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평택특별판-310호 | 2006.05.12
미국의 군사세계화에 빼앗길 수 없는 민중의 민주주의를 쟁취하자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의미와 향후 계획
5월 4일 새벽, 비상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시위진압이 시작되었다. 가히 80년 5월 광주를 연상케 하는 유혈진압이었다. 지난 3년여의 기간 동안 팽성주민 대책위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 대책위,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확장된 평택미군기지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쟁기지로 기능하는 문제, 그리고 삶의 거처를 빼앗긴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생존권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국방부는 3월부터 강제행정대집행을 가차없이 진행시켰다. 계엄을 연상케 하는 무차별 폭력진압의 명분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국책사업”이라는 것이었다.
5월 4일 1만 2천명의 용역깡패, 경찰, 군대가 황새울 들녘과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을 장악한 후,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논길과 도두리 마을 창고, 대추 초등학교는 갑작스럽게 “군사보호구역”으로 둔갑했다. 저들은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 연행하고, 마을엔 군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하였다. 5월 5일과 6일, 집회참가자를 연행한다는 명목으로 마을과 민가까지 경찰의 수색이 시작되었다. 이는 곧 마을 전체를 공권력이 통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명숙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은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폭력시위를 주도한 ‘반미세력’에 강경대응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한편, 현지 주민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회유와 협박, 물리적인 위협을 강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는 맨손으로 철조망을 걷어내고 군인에게 항의한 집회참가자에게 군형법을 적용하여 엄벌하겠다는 경고와 함께 구속, 체포영장 발부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언론은 현 상황을 미군기지 확장 반대세력과의 우발적 충돌로 규정하면서, 이 사안이 사전의 대화와 협의 절차를 통해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한 문제였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일정한 행정집행의 절차를 무시한 정부의 안일함에 대한 비판과 함께 주민 보상 문제가 적절하게 협상되지 못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인 평택미군기지 확장의 문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의 전략적 의미
가차없는 폭력진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진행시켜야 했던 한국정부의 그 ‘국책사업’이란 바로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이행하는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 하에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를 살펴 본다면, 지배계급들이 평택미군기지확장의 문제를 한국 민중과 협상할 수 없었던 까닭을 알 수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투쟁은 기본적으로 주한미군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비준동의안”(용산기지 이전안)과 2003년 3월 29일 서명된 한-미 연합 토지관리계획협정에 관한 개정협정비준동의안”(연합토지관리계획 LPP)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는 보다 포괄적으로 2004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한-미 미래안보정책구상(FOTA)에서 논의되어왔던 주한미군 감축과 기지이전 협상을 배경으로 한다. 이 협상은 한미 군사동맹의 현대화의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군의 한국군 작전권을 비롯한 10개 임무 이양, 한미전력 증강방안 논의와 궤를 같이 한다.
이는 2006년 1월 20일 1차 한-미 장관급전략대화를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한 것을 끝으로 모든 법적, 제도적 절차가 마무리된 상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전 세계에 주둔해 있는 주둔미군을 재편하는 계획, 그 중 동북아 지역의 주둔미군재편계획의 일환으로 파악될 수 있다.
첫째, 이는 미국의 대북전략과 한반도 전쟁위협이 보다 공격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북 공격 전략은 이미 작전계획5030에 이르러 선제 핵공격전략과 ‘인권외교’ 강화를 통한 북한정권교체라는 선제공격전략으로 완성된 상태다. 주한미군을 한강이남지역으로 재배치하여 북한 측 공격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한편, 북에 대한 공격적 태세를 강화하는 역할은 한국군의 이른바 ‘자주국방’ 강화․보완을 통해 이전하고 주한미군은 평택과 오산을 주요 거점으로 하여 안정적으로 영구주둔함으로써 미국의 대북공격전략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미군의 동북아지역에서의 전략적 재편은 한-미-일 지역동맹을 한층 광범위하게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대만 분쟁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에 이른 수많은 종족적, 종교적 군사 분쟁에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한편, 역으로 아시아 지역의 광범위한 빈곤과 폭력 등의 불안정성이 동북아 지역의 경제적 통합력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막의 역할. 이것이 바로 평택미군기지를 포함한 서해안 군사 벨트의 임무가 된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집중되어 있는 동북아지역의 신자유주의 경제통합과정은 미국에게 사활적 이해를 갖는다. 즉 미국에게 있어 현 시기 동북아 군사패권전략은 유럽과 중국의 부상을 제압하는 군사패권을 공고히 하는 의미를 넘어, 아시아 지역의 불안정성으로부터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 요충지를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우산아래 있는 한국정부에게 있어 현재의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계획은 남한에서의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위상을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처럼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계획이 한-미 군사동맹이 현대적 의미로 확장, 강화될 수 있느냐의 여부이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목소리와 의사, 또한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대한 국민들의 목소리와 의사를 고려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 현재의 광폭한 물리적 폭력에 대한 유화책으로 “주민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하고, 반미세력의 극단적인 불법과 폭력은 자제되어야 하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의 적합성 문제를 사회적 협의를 통해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며 일정한 행정적 절차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군기지 확장을 2008년까지 추진한다는 전제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미국의 군사패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민주주의 쟁취 투쟁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변화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은 곧 미국의 패권아래 있는 수많은 민중들이 스스로의 평화와 생존의 권리를 인식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자주적인 한-미동맹을 실현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말이 대국민 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지난 5월 4일 평택에서 벌어진 국방부 스스로의 불법폭력, 유혈진압의 행태를 통해 낱낱이 폭로되었다. 군사세계화를 추진하는 미국에게 있어 동아시아 군사․안보전략의 핵심요충지인 평택미군기지 확장계획에 대해 한국정부의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평택기지이전협상과 강제집행과정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행정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제국에 저항하는 민중의 정치적 권리의 문제이다. 또한 정부와 언론이 연일 선전하는 반미세력의 불법, 폭력시위라는 잣대 역시 현 사태를 규정하는 핵심 사안이 될 수 없다. 현 시기 이미 도를 넘어서는 대국민 폭력과 불법을 스스로 자행하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남한 지배계급이다.
현 시기 미국의 군사 전략의 재편의 첨병, 평택미군기지 확장이라는 사안은 한반도 민중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반도 민중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을 수호하며 미국의 군사패권의 우산 아래 머물 것인가, 아니면 군사력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폭력과 야만을 폭로하며 동아시아 민중들과 연대할 것인가. 팽성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은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존재하고 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즉 미군의 전략적 재편이 초래하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 위협을 거부할 수 있는 한반도 민중의 권리를 정치적으로 제기하고 이 투쟁을 확장해내자. 온 국민의 삶을 유린하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미FTA 반대투쟁과 비정규개악안 저지투쟁과 함께, 미국의 군사세계화 하에서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민중의 삶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을 전국적으로 확장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