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세력의 몰락 앞에 동정이란 있을 수 없다
후보단일화 논의에 부쳐
농민대회였다. 정몽준과 노무현은 각각 돌과 계란세례를 맞고 물러났다. 농민들은 더 이상 지배정치의 사탕발림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분노를 모아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것 또한 지금의 비정한 현실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보수화를 넘어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는 흐름은 지체되고 있다. 30만 농민대회의 뼈아픈 진실은 여기에 있다.
후보 단일화 그리고 개혁세력의 붕괴
노무현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진통을 겪고 있다. 일단 후보 단일화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나 단일화 과정에 대한 잡음이 만만치 않다. 현재까지 진행된 경과로미뤄보면 정몽준에게는 단일화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단일화 결과 노무현이 된다면 노무현이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단일화를 둘러싼 지형이 정몽준에게 그다지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일화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정몽준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역시 단일화에 대해 소극적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최초의 국민경선을 통해 창출된 후보라는 점을 내세워 당내 기반을 다지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세 아들 비리를 계기로 터져 나온 민주당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노무현의 지지도 역시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김민석을 비롯하여 개혁세력이라 자칭하는 민주당의 쇄신파들은 후보단일화가 구국의 결단인양 정몽준의 비싼 우산 밑으로 줄을 섰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던 몇몇 의원들은 심지어 아예 한나라당으로 둥지를 옮기기도 했다. 민주당과 386으로 상징되는 개혁세력이 완전히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세력 내부의 붕괴와 지지율 하락에 직면하여 노무현과 정몽준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반 이회창 전선의 결집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보단일화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 속내가 있다. 단순히 수권전략으로서 후보단일화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이유 말이다.
후보단일화 논의는 개혁세력의 목숨을 구걸하는 구차한 연명에 불과하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몰락의 임계 상황에 몰린 개혁세력은 화려한 흔적을 남긴 월드컵과 붉은 악마에 기대어 자신의 부활을 꿈꾸었지만, 축구 열풍이 사라지자마자 붉은 악마는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어디에서도 개혁의 상징이 출현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몽준의 화려한 등장과 정치인들의 줄서기, 그리고 점점 몰락하는 지지도) 한편으로 이같은 기대의 상실은 과거 개혁세력의 정치적 표상이었던 민주당으로의 기대 반등 효과를 낳았고, 노무현은 이때를 틈타 대선 대열을 정비한다. 개혁세력들의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제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주도할 수 없게 되었고, 이들은 우왕좌왕하게 된다. 개혁세력들에게 어떤 선거 전략도 유효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바람도 기대할 수 없는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 앞에서 개혁세력은 어떤 형태로든 더 이상 지지기반을 확장할 수 없었고, 이렇게까지 몰리자 결국, 정몽준과 노무현 모두 단일화라는 카드를 쥐고 서로 몸집 불리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는 현재 단일화 논의의 성격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후보 단일화를 매개하는 몸집 불리기의 배후에는 보수-개혁 전선을 유지하며 이들의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려는 치열한 생존전략이 숨어있다. 즉 단일화가 추진되는 배경은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개혁세력의 자기 수습차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외치는 맹목적인 개혁세력 결집론(반창)은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주체였던 개혁세력들이 자신의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수권전략이 되었든 생존전략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마땅한 대안도 없는 개혁세력에게는 단일화를 향한 이합 집산 만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맞서는 대선 대응의 유력한(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개혁세력의 생존 근거, 개혁/보수 전선
개혁세력의 결집을 통한 반 이회창 연대의 실내용은 존재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 이회창 반대의 명분은 한편에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고답적 쟁점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미래의 리더쉽이라는 가상적 쟁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반 이회창 전선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다만 이미 실패로 판명된 개혁이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뿐이다. 개혁세력이 추진한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이 파산한 지금, 지배분파들이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한 개혁세력과 이회창-한나라당과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선명한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대북정책이지만 이는 철저히 북-미 관계에 종속된 현재 국면에서 자신의 과거 정체성을 호명하는 단순한 수사에 그칠 뿐이다. 또한 금융세계화에 종속된 남한에서 부르주아들의 전략은 IMF위기극복의 방향이 쟁점이 된 97년의 상황과 다르다. 현시기 남한 부르주아들이 바라는 것은 현재 체제의 안정화와 효율적인 관리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부르주아 정치권의 입장은 동일하다. 이상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무원칙적이며 놀라울 정도인 온갖 합종연횡을 설명하는 핵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세력의 결집(생존)은 보수/개혁이라는 허구적 전선이 전체 정치적 쟁점을 주도할 때에만 가능하다.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보수/개혁 전선이 반창-후보단일화를 매개로 부활하고 있고, 이것이 다시 개혁세력의 생존 근거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민중운동 진영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축소시키고, 대중들의 정치전선을 오히려 이완시키며, 대중들의 정치적 수동성에 일조 한다는데 있다. 이들이 상징하는 개혁이란 사실 신자유주의를 향한 개혁에 불과하고, 이 사실을 대중들은 DJ 정권아래에서 불안하고 곤궁한 삶과 피폐한 노동으로 확인해왔다.
따라서, 개혁세력의 붕괴로 인한 보수/개혁 구도의 해체와 정치의 위기는 진보정당과 일련의 민중운동에게 공간을 열어준 듯 하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대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보수/개혁의 허구적 전선 속에 지역주의, 보수주의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회창의 지지율이 영남을 중심으로 또 노무현 지지가 여전히 호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노무현과 정몽준 그리고 '개혁국민신당'(이하 개혁신당)이라는 개혁세력의 존재 자체가 가지는 치명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정치의 위기에서 민중적 대안과 전망 그리고 투쟁을 촉발시키는 것을 저해한다. 또한 대중이 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결집하는 것을 교란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들의 몰락 앞에 동정이란 있을 수 없다!
노무현과 정몽준이 농민대회를 찾았던 이유는 개혁세력의 표상을 재획득하는데 있다. 하지만 계란세례로 확인했던 바와 같이 개혁과 보수의 구도는 이미 아래로부터 그 시효를 상실했다. 노무현과 정몽준을 위시한 개혁세력의 결집은 현재 상황에서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낳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창출해야하는 전선을 교란시키고 대중의 보수화를 부채질할 뿐이다. 하기에 개혁세력의 결집과 세력화라는 것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개혁의 전선의 보수세력이 집권을 하던 개혁세력이 집권을 하던 변화할 것은 없다. 문제는 현재 대중의 정치적 보수(수동)화를 추동하는 보수/개혁이라는 허구적인 전선을 끝장내는 것이다. 다시 한번 반제/ 반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들고 민중적 대안과 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허구적인 개혁/보수의 전선을 넘어서자. 농민대회가 남겨준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S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