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7호 | 2008.10.24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안
한국과 신흥시장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의 대안은 무엇인가?
미국발 금융위기와 달러 유동성 부족이라는 모순적 현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일로다. 미국은 구제금융과 금리인하 외에도 달러유동성의 무제한 공급, 머니마켓펀드(MMF, 초단기금융상품) 보증, 기업어음 직접 매입, 은행에 대한 직접적인 자본수혈 등 전례가 없는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신용경색이 실물경제에 끼치는 파급효과가 오히려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고용부진이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수출과 고정투자 증가율도 하락하고 있다(소비와 생산의 축소).
그러나 지극히 역설적이게도 미국경제가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지만 달러는 급격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 고점(1973년 수준)에서 하락하던 달러의 가치가 지난 6-7월에 저점(1979년 수준)에 도달하고 8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2002년 4월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달러약세에는 미국의 쌓여가는 경상적자와 재정적자, 즉 ‘쌍둥이 적자’라는 구조적 달러약세 요인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세계적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세계 유일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는 더 높아지고 세계의 자금은 필사적으로 달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미국을 대체할 만한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현재 자본주의 체계에서 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글로벌 유동성 부족은 세계경제를 마비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불가리아, 베트남과 같이 단기외채나 경상수지 적자 비중이 높은 국가는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큰 폭의 통화가치 하락이나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중심부 국가에서 수입 수요가 줄면서 주변부 국가들의 수출이 감소하고, 해외직접투자도 감소하여 경제침체가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달러 유동성 부족이 신용경색 심화, 실물경제의 악화와 결합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당장 한국도 증시가 폭락하고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현상이 멈추질 않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의 매도공세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 22일까지 총 32조원을 팔아치웠고 2004년 말 42%에 달하던 외국인 지분율은 점차 낮아져 현재 29.5%까지 내려온 상태다. (물론 상당한 국내자본의 도피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문제가 현금(달러)이 될 수 있을 만한 자산은 일단 팔고 보는데, 한국 증시가 워낙 환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현금인출기(ATM)라고 불리는 실정이다. 증시폭락은 원화가치 하락을 일으키며, 원화가치 하락은 환차손 우려를 불러 일으켜 외국인의 한국 증시 이탈을 부추긴다. 한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전면 개방했고, 세계적 자본이동 추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IMF가 요구했던 금융자유화는 초민족자본의 유입을 통한 금융팽창, 즉 신흥시장(신흥주식시장) 육성을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이는 한 사회 전체가 국제 자본이동의 위험에 종속시켰다. 나날이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정부는 국민연금의 증시 투입,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과 같은 증시대책과 각종 외환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화와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한 3단계에 걸친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1단계는 달러 유동성 공급, 2단계는 외화자금 수요 조절과 외환보유고를 통한 공급 확대를 담고 있으며, 현재에도 일부 실행 중이다.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은 3단계 비상조치인데,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고, 3단계까지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식입장이다. 3단계에서는 외환실수요 증빙과 같은 외화 직접규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IMF 이후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즉 금융자유화가 고강도로 진행되면서 한때 한국은 신흥시장으로 각광 받았지만, 그것이 동반한 잠재적 위험은 마침내 폭발하고 있다.
위험관리를 위한 미국의 금융개혁은 금융화의 지속과 심화를 의미해
미국정부의 긴급경제안정화법안(EESA)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외에도, 현행 규제시스템의 효과성에 대한 특별보고서 제출을 명시했다. 즉 의회에서 현행 규제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2009년 1월까지 제출하도록 함에 따라 앞으로 금융제도 개혁 문제가 초점에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개혁 논의는 금융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한 진단보다 표피적인 수준의 위험관리 방식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금융부실의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서브프라임 관련 주택저당증권(MB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의 부실 규모를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한 후 MBS와 CDO와 같은 구조화채권의 거래가 아예 사라졌기 때문에 이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아무런 객관적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은행의 장부외거래가 확대되었지만, 바로 이러한 장부외거래에서 심각한 부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은행의 손실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은행들이 고수익, 고위험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의 금융거래는 은행 대차대조표에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을 장부외거래라고 부른다. SIV는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MBS, CDO와 같은 고수익 장기증권에 투자했다. 또한 장부외 거래의 대표상품인 신용파산스왑(CDS)의 경우도 손실규모가 점증할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그 규모 역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금융기업들도 위험관리의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거래상대방 위험 관리를 위한 정책그룹’(CRMPG)이 재무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정책방향을 가늠케 한다. 이 정책그룹의 의장은 뉴욕연방은쟁 총재를 역임했고, 골드만삭스 회장인 제랄드 코리건이고, 주요 멤버들은 세계 12개 은행, 투자은행의 임원이다. 따라서 이들이 제시한 정책은 다른 금융기업들도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2008년 8월에 제출된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 번째는 금융거래의 표준화다. 모든 장부외거래를 장부내거래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준으로 공시하며, 특히 유동화자산에 대한 정밀실사결과도 공시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금융기관 내 사업부문과 위험관리부문의 의사결정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운 금융상품은 반드시 체계적인 사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장부내거래와 장부외거래를 모두 포함해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른 최대유동성유출 가능성 규모를 도출하여 이를 반영한 유동성 지급준비금을 적립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자본시장, 특히 장외시장(OTC)에서 이루어지는 파생거래나 CDS 거래에 대한 안전판 마련을 위해 청산기관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세계 사회운동의 대안은 위험관리가 아니라 전면적인 금융억압
하지만 이러한 위험관리라는 것은 실상 금융화의 중단이 아니라 지속 또는 심화를 의미한다. 즉 위험관리를 통해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금융화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반면 세계 사회운동은 심각한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전혀 다른 접근법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이 발표한 <때가 왔다. 금융 카지노를 폐쇄하자: 금융위기와 민주적 대안에 관한 아탁 성명서>(2008.10.15.), 네델란드 초민족연구소(TNI), 영국 레드페퍼 매거진, 포커스온더글로벌사우스, 주빌리사우스 등이 발표한 <세계경제위기: 변혁을 위한 역사적 기회>(2008.10.15.)는 그 대표적 사례다.
아탁의 성명서는 주류에서 언급하는 금융개혁 수단들이 금융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부자들을 보호하며, 단지 금융투명성과 같은 표피적 개혁을 추진한다면서 비판하고, 신자유주의의 중심축 특히 자본의 세계적 이동성을 중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새로운 금융체계를 위한 기본적 필요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시장의 자기규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이는 UN의 지원 하에 새로운 금융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결합에 대한 모니터링 권한은 IMF가 아니라 UN에 주어져야 하며 (그래야만 상대적으로 주변부 국가들의 의견이 더 반영될 수 있다), 거대한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또는 무역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외채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 금융서비스 기업과 금융상품/서비스의 자유화와 자본이동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UN의 새로운 모니터링 기구는 노동조합, 소비자를 포함하여 이해관계자들의 참여해야 한다. 신용등급 판정은 공공감독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신용등급평가에는 금융상품이나 대부를 포함해 금융기업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야 한다.
2) 금융시장의 실물경제 지배의 해체. 여기에는 통화거래를 포함해 모든 금융이동에 대해 과세, 각국의 모든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 금융복합기업의 창출 금지,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정당한 분배 정책(생산성 향상보다 임금인상이 낮아서는 안 된다), 에너지 철도와 같은 인프라에 대한 사유화 중단과 연금 사유화 중단.
3) 투기꾼이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원칙. 구제금융이 불가피할지도 모르지만, 엄격한 조건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국유화 없이 구제금융이 가능한 곳에서는 주주들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이것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국가가 주식을 취하거나 완전한 국유화를 실행해야 한다. 또한 특별위기기금을 설치하고, 이를 위해 50,000 유로 이상의 자본소득을 얻는 자들에게 일회성 특별세를 걷고, 금융부문의 모든 기업에게 1%의 특별세를 걷는다.
4) 유럽연합(EU)의 개혁과 유럽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 EU의 리스본조약 등은 자본이동을 규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이 바뀌어야만 세금회피나 세금인하경쟁을 피할 수 있고, 자본도피 위험 없이 고용친화적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모든 중심점은 소비자물가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는 것에 맞춰 있지만, 고용과 정당한 분배로 중심이 이동되어야 한다.
5) 금융체계 핵심부의 개혁. 첫째, 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 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위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장부외거래는 금지하고 증권화의 위험요소, 특히 CDO는 중단되어야 한다. 투기적 금융상품은 금지하고, 최소한 대규모 금융복합기업일수록 투기적 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없게 해야 한다. 투자은행은 축소해야 하고, 남은 부문도 다른 금융서비스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소매금융, 투자은행, 증권거래, 보험 등을 통합하는 금융복합기업은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 위험도가 높은 투기행위를 촉진하는 보너스 체계를 금지해야 한다. 둘째, 공공은행이 강화되고 유럽연합의 경쟁법(Competition law) 적용에서 면제되어야 한다. 셋째, 신용등급기관은 공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가 평가하는 대상으로부터 수입을 챙겼지만 이제 신용등급을 활용하는 모든 이용자들과 금융상품 발행자가 조성하는 기금으로부터 운영자금을 조달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헤지펀드는 금지되어야 한다. 혹자는 헤지펀드가 다른 이들이 택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위험예방에 유용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헤지펀드는 위험성을 은행에 전이시키는 역할을 했다. 모든 헤지펀드는 금지되어야 하고, 은행이 조세회피국에서 활동하는 헤지펀드와 거래하는 것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사모펀드도 마찬가지로 금지되어야 하며, 공공은행이 산업투자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다섯째, 파생금융상품은 오직 감독기관의 승인 하에서 주식거래소에서 취급되어야 한다. 장외시장 거래는 금지되어야 한다. 여섯째, 역외금융센터(非거주자간의 거래를 위해 조세, 외환 관리 등에서 각종 우대 조치와 그 영업 거점을 제공하는 지역), 조세회피국의 경제적 기능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만약 부유한 국가들이 스스로 역외금융센터로 기능하거나 그것을 옹호한다면, 조세천국에 지점을 운영하는 은행을 폐업시키거나 역외금융센터와의 거래에 높은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일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EU의 예금과세지침이 모든 자본 소득자에게로 확대 적용되어야 하며(현재는 이자소득에만 적용된다), 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에게도 자동적인 정보교환 메커니즘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조세천국으로 기능하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게 압력 수단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일곱째, 단기 주식보유자에 대한 규제조처로서, 최소기간(5~10년) 이하의 주식보유자는 주주총회 의결권을 제한하고, 스톡옵션을 금지해야 한다. 여덟째, 가계부채를 규제해야 한다. 가계 소득에 비례하여 이자율과 채무 지불액 규모에 상한을 두어야 한다. 주택정책은 개인들이 주택소유자가 되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주택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IMF 이후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는 현재 금융위기를 자초한 것
그런데 이처럼 금융위기가 증폭되는 시점에서 한국에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문제가 다시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지난 노무현 정부 집권 시기인 2007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8월 3일 공포됐고, 시행일은 2009년 2월 4일이다. 지난 9월 22일 한나라당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밝혔고,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배가 가장 안전한 것은 항구에 대피해 있을 때다. 그러나 항구에 묶어놓기 위해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다”며 강행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세계적인 대공황까지 야기할 우려가 나오고 있는 금융대란의 진원지 월가의 모델을 그대로 베껴놓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선진화 정책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라며 “내년 2월로 예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1년간 연기하는 개정 법률안 내겠다”고 밝혔다. 진보신당도 “투자은행 몰락의 시대에 글로벌 IB(투자은행) 플레이어를 만들겠다는 장밋빛 환상은 IB 역할모델 붕괴와 더불어 폐기처분하는 것이 마땅하다", "선진국 수준으로 외국자본을 규제하고,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나 스펀세[일상적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낮은 세금] 등 해외투기자본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자본시장통합법과 같은 금융선진화 방안이 제출되는 것에는 물질적 기반이 존재한다. 우선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가 적립되어서 국부펀드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 기업연금(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기업연금 자산운용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자산운용업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노무현정부는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금융업을 동북아 금융허브, 특히 자산운용업 특화허브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를 선도한 영국의 금융시장통합법과 호주의 금융서비스개혁법을 모델로 자본시장통합법을 마련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선물회사, 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이러한 업종 간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을 증권사(법률적 명칭은 ‘금융투자회사’)가 할 수 있게 된다(겸업허용). 또한 지금까지는 각 금융회사는 법에 열거된 금융상품만을 판매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 판매가 자유로워진다(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덧붙여 증권사가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즉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하면 은행에 가지 않아도 송금이나 공과금 납부를 할 수 있다(지급결제권한 부여). 이처럼 증권사의 고객 예탁금이나 CMA(자산관리계좌)가 소액결제기능을 갖추게 되면 직장인들이 급여통장을 증권사로 옮기는 사례가 크게 증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즉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직장인들을 금융투자자로 포섭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복안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한국의 5대 증권사, 즉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을 대형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금융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방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한국도 미국과 유사한 길을 따라 연금이나 투자신탁기금의 확산을 매개로 금융투자문화에 종속되고 투기적 대중심리가 형성되었다. 즉 위기 속에서도 개별적으로 금융 이익을 취할 방안을 찾자는 식의 태도가 여전히 강하다. 미국의 주가지수는 10월 13일 현재 금년 초 대비 38.2% 하락하고 시가총액 7조 6천억 달러가 증발했지만 워렌 버핏이 대규모 주식 매수이 나섰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그는 “주가 변동을 당신의 적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낳은 파국적 위험 앞에서 위험관리 수준의 대증요법이나 개별적 금융이익 추구는 무의미하거나 해악적이다.
미국이 추진하려는 금융개혁은 투자위험성 수준조차 파악하기 힘든 금융메커니즘을 다소간 교정하여 투명성과 위험관리 수준을 어느 정도 높인다는 구상일 뿐이다. 국제적인 자본이동의 자유와 거대 금융복합기업 활동의 자유는 여전히 보장될 것이다. 하지만 투자은행식의 활동은 당분간 위축되겠지만 상황이 개선된다면 투기적 금융상품 시장은 언제든지 새롭게 개발될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금융위기가 잠정적으로 진정된다고 할 때, 부의 불평등 수준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은 그야말로 표피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새로운 위험 앞에 노출될 것이다. 한국의 자본시장통합법은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기를 기대하며, 모든 국민들의 소득을 금융투자로 흡수할 묘안을 찾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이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론화가 부족하며 근본적 검토의 대상도 한정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IMF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1997년 12월 3일에 김영삼 정부가 체결한 IMF 합의의향서는 한국은행 독립성 보장과 같은 금융개혁 방안과, 외국인 주식취득 한도 확대(1997년 중 50%, 1998년 중 55%), 외국금융기관(은행, 증권)의 국내자회사(현지법인) 설립 허용, 채권시장 조기 개방, 단기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인 투자 단계적 허용, 외국인 직접투자 제한분야 추가 허용, 상업차관 도입 자유화 등 자본시장 개방을 담고 있었다. 1997년 12월 22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미 재무부 차관을 만나서 정리해고제 수용뿐만 아니라,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외환자유화),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집단소송제 도입 등 이른바 IMF 플러스라고 불리는 추가사항에 대한 수용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맺은 9차 IMF 합의의향서 체결에 이르기까지 김영삼 정부의 IMF 합의사항과 자신이 주도한 IMF 플러스를 충실히 이행했다.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제한 철폐, 투자신탁기금 설립이나 자산담보증권(ABS, MBS도 ABS의 일종이다) 발행도 IMF 합의의향서에 담긴 내용이었다. 이러한 전면적 금융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에 따라 한국경제는 세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가 되었고, 세계 신용경색 위기 속에서 키가 부서진 난파선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IMF 이후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편 한국에서 IMF 이후 취해진 각종 자유화 조치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것이나 전면적인 금융억압을 실행하자는 아탁의 제안 역시 금융세계화의 본질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적 권력을 조금이라도 빼앗아오기 위한 ‘정세적’(즉 제한적) 문제제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국적 위기를 낳는 금융메커니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이윤율은 장기 하락 추세에 놓여 있으며, 특히 2007-8년 금융위기 아래 이윤율은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1974-75년 이윤율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미국경제의 금융화는 이와 같은 이윤율 하락 추세의 결과로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경제의 위기 메커니즘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금 폭발할 것이다. 즉 지금은 미국이 이윤율 하락 추세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기반을 둔 금융화 메커니즘을 통해 특권을 누린 ‘좋은 시절’마저 붕괴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의 수립 문제가 종종 언급되고 있으나, 이미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가 사실상 해체되어 고정환율제가 붕괴하고 순수 달러본위제가 실행된 이후로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 화폐제도의 수립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곧 자본주의 문명의 위기를 뜻한다. 따라서 현재 사회운동이 요구하는 금융억압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 노동자통제, 대안세계화와 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끝>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일로다. 미국은 구제금융과 금리인하 외에도 달러유동성의 무제한 공급, 머니마켓펀드(MMF, 초단기금융상품) 보증, 기업어음 직접 매입, 은행에 대한 직접적인 자본수혈 등 전례가 없는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신용경색이 실물경제에 끼치는 파급효과가 오히려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고용부진이 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수출과 고정투자 증가율도 하락하고 있다(소비와 생산의 축소).
그러나 지극히 역설적이게도 미국경제가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지만 달러는 급격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 고점(1973년 수준)에서 하락하던 달러의 가치가 지난 6-7월에 저점(1979년 수준)에 도달하고 8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2002년 4월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달러약세에는 미국의 쌓여가는 경상적자와 재정적자, 즉 ‘쌍둥이 적자’라는 구조적 달러약세 요인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세계적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세계 유일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는 더 높아지고 세계의 자금은 필사적으로 달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미국을 대체할 만한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현재 자본주의 체계에서 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글로벌 유동성 부족은 세계경제를 마비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불가리아, 베트남과 같이 단기외채나 경상수지 적자 비중이 높은 국가는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큰 폭의 통화가치 하락이나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중심부 국가에서 수입 수요가 줄면서 주변부 국가들의 수출이 감소하고, 해외직접투자도 감소하여 경제침체가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달러 유동성 부족이 신용경색 심화, 실물경제의 악화와 결합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당장 한국도 증시가 폭락하고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현상이 멈추질 않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의 매도공세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 22일까지 총 32조원을 팔아치웠고 2004년 말 42%에 달하던 외국인 지분율은 점차 낮아져 현재 29.5%까지 내려온 상태다. (물론 상당한 국내자본의 도피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문제가 현금(달러)이 될 수 있을 만한 자산은 일단 팔고 보는데, 한국 증시가 워낙 환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현금인출기(ATM)라고 불리는 실정이다. 증시폭락은 원화가치 하락을 일으키며, 원화가치 하락은 환차손 우려를 불러 일으켜 외국인의 한국 증시 이탈을 부추긴다. 한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전면 개방했고, 세계적 자본이동 추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IMF가 요구했던 금융자유화는 초민족자본의 유입을 통한 금융팽창, 즉 신흥시장(신흥주식시장) 육성을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이는 한 사회 전체가 국제 자본이동의 위험에 종속시켰다. 나날이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정부는 국민연금의 증시 투입,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과 같은 증시대책과 각종 외환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화와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한 3단계에 걸친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략 1단계는 달러 유동성 공급, 2단계는 외화자금 수요 조절과 외환보유고를 통한 공급 확대를 담고 있으며, 현재에도 일부 실행 중이다.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은 3단계 비상조치인데,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고, 3단계까지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식입장이다. 3단계에서는 외환실수요 증빙과 같은 외화 직접규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IMF 이후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즉 금융자유화가 고강도로 진행되면서 한때 한국은 신흥시장으로 각광 받았지만, 그것이 동반한 잠재적 위험은 마침내 폭발하고 있다.
위험관리를 위한 미국의 금융개혁은 금융화의 지속과 심화를 의미해
미국정부의 긴급경제안정화법안(EESA)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외에도, 현행 규제시스템의 효과성에 대한 특별보고서 제출을 명시했다. 즉 의회에서 현행 규제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2009년 1월까지 제출하도록 함에 따라 앞으로 금융제도 개혁 문제가 초점에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개혁 논의는 금융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한 진단보다 표피적인 수준의 위험관리 방식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금융부실의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서브프라임 관련 주택저당증권(MB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의 부실 규모를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한 후 MBS와 CDO와 같은 구조화채권의 거래가 아예 사라졌기 때문에 이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아무런 객관적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은행의 장부외거래가 확대되었지만, 바로 이러한 장부외거래에서 심각한 부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은행의 손실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은행들이 고수익, 고위험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의 금융거래는 은행 대차대조표에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을 장부외거래라고 부른다. SIV는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MBS, CDO와 같은 고수익 장기증권에 투자했다. 또한 장부외 거래의 대표상품인 신용파산스왑(CDS)의 경우도 손실규모가 점증할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그 규모 역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금융기업들도 위험관리의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거래상대방 위험 관리를 위한 정책그룹’(CRMPG)이 재무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정책방향을 가늠케 한다. 이 정책그룹의 의장은 뉴욕연방은쟁 총재를 역임했고, 골드만삭스 회장인 제랄드 코리건이고, 주요 멤버들은 세계 12개 은행, 투자은행의 임원이다. 따라서 이들이 제시한 정책은 다른 금융기업들도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2008년 8월에 제출된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 번째는 금융거래의 표준화다. 모든 장부외거래를 장부내거래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준으로 공시하며, 특히 유동화자산에 대한 정밀실사결과도 공시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금융기관 내 사업부문과 위험관리부문의 의사결정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운 금융상품은 반드시 체계적인 사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장부내거래와 장부외거래를 모두 포함해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른 최대유동성유출 가능성 규모를 도출하여 이를 반영한 유동성 지급준비금을 적립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자본시장, 특히 장외시장(OTC)에서 이루어지는 파생거래나 CDS 거래에 대한 안전판 마련을 위해 청산기관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세계 사회운동의 대안은 위험관리가 아니라 전면적인 금융억압
하지만 이러한 위험관리라는 것은 실상 금융화의 중단이 아니라 지속 또는 심화를 의미한다. 즉 위험관리를 통해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금융화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반면 세계 사회운동은 심각한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전혀 다른 접근법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이 발표한 <때가 왔다. 금융 카지노를 폐쇄하자: 금융위기와 민주적 대안에 관한 아탁 성명서>(2008.10.15.), 네델란드 초민족연구소(TNI), 영국 레드페퍼 매거진, 포커스온더글로벌사우스, 주빌리사우스 등이 발표한 <세계경제위기: 변혁을 위한 역사적 기회>(2008.10.15.)는 그 대표적 사례다.
아탁의 성명서는 주류에서 언급하는 금융개혁 수단들이 금융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부자들을 보호하며, 단지 금융투명성과 같은 표피적 개혁을 추진한다면서 비판하고, 신자유주의의 중심축 특히 자본의 세계적 이동성을 중단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새로운 금융체계를 위한 기본적 필요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시장의 자기규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이는 UN의 지원 하에 새로운 금융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결합에 대한 모니터링 권한은 IMF가 아니라 UN에 주어져야 하며 (그래야만 상대적으로 주변부 국가들의 의견이 더 반영될 수 있다), 거대한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또는 무역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외채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 금융서비스 기업과 금융상품/서비스의 자유화와 자본이동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UN의 새로운 모니터링 기구는 노동조합, 소비자를 포함하여 이해관계자들의 참여해야 한다. 신용등급 판정은 공공감독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신용등급평가에는 금융상품이나 대부를 포함해 금융기업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야 한다.
2) 금융시장의 실물경제 지배의 해체. 여기에는 통화거래를 포함해 모든 금융이동에 대해 과세, 각국의 모든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 금융복합기업의 창출 금지,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정당한 분배 정책(생산성 향상보다 임금인상이 낮아서는 안 된다), 에너지 철도와 같은 인프라에 대한 사유화 중단과 연금 사유화 중단.
3) 투기꾼이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원칙. 구제금융이 불가피할지도 모르지만, 엄격한 조건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국유화 없이 구제금융이 가능한 곳에서는 주주들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이것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국가가 주식을 취하거나 완전한 국유화를 실행해야 한다. 또한 특별위기기금을 설치하고, 이를 위해 50,000 유로 이상의 자본소득을 얻는 자들에게 일회성 특별세를 걷고, 금융부문의 모든 기업에게 1%의 특별세를 걷는다.
4) 유럽연합(EU)의 개혁과 유럽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 통제. EU의 리스본조약 등은 자본이동을 규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이 바뀌어야만 세금회피나 세금인하경쟁을 피할 수 있고, 자본도피 위험 없이 고용친화적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모든 중심점은 소비자물가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는 것에 맞춰 있지만, 고용과 정당한 분배로 중심이 이동되어야 한다.
5) 금융체계 핵심부의 개혁. 첫째, 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 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위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장부외거래는 금지하고 증권화의 위험요소, 특히 CDO는 중단되어야 한다. 투기적 금융상품은 금지하고, 최소한 대규모 금융복합기업일수록 투기적 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없게 해야 한다. 투자은행은 축소해야 하고, 남은 부문도 다른 금융서비스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소매금융, 투자은행, 증권거래, 보험 등을 통합하는 금융복합기업은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 위험도가 높은 투기행위를 촉진하는 보너스 체계를 금지해야 한다. 둘째, 공공은행이 강화되고 유럽연합의 경쟁법(Competition law) 적용에서 면제되어야 한다. 셋째, 신용등급기관은 공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가 평가하는 대상으로부터 수입을 챙겼지만 이제 신용등급을 활용하는 모든 이용자들과 금융상품 발행자가 조성하는 기금으로부터 운영자금을 조달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헤지펀드는 금지되어야 한다. 혹자는 헤지펀드가 다른 이들이 택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위험예방에 유용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헤지펀드는 위험성을 은행에 전이시키는 역할을 했다. 모든 헤지펀드는 금지되어야 하고, 은행이 조세회피국에서 활동하는 헤지펀드와 거래하는 것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사모펀드도 마찬가지로 금지되어야 하며, 공공은행이 산업투자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다섯째, 파생금융상품은 오직 감독기관의 승인 하에서 주식거래소에서 취급되어야 한다. 장외시장 거래는 금지되어야 한다. 여섯째, 역외금융센터(非거주자간의 거래를 위해 조세, 외환 관리 등에서 각종 우대 조치와 그 영업 거점을 제공하는 지역), 조세회피국의 경제적 기능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만약 부유한 국가들이 스스로 역외금융센터로 기능하거나 그것을 옹호한다면, 조세천국에 지점을 운영하는 은행을 폐업시키거나 역외금융센터와의 거래에 높은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일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EU의 예금과세지침이 모든 자본 소득자에게로 확대 적용되어야 하며(현재는 이자소득에만 적용된다), 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에게도 자동적인 정보교환 메커니즘이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조세천국으로 기능하는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게 압력 수단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일곱째, 단기 주식보유자에 대한 규제조처로서, 최소기간(5~10년) 이하의 주식보유자는 주주총회 의결권을 제한하고, 스톡옵션을 금지해야 한다. 여덟째, 가계부채를 규제해야 한다. 가계 소득에 비례하여 이자율과 채무 지불액 규모에 상한을 두어야 한다. 주택정책은 개인들이 주택소유자가 되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주택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IMF 이후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는 현재 금융위기를 자초한 것
그런데 이처럼 금융위기가 증폭되는 시점에서 한국에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문제가 다시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지난 노무현 정부 집권 시기인 2007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8월 3일 공포됐고, 시행일은 2009년 2월 4일이다. 지난 9월 22일 한나라당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밝혔고,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배가 가장 안전한 것은 항구에 대피해 있을 때다. 그러나 항구에 묶어놓기 위해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다”며 강행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세계적인 대공황까지 야기할 우려가 나오고 있는 금융대란의 진원지 월가의 모델을 그대로 베껴놓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선진화 정책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라며 “내년 2월로 예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1년간 연기하는 개정 법률안 내겠다”고 밝혔다. 진보신당도 “투자은행 몰락의 시대에 글로벌 IB(투자은행) 플레이어를 만들겠다는 장밋빛 환상은 IB 역할모델 붕괴와 더불어 폐기처분하는 것이 마땅하다", "선진국 수준으로 외국자본을 규제하고,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나 스펀세[일상적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낮은 세금] 등 해외투기자본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자본시장통합법과 같은 금융선진화 방안이 제출되는 것에는 물질적 기반이 존재한다. 우선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가 적립되어서 국부펀드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 기업연금(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기업연금 자산운용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자산운용업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노무현정부는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금융업을 동북아 금융허브, 특히 자산운용업 특화허브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를 선도한 영국의 금융시장통합법과 호주의 금융서비스개혁법을 모델로 자본시장통합법을 마련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지금까지 증권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선물회사, 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도 다르고 적용받는 법률도 달랐지만 이제 이러한 업종 간 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선물사, 종금사에서 하던 일을 증권사(법률적 명칭은 ‘금융투자회사’)가 할 수 있게 된다(겸업허용). 또한 지금까지는 각 금융회사는 법에 열거된 금융상품만을 판매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금융상품 판매가 자유로워진다(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덧붙여 증권사가 결제송금서비스도 할 수 있게 된다. 즉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하면 은행에 가지 않아도 송금이나 공과금 납부를 할 수 있다(지급결제권한 부여). 이처럼 증권사의 고객 예탁금이나 CMA(자산관리계좌)가 소액결제기능을 갖추게 되면 직장인들이 급여통장을 증권사로 옮기는 사례가 크게 증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즉 증권사(투자은행)가 모든 직장인들을 금융투자자로 포섭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복안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한국의 5대 증권사, 즉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을 대형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꾸었고, 금융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방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한국도 미국과 유사한 길을 따라 연금이나 투자신탁기금의 확산을 매개로 금융투자문화에 종속되고 투기적 대중심리가 형성되었다. 즉 위기 속에서도 개별적으로 금융 이익을 취할 방안을 찾자는 식의 태도가 여전히 강하다. 미국의 주가지수는 10월 13일 현재 금년 초 대비 38.2% 하락하고 시가총액 7조 6천억 달러가 증발했지만 워렌 버핏이 대규모 주식 매수이 나섰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그는 “주가 변동을 당신의 적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낳은 파국적 위험 앞에서 위험관리 수준의 대증요법이나 개별적 금융이익 추구는 무의미하거나 해악적이다.
미국이 추진하려는 금융개혁은 투자위험성 수준조차 파악하기 힘든 금융메커니즘을 다소간 교정하여 투명성과 위험관리 수준을 어느 정도 높인다는 구상일 뿐이다. 국제적인 자본이동의 자유와 거대 금융복합기업 활동의 자유는 여전히 보장될 것이다. 하지만 투자은행식의 활동은 당분간 위축되겠지만 상황이 개선된다면 투기적 금융상품 시장은 언제든지 새롭게 개발될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금융위기가 잠정적으로 진정된다고 할 때, 부의 불평등 수준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은 그야말로 표피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새로운 위험 앞에 노출될 것이다. 한국의 자본시장통합법은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기를 기대하며, 모든 국민들의 소득을 금융투자로 흡수할 묘안을 찾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이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론화가 부족하며 근본적 검토의 대상도 한정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IMF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1997년 12월 3일에 김영삼 정부가 체결한 IMF 합의의향서는 한국은행 독립성 보장과 같은 금융개혁 방안과, 외국인 주식취득 한도 확대(1997년 중 50%, 1998년 중 55%), 외국금융기관(은행, 증권)의 국내자회사(현지법인) 설립 허용, 채권시장 조기 개방, 단기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인 투자 단계적 허용, 외국인 직접투자 제한분야 추가 허용, 상업차관 도입 자유화 등 자본시장 개방을 담고 있었다. 1997년 12월 22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미 재무부 차관을 만나서 정리해고제 수용뿐만 아니라,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외환자유화),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집단소송제 도입 등 이른바 IMF 플러스라고 불리는 추가사항에 대한 수용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맺은 9차 IMF 합의의향서 체결에 이르기까지 김영삼 정부의 IMF 합의사항과 자신이 주도한 IMF 플러스를 충실히 이행했다.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제한 철폐, 투자신탁기금 설립이나 자산담보증권(ABS, MBS도 ABS의 일종이다) 발행도 IMF 합의의향서에 담긴 내용이었다. 이러한 전면적 금융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 조치에 따라 한국경제는 세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가 되었고, 세계 신용경색 위기 속에서 키가 부서진 난파선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IMF 이후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편 한국에서 IMF 이후 취해진 각종 자유화 조치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것이나 전면적인 금융억압을 실행하자는 아탁의 제안 역시 금융세계화의 본질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적 권력을 조금이라도 빼앗아오기 위한 ‘정세적’(즉 제한적) 문제제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국적 위기를 낳는 금융메커니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주의 경제가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이윤율은 장기 하락 추세에 놓여 있으며, 특히 2007-8년 금융위기 아래 이윤율은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1974-75년 이윤율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미국경제의 금융화는 이와 같은 이윤율 하락 추세의 결과로서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경제의 위기 메커니즘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금 폭발할 것이다. 즉 지금은 미국이 이윤율 하락 추세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기반을 둔 금융화 메커니즘을 통해 특권을 누린 ‘좋은 시절’마저 붕괴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의 수립 문제가 종종 언급되고 있으나, 이미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가 사실상 해체되어 고정환율제가 붕괴하고 순수 달러본위제가 실행된 이후로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 화폐제도의 수립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곧 자본주의 문명의 위기를 뜻한다. 따라서 현재 사회운동이 요구하는 금융억압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 노동자통제, 대안세계화와 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