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6호 | 2007.08.29
‘바닥 생존’을 넘어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위한 투쟁을!
보건복지부의 2008년 최저생계비 결정을 규탄한다
올해는 생활보호제도의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공공부조 역사상 ‘획기적 전환점’을 자처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가 시행된지 8년이 되는 해다.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기초법 제2조 제6항에 명시되어 있다. 기본생활의 보장이 국민의 권리이고 따라서 연령에 관계없이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라도 수급자가 되며 수급자 모두에게 현금으로 소득보장이 이루어진다는 기초법의 취지는 한국사회 복지정책기조의 획기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듯 했다. 그러나, 올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최저생계비를 결정한 과정과 결과는 과연 그것이 ‘획기적 전환점’이었는지, 전환점이 되었다면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바닥 생존’ 강요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개최해 2008년 최저생계비를 결정했다. 내년도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46만3000원, 4인가구 1백26만6000원으로 2007년에 비해 각각 6.2%, 5.0% 인상된 금액으로 결정되었고, 9월 1일 보건복지부 장관의 최종 공표를 앞두고 있다. 올해가 3년에 한번 돌아오는 계측년도임에도 불구하고 비계측년도에 적용되는 물가인상률 3%를 제하면 2%수준의 인상 결정인 것이다. 게다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현금급여기준은 1인가구 38만8000원(3.9%), 4인가구 1백6만원(2.7%)으로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오히려 삭감된 결과다. 이 액수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이토록 최저생계비를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월 2일 정부는 빈곤율이 둔화되고 소득분배 개선효과가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가구의 비율이 2003년 11.1%에서 2005년 11.7%로 늘었다가 2006년에는 11.2%로 낮아졌다는 것이 정부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이는 결코 빈곤층의 소득이 일부 개선된 결과가 아니다. 단지 빈곤율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의 변동으로 인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2005년 최저생계비는 전년 대비 7.7%가 인상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의 증가를 가져 왔고 따라서 빈곤율이 약간 상승하였다. 그렇다면 2006년에 빈곤율은 왜 낮아 졌을까? 그 이유는 최저생계비 자체가 상대적으로 하락한 결과이다.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최저생계비 비중은 1999년 38.2%에서 2007년 31.1%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즉, 한국사회의 빈곤지표로 사용되는 최저생계비가 낮으면 낮을 수록 기초법 수급자에게 보장되는 소득(이것의 기준 또한 최저생계비이다.)이 낮으면 낮을 수록 빈곤율은 하락한다! 절대빈곤층의 생활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사회의 빈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인간다운 생활은 커녕 최소한의 생존조차 힘들 정도로 낮은 최저생계비는 160만 명의 수급자를 우롱하고 수백만의 빈곤층을 제도 밖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형편이라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바닥생존고착제도’로 이름을 바꾸어야 마땅하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특정 계층의 생계비품목을 조사하여 조사자가 자의적으로 합산해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전물량방식'으로 계측되고 있다. 이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은폐할 뿐 더러 조사자의 주관적 판단이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계측과 무관하게 할당된 예산규모가 사실상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2005년 최저 생계비를 계층하던 당시, 조사자인 보건사회연구원은 최저생계비를 150만원으로 측정했지만 정부 예산에 맞추어 112만원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심지어 올해에는 보건사회연구원이 알아서 계측 자체를 낮게 해 버렸다. 불과 6.6%(물가상승률 포함)의 인상안을 제시한 것이다. 계측 과정과 결과는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 입장에 서 있는 연구자에 의해 자의적 조정이 가능한 것이 지금의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최저생계비는 지속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낮아진다는 비판이 수없이 제기되었으나, 이번 결정과정에서 이러한 비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연계복지의 실험지, 빈곤은폐의 수단으로 전락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바꿔야 한다
기초법 제정 당시 부터 제기된 과도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세우거나 추정소득을 비현실적으로 측정하는 등 몇 가지 기초법의 문제들은 수급자들과 사회운동의 항의에 부딪혀 일부 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초법의 핵심 문제점 중 하나인 조건부수급조항은 여전히 굳건하다. 수급자 내에서 노동능력자와 무능력자를 선별하여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자활근로사업에 강제 참여토록 한 규정이 그것이다. 이는 빈곤층을 감금하여 ‘잔여’노동자로서 노동의무를 강요하는 현대판 ‘구빈원’ 제도다. ‘취업 가능한’ 빈민에 대한 지원은 강제노역 동원의 대가로서 주어지는 셈이다. 기초법이 과거의 생활보장제도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는 이런 노동연계복지정책을 노골적으로 도입한 지배세력의 ‘쾌거’를 인정할 때 성립 가능하다. 한편 이렇게 출발한 자활근로사업은 이후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그리고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전략의 기본적 토대를 이루며 이들 분야에 저임금의 노동력을 공급해왔다.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계획대로라면 저임금불안정의 노동자 하위 층을 형성해나가는 전략의 확대에 기초법은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이른바 ‘자기구휼’의 형태로 말이다.
지배세력에 있어 기초법의 두 번째 공은 앞서 지적한 빈곤은폐효과다.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빈곤과 계급적 불평등은 최저생계비라는 절대지표 앞에서 화두가 되기 어렵다. 사회 구성원의 소득 불평등 과 대다수 민중의 빈곤 심화 지표는 중산층이 사라져서 걱정인 사회양극화 문제로 둔갑하고 바닥생계비인 최저생계비에 대비하면 빈곤율은 호전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지배세력은 사회적으로 고착화, 구조화되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이러한 지표들을 활용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준)을 비롯한 반빈곤운동단체들은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주장해왔다. 이는 최저생계비를 법에 규정된 대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현실화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사회의 부가 누구에게 편중되고 있는지 사회 전반의 빈곤과 불평등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그 기준이 비과학적이고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힘들다고 반박해왔다. 정부 역시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는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의 보장’이 되어 버린 현재의 최저생계비 결정 방식을 일부 보완하겠다는 수준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라는 기준에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한다면 무엇이겠는가? 지금 정부가 선택하고 있는 기준은 과연 누구의 기준인가? 빈곤사회연대(준)은 지금 한 달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생계비/적정생계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짜피 정부관료와 학자들의 주관에 의해 최저생계비가 결정되는 지금의 방식보다, 빈곤대중 스스로의 필요와 욕구가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기초법이 진정 기본적인 생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서는 인간다운 삶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고 이 토론 과정에는 빈곤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기초법은 한국 사회의 유일한 공공부조 정책으로서 절대빈곤층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현금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160만 수급자의 삶을 쥐고 흔드는 제도다. 그러나, 최저생계비 120%를 기준으로 할 때 700만이 넘는 빈곤인구 중 500만 이상은 이러한 제도를 활용할 수 없고 오로지 노동시장에서의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생계를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비정규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33%에 불과하다.) 기초법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면 이렇듯, 수치를 낮추어 빈곤을 은폐하는 제도의 현실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최저생계비 기준선은 한국사회 빈곤 지표의 기준선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회복지 급여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지표를 현실화하는 것, 최저생계비 기준선을 끌어올리는 것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를 포함한 빈곤층의 삶의 지표를 끌어올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빈곤 대중의 ‘몫소리’를 모아나가는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 투쟁을 전개하자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하에서 정신없이 쏟아져나오는 복지정책들은 빈곤층을 복지의 수혜자로 머물게 하고 공동의 인식과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저임금노동자에게 지원한다는 근로소득장려세제(EITC)나 기초노령연금이 신설된 연금개편안 등에 대해 사회운동은 혼란해 하기도 했다.
각각의 복지제도에 대한 개별대응만으로는 오늘날 확산되는 빈곤의 원인을 제거하고, 빈곤의 결과인 민중의 삶의 고통을 치유하기 어렵다. 출발점을 분명히 잡고 투쟁을 확산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초법이 보장하는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08년 최저생계비 결정과정에서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어떻게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중의 삶을 억압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보건복지부의 2008년 최저생계비 결정은 무효임을 선언하자. 첫째, 한국사회에 만연한 빈곤을 은폐하기 위한 ‘바닥기준선’을 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해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셋째, 빈곤층을 억압하고 수동적인 복지수혜자로 머물게 하는 동시에, 그나마 포괄범위도 극히 제한적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이토록 빈곤하게 만드는가? 누가 우리에게 바닥의 생존을 감내하길 강요하는가? 이제 빈곤 대중의 생활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를 제기하기 위한 빈곤 철폐의 ‘몫소리’를 모아내야 할 것이다. 민중의 삶을 빈곤의 바닥으로 몰아 넣고 있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자. 이는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해 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소득의 보장, 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비롯한 공적인 사회서비스의 확보, 노동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동권 쟁취 투쟁의 결합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더 많은 연대와 더 많은 투쟁만이 빈곤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길이다.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통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편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자.
‘바닥 생존’ 강요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개최해 2008년 최저생계비를 결정했다. 내년도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46만3000원, 4인가구 1백26만6000원으로 2007년에 비해 각각 6.2%, 5.0% 인상된 금액으로 결정되었고, 9월 1일 보건복지부 장관의 최종 공표를 앞두고 있다. 올해가 3년에 한번 돌아오는 계측년도임에도 불구하고 비계측년도에 적용되는 물가인상률 3%를 제하면 2%수준의 인상 결정인 것이다. 게다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현금급여기준은 1인가구 38만8000원(3.9%), 4인가구 1백6만원(2.7%)으로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오히려 삭감된 결과다. 이 액수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이토록 최저생계비를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월 2일 정부는 빈곤율이 둔화되고 소득분배 개선효과가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가구의 비율이 2003년 11.1%에서 2005년 11.7%로 늘었다가 2006년에는 11.2%로 낮아졌다는 것이 정부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이는 결코 빈곤층의 소득이 일부 개선된 결과가 아니다. 단지 빈곤율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의 변동으로 인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2005년 최저생계비는 전년 대비 7.7%가 인상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의 증가를 가져 왔고 따라서 빈곤율이 약간 상승하였다. 그렇다면 2006년에 빈곤율은 왜 낮아 졌을까? 그 이유는 최저생계비 자체가 상대적으로 하락한 결과이다.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에 대한 최저생계비 비중은 1999년 38.2%에서 2007년 31.1%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즉, 한국사회의 빈곤지표로 사용되는 최저생계비가 낮으면 낮을 수록 기초법 수급자에게 보장되는 소득(이것의 기준 또한 최저생계비이다.)이 낮으면 낮을 수록 빈곤율은 하락한다! 절대빈곤층의 생활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사회의 빈곤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인간다운 생활은 커녕 최소한의 생존조차 힘들 정도로 낮은 최저생계비는 160만 명의 수급자를 우롱하고 수백만의 빈곤층을 제도 밖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형편이라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바닥생존고착제도’로 이름을 바꾸어야 마땅하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특정 계층의 생계비품목을 조사하여 조사자가 자의적으로 합산해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전물량방식'으로 계측되고 있다. 이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은폐할 뿐 더러 조사자의 주관적 판단이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계측과 무관하게 할당된 예산규모가 사실상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2005년 최저 생계비를 계층하던 당시, 조사자인 보건사회연구원은 최저생계비를 150만원으로 측정했지만 정부 예산에 맞추어 112만원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심지어 올해에는 보건사회연구원이 알아서 계측 자체를 낮게 해 버렸다. 불과 6.6%(물가상승률 포함)의 인상안을 제시한 것이다. 계측 과정과 결과는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 입장에 서 있는 연구자에 의해 자의적 조정이 가능한 것이 지금의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최저생계비는 지속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낮아진다는 비판이 수없이 제기되었으나, 이번 결정과정에서 이러한 비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연계복지의 실험지, 빈곤은폐의 수단으로 전락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바꿔야 한다
기초법 제정 당시 부터 제기된 과도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세우거나 추정소득을 비현실적으로 측정하는 등 몇 가지 기초법의 문제들은 수급자들과 사회운동의 항의에 부딪혀 일부 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초법의 핵심 문제점 중 하나인 조건부수급조항은 여전히 굳건하다. 수급자 내에서 노동능력자와 무능력자를 선별하여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자활근로사업에 강제 참여토록 한 규정이 그것이다. 이는 빈곤층을 감금하여 ‘잔여’노동자로서 노동의무를 강요하는 현대판 ‘구빈원’ 제도다. ‘취업 가능한’ 빈민에 대한 지원은 강제노역 동원의 대가로서 주어지는 셈이다. 기초법이 과거의 생활보장제도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는 이런 노동연계복지정책을 노골적으로 도입한 지배세력의 ‘쾌거’를 인정할 때 성립 가능하다. 한편 이렇게 출발한 자활근로사업은 이후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그리고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전략의 기본적 토대를 이루며 이들 분야에 저임금의 노동력을 공급해왔다.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계획대로라면 저임금불안정의 노동자 하위 층을 형성해나가는 전략의 확대에 기초법은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이른바 ‘자기구휼’의 형태로 말이다.
지배세력에 있어 기초법의 두 번째 공은 앞서 지적한 빈곤은폐효과다.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빈곤과 계급적 불평등은 최저생계비라는 절대지표 앞에서 화두가 되기 어렵다. 사회 구성원의 소득 불평등 과 대다수 민중의 빈곤 심화 지표는 중산층이 사라져서 걱정인 사회양극화 문제로 둔갑하고 바닥생계비인 최저생계비에 대비하면 빈곤율은 호전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지배세력은 사회적으로 고착화, 구조화되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이러한 지표들을 활용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준)을 비롯한 반빈곤운동단체들은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주장해왔다. 이는 최저생계비를 법에 규정된 대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현실화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사회의 부가 누구에게 편중되고 있는지 사회 전반의 빈곤과 불평등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그 기준이 비과학적이고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힘들다고 반박해왔다. 정부 역시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는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의 보장’이 되어 버린 현재의 최저생계비 결정 방식을 일부 보완하겠다는 수준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라는 기준에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한다면 무엇이겠는가? 지금 정부가 선택하고 있는 기준은 과연 누구의 기준인가? 빈곤사회연대(준)은 지금 한 달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생계비/적정생계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짜피 정부관료와 학자들의 주관에 의해 최저생계비가 결정되는 지금의 방식보다, 빈곤대중 스스로의 필요와 욕구가 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기초법이 진정 기본적인 생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서는 인간다운 삶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고 이 토론 과정에는 빈곤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기초법은 한국 사회의 유일한 공공부조 정책으로서 절대빈곤층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현금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160만 수급자의 삶을 쥐고 흔드는 제도다. 그러나, 최저생계비 120%를 기준으로 할 때 700만이 넘는 빈곤인구 중 500만 이상은 이러한 제도를 활용할 수 없고 오로지 노동시장에서의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 생계를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비정규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33%에 불과하다.) 기초법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면 이렇듯, 수치를 낮추어 빈곤을 은폐하는 제도의 현실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최저생계비 기준선은 한국사회 빈곤 지표의 기준선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회복지 급여의 기준선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생계비 지표를 현실화하는 것, 최저생계비 기준선을 끌어올리는 것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를 포함한 빈곤층의 삶의 지표를 끌어올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빈곤 대중의 ‘몫소리’를 모아나가는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 투쟁을 전개하자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하에서 정신없이 쏟아져나오는 복지정책들은 빈곤층을 복지의 수혜자로 머물게 하고 공동의 인식과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저임금노동자에게 지원한다는 근로소득장려세제(EITC)나 기초노령연금이 신설된 연금개편안 등에 대해 사회운동은 혼란해 하기도 했다.
각각의 복지제도에 대한 개별대응만으로는 오늘날 확산되는 빈곤의 원인을 제거하고, 빈곤의 결과인 민중의 삶의 고통을 치유하기 어렵다. 출발점을 분명히 잡고 투쟁을 확산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초법이 보장하는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08년 최저생계비 결정과정에서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어떻게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중의 삶을 억압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보건복지부의 2008년 최저생계비 결정은 무효임을 선언하자. 첫째, 한국사회에 만연한 빈곤을 은폐하기 위한 ‘바닥기준선’을 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해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셋째, 빈곤층을 억압하고 수동적인 복지수혜자로 머물게 하는 동시에, 그나마 포괄범위도 극히 제한적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를 이토록 빈곤하게 만드는가? 누가 우리에게 바닥의 생존을 감내하길 강요하는가? 이제 빈곤 대중의 생활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를 제기하기 위한 빈곤 철폐의 ‘몫소리’를 모아내야 할 것이다. 민중의 삶을 빈곤의 바닥으로 몰아 넣고 있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자. 이는 민중의 ‘기본생활권’을 쟁취해 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소득의 보장, 재생산노동의 사회화를 비롯한 공적인 사회서비스의 확보, 노동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동권 쟁취 투쟁의 결합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더 많은 연대와 더 많은 투쟁만이 빈곤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길이다.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상대적 빈곤선 도입을 통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전면 개편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