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6.82호
서울 지역 노동자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자
지난 대선에 이어 얼마 전 펼쳐진 총선에서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집권 초기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명박 정권은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우파적 교리를 설파하며 친재벌반노동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반면 민중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한 민주노동당은 대선 참패에 이어 분열함으로써 이번 총선에서도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하는 데 실패했다.
이미 한국사회에는 마르크스가 말한 ‘상대적 과잉인구’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고 저임금고강도장시간 노동의 악순환 역시 지속되고 있다. 또 가족학교청년의 위기,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의 분할은 육체노동자와 지식노동자의 분할과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한층 더 심화하고 있다.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가 현실화되는 상황, 특히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 위기에 빠지고,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인 현존 정치제도 역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의 무기력은 정확히 계급 형성의 위기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는 곧 사회적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현재의 사태에 대한 한층 엄중한 상황 인식 속에서 민중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단호한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오늘날 민중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한 방편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지역적 실천 전략의 의의를 재확인한 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적 실천전략의 모색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의 위기는 변혁 이념이나 대안 전망의 소실과 함께 기존의 노동자 조직이 계급적 대표성을 갖지 못한 채 노동자대중과 괴리되는 ‘계급 형성’의 위기로 볼 수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대중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고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기보다는 1987년 투쟁의 성과를 방어유지하는 차원에서 민주노총의 제도화 전략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의회주의를 추구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은 대중들, 특히 불안정노동자와 빈곤층의 정서적 반감을 동원하여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집단 이기주의 세력이나 ‘철밥통’으로 호도하면서 구조조정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10년 동안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와 허구적 코포라티즘에 매몰되어 자신의 대중적 영향력과 정치적 생명력을 잠식해온 민주노총이 이명박 정권에 맞서 제대로 투쟁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진보연대의 출범과 민주노동당의 분열에 따라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과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또 2009년 복수노조의 시행 이후 권력과 자본의 노동운동 분열 책동 등의 변수도 존재한다. 노동조합 운동을 둘러싼 이러한 주객관적인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운동은 심각한 몰락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이 불안정해지는 경향의 일반화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자 대중의 분할관리에 맞서 어떻게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가능케 할 것인가? 노동자농민빈민 대중의 ‘계급동맹’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대중운동 내의 능동적 분파 사이의 연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 ‘계급 형성적 노동자운동’과 같은 기본적인 노선을 제시하며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주체 형성과 지역에 기반을 둔 실천전략 등을 모색해 왔다. 이중에서도 우리가 노동자운동의 ‘지역’적 실천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 배경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롤레타리아화의 계기들 속에서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뿐 아니라 재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역시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업장으로 한정되어 규정되고 있는 현장의 개념을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은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으로서, 공통의 인식과 공동 행동을 가능케 할 현실적 범위 혹은 규모를 의미하며 위로부터의 통합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다수의 불안정 노동 층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이자 활동형태로서 지역을 주목한다. 넷째, 위에서 제시한 흐름들이 작업 현장에서의 전투적 경제주의와 협소한 계급주의에 매몰되는 한편 종파적 대립구도 속에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전망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실종된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분들이 정치적 시야를 확장하고 건강한 토론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 결합되어야 한다.
한편, 현재 노동자운동 내에서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흐름은,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운동 등 기존의 운동질서를 지역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흐름과 공장에 사회적 의제를 도입하거나 또는 공장을 넘어서는 지역사회에서의 실천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주로 산별노조-진보정당으로 구조화된 운동질서의 지역적 확장 계획에 입각해서 자기 운동의 완결성을 보다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자기 외부의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사고하지 못하는 맹점을 갖는다(중앙으로부터 내려온 지침을 수행하되 중앙권력의 부분적 이양을 통해 관료화를 차단하는 효과로서 ‘지역’을 강조하는 편향). 후자의 경우 노동자운동이 노동 관련 이슈 이외에 여타 운동 의제에 착목하거나 또는 노동조합 운동의 확장을 위해 지역사회를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에 머물고 있다(‘현장’과 ‘지역’의 부당 대립). 이상 양자는 공히 노동조합 스스로가 사회운동의 기관으로 자기 전화되는 것이 지역운동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맹목을 드러낸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을 혁신하자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운동의 이념노선 혁신과 새로운 주체 형성, 새로운 조직 건설 과정은 ▲급진적 이념의 수용 ▲미조직 노동자들의 진출 ▲새로운 조직형태를 통한 계급적 단결의 확대 ▲이와 병행하는 현장의 강화와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민주노총서울본부를 중심으로 서울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전략조직화(이하 ‘전략조직화’) 사업을 평가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하자.
민주노총은 조직률 저하와 계급 대표성 및 사회적 영향력의 감퇴라는 조건을 인식하고 2003년부터 5대 부문(공공부문, 유통부문, 사내하청, 건설일용, 특수고용)에 대한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대의원대회 공식 결의로 기금모금을 진행하고 조직활동가를 양성배치해 왔다. 이에 민주노총서울본부는 지난 몇 년 간 핵심 사업기조로 전략조직화 사업을 설정하고, 서울지역 조직화사업 총괄단위로서 서울지역전략조직화사업단과 본부 비정규사업의 주요 주체로서 서울비정규연대회의를 주축으로 사업을 진행해왔다.
민주노동당서울시당과 지역 사회운동들이 함께 구성한 서울지역전략조직화사업단의 경우, 서울시 공공부문지자체 비정규 대책 사업을 6개 지구협의회 공동으로 진행하였으며, 소지역(지구협의회) 별로는 서부(여의도), 남부(IT), 남동(유통물류), 중부(공공부문), 동부(성동구청비정규직) 등에서 지역 특색에 따른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또 지역 산업별로는 서비스연맹(까르푸뉴코아이랜드 유통 3사), 공공노조(간병인학교비정규직), 사무(텔레마케터) 등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이 전개되어 왔고, 내외곽에 생활임금운동기획단, 비정규영세사업장노동조건개선을위한노동조합모임, 민주노동당비정규센터, 시설청소용역노동자인권위실태조사사업 등이 중층적으로 배치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조직비정규 활동 주체 발굴과 조직혁신이라는 목표 하에 서비연을 통한 비정규 주체 강화와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 조직활동가 학교, 미조직비정규 조직역량 강화 교육, 전략조직화사업과 연계된 현장활동가학교 등을 계획하였다. (민주노총서울본부, 「13년차 정기 대의원대회 자료집」, 2008.)
이렇듯 서울에서는 지난 수년간 전략조직화사업의 의의가 노동조합의 틀을 뛰어 넘어 지역 사회운동들로 폭넓게 전파, 구체화되면서 상당한 성과를 쟁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조직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착화한 지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비판적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조직화’라는 애초의 목표에 걸맞게 조직의 확대를 위해 ‘활동 자원’을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이는 곧 활동 역량을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하는 한편 사업을 보다 체계적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는 계획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전략조직화 사업이 단순히 조직 확대를 최선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평가는 다분히 현상적이다. 그렇다면 전략조직화 대상 선정에서부터 대상에 대한 분석, 조직화 방식, 활동가들의 배치 형태에 대한 면밀한 계획 수립 등 ‘전략’을 심도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조직화가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즉, 조직화 이후에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문제들, 가령 관련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 설정 문제, 투쟁 발생 시 적절한 지원 체계 수립의 문제, 자본과 국가가 추진하는 제도정책상의 변화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아가 전략조직화 사업을 통해 새롭게 조직되는 운동주체들이 자신의 현안과 사업장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주체로 다시 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즉, 전략조직화 사업이 신규-조직화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기-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 교육과 활동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조직 유지관리나 단위사업장 현안 위주의 기존 노동조합 활동 관행을 넘어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이는 임단투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의 활동 방식과 기업별산업별 조직 구조를 변화시키고, 노동조합의 체계로 포괄되지 않았던 주체들, 가령 노동-빈민이나 여성노동자이주노동자 등 새로운 계급 주체 형성을 위한 시도가 적극적으로 시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러한 과정이 지역 연대운동으로 발전하며 노동자운동이 대중적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임단투를 변화시키자
먼저, 현재 대다수 노동조합 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임단투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장기화된 경제위기 하에서 임금과 사내 복지를 주요 의제로 하는 노동조합의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사업주의 지불능력에 따라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고,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의 안전판으로 비정규직을 묵인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은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 요구를 결합하거나 또는 산별교섭에서 비정규직의 요구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비정규직 사용제한과 부분적인 정규직화, 처우개선과 같은 일부 요구를 쟁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비율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는 정규직화가 주로 임시계약직(직접고용)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소수 인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외주화분사 등 간접고용화가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직접고용 중심의 소수 인원의 정규직화로는 비정규직화 경향을 막아내기에 분명 한계가 있다. 특히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악법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와 외주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됨에 따라 간접고용 노동자는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며 무기계약, 하위직급 방식의 정규직화 등 ‘중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투쟁의 당위성이 인정되고 상급단위의 지침이 존재하여 비정규직 관련 요구가 임단협의 주요 의제로 상정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조합원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사용자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의무방어’ 형태로 종결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당수 정규직 사업장에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사용제한정규직화 등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반면 파견이나 용역 노동자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지 못하고 비정규직의 요구를 대리 교섭하는 경향이 제대로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대리 교섭 방식의 임단협은 결국 비정규직을 의존적 존재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주체적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마저 크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임단협 투쟁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첫째, 임금격차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상박하후’(bottom up) 전략에 따라 최소한 정율 인상 나아가 정액 인상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의 주체화를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간에 공동임단협 체계를 구성하고 공동요구공동교섭공동타결을 모색실천해야 한다. 셋째,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과 교섭 성사를 위해 원하청 공동 투쟁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넷째,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확보하고 임단협 과정에 비정규직을 참여시키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주체를 육성, 발굴함으로써 노동조합 건설을 지원해야 한다(임단협 중심요구로 비정규직 노조 가입결성에 따른 불이익 처분 금지, 비정규직 고용 보장,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당위나 원칙의 문제 또는 산별 건설이나 법제도 개선을 통해서나 해결할 수 있는 먼 미래의 문제로 사고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 속에서 교육선전을 강화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위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김진억, 「비정규 임단협 투쟁의 원칙과 노조의 대응 사례」, 민주노총서울본부 『비정규법에 대응하는 2008년 임단협 준비와 비정규직없는 사업장 만들기』 자료집, 2008.)
산별시대를 맞이하여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조직형태를 고민하자
다음으로, 산별시대를 맞이하여 산별노조라는 대안을 상대화하며 새로운 계급주체의 형성을 위한 방안을 현실화해야 하는 동시에 산별노조의 건설이 이러한 방향에 일조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서 초기업적 노동조합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많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에 좌우되고 있을뿐더러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진출이 새로운 흐름을 출현시킬 만큼 폭발적이지도 않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연합체로서 연맹을 결성하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산별노조의 수직적 체계가 현장운동의 활성화를 가로막으며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미 조직된 산별노조에서는 업종별조직을 최대한 상대화하고 지역 중심의 수평적 조직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현장의 활동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조직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기업별노조 체계로 포괄할 수 없었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사례가 현실적으로도 산별노조 건설 과정보다는 지역일반노조 운동이나 일반노조적 운동을 지향했던 지역산별노조 운동 과정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역을 매개로 산별노조 건설과 지역일반노조 운동이 수렴하는 방안을 탐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일반노조나 지역산별노조가 직면했던 나름의 한계들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그 모범을 전진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가 병행되어야 한다. 지역일반노조의 경우,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이념적 지향을 표방하며 노동자대중의 분할과 관성화된 노조 활동 패턴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조직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산별노조와 조직구획이 중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내적으로도 조합원의 능동적인 주체화와 지역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 보육간병학교비정규직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경우, 산별노조 건설을 예비하는 가운데 연맹 소속 정규직 노조나 연맹조직 체계를 통한 지원이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지역적 형태의 조직에 걸맞은 지역기반의 공동투쟁과 활동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사업장별로 운영되는 한계가 남아있다. 이와 관련하여 금속노조서울남부지회의 경험은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사회운동들의 연대운동 기풍,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밀집 지역으로서 노동조합 간의 연대가 사활적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조건들이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지속적인 노동조합 활동, 이를 넘어서는 정치활동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산업재배치와 노동력 인구 구성의 변화(청년 세대와 이주노동자의 급속한 유입)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상을 종합할 때, 산별노조 시대를 맞이하여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신규 조직화와 현장투쟁의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일상 활동과 활동가 양성, 사회운동적 과제의 실천을 통한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이에 바탕을 둔 노조의 강화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 조직화는 물론이고 현장 활동가 육성과 지역에서 사회운동과의 전략적인 수준의 연대 혹은 융합이 이러한 운동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산별노조로의 재편 과정에서 지역 기반 노조의 흐름이 유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산별의 구획을 넘는 운동의 흐름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지역본부가 지역 내의 산별지부들과 사회운동단위들의 연대의 구심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일반노조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점에서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동-빈민의 문제와 재생산의 권리를 노동자운동의 중심 과제로 설정하자
노동-빈민의 문제에 적극 주목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대중의 ‘궁핍화’와 관련한 쟁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민중운동 체계 내에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동운동과 도시철거민노점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빈민운동이 서로의 구분선을 뛰어 넘어 저임금주거권기초생활권과 같은 현안에 긴밀히 대응하면서 운동을 형성해야 한다.
당면해서, ‘적정생계비와 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 조사’ 사업을 계기로 노동자의 구체적인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매개로 저임금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최저생계비 기준선은 한국사회 빈곤 지표의 기준선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회복지 급여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지표를 현실화하고 최저생계비 기준선을 끌어올리는 것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를 포함한 빈곤층의 삶의 지표를 끌어올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하반기에 이어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의 전초전으로서 실태조사 사업을 서울 지역에서 전개하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실천을 모색할 수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은 시급 3,480원(주 40시간 기준 72만7320원)인데, 정부 계측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대비 11.9%에 해당하는 178만4천명이 최저임금 수준을 적용받고 있다. 매년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의 규모가 증가하는 가운데, 이들은 저임금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열악한 노동조건(퇴직금, 상여금, 사회보험 등에서의 배제)으로 인해 이중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계획은 주로 여성고령자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그동안 비공식부문에 머물렀던 영역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자리들은 대개 저임금과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 중심의 노동자운동은 이들 노동자들을 운동의 중심으로 세우기 힘든 객관적인 조건에 처해 있다. 실업반(半)실업 노동자를 포괄하는 단협 및 투쟁에 대한 전략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당장은 빈곤철폐생활임금쟁취를 위한 직접행동을 기점으로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실상을 폭로하고 지역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조직하여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자.
또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신개발 정책으로 인해 생존권과 주거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노점상철거민노숙인과 연대해야 한다. 빈민현장활동과 같은 계기를 통해, 노점시범거리 조성과 같은 서울시 노점대책의 모순을 폭로하는 한편 뉴타운개발한강르네상스프로젝트서울도시균형발전 정책에 맞서 철거민투쟁과 주거권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또 ‘시장기능을 활용한 서민생활안정’이라는 목표 하에 이명박 정부가 핵심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기초연금통합,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 구축’, ‘지분형 분양주택’, ‘수요자 중심의 보육정책개편’ 등 시장 친화적 복지 정책의 모순과 기만을 적극 폭로해야 한다.
한편 광역기초단체들은 2007년 하반기부터 ‘지역사회서비스혁신사업’ 이라는 명목으로 간병(노인산모 도우미), 보육(아동방과후교실), 장애인활동보조 등의 사회서비스와 과거 공공근로와 유사한 일자리 마련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제도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근간으로 주로 여성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을 박탈하여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제공, 이용되고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제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바, 이용자인 지역주민과 참여자인 종사노동자들의 고민과 요구를 지역에서 조직하는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 과정을 통해 노동-빈민이 안정적인 고용과 생활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비용 부담이나 제도상의 제한으로 인해 교육의료주거간병보육 등 재생산에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일체의 장애가 없도록 공적 기반을 쟁취해 나가야 한다.
차별철폐대행진의 성과를 이어 서울 지역 연대운동의 흐름을 만들자
미조직비정규 전략조직화 사업은 물론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및 여타 사회운동의 지역적 연대 전략과 관련하여,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 투쟁의 교훈을 갈무리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울 지역에서 뉴코아-이랜드 투쟁이 촉발되기까지에는 민주노총서울본부가 공공노조서울본부, 민주노동당서울시당, 서울 지역 사회단체와 함께 유통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1-2년간 꾸준히 전략조직화 사업을 전개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가령 북부 지역의 경우 사회단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선전조직화 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서부 지역의 경우 민주노동당지역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투쟁지원대책위를 구성하였다. 특히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 과정에서 노동조합 스스로가 폐쇄적 구조를 지양하고 연대 단체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한 점을 중요한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파업 전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투쟁에 결합한 모든 연대단체들의 발언을 경청한 것은 유례가 없는 사례일뿐더러, 연대단체들로 하여금 책임 있는 결합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뉴코아-이랜드 노조 투쟁은 전략조직화 사업의 성과를 반영하는 동시에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및 사회단체가 지역적 실천전략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노조, 당, 단체를 망라한 지역 연대 운동의 전범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차별철폐대행진을 시작으로 서울 지역에서 노동자운동의 연대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차별철폐대행진은 비정규직저임금빈곤공공성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지역별 연대운동을 활성화는 계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진보정당, 사회단체들이 지역운동을 매개로 공동의 기획실행 과정을 통해 관성화고착화된 활동 패턴을 지양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노동-빈민과 같이 기존의 노동조합 체계에 포괄되지 못했던 주체를 지역운동의 자장(磁場)으로 유입하고 여성노동자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
차별철폐대행진이 단발성 캠페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울 지역에서 한해를 관통하는 운동 흐름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우선 여러 난점들이 존재하지만, 뉴코아-이랜드, 코스콤 노조 투쟁 승리를 위해 투쟁 대오를 재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공부문 비정규 종합대책, 비정규악법 확대 적용(2008년 7월부터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까지 적용)에 따른 투쟁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투쟁주체를 형성할 있도록 준비하자. 이 과정에서 비정규장기투쟁사업장중소영세사업장간접고용사업장의 공동 대응을 활성화하면서 비정규악법폐기 및 재개정 투쟁을 적극 전개하도록 한다. 이러한 흐름을 최저생계비최저임금 현실화와 생활임금 쟁취 투쟁,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투쟁과 연결하자. 또 학교비정규직 조직화 사례 청년 노동자 조직화를 염두에 두고 학생운동과의 지역적 연대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과 활동가 양성을 위해 지역 차원에서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도 있다. 사회운동포럼의 성과로 결성된 여성운동네트워크(준) 사업과 노동운동포럼을 발전시켜 노동자운동의 혁신군을 창출하기 위한 기틀을 다지자.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사업의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는데, 서울 지역에서 ‘초정파’적인 노동자학교를 기획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주의’, ‘페미니즘’ 등 노동자운동의 이념 노선적 혁신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민하고 학습하자.
한편 한국진보연대의 출범과 함께 서울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한 (2006-07년 한미FTA-평택미군기지 대응 투쟁과 같은) 서울지역 연대운동의 동력이 상실되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상호 경쟁하는 정당들에 의한 노동조합의 분할과 동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한데, 지역적 수준에서 노동자운동의 통합과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정당의 사회운동적 경향과 통합을 역으로 추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운동포럼을 서울 지역 사회운동의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경로를 탐색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산별-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하여 지역적 수준에서 대중적 토대를 갖춘 노동자운동의 혁신군을 형성해야 한다.
이미 한국사회에는 마르크스가 말한 ‘상대적 과잉인구’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고 저임금고강도장시간 노동의 악순환 역시 지속되고 있다. 또 가족학교청년의 위기,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의 분할은 육체노동자와 지식노동자의 분할과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한층 더 심화하고 있다.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가 현실화되는 상황, 특히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 위기에 빠지고,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인 현존 정치제도 역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의 무기력은 정확히 계급 형성의 위기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는 곧 사회적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현재의 사태에 대한 한층 엄중한 상황 인식 속에서 민중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단호한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오늘날 민중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한 방편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지역적 실천 전략의 의의를 재확인한 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적 실천전략의 모색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의 위기는 변혁 이념이나 대안 전망의 소실과 함께 기존의 노동자 조직이 계급적 대표성을 갖지 못한 채 노동자대중과 괴리되는 ‘계급 형성’의 위기로 볼 수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대중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고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기보다는 1987년 투쟁의 성과를 방어유지하는 차원에서 민주노총의 제도화 전략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의회주의를 추구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은 대중들, 특히 불안정노동자와 빈곤층의 정서적 반감을 동원하여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집단 이기주의 세력이나 ‘철밥통’으로 호도하면서 구조조정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10년 동안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와 허구적 코포라티즘에 매몰되어 자신의 대중적 영향력과 정치적 생명력을 잠식해온 민주노총이 이명박 정권에 맞서 제대로 투쟁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진보연대의 출범과 민주노동당의 분열에 따라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과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또 2009년 복수노조의 시행 이후 권력과 자본의 노동운동 분열 책동 등의 변수도 존재한다. 노동조합 운동을 둘러싼 이러한 주객관적인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운동은 심각한 몰락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시장노동과정노동력재생산이 불안정해지는 경향의 일반화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자 대중의 분할관리에 맞서 어떻게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가능케 할 것인가? 노동자농민빈민 대중의 ‘계급동맹’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대중운동 내의 능동적 분파 사이의 연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 노조주의’, ‘계급 형성적 노동자운동’과 같은 기본적인 노선을 제시하며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주체 형성과 지역에 기반을 둔 실천전략 등을 모색해 왔다. 이중에서도 우리가 노동자운동의 ‘지역’적 실천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 배경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롤레타리아화의 계기들 속에서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뿐 아니라 재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역시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업장으로 한정되어 규정되고 있는 현장의 개념을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은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으로서, 공통의 인식과 공동 행동을 가능케 할 현실적 범위 혹은 규모를 의미하며 위로부터의 통합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다수의 불안정 노동 층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이자 활동형태로서 지역을 주목한다. 넷째, 위에서 제시한 흐름들이 작업 현장에서의 전투적 경제주의와 협소한 계급주의에 매몰되는 한편 종파적 대립구도 속에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전망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실종된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분들이 정치적 시야를 확장하고 건강한 토론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 결합되어야 한다.
한편, 현재 노동자운동 내에서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흐름은,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운동 등 기존의 운동질서를 지역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흐름과 공장에 사회적 의제를 도입하거나 또는 공장을 넘어서는 지역사회에서의 실천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주로 산별노조-진보정당으로 구조화된 운동질서의 지역적 확장 계획에 입각해서 자기 운동의 완결성을 보다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자기 외부의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사고하지 못하는 맹점을 갖는다(중앙으로부터 내려온 지침을 수행하되 중앙권력의 부분적 이양을 통해 관료화를 차단하는 효과로서 ‘지역’을 강조하는 편향). 후자의 경우 노동자운동이 노동 관련 이슈 이외에 여타 운동 의제에 착목하거나 또는 노동조합 운동의 확장을 위해 지역사회를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에 머물고 있다(‘현장’과 ‘지역’의 부당 대립). 이상 양자는 공히 노동조합 스스로가 사회운동의 기관으로 자기 전화되는 것이 지역운동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맹목을 드러낸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을 혁신하자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운동의 이념노선 혁신과 새로운 주체 형성, 새로운 조직 건설 과정은 ▲급진적 이념의 수용 ▲미조직 노동자들의 진출 ▲새로운 조직형태를 통한 계급적 단결의 확대 ▲이와 병행하는 현장의 강화와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민주노총서울본부를 중심으로 서울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전략조직화(이하 ‘전략조직화’) 사업을 평가하면서 노동자운동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하자.
민주노총은 조직률 저하와 계급 대표성 및 사회적 영향력의 감퇴라는 조건을 인식하고 2003년부터 5대 부문(공공부문, 유통부문, 사내하청, 건설일용, 특수고용)에 대한 전략조직화 사업을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대의원대회 공식 결의로 기금모금을 진행하고 조직활동가를 양성배치해 왔다. 이에 민주노총서울본부는 지난 몇 년 간 핵심 사업기조로 전략조직화 사업을 설정하고, 서울지역 조직화사업 총괄단위로서 서울지역전략조직화사업단과 본부 비정규사업의 주요 주체로서 서울비정규연대회의를 주축으로 사업을 진행해왔다.
민주노동당서울시당과 지역 사회운동들이 함께 구성한 서울지역전략조직화사업단의 경우, 서울시 공공부문지자체 비정규 대책 사업을 6개 지구협의회 공동으로 진행하였으며, 소지역(지구협의회) 별로는 서부(여의도), 남부(IT), 남동(유통물류), 중부(공공부문), 동부(성동구청비정규직) 등에서 지역 특색에 따른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또 지역 산업별로는 서비스연맹(까르푸뉴코아이랜드 유통 3사), 공공노조(간병인학교비정규직), 사무(텔레마케터) 등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이 전개되어 왔고, 내외곽에 생활임금운동기획단, 비정규영세사업장노동조건개선을위한노동조합모임, 민주노동당비정규센터, 시설청소용역노동자인권위실태조사사업 등이 중층적으로 배치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조직비정규 활동 주체 발굴과 조직혁신이라는 목표 하에 서비연을 통한 비정규 주체 강화와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 조직활동가 학교, 미조직비정규 조직역량 강화 교육, 전략조직화사업과 연계된 현장활동가학교 등을 계획하였다. (민주노총서울본부, 「13년차 정기 대의원대회 자료집」, 2008.)
이렇듯 서울에서는 지난 수년간 전략조직화사업의 의의가 노동조합의 틀을 뛰어 넘어 지역 사회운동들로 폭넓게 전파, 구체화되면서 상당한 성과를 쟁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조직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착화한 지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비판적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조직화’라는 애초의 목표에 걸맞게 조직의 확대를 위해 ‘활동 자원’을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이는 곧 활동 역량을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하는 한편 사업을 보다 체계적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는 계획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전략조직화 사업이 단순히 조직 확대를 최선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평가는 다분히 현상적이다. 그렇다면 전략조직화 대상 선정에서부터 대상에 대한 분석, 조직화 방식, 활동가들의 배치 형태에 대한 면밀한 계획 수립 등 ‘전략’을 심도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조직화가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즉, 조직화 이후에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문제들, 가령 관련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 설정 문제, 투쟁 발생 시 적절한 지원 체계 수립의 문제, 자본과 국가가 추진하는 제도정책상의 변화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아가 전략조직화 사업을 통해 새롭게 조직되는 운동주체들이 자신의 현안과 사업장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주체로 다시 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즉, 전략조직화 사업이 신규-조직화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기-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 교육과 활동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조직 유지관리나 단위사업장 현안 위주의 기존 노동조합 활동 관행을 넘어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이는 임단투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의 활동 방식과 기업별산업별 조직 구조를 변화시키고, 노동조합의 체계로 포괄되지 않았던 주체들, 가령 노동-빈민이나 여성노동자이주노동자 등 새로운 계급 주체 형성을 위한 시도가 적극적으로 시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러한 과정이 지역 연대운동으로 발전하며 노동자운동이 대중적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임단투를 변화시키자
먼저, 현재 대다수 노동조합 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임단투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장기화된 경제위기 하에서 임금과 사내 복지를 주요 의제로 하는 노동조합의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사업주의 지불능력에 따라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고,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의 안전판으로 비정규직을 묵인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민주노총은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 요구를 결합하거나 또는 산별교섭에서 비정규직의 요구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비정규직 사용제한과 부분적인 정규직화, 처우개선과 같은 일부 요구를 쟁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비율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는 정규직화가 주로 임시계약직(직접고용)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소수 인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웃소싱외주화분사 등 간접고용화가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직접고용 중심의 소수 인원의 정규직화로는 비정규직화 경향을 막아내기에 분명 한계가 있다. 특히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악법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와 외주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됨에 따라 간접고용 노동자는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며 무기계약, 하위직급 방식의 정규직화 등 ‘중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투쟁의 당위성이 인정되고 상급단위의 지침이 존재하여 비정규직 관련 요구가 임단협의 주요 의제로 상정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조합원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사용자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의무방어’ 형태로 종결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당수 정규직 사업장에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사용제한정규직화 등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반면 파견이나 용역 노동자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지 못하고 비정규직의 요구를 대리 교섭하는 경향이 제대로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대리 교섭 방식의 임단협은 결국 비정규직을 의존적 존재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주체적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마저 크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임단협 투쟁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첫째, 임금격차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상박하후’(bottom up) 전략에 따라 최소한 정율 인상 나아가 정액 인상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의 주체화를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간에 공동임단협 체계를 구성하고 공동요구공동교섭공동타결을 모색실천해야 한다. 셋째,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과 교섭 성사를 위해 원하청 공동 투쟁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넷째,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확보하고 임단협 과정에 비정규직을 참여시키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주체를 육성, 발굴함으로써 노동조합 건설을 지원해야 한다(임단협 중심요구로 비정규직 노조 가입결성에 따른 불이익 처분 금지, 비정규직 고용 보장,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당위나 원칙의 문제 또는 산별 건설이나 법제도 개선을 통해서나 해결할 수 있는 먼 미래의 문제로 사고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 속에서 교육선전을 강화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위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김진억, 「비정규 임단협 투쟁의 원칙과 노조의 대응 사례」, 민주노총서울본부 『비정규법에 대응하는 2008년 임단협 준비와 비정규직없는 사업장 만들기』 자료집, 2008.)
산별시대를 맞이하여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조직형태를 고민하자
다음으로, 산별시대를 맞이하여 산별노조라는 대안을 상대화하며 새로운 계급주체의 형성을 위한 방안을 현실화해야 하는 동시에 산별노조의 건설이 이러한 방향에 일조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서 초기업적 노동조합 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많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산별노조 건설 과정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에 좌우되고 있을뿐더러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진출이 새로운 흐름을 출현시킬 만큼 폭발적이지도 않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연합체로서 연맹을 결성하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산별노조의 수직적 체계가 현장운동의 활성화를 가로막으며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미 조직된 산별노조에서는 업종별조직을 최대한 상대화하고 지역 중심의 수평적 조직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현장의 활동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조직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기업별노조 체계로 포괄할 수 없었던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사례가 현실적으로도 산별노조 건설 과정보다는 지역일반노조 운동이나 일반노조적 운동을 지향했던 지역산별노조 운동 과정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역을 매개로 산별노조 건설과 지역일반노조 운동이 수렴하는 방안을 탐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일반노조나 지역산별노조가 직면했던 나름의 한계들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그 모범을 전진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가 병행되어야 한다. 지역일반노조의 경우,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이념적 지향을 표방하며 노동자대중의 분할과 관성화된 노조 활동 패턴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조직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산별노조와 조직구획이 중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내적으로도 조합원의 능동적인 주체화와 지역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 보육간병학교비정규직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경우, 산별노조 건설을 예비하는 가운데 연맹 소속 정규직 노조나 연맹조직 체계를 통한 지원이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지역적 형태의 조직에 걸맞은 지역기반의 공동투쟁과 활동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사업장별로 운영되는 한계가 남아있다. 이와 관련하여 금속노조서울남부지회의 경험은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사회운동들의 연대운동 기풍,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밀집 지역으로서 노동조합 간의 연대가 사활적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조건들이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지속적인 노동조합 활동, 이를 넘어서는 정치활동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산업재배치와 노동력 인구 구성의 변화(청년 세대와 이주노동자의 급속한 유입)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상을 종합할 때, 산별노조 시대를 맞이하여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신규 조직화와 현장투쟁의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일상 활동과 활동가 양성, 사회운동적 과제의 실천을 통한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이에 바탕을 둔 노조의 강화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 조직화는 물론이고 현장 활동가 육성과 지역에서 사회운동과의 전략적인 수준의 연대 혹은 융합이 이러한 운동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산별노조로의 재편 과정에서 지역 기반 노조의 흐름이 유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산별의 구획을 넘는 운동의 흐름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지역본부가 지역 내의 산별지부들과 사회운동단위들의 연대의 구심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일반노조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점에서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동-빈민의 문제와 재생산의 권리를 노동자운동의 중심 과제로 설정하자
노동-빈민의 문제에 적극 주목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대중의 ‘궁핍화’와 관련한 쟁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민중운동 체계 내에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동운동과 도시철거민노점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빈민운동이 서로의 구분선을 뛰어 넘어 저임금주거권기초생활권과 같은 현안에 긴밀히 대응하면서 운동을 형성해야 한다.
당면해서, ‘적정생계비와 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 조사’ 사업을 계기로 노동자의 구체적인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매개로 저임금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최저생계비 기준선은 한국사회 빈곤 지표의 기준선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회복지 급여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지표를 현실화하고 최저생계비 기준선을 끌어올리는 것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를 포함한 빈곤층의 삶의 지표를 끌어올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하반기에 이어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의 전초전으로서 실태조사 사업을 서울 지역에서 전개하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실천을 모색할 수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은 시급 3,480원(주 40시간 기준 72만7320원)인데, 정부 계측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대비 11.9%에 해당하는 178만4천명이 최저임금 수준을 적용받고 있다. 매년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의 규모가 증가하는 가운데, 이들은 저임금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열악한 노동조건(퇴직금, 상여금, 사회보험 등에서의 배제)으로 인해 이중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계획은 주로 여성고령자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그동안 비공식부문에 머물렀던 영역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자리들은 대개 저임금과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 중심의 노동자운동은 이들 노동자들을 운동의 중심으로 세우기 힘든 객관적인 조건에 처해 있다. 실업반(半)실업 노동자를 포괄하는 단협 및 투쟁에 대한 전략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당장은 빈곤철폐생활임금쟁취를 위한 직접행동을 기점으로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실상을 폭로하고 지역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조직하여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자.
또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신개발 정책으로 인해 생존권과 주거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노점상철거민노숙인과 연대해야 한다. 빈민현장활동과 같은 계기를 통해, 노점시범거리 조성과 같은 서울시 노점대책의 모순을 폭로하는 한편 뉴타운개발한강르네상스프로젝트서울도시균형발전 정책에 맞서 철거민투쟁과 주거권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또 ‘시장기능을 활용한 서민생활안정’이라는 목표 하에 이명박 정부가 핵심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기초연금통합,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 구축’, ‘지분형 분양주택’, ‘수요자 중심의 보육정책개편’ 등 시장 친화적 복지 정책의 모순과 기만을 적극 폭로해야 한다.
한편 광역기초단체들은 2007년 하반기부터 ‘지역사회서비스혁신사업’ 이라는 명목으로 간병(노인산모 도우미), 보육(아동방과후교실), 장애인활동보조 등의 사회서비스와 과거 공공근로와 유사한 일자리 마련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제도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근간으로 주로 여성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을 박탈하여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제공, 이용되고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제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바, 이용자인 지역주민과 참여자인 종사노동자들의 고민과 요구를 지역에서 조직하는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 과정을 통해 노동-빈민이 안정적인 고용과 생활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비용 부담이나 제도상의 제한으로 인해 교육의료주거간병보육 등 재생산에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일체의 장애가 없도록 공적 기반을 쟁취해 나가야 한다.
차별철폐대행진의 성과를 이어 서울 지역 연대운동의 흐름을 만들자
미조직비정규 전략조직화 사업은 물론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및 여타 사회운동의 지역적 연대 전략과 관련하여,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 투쟁의 교훈을 갈무리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울 지역에서 뉴코아-이랜드 투쟁이 촉발되기까지에는 민주노총서울본부가 공공노조서울본부, 민주노동당서울시당, 서울 지역 사회단체와 함께 유통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1-2년간 꾸준히 전략조직화 사업을 전개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가령 북부 지역의 경우 사회단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선전조직화 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서부 지역의 경우 민주노동당지역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투쟁지원대책위를 구성하였다. 특히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 과정에서 노동조합 스스로가 폐쇄적 구조를 지양하고 연대 단체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한 점을 중요한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파업 전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투쟁에 결합한 모든 연대단체들의 발언을 경청한 것은 유례가 없는 사례일뿐더러, 연대단체들로 하여금 책임 있는 결합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뉴코아-이랜드 노조 투쟁은 전략조직화 사업의 성과를 반영하는 동시에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및 사회단체가 지역적 실천전략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노조, 당, 단체를 망라한 지역 연대 운동의 전범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차별철폐대행진을 시작으로 서울 지역에서 노동자운동의 연대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차별철폐대행진은 비정규직저임금빈곤공공성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지역별 연대운동을 활성화는 계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진보정당, 사회단체들이 지역운동을 매개로 공동의 기획실행 과정을 통해 관성화고착화된 활동 패턴을 지양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노동-빈민과 같이 기존의 노동조합 체계에 포괄되지 못했던 주체를 지역운동의 자장(磁場)으로 유입하고 여성노동자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
차별철폐대행진이 단발성 캠페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울 지역에서 한해를 관통하는 운동 흐름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우선 여러 난점들이 존재하지만, 뉴코아-이랜드, 코스콤 노조 투쟁 승리를 위해 투쟁 대오를 재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공부문 비정규 종합대책, 비정규악법 확대 적용(2008년 7월부터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까지 적용)에 따른 투쟁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투쟁주체를 형성할 있도록 준비하자. 이 과정에서 비정규장기투쟁사업장중소영세사업장간접고용사업장의 공동 대응을 활성화하면서 비정규악법폐기 및 재개정 투쟁을 적극 전개하도록 한다. 이러한 흐름을 최저생계비최저임금 현실화와 생활임금 쟁취 투쟁,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투쟁과 연결하자. 또 학교비정규직 조직화 사례 청년 노동자 조직화를 염두에 두고 학생운동과의 지역적 연대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과 활동가 양성을 위해 지역 차원에서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도 있다. 사회운동포럼의 성과로 결성된 여성운동네트워크(준) 사업과 노동운동포럼을 발전시켜 노동자운동의 혁신군을 창출하기 위한 기틀을 다지자.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사업의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는데, 서울 지역에서 ‘초정파’적인 노동자학교를 기획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주의’, ‘페미니즘’ 등 노동자운동의 이념 노선적 혁신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민하고 학습하자.
한편 한국진보연대의 출범과 함께 서울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한 (2006-07년 한미FTA-평택미군기지 대응 투쟁과 같은) 서울지역 연대운동의 동력이 상실되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상호 경쟁하는 정당들에 의한 노동조합의 분할과 동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한데, 지역적 수준에서 노동자운동의 통합과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정당의 사회운동적 경향과 통합을 역으로 추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운동포럼을 서울 지역 사회운동의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경로를 탐색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산별-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하여 지역적 수준에서 대중적 토대를 갖춘 노동자운동의 혁신군을 형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