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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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7-8.89호

오바마 정부의 현실주의 정치와 핵 비관주의

임필수 | 정책위원장
오바마 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국 1,500여 개 싱크탱크 중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한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지난 6월 11일 대북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7년에 설립된 CNAS에는 1990년대 클린턴 정부 시절 외교안보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많다. 주요 구성원들은 2007년 오바마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수립과정과 정권 인수위 활동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소장인 커트 캠벨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로 임명되어 앞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캠벨은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 차관보로 내정됐으나 정부 실세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해 CNAS 후원금을 대거 모금했다는 의혹이나 최근 기업체의 연구 용역이 CNAS에 몰린 경위에 대한 조사 때문에 인준이 수개월 지체되어 6월 26일에야 상원 인준을 받게 되었다. 이제야 미국의 대북정책 라인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보고서의 제목은 “환상을 품지마라: 북한에 대한 전략적 주도권을 회복하자”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시설을 군사적 타격을 통해 제거하겠다는 발상이나 외부에서 북한의 정권교체나 붕괴를 유도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 환상이라고 전제한다. 즉 ‘협상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가 미국정부가 취해야 할 유일한 장기목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장기목표가 단기적으로는 성공 가망성이 낮기 때문에 미국정부가 ‘전략적 관리’라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중단기적으로는 미국정부가 동북아의 미국 동맹국에게 핵/재래식 전력을 통한 억지력을 보장하고, 북한의 핵 물질/기술 이전을 억제하며, 동북아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군사충돌을 예방하며,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복귀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정부는 장기목표의 달성을 위해 중단기적으로는 현상유지를 추구하되 북한과의 최종적인 협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새로운 현상유지’ 국면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현상유지 국면을 형성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다. 보고서는 과거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대체로 비협조적이었지만 최근 북한의 조치들에 대해 과거보다 더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미국이 새로운 현상유지 국면에서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를 실시하고 핵확산 저지를 위한 군사적 차단활동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에게 더욱 위압적인 압박을 가하되 공식/비공식 외교채널을 지속적으로 가동함으로써 북한이 체면을 살리면서 협상에 복귀하기 위한 ‘진입차선’을 열어주자고 결론을 맺는다.
보고서에서 주의를 끄는 대목 중 한 부분은 미국이 동북아 동맹국 한국과 일본에게 핵우산을 보장해야 하는 결정적 근거로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 가능성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공공연하게 ‘핵 주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미국정부가 확실하게 한국과 일본에게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핵무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고서는 미국은 한국에게 확실한 군사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전쟁지역미사일방어망(TMD)을 개발, 배치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핵미사일 외에도 비무장지대 인근에 배치된 10,400개로 추정되는 북한의 장거리포를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정부는 전술 고에너지 레이저(THEL)와 그 이동형 모델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술 고에너지 레이저는 1995년 전쟁지역미사일방어망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공동 개발되기 시작했고 2000년에 연속적으로 미사일 요격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과학잡지 파퓰러 사이언스가 선정한 2000년 최고의 발명품이 되었다. 미국은 광속(光速) 전쟁의 시대가 열렸다고 자축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장기목표가 ‘협상을 통한 비핵화’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권고대로 위압적인 제재와 군사적 차단을 가하고 동북아 핵전력과 미사일방어망 확대에 박차를 가한다면 동북아의 긴장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고 북한의 격렬한 반응을 유도할 것이다. 1994년의 한반도 전쟁위기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으로 긴장이 치솟는 대결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대북정책은 이념이나 윤리와 같은 틀을 벗어나 있다. 그들이 군사적 타격이나 정권교체를 배제하는 이유도 이념이나 윤리 때문이 아니다. 핵시설에 군사적 타격을 가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물질 자체를 제거할 수 없고 정권교체 과정에서 핵물질의 외부 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 즉 군사적 타격이나 인위적 정권교체가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들의 정책은 미국의 직접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냉정하게 계산하는 현실주의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떤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전쟁도 언제나 실행 가능하다. 20세기 역사는 전쟁이 비이성적인 광기나 무지가 아닌 현실주의 정치의 논리에 따른 합리적 계산과 이성적 판단에 의해 개시되었음을 보여준다.
불행히도 현실정치의 논리는 역사적으로 세계적 핵확산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이제 핵무장 해체에 관한 비관주의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발행된 미국 <핵과학자회보>에 실린 “만약 북한이 유일한 핵무기 국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제목의 기사는 비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가상적인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핵과학자회보는 미국의 최초의 핵무기 개발계획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기술자들이 핵무기의 위험천만한 효과를 인식하고 핵무기 사용의 결과를 대중에게 경고하고자 1945년에 창간되었다.) 비관주의자들은 모든 국가가 핵무기를 폐기한다면 어떻게 ‘배교자’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노력을 중단시킬 수 있냐고 말한다. 핵무기 폐기의 반대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모든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할 것이며 미국이 대규모 핵무기를 보유하고 광범위한 핵 인프라를 유지해야지만 어떤 국가도 이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멈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만약 북한이 유일한 핵무기 국가가 된다면 이 세계는 불편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홉 번째 핵무기 국가가 된다면 이 세계는 훨씬 더 불편한 곳이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홉 개의 핵무기 국가에서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에 비하면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를 폐기한 상황에서 단 한 개의 국가에서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 더 쉽지 결코 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실험의 사례처럼 설사 북한만이 세계 유일의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기존 핵무기 국가에서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멈출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6자회담 중단,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핵실험, 유엔 대북제재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민중운동은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빠르면 올해 내로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느끼게 된 망연자실함 때문일 수도 있고, 향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조건에서 운동의 방향성을 상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고실험처럼 ‘상대방이 먼저’나 ‘상대방과 동시에’라는 논리는 핵 경쟁을 영구화할 것이다. 따라서 평화운동은 ‘자기부터’ 즉 일방적인 군비 축소나 군사동맹 해체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민족적 경쟁구도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동북아에서 쉽사리 뿌리를 내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정치나 비관주의의 논리를 따르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상호절멸의 전쟁 국면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이번호 특집은 ‘경제위기와 사회복지 요구의 쟁점’으로 구성했다. 사회복지나 사회서비스는 20세기 계급타협의 특수한 형태며 특히 유럽의 사회복지는 독일 비스마르크식 가부장적인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적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아무 것도 변할 수 없다거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시각을 지닐 필요는 없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제한하거나 노동자 간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이진숙의 ‘경제위기 시기 사회보장 확대 투쟁의 의미와 쟁점’은 실업이나 소득보장 문제에 대한 사회보장 요구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더 이상 후퇴하는 것을 방어하고 노동자운동의 단결을 매개할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예륜의 ‘급증하는 실업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 방향’은 실업급여를 개선하고 실업부조를 도입하라는 민중운동의 요구에 담긴 쟁점을 검토하고 김유진의 ‘빈곤층 소득보장 정책의 쟁점과 대응과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에 관한 요구에 담긴 쟁점을 살펴본다. 아울러 보건의료팀 김태훈의 ‘한국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보건의료운동의 과제’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의료민영화의 의미와 대응방안을 제시한다. 이 기사들을 통해 현 시기 민중운동이 제기하는 요구가 엇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주제어
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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