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935일 촛불집회


3월 24일 토요일 저녁 9시, 사회자는 격정을 감추는 떨리는 목소리로 촛불집회의 마지막을 고했다. 오랜 시간 촛불을 들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발길을 돌리는 무거운 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4년 여간 대추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왔다. 반전운동을 일구려는 활동가들은 물론이거니와 대추리 마을의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사람들, 전쟁 없는 세상을 열망했던 사람들,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 지배세력들의 군사세계화를 비판했던 사람들 모두를 한자리에 모아냈다. 그곳에는 가슴 아픈 사연과 눈물어린 분노가 있었고, 갈등과 절망을 거두려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50여년 미군기지에 쫓겨난 채로 한없이 세월만 바라보던 시간과 경찰이 가하는 뭇매를 맞으며 눈물을 삼켰던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오랜 침묵이 깨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를 향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갈등과 모순 속에서 예술은 무엇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던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상이 아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서 ‘평화’를 보았고, 우리 스스로 자신의 운동을 바꾸려는 의도로 우리의 행동을 기획할 수 있었으며, 대추리의 현실을 응시했던 예술가들의 고통어린 손길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매개했던 대추리에서, 그 대추리를 지켰고 그 대추리를 밝혀온 촛불이 사그라진 것이다. 935일,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의 상징이 사그라진 것이다. 대추초등학교를 순식간에 장악하고 부숴버린 국가권력의 광폭한 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이에,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주민들의 일상적인 출입마저 통제해버리는 경찰력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던 사이에,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미망 속에서 자신의 무기력을 합리화하는 사이에, 과거와 같은 활동방식으로 되돌아가 늘 하던 식의 ‘평화운동’을 기획하는 사이에 말이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투쟁이 국가권력자와 주민들 사이의 이해당사자 문제로 축소된 채로 말이다.

935일 대추리의 촛불집회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평화운동의 뼈아픈 현실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났던 대추리 투쟁이, 긴 침묵을 깨고 평화를 향한 민중들의 각고의 노력과 함께 2006년 한해 온전히 자신을 드러냈던 대추리 투쟁이, 935일 만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그러한 평화운동의 현실을 온전히 보아야 한다. 대추리 투쟁의 영원성은 [대추리 자체를 온전히 기억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운동의 중단 없는 전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935일 촛불집회를 뒤로 하는 그 무거운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촛불을 하늘로 쳐든 채 촛불집회의 종언을 고하는 그 떨리는 목소리를 기억해야 한다. 그 무거운 발걸음과 떨리는 목소리에서 우리의 회한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범했던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대추리에서 영웅적으로 싸워온 주민들을, 평화를 향해 거침없이 도전해갔던 사람들을 온전하게 기억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대추리 투쟁을 우리 평화운동의 역사에서, 멀고도 험난한 평화운동의 역사에서 첫 페이지에 온전히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하라 대추리!’ 진실로 그렇게 기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