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제도화인가 계급주체 형성인가
들어가며
2007년은 작년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대규모 사업장을 산별체계로 전환시킨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금속노조)’의 첫해다. 그만큼 노동운동 내외적으로 많은 주목과 기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금속노조는 전노협 시절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그 성과와 한계가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산별운동을 평가할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려할 만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했다. 하나는 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투쟁에 관해 사측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중앙이 과도하게 개입하여 위로금을 받는 것으로 합의한 사건이다. 이는 즉각 활동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노동자의 자존심을 돈받고 팔아넘겼다”, “금속노조 중앙의 일방적인 직권조인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대책위까지 만들어져 현장에서 ‘하이닉스 직권조인 합의서 폐기 서명’에 들어가는 등 비판과 항의가 지속되고 있다. 이 사건은 금속노조 집행부의 핵심이라고 할 수석부위원장의 직권조인 때문에 불거진 것으로,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협약체결 원칙과도 전혀 어긋나는 행동이다. ‘산별교섭’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별교섭을 위한 최소한의 내부적인 절차를 어기는 이중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현 금속노조 집행부가 몰두하는 “산별교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대표적인 투쟁사업장인 이젠텍 문제로 개최된 ‘민주노조 사수, 이젠텍 자본 응징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투쟁방침을 바꾼다며 “앞에서 열심히 싸우고 뒤에서는 노동부와 정례회의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가겠다”, “평화집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엄벌하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금속노조가 임단협을 수행하고 있고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이 사소한 것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충돌을 벌이게 되면 산별교섭에 부담이 되니 행동은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꺾었다”, “금속노조 투쟁의 역사를 부정했다” 등 여러 가지 비판이 이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통합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현재 산별노조 운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쟁점들, 즉 산별노조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산별은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산별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등의 문제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가 지나치게 교섭에만 치중하여 투쟁성, 변혁성을 고취하는데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산별전환 과정의 문제
2006년 말 현재 민주노총의 산별 조직률은 76.7%이고, 조합원 769,218명 가운데 589,637명이 산별노조 소속이라고 한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통합금속노조, 공공노조, 운수노조, 건설노조 등 속속 산별전환 노조가 생겼다. 그리고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화학섬유, 민간서비스 등 미전환 조직을 중심으로 6월 18일~29일 사이에 산별전환 총투표를 추진할 예정이며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90% 이상의 조합원이 산별노조 조합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전환과는 달리 질적인 운동의 발전은 아직 더디다고 할 수 있다.
산별전환이 촉진된 배경에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투쟁이 패배해온 상황(실질적인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상태의 지속, 사회적 타협주의의 유혹, 지배계급의 여론 공세, 민주노총 계급 대표성의 위기 등)과 복수노조 및 전임자 문제에 대해 기업별 노조 체계가 가지는 위기감이 있다. 이러한 지난 몇 년의 산별추진 과정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산별을 ‘규모 확대’ 중심으로 접근한 점이다. 복수노조나 노사관계로드맵 도입 등으로 인한 노동조합의 환경변화로 인한 불안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로 인한 산업구조조정과 산업공동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덩치를 키워 교섭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고용에 대한 노동자의 전반적인 불안감에 기반하여, 규모를 확대하자는 논리로 산별전환을 성사시킨 것이다. 물론 노동자는 하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단일한 노조로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규모를 키우는 것이 곧바로 투쟁력의 확대와 운동성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떠한 투쟁과 운동을 할 것인가에 더 큰 무게중심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둘째, 산별의 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 등이 드러났다. 이는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의 문제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사업장 교섭에서 산별협약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어서 커다란 논란이 되었다. 또한 문제제기 된 내용이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되지 못했고 결국 조직이 분리되었다.
셋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체계를 만드는 데 미흡했다. 이는 기업지부 인정 문제로 드러났다. 연대운동을 활성화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의 담장을 넘어 사회운동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중심이 되어 주변의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금속노조에서는 한시적인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조직체계가 만들어졌고, 공공노조에서도 업종본부와 지역본부로 이원화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넷째,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에 대한 계획이 부족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인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계급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조직화에 우선적인 중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낮고, 그마저도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조직화는 사활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별전환 과정에서 전환 자체에 초점이 대부분 맞춰진 까닭에 새로운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별전환을 하면서 재정이 줄어 활동가들을 줄이는 경우도 있었다.
제도화 전략의 위험성
현재 민주노총은 산별교섭의 법제도적 보장과 사용자단체와의 교섭 성사를 실질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연맹의 경우 이를 ‘입법과 협상’ 양 측면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며 산별노사관계의 안착과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위한 민주노총 차원의 총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노사간 또는 노사정간 협상을 통해서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별교섭 제도화와 관련하여 △산별교섭 및 교섭대표단 구성 의무화, △단협 효력 확장제도 개선, △산별협약의 최저기준 명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6월 임시국회에 입법안으로 제출하여 사회적 논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또한 국회 입법 추진과 함께 노정, 노사, 노사정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제도화를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법제도적으로 사용자들을 산별교섭에 나서게 할 아무런 강제장치가 없어서,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거부하면 노조가 실력행사로 압박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자동차 같은 대사업장이 교섭을 거부하면 기아, 쌍용, 대우 등 다른 자동차 사용자들도 교섭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산별교섭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화를 더욱 사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도화 전략,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협상 중심 전략은 문제가 있다. 한편으로 이는 산별노조의 존재 목적에 대한 것인데, 즉 산별노조가 산별 중앙교섭 달성을 최대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물론 노조가 교섭과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 혹은 교섭과 협상 자체의 목적은 노동자간 연대와 단결을 통해 노동자를 계급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제도화된 틀, 제도적 공간 확보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순간 노동자운동의 역동성과 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은 부차화되고 교섭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산별 중앙교섭 쟁취를 절대적 과제로 부각하는 논리가 이러한 제도적 공간의 확보를 현 시기 노동운동의 최대목표로 잡는 입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할 것이다. 안정적인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나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취약한 노동조합운동으로서는 매력적인 노선으로 여길 수 있지만, 계급주체 형성전략의 뒷받침 없이 심지어 그것과 반대로 진행되는 제도화는 노동조합운동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화를 위한 협상 중심성의 문제가 있다. 노동자운동에 있어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간의 힘 관계가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라는 점은 모두가 동의한다. 아무리 작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연대하여 스스로의 힘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별교섭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갈등만 적절히 관리하려고 하는 정부나 사용자들에게 협상을 통하여 산별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적다. 또한 그러한 설득 논리라는 것도, 산별체계를 정착시키면 파업이 줄어들고 노사관계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따위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 시기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싼 노사정 협상에서도 확인했듯이 상층 중심의 타협적 과정이 될 우려가 높다. 특히 민주노총 위원장이 올 초 파업을 남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정부 협상창구 마련에 골몰하는 가운데, 언론에서는 이로 인해 파업건수가 작년에 비해 39% 감소하고 근로손실일수도 59% 감소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게다가 노사화합선언도 132건이나 된다고 한다.
산별교섭 성사가 최대 목표?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대표적인 산별노조의 2007년 최대 목표는 사용자단체 구성과 산별교섭 성사인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중앙 산별교섭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고 있고, “현대차가 올해 실질적으로 중앙산별교섭에 처음부터 결합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므로 “현대차 임단협에 직접 내려가서 사측으로부터 최소한 내년에는 산별 중앙교섭에 결합하겠다는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 성사와 교섭구조 마련이라는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별교섭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별 교섭을 통해서 기업 내 제한된 범위의 조합원들의 이해를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미조직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요구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일반화하고 쟁취하는 투쟁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노동조합의 교섭구조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산별교섭 쟁취는 이러한 운동적 목표를 실현하는 투쟁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 성사를 절대적 목표로 앞세우는 것은 걱정스러운 점이 많다. 이러한 사고와 사업방식은 목표와 수단을 전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금속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대사업장에 대한 압박이 우선시되어 대사업장 중심의 임단협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중앙교섭 성사를 위해 지부나 지회의 투쟁이 봉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이닉스나 이젠텍을 둘러싼 문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타결 가능한 교섭을 위해서 요구안의 수준도 조정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사내하청노조 단체교섭 체결 당사자가 원청사용자임을 명시 △총고용인원 유지와 결원 시 조합원 우선채용 △성과급 축소와 임금피크제 도입 저지 △실노동시간을 2008년부터 2,500시간으로 제한 △사내하청노동자에 기업지부, 지회의 단협 동일적용 △장기투쟁사업장 관련 민형사상 소송 금지와 부당해고 판정 시 즉각 복직 등을 교섭 요구안에 넣자는 수정안들이 부결된 바 있다. 결국 산별교섭을 물신화하거나 교섭 성사 자체에 최대의 방점을 찍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지역과 현장이 소외될 수 있는 것이다.
계급주체 형성 전략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공세와 노동의 불안정화, 이에 대한 기존 노조운동의 대응 실패는 광범위한 혁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가 조직적 대안으로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조직 자체가 대안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대안적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틀거리를 갖추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때,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 노조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 복원 등이 혁신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 산별노조 역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복무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조운동의 본령은 노동자의 단결이므로, 기존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 중심의 노동자를 넘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계획 수립과 실천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제도화보다는 계급주체 형성 전략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권리를 실현하고 나아가 노동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은 바로 단결에 기반한 집단적 조직화다. 따라서 산별교섭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산별노조의 완성이 아니며, 교섭 모델 중심은 노동자 사이의 연대 강화와 계급형성이라는 의미를 가리게 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과제는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지역 연대운동의 강화, 사회운동과의 결합 등으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실 산별전환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 되었던 것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였다. 실제로 작년에 통과된 비정규 악법이 오는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와 계약해지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저항과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가 비정규직에 대해서 이전 기업별 노조와는 뭔가 다른 형태의 운동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바도 크다. 이에 사실상 “비정규직 관련 활동이 산별노조의 ‘산별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가 산별노조의 계급적 대표성을 가늠하는 문제” 등의 분석이 많다. 금속의 경우 160만 금속노동자 가운데 양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30만 명이 안 되고 비율로도 20%가 안 된다. 이에 금속노조는 500인 이상의 지회에 반드시 담당자를 두게 하고, 중앙에 미조직․비정규 특위를 구성하여 지역과 중앙사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역의 공단을 중심으로 전략조직화를 추동하고 삼성과 LG 등 무노조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방안을 세운다. 보건의료노조와 공공노조 역시 각 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차별철폐, 노동기본권 보장을 주요한 과제로 앞세우고 있다. 민주노총의 2007년 산별의제에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 및 근로조건 균등처우,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불법행위 근절, 산별 최저임금 등이 주요하게 제시되어 있고 그 방안으로 산업별 실태조사, 차별철폐 3개년 계획 수립, 비정규직의 산별노조 가입운동 등을 내놓고 있다.
산별의 비정규직 문제는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 가능하다. 첫째, 비정규직 조직화이다. 기존의 노조활동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전략조직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관건은 노조활동의 무게중심을 이 방향으로 옮기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조직화는 단지 몇몇 활동가들과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별이 기존 기업별 노조의 통합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노조활동의 비중, 사업의 중심성에 있어 조직화 사업이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의 투입, 적절한 전략조직화 사업, 지부 차원의 지역적 일상적 조직화 활동이 필요하다.
둘째, 조직된 비정규직의 조직편제 문제다. 금속노조 방침으로는 1사 1노조를 원칙으로 하되, 해당 단위(비정규노조)의 결정에 따른다고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비정규직 지회를 따로 두는 것보다는 같은 사업장에 포함시키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노조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해가 일반적이지만, 같은 노조로 편제되었을 때 비정규직의 독자성이 침해되거나 발언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정파에 따른 견해 차이도 있어서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 사정이 반영된 결과로 금속노조 방침에도 1사 1노조 원칙 외에 위와 같은 단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노동자 간 단결을 최대한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비정규직의 독자성을 살리면서 정규직과 통합하는 방안, 당분간 비정규직 지회 체제에서 공동사업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안 등이 모색될 수 있다.
셋째, 산별노조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요구 측면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중앙교섭 요구에 비정규 노동자 조합활동 및 고용보장, 불법파견 및 용역사용 금지, 임시직 정규직화, 사내하청 처우개선,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 산별최저임금(936,320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비정규 노동자의 산별노조 가입, 비정규직 사유제한과 정규직화, 차별철폐, 고용안정,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인상, 산별최저임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공공노조는 비정규악법 폐기, 공공부문 민간위탁과 외주용역 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감시단속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완전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서 있어서도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고 단결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중앙교섭 요구 가운데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동일 단협 적용 등이 부결된 것은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계급 내 단결을 위한 운동과 투쟁이 관건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운동 활성화
산별전환에서 노동자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중심 방안으로 업종이나 기업 체계를 넘어서는 지역 중심 체계가 제기되고 논쟁되었다. 금속노조는 지역지부로의 재편을 결의했지만 결국 기업지부를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안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논쟁도 컸다. 이러한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은 현재의 단결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까지 대사업장 기업지부를 해소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조직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업지부가 지역지부 사업에 결합하게 하고 기업지부 해산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자는 것은 첫째, 여러 사업장이 포함된 지역지부가 지역의 중소영세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유용하고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조직된 지역의 공단 등 밀집지역에 대한 조직화 논의도 진행 중이다. 특히 공공노조의 경우 지역의 환경미화, 청소용역, 시설관리 등 공공부문, 지자체의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면서 지역 공공서비스노조 투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최저임금 쟁취투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의 저임금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둘째, 지역 차원의 공동투쟁의 질을 높이는 것이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지역 중심으로 조직구조를 가져간다고 해서 연대가 잘 되는 것은 아니고, 산별로 전환했는데 오히려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에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생활적 지리적 조건을 공유하면서 노동자 연대를 실현하는 것은 기업 단위에 갇힌 노동자 의식을 넘어설 수 있는 유력한 계기이다. 금속 지역지부에서 공동투쟁, 지역파업 등의 경험은 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자본유치를 명분으로 노동조건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셋째, 지역 민중들의 보편적 이해에 기반한 투쟁으로 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개발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지역 환경파괴와 오염, 상수도 사유화 등 지역적 사안에 대한 대응을 통해 지역의 민중운동,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지역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을 위해서는 산별의 지역지부 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지역본부가 일차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차원에서의 노동자 공동교육, 학습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기업별 체계를 넘어서서 정규직 대사업장 노동자들을 단위사업장 내의 이슈만이 아니라 더 확장되고 더 사회적인 운동과 투쟁으로 이끌어 내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역운동의 강화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투쟁, 사회운동과의 결합
산별노조의 투쟁, 파업은 사회적인 투쟁과 결합되었을 때 더 위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산별이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고 계급형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전반적인 사회변혁 투쟁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다. 갈수록 신자유주의 공세가 격화되고 한․미 FTA 등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존을 위협하는 정권과 자본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속노조에서 한․미 FTA 총파업을 현장 대의원들의 발의로 결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은 금속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노조에서 받아안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과의 결합에 있어 현재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회운동포럼’도 하나의 유력한 형태다. 노조조직과 당 지역조직을 비롯하여 사회운동 단체, 학생운동 단체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운동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연대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키고 운동을 혁신하려는 시도가 추진되어야 한다. 노동운동 차원에서 보아도 현장의 노동자,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노동자들을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계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호 교육과 운동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서도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요구된다. 지역의 단체, 당의 지역조직, 노조 등이 연합하여 지역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연대의 힘을 발휘하면서 조직화를 확장하는 것이 성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운동의 전환을 위하여
산별에 거는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산별전환이 운동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인 혁신이 있어야 운동이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노조 전환은 단지 하나의 운동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 산별전환이 자동적으로 기업의 울타리에 갇힌 노조운동을 산업으로 지역으로 계급적 연대로 끌어내는 것은 아닌 만큼 더 많은 노력이 산별전환 과정과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회적 투쟁과 사회운동과의 결합 등은 산별이라는 형식을 떠나서 노동자 운동의 본령으로서 제기되는 것으로, 모두 노동자 운동이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도화 전략보다는 계급형성 전략을, 노조의 생존을 위한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교섭을 우선하기 보다는 운동중심을 지향하는 방향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2007년은 작년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대규모 사업장을 산별체계로 전환시킨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금속노조)’의 첫해다. 그만큼 노동운동 내외적으로 많은 주목과 기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금속노조는 전노협 시절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그 성과와 한계가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산별운동을 평가할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려할 만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했다. 하나는 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투쟁에 관해 사측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중앙이 과도하게 개입하여 위로금을 받는 것으로 합의한 사건이다. 이는 즉각 활동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노동자의 자존심을 돈받고 팔아넘겼다”, “금속노조 중앙의 일방적인 직권조인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대책위까지 만들어져 현장에서 ‘하이닉스 직권조인 합의서 폐기 서명’에 들어가는 등 비판과 항의가 지속되고 있다. 이 사건은 금속노조 집행부의 핵심이라고 할 수석부위원장의 직권조인 때문에 불거진 것으로,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협약체결 원칙과도 전혀 어긋나는 행동이다. ‘산별교섭’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별교섭을 위한 최소한의 내부적인 절차를 어기는 이중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현 금속노조 집행부가 몰두하는 “산별교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다른 하나는 대표적인 투쟁사업장인 이젠텍 문제로 개최된 ‘민주노조 사수, 이젠텍 자본 응징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투쟁방침을 바꾼다며 “앞에서 열심히 싸우고 뒤에서는 노동부와 정례회의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가겠다”, “평화집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엄벌하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금속노조가 임단협을 수행하고 있고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이 사소한 것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충돌을 벌이게 되면 산별교섭에 부담이 되니 행동은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꺾었다”, “금속노조 투쟁의 역사를 부정했다” 등 여러 가지 비판이 이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통합 금속노조 지도부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현재 산별노조 운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쟁점들, 즉 산별노조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산별은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산별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등의 문제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가 지나치게 교섭에만 치중하여 투쟁성, 변혁성을 고취하는데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다.
산별전환 과정의 문제
2006년 말 현재 민주노총의 산별 조직률은 76.7%이고, 조합원 769,218명 가운데 589,637명이 산별노조 소속이라고 한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통합금속노조, 공공노조, 운수노조, 건설노조 등 속속 산별전환 노조가 생겼다. 그리고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화학섬유, 민간서비스 등 미전환 조직을 중심으로 6월 18일~29일 사이에 산별전환 총투표를 추진할 예정이며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90% 이상의 조합원이 산별노조 조합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전환과는 달리 질적인 운동의 발전은 아직 더디다고 할 수 있다.
산별전환이 촉진된 배경에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투쟁이 패배해온 상황(실질적인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상태의 지속, 사회적 타협주의의 유혹, 지배계급의 여론 공세, 민주노총 계급 대표성의 위기 등)과 복수노조 및 전임자 문제에 대해 기업별 노조 체계가 가지는 위기감이 있다. 이러한 지난 몇 년의 산별추진 과정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산별을 ‘규모 확대’ 중심으로 접근한 점이다. 복수노조나 노사관계로드맵 도입 등으로 인한 노동조합의 환경변화로 인한 불안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로 인한 산업구조조정과 산업공동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덩치를 키워 교섭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고용에 대한 노동자의 전반적인 불안감에 기반하여, 규모를 확대하자는 논리로 산별전환을 성사시킨 것이다. 물론 노동자는 하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단일한 노조로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규모를 키우는 것이 곧바로 투쟁력의 확대와 운동성의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떠한 투쟁과 운동을 할 것인가에 더 큰 무게중심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둘째, 산별의 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 조직 내 민주주의 문제 등이 드러났다. 이는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의 문제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사업장 교섭에서 산별협약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어서 커다란 논란이 되었다. 또한 문제제기 된 내용이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되지 못했고 결국 조직이 분리되었다.
셋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체계를 만드는 데 미흡했다. 이는 기업지부 인정 문제로 드러났다. 연대운동을 활성화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의 담장을 넘어 사회운동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중심이 되어 주변의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금속노조에서는 한시적인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조직체계가 만들어졌고, 공공노조에서도 업종본부와 지역본부로 이원화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넷째,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에 대한 계획이 부족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인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계급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조직화에 우선적인 중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낮고, 그마저도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조직화는 사활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별전환 과정에서 전환 자체에 초점이 대부분 맞춰진 까닭에 새로운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별전환을 하면서 재정이 줄어 활동가들을 줄이는 경우도 있었다.
제도화 전략의 위험성
현재 민주노총은 산별교섭의 법제도적 보장과 사용자단체와의 교섭 성사를 실질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연맹의 경우 이를 ‘입법과 협상’ 양 측면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며 산별노사관계의 안착과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위한 민주노총 차원의 총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노사간 또는 노사정간 협상을 통해서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별교섭 제도화와 관련하여 △산별교섭 및 교섭대표단 구성 의무화, △단협 효력 확장제도 개선, △산별협약의 최저기준 명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6월 임시국회에 입법안으로 제출하여 사회적 논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또한 국회 입법 추진과 함께 노정, 노사, 노사정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제도화를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법제도적으로 사용자들을 산별교섭에 나서게 할 아무런 강제장치가 없어서,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거부하면 노조가 실력행사로 압박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자동차 같은 대사업장이 교섭을 거부하면 기아, 쌍용, 대우 등 다른 자동차 사용자들도 교섭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산별교섭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화를 더욱 사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도화 전략,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협상 중심 전략은 문제가 있다. 한편으로 이는 산별노조의 존재 목적에 대한 것인데, 즉 산별노조가 산별 중앙교섭 달성을 최대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물론 노조가 교섭과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 혹은 교섭과 협상 자체의 목적은 노동자간 연대와 단결을 통해 노동자를 계급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제도화된 틀, 제도적 공간 확보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순간 노동자운동의 역동성과 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은 부차화되고 교섭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산별 중앙교섭 쟁취를 절대적 과제로 부각하는 논리가 이러한 제도적 공간의 확보를 현 시기 노동운동의 최대목표로 잡는 입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할 것이다. 안정적인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나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취약한 노동조합운동으로서는 매력적인 노선으로 여길 수 있지만, 계급주체 형성전략의 뒷받침 없이 심지어 그것과 반대로 진행되는 제도화는 노동조합운동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화를 위한 협상 중심성의 문제가 있다. 노동자운동에 있어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간의 힘 관계가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라는 점은 모두가 동의한다. 아무리 작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연대하여 스스로의 힘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별교섭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갈등만 적절히 관리하려고 하는 정부나 사용자들에게 협상을 통하여 산별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적다. 또한 그러한 설득 논리라는 것도, 산별체계를 정착시키면 파업이 줄어들고 노사관계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따위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 시기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싼 노사정 협상에서도 확인했듯이 상층 중심의 타협적 과정이 될 우려가 높다. 특히 민주노총 위원장이 올 초 파업을 남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정부 협상창구 마련에 골몰하는 가운데, 언론에서는 이로 인해 파업건수가 작년에 비해 39% 감소하고 근로손실일수도 59% 감소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게다가 노사화합선언도 132건이나 된다고 한다.
산별교섭 성사가 최대 목표?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대표적인 산별노조의 2007년 최대 목표는 사용자단체 구성과 산별교섭 성사인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중앙 산별교섭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고 있고, “현대차가 올해 실질적으로 중앙산별교섭에 처음부터 결합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므로 “현대차 임단협에 직접 내려가서 사측으로부터 최소한 내년에는 산별 중앙교섭에 결합하겠다는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섭 성사와 교섭구조 마련이라는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별교섭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별 교섭을 통해서 기업 내 제한된 범위의 조합원들의 이해를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미조직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요구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일반화하고 쟁취하는 투쟁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노동조합의 교섭구조를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산별교섭 쟁취는 이러한 운동적 목표를 실현하는 투쟁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산별교섭 성사를 절대적 목표로 앞세우는 것은 걱정스러운 점이 많다. 이러한 사고와 사업방식은 목표와 수단을 전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금속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대사업장에 대한 압박이 우선시되어 대사업장 중심의 임단협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중앙교섭 성사를 위해 지부나 지회의 투쟁이 봉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이닉스나 이젠텍을 둘러싼 문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타결 가능한 교섭을 위해서 요구안의 수준도 조정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사내하청노조 단체교섭 체결 당사자가 원청사용자임을 명시 △총고용인원 유지와 결원 시 조합원 우선채용 △성과급 축소와 임금피크제 도입 저지 △실노동시간을 2008년부터 2,500시간으로 제한 △사내하청노동자에 기업지부, 지회의 단협 동일적용 △장기투쟁사업장 관련 민형사상 소송 금지와 부당해고 판정 시 즉각 복직 등을 교섭 요구안에 넣자는 수정안들이 부결된 바 있다. 결국 산별교섭을 물신화하거나 교섭 성사 자체에 최대의 방점을 찍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지역과 현장이 소외될 수 있는 것이다.
계급주체 형성 전략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공세와 노동의 불안정화, 이에 대한 기존 노조운동의 대응 실패는 광범위한 혁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가 조직적 대안으로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조직 자체가 대안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대안적 혁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틀거리를 갖추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때,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 노조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 복원 등이 혁신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 산별노조 역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복무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조운동의 본령은 노동자의 단결이므로, 기존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 중심의 노동자를 넘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목적의식적인 계획 수립과 실천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제도화보다는 계급주체 형성 전략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권리를 실현하고 나아가 노동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은 바로 단결에 기반한 집단적 조직화다. 따라서 산별교섭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산별노조의 완성이 아니며, 교섭 모델 중심은 노동자 사이의 연대 강화와 계급형성이라는 의미를 가리게 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과제는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지역 연대운동의 강화, 사회운동과의 결합 등으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실 산별전환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 되었던 것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였다. 실제로 작년에 통과된 비정규 악법이 오는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와 계약해지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저항과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가 비정규직에 대해서 이전 기업별 노조와는 뭔가 다른 형태의 운동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바도 크다. 이에 사실상 “비정규직 관련 활동이 산별노조의 ‘산별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가 산별노조의 계급적 대표성을 가늠하는 문제” 등의 분석이 많다. 금속의 경우 160만 금속노동자 가운데 양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30만 명이 안 되고 비율로도 20%가 안 된다. 이에 금속노조는 500인 이상의 지회에 반드시 담당자를 두게 하고, 중앙에 미조직․비정규 특위를 구성하여 지역과 중앙사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역의 공단을 중심으로 전략조직화를 추동하고 삼성과 LG 등 무노조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방안을 세운다. 보건의료노조와 공공노조 역시 각 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차별철폐, 노동기본권 보장을 주요한 과제로 앞세우고 있다. 민주노총의 2007년 산별의제에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 및 근로조건 균등처우,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불법행위 근절, 산별 최저임금 등이 주요하게 제시되어 있고 그 방안으로 산업별 실태조사, 차별철폐 3개년 계획 수립, 비정규직의 산별노조 가입운동 등을 내놓고 있다.
산별의 비정규직 문제는 세 가지 방향에서 접근 가능하다. 첫째, 비정규직 조직화이다. 기존의 노조활동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전략조직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관건은 노조활동의 무게중심을 이 방향으로 옮기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조직화는 단지 몇몇 활동가들과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별이 기존 기업별 노조의 통합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노조활동의 비중, 사업의 중심성에 있어 조직화 사업이 확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의 투입, 적절한 전략조직화 사업, 지부 차원의 지역적 일상적 조직화 활동이 필요하다.
둘째, 조직된 비정규직의 조직편제 문제다. 금속노조 방침으로는 1사 1노조를 원칙으로 하되, 해당 단위(비정규노조)의 결정에 따른다고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비정규직 지회를 따로 두는 것보다는 같은 사업장에 포함시키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노조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해가 일반적이지만, 같은 노조로 편제되었을 때 비정규직의 독자성이 침해되거나 발언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정파에 따른 견해 차이도 있어서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 사정이 반영된 결과로 금속노조 방침에도 1사 1노조 원칙 외에 위와 같은 단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노동자 간 단결을 최대한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비정규직의 독자성을 살리면서 정규직과 통합하는 방안, 당분간 비정규직 지회 체제에서 공동사업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안 등이 모색될 수 있다.
셋째, 산별노조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요구 측면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중앙교섭 요구에 비정규 노동자 조합활동 및 고용보장, 불법파견 및 용역사용 금지, 임시직 정규직화, 사내하청 처우개선,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 산별최저임금(936,320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비정규 노동자의 산별노조 가입, 비정규직 사유제한과 정규직화, 차별철폐, 고용안정,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인상, 산별최저임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공공노조는 비정규악법 폐기, 공공부문 민간위탁과 외주용역 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감시단속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완전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서 있어서도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고 단결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중앙교섭 요구 가운데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동일 단협 적용 등이 부결된 것은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계급 내 단결을 위한 운동과 투쟁이 관건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운동 활성화
산별전환에서 노동자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중심 방안으로 업종이나 기업 체계를 넘어서는 지역 중심 체계가 제기되고 논쟁되었다. 금속노조는 지역지부로의 재편을 결의했지만 결국 기업지부를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안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논쟁도 컸다. 이러한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은 현재의 단결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까지 대사업장 기업지부를 해소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조직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업지부가 지역지부 사업에 결합하게 하고 기업지부 해산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자는 것은 첫째, 여러 사업장이 포함된 지역지부가 지역의 중소영세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유용하고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조직된 지역의 공단 등 밀집지역에 대한 조직화 논의도 진행 중이다. 특히 공공노조의 경우 지역의 환경미화, 청소용역, 시설관리 등 공공부문, 지자체의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면서 지역 공공서비스노조 투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최저임금 쟁취투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의 저임금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둘째, 지역 차원의 공동투쟁의 질을 높이는 것이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지역 중심으로 조직구조를 가져간다고 해서 연대가 잘 되는 것은 아니고, 산별로 전환했는데 오히려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에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생활적 지리적 조건을 공유하면서 노동자 연대를 실현하는 것은 기업 단위에 갇힌 노동자 의식을 넘어설 수 있는 유력한 계기이다. 금속 지역지부에서 공동투쟁, 지역파업 등의 경험은 이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자본유치를 명분으로 노동조건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셋째, 지역 민중들의 보편적 이해에 기반한 투쟁으로 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개발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지역 환경파괴와 오염, 상수도 사유화 등 지역적 사안에 대한 대응을 통해 지역의 민중운동,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지역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을 위해서는 산별의 지역지부 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지역본부가 일차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차원에서의 노동자 공동교육, 학습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기업별 체계를 넘어서서 정규직 대사업장 노동자들을 단위사업장 내의 이슈만이 아니라 더 확장되고 더 사회적인 운동과 투쟁으로 이끌어 내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역운동의 강화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투쟁, 사회운동과의 결합
산별노조의 투쟁, 파업은 사회적인 투쟁과 결합되었을 때 더 위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산별이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고 계급형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전반적인 사회변혁 투쟁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다. 갈수록 신자유주의 공세가 격화되고 한․미 FTA 등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와 생존을 위협하는 정권과 자본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속노조에서 한․미 FTA 총파업을 현장 대의원들의 발의로 결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은 금속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노조에서 받아안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과의 결합에 있어 현재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회운동포럼’도 하나의 유력한 형태다. 노조조직과 당 지역조직을 비롯하여 사회운동 단체, 학생운동 단체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운동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연대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키고 운동을 혁신하려는 시도가 추진되어야 한다. 노동운동 차원에서 보아도 현장의 노동자,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노동자들을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계기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호 교육과 운동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서도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요구된다. 지역의 단체, 당의 지역조직, 노조 등이 연합하여 지역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연대의 힘을 발휘하면서 조직화를 확장하는 것이 성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운동의 전환을 위하여
산별에 거는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산별전환이 운동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인 혁신이 있어야 운동이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노조 전환은 단지 하나의 운동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 산별전환이 자동적으로 기업의 울타리에 갇힌 노조운동을 산업으로 지역으로 계급적 연대로 끌어내는 것은 아닌 만큼 더 많은 노력이 산별전환 과정과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사회적 투쟁과 사회운동과의 결합 등은 산별이라는 형식을 떠나서 노동자 운동의 본령으로서 제기되는 것으로, 모두 노동자 운동이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도화 전략보다는 계급형성 전략을, 노조의 생존을 위한 제도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교섭을 우선하기 보다는 운동중심을 지향하는 방향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