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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평택특별판-310호 | 2006.05.12

주권자인가 종복인가 - 황새울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장진범|정책편집부장


5월 4일 저 잔혹한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개시된 이래, 국가와 지배계급들은 가히 광기어린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불법적인 군사보호구역 설정, 80년 5월 광주항쟁 이래 26년만의 군 투입, 대추분교 진입 당시 경찰청 인권위원조차 ‘피바다’라 부를 만큼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행사된 경찰폭력, 원래는 자신들의 사무실로 쓰겠다고 했던 대추분교의 강제철거, 4일에만 524명을 연행하고 5일 밤에는 10시 당시 집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100여명을 연행한 계엄적 조치, 법원조차 대부분을 기각할 만큼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 군 철조망을 넘은 이들에 대한 군법 적용 발언, 김지태 이장의 축사에 경찰버스가 접근한 직후 발생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평택 시위진압 예비비로 의결된 92억 5천만 원. 그리고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잔혹과 폭력.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지배계급들의 명운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벌일 수 없는 조직적 야만들.

80년 5월 광주에서나 2006년 5월 평택에서나 미국과 한국의 지배계급들은 하나의 영혼에 의해 인도되는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한미전쟁동맹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모든 시민들을 ‘불순세력’이라고 매도할 때,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순수성의 척도가 다름 아닌 미국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임을 수치심도 없이 폭로한다. 아니 5월 광주에서는 미국이 유혈진압을 묵인했을 뿐이지만, 5월 평택에서는 미국을 위해 민중을 압살한 것이니, 살인마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져 최초로 민중들 앞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노무현의 후안무치함과 흉악함은 도리어 전두환을 넘어선다.

국가와 언론은 이 문제를 평택만의 문제로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문제를 아예 끝난 문제로 치부하고 침묵하든, 보상 문제로 호도하든, ‘일부 외부 불순 폭력’ 세력에 조종된 것이라고 하든. 80년 광주를 고립시키고 압살했던 국가와 언론은 이렇게 자신들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거나 심지어 더 교활하게 진화했음을 증명한다.

지배계급들은 우리의 불복종과 저항을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근대적 공권력의 정당성을 기초 짓는 원리 곧 ‘인민주권’에 정면 도전한 자, 그리하여 가장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폭정’ 즉 법과 국가폭력의 사적 전유를 자행한 자, 폭정이 인민주권을 짓누를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최종적 권리로서 저항권의 발동마저 부정함으로써 순식간에 근대 민주주의를 중세 봉건제와 절대군주제로 돌려놓은 저 무도하고 반동적인 폭력세력들이 누구인가.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정당성의 근거이자 입만 열면 강조해 마지않는 한반도의 안보를 근본적인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주지하듯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는 저들 스스로 똑똑히 인정하듯, 한반도를 미국의 동북아 기동타격대의 병참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지목하는 미국이 동북아 및 세계 도처에서 일으키고 다니는 분쟁의 핵심 거점이 된다. 또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국가가 북한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면 할수록 한반도는 항상적인 전쟁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평택만의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의 주권의 문제인 것은 이렇듯 이 문제가 안보를 가름하는 핵심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황새울의 주민들을 핍박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국책사업’이라는 말은, 이것이 최소한 국가 전체 차원의 문제임을 저들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국가는 이 문제에서 주권자인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기망했다. 그랬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 행사에 정당성이 부재하다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이를 폭로하는 모든 시민들, 평택 주민들 및 이들과 연대하려는 모든 시민들을 온갖 추잡하고 교활하며 폭력적인 수단으로 탄압했다. 황새울을 전쟁기지가 아닌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유지할 것이고 자신의 운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한 농민들에게, 보상금을 더 타 내고 국책사업에 반항하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이라는 모독을 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안이 저들 말대로 ‘국책사업’이고 심지어 주권적 차원의 문제라면, 몇몇 기술관료들의 자의로 결코 결정될 수 없다고, 만일 그런 식으로 처리하려 한다면 주권자의 이름으로 단호히 불복종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한 시민들에게는 또 어떻게 대했는가. ‘반미’ 세력이라고 색깔공세를 가하고 ‘외부’ 세력이라며 주권을 침해했으며 ‘폭력’ 세력이라며 이 끔찍한 폭력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는가. 저들이 정언명령으로 숭상하는 한미동맹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문제제기를 하면 중세의 이단과 마녀처럼 인간사냥을 당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의 대립을 친미와 반미의 대결이라고 부르지 말라. 이것은 맹목과 이성,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결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완전히 되돌리려는 반동과의 대결이다. 또한 저 타락한 민주화 세력, 계엄령 없는 계엄세력이 군홧발로 다시 한 번 짓밟은 광주의 정신과 민주주의를 아래로부터의 저항으로 되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이른바 ‘공화국의 위기’는 2004년 노무현을 탄핵시킨 의회가 아니라 바로 지금 2006년 5월 시민을 향해 군사작전을 행한 평택의 갈라진 들판에 있다. 아니 어쩌면 공화국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저 노무현에게 다시 권력을 돌려줌으로써 오늘의 군사작전을 벌이게 허락해 준 2004년 광화문의 촛불일지도 모른다. 당시 광화문에서 단 한번이라도 촛불을 들었던 모든 이들에게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호소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충격과 공포’ 작전이 그랬듯, 평택에 대한 국가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은 막대한 폭력과 잔혹의 상연을 통해 평택 주민들의 사기와 의지를 꺾음으로써 이 문제가 더 이상 사회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지난 600여 일간 국가의 불의한 핍박에 맞서 저항함으로써 전국의 시민들 또는 저들의 표현대로 ‘외지인’들을 황새울로 불러 들였던 평택 주민들의 촛불을 꺼뜨린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셈하는 것이다. 저들의 비열한 폭력 따위로는 주민들의 의지에 조금의 흠결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침묵하고 외면한다면, 그리하여 불의와 폭력에 공모한다면, 80년 광주의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민들은 죽어갈 것이다. 주민들이 죽어나간 자리에 미군의 전쟁기지가 세워질 것이고, 세계의 분쟁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고,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고 불복종하는 모든 시민들은 평택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립된 채 죽어갈 것이다.

평택 주민들은 자신의 온몸을 던져 평화와 정의, 주권을 위해 싸웠다. 적들의 가혹한 탄압 앞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제는 당신들의 차례, 당신들의 책임이라고. 그들의 부름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우리가 아직 주권자라면, 또는 차라리 주권자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5월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5월 14일 평택에서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의한 국가에 저항함으로써, 국가의 분열 책동이 헛수고에 불과함을, 그리고 우리의 존엄성이 지극히 두려운 것임을 국가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80년 광주를 외면한 후 그랬던 것처럼 국가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찬 종복으로 전락할 것이다.

주권자인가 신민인가,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여기서 내린 결정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규정할 것이다. 광주를 외면한 후 우리는 적어도 7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한반도가 미군의 병참기지가 되어 미국이 일으킨 전쟁과 그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이 우리의 삶과 정치를 뒤덮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제어
평화 민중생존권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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