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8호 | 2006.05.04
폭력 없이 유지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정권
노무현 정권에 파산을 선고한다
슬그머니 등장한 전자총
현대 하이스코 노동자들의 농성 진압에 1만 볼트짜리 전자총이 등장하였다. 경찰 관계자는 "전자총의 성능은 일반 동물에는 충격을 주지 않으며 인체의 근육계를 일시 마비시키는 성능이 있을 뿐"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그러나 이 전자총은 너무 위험하여 미국에서도 겨우 몇 주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99년부터 2005년 초까지만 해도 80여 명의 사망자를 냈고, 미국 법무부마저도 사용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낼 정도다. 테러 방지에 혈안이 되어있는 미국에서조차 위험해서 사용을 저어하고 있는 전자총이 2006년 한국에서 슬그머니 등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고무총마저 동원했다. 이는 97년 각 경찰서에 지급되었다가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쳐 사용이 취소되었다. 그러다가 2001년 3월 민중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후, 이제 시위 진압용 무기로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20m 거리에서 발사할 경우 3mm 합판을 4조각내는 파괴력을 가진 고무총을 경찰은 비살상 무기라며 시위대에 발포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집회와 시위 진압에 있어서만큼은 글로벌 스텐더드를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폭력으로 밖에 관리할 수 없는 위기
지난해 11월 현대 하이스코 노동자들은 크레인 점거 농성 투쟁을 통해 '노조인정, 해고자 복직'을 보장하는 회사 측의 확약서를 받아냈다. 하지만 지금 이 확약서는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노동계와 지역사회, 언론에 이르기까지 확약서를 확인한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약속 이행은커녕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72억 원이라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 하이스코 노동자들의 투쟁은 누가 보더라도 정당성이 있는 투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왜 순식간에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전자총을 들고 나왔을까? 혹자는 시위대의 쇠파이프와 화염병에 맞서려면 전자총 정도는 필요한 것이 아니냐며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그렇다면 쇠파이프와 화염병은커녕 나무막대기 하나 없이 오직 맨몸으로 싸워온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저지 투쟁에 군부대 투입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공권력이 시위대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피치 못해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평택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군부대가 투입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결국 공권력 경시나 투쟁의 폭력성을 운운하는 것은 시위 진압에 더 강력한 무기를 동원하고 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자총이 도입되고,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 군부대가 투입되는 것은 국가가 폭력 말고 다른 방식으로 민중들의 저항을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민중들을 해결 불가능한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동반되는 민중들의 저항에 대해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가 가진 유일한 해결 수단인 것이다. 현대 하이스코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에서 나타나 공권력 폭력은 시위 진압의 혹은 사회갈등 관리의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시위진압에 전자총 정도는 기본이고, 군부대가 투입되지 않는 것이 다행인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비단 시위진압만이 아니라 전자총은 경찰의 일상적인 구비장비가 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경찰 국가-불법을 양산하라!? 폭력으로 진압하라!?
문제는 이러한 국가의 폭력이 법적인 형태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합의'라는 허울 아래서 말이다.
지난 1월 19일 서울 세종로 중앙청사에서는 평화적 집회 시위 문화 정착 민관 공동위원회(이하 민관 공동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평화적 집회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부응하기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위원회는 향후 6개월 동안 평화적 집회시위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9일 2차 회의에서 바로 그 구체적인 대책이라는 것의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민관공동위원회 2차 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한 불법 폭력 시위를 막고 평화시위를 확산시키기 위한 32개 과제를 살펴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우선 정부는 3월부터 불법시위 관련자에게는 예외 없이 형사처벌 원칙을 적용하고, 불법 폭력 시위가 예상되는 단체는 집회 신고부터 종료까지 수사전담팀을 운영해 대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위 채증을 위해 비디오 디지털 이엔지(ENG) 카메라 등 고성능 장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또한 5월까지는 전문 폭력 시위자 개입 차단 방안 강구와 녹음기 사용 등 소음규제 강화를 추가 논의를 거쳐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불법 폭력시위 주동자 등에 대한 형벌 강화, 폴리스 라인 침범행위 엄단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 정도만 듣고 놀라서는 안 된다. 이 위원회에서 검토하고 있는 방안중 하이라이트는 불법 시위자에 대한 민사상 배상 청구를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손배가압류는 2003년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그 이후 수도 없이 반인간적인 노동 탄압이라고 지적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를 확대 시행하겠다는 것은 더 많은 민중들의 죽음을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민관공동위원회는 경찰이 직접 시위자를 죽이기는 부담스러우니 불법 시위자는 알아서 목숨을 끊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기에 갈등을 인정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국가는 자신의 정책을 합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이를 독단적으로 추진한다.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세력은 불법으로 만들어버린다. 되돌아보자. 최근 몇 년간 도대체 몇 번이나 집시법 개악 논란이 있었고 또 실제로 개악되었는지를 말이다. 뿐만 아니다 심지어는 테러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민중들의 저항을 테러 대책 속에 포함하려고하는 시도까지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은 몇 일전까지만 해도 합법이었던 것을 불법으로 순식간에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불법행위는 국가의 '너무나도 정당하고 숭고한'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는 불법을 양산하고, 그 불법을 마음 놓고 진압하는 과정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폭력으로 밖에 유지될 수 없는 노무현 정권에 파산을 선고하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쩌면 서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5월 4일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이 벌어지는 평택에서는 경찰, 군대, 용역깡패 1만 5천여 명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군사작전을 펼쳤다.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 포함된 공권력과 사유화된 폭력이 어께를 나란히 하고 평택 주민들의 땅을 강탈하는 사상 초유의 작전명령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을 신자유주의 '경찰' 국가라고 부르기조차 머쓱해지는 이 작전이 수행된다면 우리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제발 농사만 짓고 살게 해달라고 절규하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경찰도 모자라 군대와 깡패를 동원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붙이고 살아왔던 이 땅에 있고 싶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단 하나 뿐이다. 폭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노무현 정권에 파산을 선고하는 것이다. 80년 광주민중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노태우 학살자 처벌 투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처럼 기어이 민중들의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정권을 단죄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최후의 금기마저 깨뜨리려고 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 신자유주의 경찰국가가 광기 어린 폭력을 양산하고 있는 바로 오늘이 스물여섯 해 전 도청을 사수했던 광주 민중들에게 우리가 여전히 답하지 못했던 것을 답해야 하는 시간이다. 어느 시인의 말과 같이 우리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