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추악한 기억을 드러내라!
- "밥꽃양" 사전검열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

97년 IMF, 98년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에 대한 노사정 합의 이후, 그 사이사이 비춰진 현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불투명하다. 기층 노동자들의 반발, 지도부의 사퇴 그리고 공문구가 된 총파업투쟁선언들이 기억의 전부인지 모른다. 아니 몇몇은 당시의 사태를 가늠케하는, 그래서 불길한 미래를 그리는 98년 그 해 여름, 현대자동차파업투쟁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수준에서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상흔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노사정 합의의 후광이 비추는 한,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2000년 현대자동차 식당아주머니들의 절규에 어린 투쟁은 당시 잊혀진 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폭로하는 유일한 투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의 망각과 잊혀진 현실들 사이, 이 돌이킬 수 없는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오늘 한 울산의 한 지역영화제 파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에 대한 오늘의 대답은 무엇인가이다. '정리해고 최소 수용'과 '부결된 잠정합의'의 진실 말이다.
해고의 위기에 맞서 아이와 함께 총파업 대열에 합류한 아주머니들을 비난했던 이들, 어떤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절규하는 아주머니들의 마이크를 빼앗았던 이들이 277명 식당아주머니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합의한 것이다. 그들은 공장에서, 부엌에서 식당에서, 안방에서 안팎으로 시달렸고, 착취되었다. 277명이 했던 일을 절반인 144명이 해야했고, 하청노동이었기에 임금은 삭감되었다. 이것이 그 해 여름 노사정합의의 얼굴이다. 이 상흔으로 가득한 얼굴이 오늘을 어떻게 보는지는 분명했다. " 상영거부! "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이 겪는 수난이며,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진실이기도 하다. 또한, 남성의 얼굴을 띄고 있는 노·사·정 합의를 강요하고, 투쟁을 배신한 신자유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진실이기도 하다. 이 치욕의 역사를 되묻고,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 치욕의 순간을 보다 치욕적이게 만들어, 대중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역사의 진실을 보고, 그리하여 해방에 대한 욕구를 더욱 충족시키도록 승화시키는 것은 예술의 의무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그 어떤 형태로도 이 기록에 대한 검열은 불가하다.

예술은 대중의 것이며, 민중의 것이다. 진실은 대중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 문제제기"이후 이 영화에 대해 재론하게 된 이상, 사태의 전말은 대중들 앞에서 밝혀야 한다. 울산의 대중은 충분히, 아니 더더욱 그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권리가 온전히 행사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영화제 준비위 측에 있다. 1998년 여름 그 추악한 진실을 은폐한 이들이 누군지는 불분명할지 모르나, 2001년 가을 그 진실을 은폐한 이들, 아니 1998년의 진실까지 은폐한 이들이 누군지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밥하는 아줌마들이기에 천대받은,
하지만,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꽃들,
그러나 마침내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