들고 합리적인 차별을 만들고, 외주화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노동부 입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법 개악에 대비하는 자본가들의 발 빠른 행보
정부만 정세의 주도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은 이미 법안이 통과될 것에 대비하여 발 빠르게 대응을 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도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재계약을 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내리는가 하면, 서울대병원에서도 7년 이상 장기적으로 계약을 해왔던 노동자들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내고 있다. 이미 2년 이상 일해 왔던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간제 특별법이 ‘2년 이상의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법’이 아니라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법’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장기계약직들에게 자칫 혜택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기간제를 없애고 외주화로 가는 곳도 있다. 철도노조가 입수한 철도공사의 ‘비정규직 보호 법안 관련 비정규 계약직 대책 검토(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따르면 철도공사는 지난 7월 24일 기획조정본부 회의를 통해 상시업무 직접고용 계약직 노동자들을 2007년 1월 1일자로 전면 외주화 할 것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규모는 3,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정규직과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역무, 수송, 개집표, 종합안내, 홈안내, 방송원 등 모든 직접고용 계약직을 외주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나 공사에서 오히려 기간제 법안을 핑계삼아 기간제 노동자들을 외주화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은행권에서는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해서 ‘독립직군제’를 실시하면서 고용은 안정되지만 차별을 영구화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은행권이 말하고 있는 고용안정 논리는 허구이다. ‘독립직군제’는 노동자들을 2년 간 시험 사용을 해서 평점을 매기고 A, B, C, D 등급 중 C, D 등급을 받은 사람은 계약에서 탈락시키는 제도이다. 간신히 계약에 성공해서 무기계약 노동자가 된다 하더라도 승진도 없고 성과급제로 운영하면서 계속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나마 나중에는 도급화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파견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불법파견을 진성도급화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작업장에서의 몇 가지 조치, 예를 들어 도급 업체에서 관리자를 따로 두어서 작업 관리를 하게 하거나 자바라 등으로 작업장을 분리하는 것, 그리고 전환배치를 통해서 사내하청만으로 작업공정을 유지하는 것 등을 통해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될 여지 자체를 없애고 있다. 물론 예전처럼 도급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 통제는 여전하지만 음성적인 방식으로만 관리 통제가 이루어지고 눈에 드러나는 곳에서는 마치 도급업체가 전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견허용이 확대될 것에 대비해서 대기업들이 파견사업에 진출을 하고 있다. 아직 파견법이 개악되지 않아서 파견허용업종이 확대되지 않았는데도 파견이 가능하지 않는 곳에 이미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한 돈벌이가 횡행한다.
이렇게 노동법 개악이 진행되는 동안, 그 폐해는 이미 눈에 드러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2년에 한 번씩 잘라낼 준비를 하고, 차별을 합리화하고, 그리고 도급을 확대한다. 정부의 개악안이 통과되는 순간 우리 노동자들 앞에는 이런 고통이 기다린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고통을 보면서도 이런 고통을 양산하는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을 수용하자고 주장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법 개악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권과 자본의 노동법 개악을 막아낼 힘이 없을 수도 있다. 열심히 투쟁했으나 패배한다면 물론 우리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패배를 두려워하여 재수정 운운하게 된다면 우리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노동법 개악을 거부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는 길이 될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뒤집을 만한 힘이 없다면, 우리의 선택은 ‘명분이냐, 실리냐’가 아니다. 그 때 우리의 선택은 ‘명분과 실리 둘 다를 정부와 자본에게 내줄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저항으로 우리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후 투쟁의 가능성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심지어는 노동법 개악을 우리의 힘으로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노동계의 합의’라는 외형을 만들어서 정부에게 명분까지 달아주는 우를 범하지 말자.
그런데다가 우리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이 투쟁을 조직해오지 못했다. 형식적인 투쟁선언이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한 조직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투쟁 기조를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만드는 기간제 특별법은 당장에 폐기시켜야 한다. 파견법을 철폐할 힘이 없다면 개정안 자체를 상정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비정규직의 권리 입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국회 안에서의 타협 놀음에 조합원 대중을 동원하면서 말장난을 해왔던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힘을 발휘할 기회와 능력을 잃어버렸다. 투쟁의 힘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한 번 기조를 분명하게 하고 토론에 나서자.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투쟁할 것을 이야기하자. 조합원들에게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이 법안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득하자.
또한 이 투쟁은 노사관계 로드맵과 분리된 투쟁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은 애초부터 이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길들이기를 위해서 먼저 유연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완성하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비정규노동법 개악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노사관계 로드맵이었다. 지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결국 이것은 무산될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민주노총은 11월 투쟁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분리시키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서 투쟁 전선을 세우자. 끝까지 힘을 모으자.
뿐만 아니라 지금 정부의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서 이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투쟁의 주체를 새롭게 세우고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법상 보호’를 운운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을 내걸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쟁하려고 한다. 지금 기간제 노동자들은 정부 입법으로 인해서 벌써부터 해고를 당하고 있다.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이 노동자들의 해고와 고용불안은 계속된다. 이 투쟁에 힘을 다해야 한다. 집중해서 투쟁 주체를 세우고 맞서야 한다. 이 노동자들의 상황은 우리 전체 노동자들이 곧 경험하게 될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노동법 개악, 2년 간을 끌어온 개악안 저지투쟁 속에서 우리 모두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심지어는 무감각해졌다. 하지만 안정되게 일할 우리의 권리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송두리째 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재수정’이라는 미명 아래, 조금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자본과 정권에게 비정규직 전선의 주도력을 넘겨주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가 힘을 내는 만큼, 우리가 힘을 모으는 그만큼, 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에 균열을 만들고 투쟁을 예비할 수 있다. 그러니 작은 힘이라도 다시 모으고 다시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