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4호 | 2006.11.22
누가 우리의 삶을 구원할 것인가? 민중총궐기로 새로운 세계를 결단하자!
부동산 ‘광풍’, 새로운 부동산 대책이 잠재울 수 있을까?
지금 온 나라가 부동산 ‘광풍’에 휘말려 있다. 2005년 이후 집값은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어 섰음에도 여전히 전체 가구 중 45.4%에 달하는 무주택 서민들은 미친 듯이 오르는 집값에 가슴이 타고 일부 투기세력들과 건설회사는 계속되는 대박에 쾌재를 부른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재건축 규제 강화와 부동산 세금을 강화하여 투기를 억제하는 방향에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담보 대출을 규제하여 돈줄을 죄는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을 선회하며 사실상 ‘정책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한나라당이 주장했던대로 주택 공급가격에 대한 과도한 국가 규제가 현재 부동산 ‘광풍’의 원인이며 공급확대와 시장규제의 완화가 문제의 해결책인가? 물론 단기적으로 공급의 확대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강한 기대가 있고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이 계속되는 한 공급확대는 오히려 투기상품의 확대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번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68%가 여전히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는 점은 당분간 투기열풍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확대는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투기를 부채질 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판교 신도시 개발로 풀린 토지보상금이 분당 등 기존 투기지역으로 유입되면서 가격을 크게 올렸으며, 행정수도 이전을 비롯하여 그 동안 정부가 발표한 각종 국토개발계획은 해당 지역의 투기만 부채질해 왔다.
부동산 ‘거품’은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결과
이렇듯 공급확대냐 투기수요 억제냐, 시장주의냐 규제주의냐를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사이의 공방은 현재 부동산 ‘광풍’의 본질을 빗겨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상을 언급한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 즉 현재의 부동산 ‘광풍’의 핵심 요인은 시중에 자금은 넘쳐 나는데 부동산을 제외하고 투자할 곳이 없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 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시중에 유동자금이 확대되었지만 전통적인 예상처럼 생산적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경기가 부양되기는커녕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되어 투기열풍만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당국으로서는 과감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경기가 또다시 침체기로 접어 들고 있는 상태에서 불가능한 선택지이다. 사실 이는 지난 몇 년간 정부가 처해 있던 딜레마이기도 하다. 경기가 만성적인 침체상태를 지속하는 가운데 쉽사리 금리를 인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부동산 대책은 단기적인 공급과 수요를 조정하는 미세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져 온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모두 실제로는 이 수급조절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겉으로는 정치적인 수사를 동원해 왔을 뿐이다.
더구나 부동산 시장의 팽창은 단기적으로 볼 때 부족한 수요를 확대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어 왔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신용카드 확대 정책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즉 경기가 지속적인 침체 상황에 빠지면서 부족한 내수기반을 일부 자산계층들의 부동산 수익 확대로 메워 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생산적 투자가 확대되지 못하고 부동산을 비롯하여 금융자산에 대한 투기만 확대되는 이유는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투자 수익을 보장할 만큼 충분한 이윤을 생산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 등의 일부 글로벌한 대기업이나 몇몇 기업들은 예외이겠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생산 자체가 이윤을 더 이상 충분히 뽑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이나 주식시장과 같은 금융시장이 팽창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각종 제도들을 도입하고 규제를 철폐하거나 한편으로 너무 과열되어 거품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미세적인 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의 이윤율의 하락, 투기를 동반하는 금융적 팽창과 이를 오히려 조장해 온 국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바로 지금 부동산 ‘광풍’의 근본적 원인인 것이다.
또 하나의 ‘광풍’ : 노동 유연화와 노동권의 무력화
한편, 부동산 ‘광풍’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민중들의 삶을 위기에 몰아넣는 또 하나의 강력한 광풍이 있다. 이는 바로 비정규직 문제로 이야기되는 고용의 불안, 임금의 하락, 그리고 노동권의 무력화의 문제이다. 전체 자본의 이윤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한편으로 금융적 팽창이 시도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 기업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전체 노동시장에서 국가가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흐름이 추진되고 있다.
흔히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양극화의 중요한 요소로 설명된다. 사회 양극화는 주로 상위층의 소득과 하위층의 소득의 격차의 확대로 설명되나 사실 양극화는 대다수 인구의 빈곤화의 하나의 현상이다. 통계청의 가계소득지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근로자가구가의 가계 흑자율은 상위 10%를 제외한 모든 가계에서 97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 통계가 도시의 근로자가구라는 비교적 사정이 나은 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빈곤의 확산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정부도 지적하고 있듯이 비정규직의 확대를 비롯한 ‘노동의 유연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97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매우 낮은 임금 수준에 처해 있을뿐더러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고용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정규직도 ‘유연화’하되 일부 문제가 되는 점을 개선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의 투쟁은 정규직 이기주의로 몰며 강력하게 탄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문제는 기업들이 생산과정에서 창출된 이윤을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전체 몫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 소득 중 임금소득의 비율은 1997년 약 0.7에서 2003년 약 0.6으로 1980년 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렇다면 남는 이윤은 어디로 갔을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생산적 투자보다는 대부분 기업주에게 배당되거나 유보이윤이라는 형태로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로 돌아갔다. 결국 노동자들이 최소한 일한 만큼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고 기업과 정부는 비정규직을 확산시켜 이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총궐기로 새로운 세계를 결단하자
금융화의 광풍, 비정규직의 광풍,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한국사회 민중의 현재의 삶 뿐 만 아니라 미래의 꿈마저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은 이러한 광풍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일부 자산계층과 기업들의 편에서 광풍을 스스로 더욱 키우고 혹은 민중들의 불만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계속 해왔다.
누가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을 지켜내는 길은 우리 스스로의 투쟁에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 지고 있다. 따라서 11월 22일 시작되는 민중들의 총궐기는 단지 일부 잘못된 정책을 시정하는 투쟁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근본적으로 단절한 새로운 세상을 결단하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 나가겠다는 힘찬 선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닌 민중들의 대안적 세계화로! 그 힘찬 첫 걸음을 내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