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라는 말은 노무현이 탄핵도 불사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노무현의 이런 대응은 ‘총선에서 심판받겠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는 한 방편으로 ‘총선’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이미 ‘재신임 국민투표’를 선언했을 때부터 예고되었던 것으로 오늘의 이 사태를 ‘우익의 쿠테타’로 단정지을 수 없다. 오히려 노무현정권이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으로써 기층 민중들의 광범위한 삶의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본다면 민중들에 의해 심판받아 마땅하고 이런 시각에서 지금의 탄핵국면을 보아야 한다.
냉정히 살펴보자.
오늘 아침 국회에서의 육박전과 탄핵안 가결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배세력의 위기, 정치의 파탄을 보여주었다. 현 시기 그 누구도 정치, 경제적인 위기의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차악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한판의 쇼였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은 결국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서로의 급소를 찌르며 자신이 덜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들이 즐기던 허울좋은 명분조차 챙기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위기의 책임을 모면할 수 있을까 골몰하고 있다. 파탄 난 민중의 삶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위기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싸움일 뿐이다. 이것은 이미 지금의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지배세력의 어떤 노력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이 판결은 철저히 총선결과에 좌우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으로 인해 민주압살, 민생파탄에 대한 쟁점을 이미 ‘누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느냐’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쟁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이 쟁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현 시기 민중들의 불만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사회 경제적 위기 때문인데, 지배세력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어차피 그들 중 누구도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총선이라는 정치적 시기에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은 ‘누가 덜 나쁜가’를 유일한 쟁점으로 만들며 민중들이 스스로의 요구로 제기하는 것을 봉쇄한다. 이번 탄핵 가결 사태는 이런 상황의 연장선에 있다. 민주수호나 부정부패 청산은 결코 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따라서 민중운동의 대응은 긴급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수구부패정치 청산과 탄핵무효화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노무현이 바라는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민중의 불만과 요구가 수구부패청산과 탄핵무효화 주장 속에서 봉합되거나 노무현 정권과 분리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탄핵은 총선의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며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구할것이냐 아니냐로 구도를 형성할 것이다. 따라서 수구부패청산과 탄핵무효화 요구는 그 구도속에서 결국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이익으로 귀결될 뿐이다. 무너진 헌정 질서를 개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객관적 조건으로 하는 노동자 민중의 결연한 투쟁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민중이 스스로 살 수 있는 길을 위해 민중이 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