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72호 | 200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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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도 평화도 없는 '끝없는 전쟁'의 딜레마

미국의 對이라크 전쟁의 기원과 전망

사회진보연대
우리는 지난 2001년 9월 19일자 <사회화와노동>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對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미국이 종국에는 패배할 것임을 주장하였다. 이는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전쟁이 또 다른 테러의 발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빈-라덴의 알-카에다와 탈레반 정권의 제거가 지난 9·11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주장은 현재로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현재 이라크 전쟁이 초읽기에 처한 상황에서 당시의 주장의 근거를 풍부화하면서, 냉전질서 해소 이후 세계의 변화와 위기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세계패군 전략의 변화양상에 주목하면서 현재 이라크전의 원인과 전망을 밝힐 필요를 느낀다.

냉전이 종식된 후, 몇몇 서방의 언론 및 지식인들은 다가오는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평화의 시기가 될 것임을 자신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의 대결구도가 종식되었기 때문에(정확히 말하자면 냉전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했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세기, 세계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질서로 수렴될 것이고, 그 질서는 '영구 평화'의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세계화가 진정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그들의 장밋빛 전망과는 상반되게, 21세기는 그 시작부터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지고 있다. 2001년 9월의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테러(그리고 보복전쟁)로 시작되어 개전을 앞두고 있는 대 이라크전쟁 까지, 일련의 흐름은 그러한 예상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현재 상황의 핵심에 위치한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만도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사실 미국의 군사·전략적 사고는 냉전의 종식과 걸프 전쟁 이후 진화해왔다. 군사·전략적 사고의 진화는 (더이상 일국적 차원이 될 수 없는, 세계적인) 군사주의의 새로운 유형을 창조했다. 가장 단순한 사실은 이제 미국에 필적할 만한 군사적 강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 핵무기는 전략적 고려의 핵심적 위치에서 밀려나고 있고, 실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하려 하는 무기는 비-핵무기, 예컨대 인터넷과 고정밀 기술이 결합된 무기들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전략적 진화는 미국 자신이 이른바 '비대칭적 전쟁'이라고 묘사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전략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대칭적 전쟁'이라는 표현이 지시하는 상황은 분명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전쟁의 양상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다시 말해, '대칭적' 전쟁이라고 표현될 전통적 전쟁과는 다른 상황이 지금 존재하고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전화(轉化): '비대칭적 전쟁'의 등장과 전쟁의 '사유화'

독일의 전쟁이론가였던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우리의 의지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반대자들을 강제하려는 의도를 갖는 폭력 행위'이다. 여기서 '우리'와 '우리의 반대자'는 국가들을 지시하고 '우리의 의지'는 국가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목적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에 대한 정의에서 드러나는 것은 군사력이 개별 민족국가에 조직되고 독점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적으로 전쟁은 정치적 동기에 따른 국가 간 또는 정치조직 간의 폭력 행사로 정의되었다. 따라서 전쟁은, 예컨대 재정적 이득을 얻기 위해 행해진 사적 집단들에 의한 폭력으로서 조직범죄나 개인들에 대해 국가나 정치조직에 의해 행해진 폭력으로서, 광범한 인권 유린과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즉, 국가에 의한 군사력의 사용인 전쟁은 합법화·정당화되며, 그 이외의 것은 '범죄'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군사력은 개별 국가의 주권의 주요 구성요소가 되었다. 적어도 이러한 정의와 구분은 어느 정도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난 18세기말부터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효했다.
이후 냉전 시기는 '공포의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세계적인 군사질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로 상징되는 양극 질서 하에서 조정된다. 여전히 군사력은 민족 국가적 수준에서 조직되었지만, 양극 질서 중 어느 하나의 '우산' 하에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소련으로의 군사적 독점과 조직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여러 분쟁과 전쟁은 이 '우산'의 외부에서 벌어졌다. 한번도 양 진영의 세력권 내부에서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전략가들과 군사이론가들은 그러한 전쟁의 양상을 양극간의 전쟁인 '고강도 전쟁'에 대비하여 '저강도 전쟁(분쟁)'이라고 묘사했다.

냉전의 종식 이후, 전통적인 전쟁과는 완전히 상이한 양상을 등장하였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는 자기를 질시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세계'는 이전의 전쟁이나 군사적 공격과는 상이한 수준에서 미국에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반대하는 군사적 "약골들"은 자기를 반격할 방법들을 찾으려고 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미국의 군사전략가들과 싱크탱크의 주요인사들에 의해 잘 묘사되었고, 이는 "비대칭적 전쟁"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 애초에 그들은 정보 시스템들에 대한 미국의 지배의 부산물로서 전자 전쟁 또는 정보 전쟁과 같은 "약골들"에 의한 비대칭적 전략들 또는 행위들의 가능성을 지각하고 또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해커들이나 여타의 공상과학 유형의 위협들에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군사전략가들은 어떻게 이러한 무차별적인 공격들에 대응할 것인가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한편, 냉전질서의 붕괴 이후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되었던 지점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원조와 경제적 지원이 삭감 혹은 철회되면서 이제 '적극적 배제'라는 문제가 새롭게 발생하게 된다. 또한 냉전 이후 각지에서 발생하는 군사적 분쟁의 성격 역시 지역적으로 차별적이며, 미국(-유럽-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방식 역시 지역적으로 차별적이며 세분화되고 있다. 즉, 미국은 자신의 이해에 있어서 사활적이라고 간주되는 지역(라틴아메리카, 동아시아, 중동)에서는 냉전 시기 동안 육성해 온 군사적 동맹관계의 공고화를 꾀하지만, 세계경제의 통합으로부터 '배제된 기타의 지역'(동유럽, 아프리카)에서는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배제된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양상을 띤다. 민족체의 복귀와 분리주의, (비국가적) 군사 행위자들의 급증, 금융센터 외부에서 벌어지는 민중학살, 그리고 남반구에서의 빈곤의 심화, 북반구 내부로의 빈곤의 역수입 등등. 대부분의 분리주의 움직임은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자립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같은 국가 내에서 가장 '덜' 가난한 지역이 '더' 가난한 지역들을 져버리고 분리 독립을 원하는 현상이 발생하곤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질서한 군사 행위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무장력은 더 이상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가령, 국가의 군대가 때로는 '사적'집단을 대신하여 행동하기도 하고(볼리비아 군대와 코카인 마피아), 마찬가지로 사적 군대가 국가 대신에 행동하기도 하며 (니카라과의 '콘트라스' 반군과 미국), 이보다 더욱 복잡한 경우도 존재한다(준국가적 폭력과 범죄의 모호성?). 이렇듯 폭력과 무질서를 점증시키는 활동들에 의해 기존의 국가가 담당했던 역할은 '국가 이하의 것들'(부족들, 카스트들, 종파들, 지역들, 종교들)에 자리를 내주거나 '새로운 전투부대들'(테러리스트 그룹, 게릴라 등등)을 발생시킨다.
즉, 민족-국가가 붕괴된 곳에서 국가의 무장력의 독점 역시 붕괴되며, 그 결과 '사적'인 무장집단이 이를 대체하여 인종·종교에 따른 가상적 공동체를 경계선으로 새로운 전투부대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족-국가가 형식적으로 유지되는 곳에서도, 국가와 사적 집단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예컨대, 국가와 '마피아'간의 결탁 혹은 금융세계화의 유력한 주체로서 마피아의 부상). 게다가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배제됨으로써, 경제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는 채취자원(금, 다이아몬드, 석유, 석탄, 목재)과 같은 한정된 부를 놓고 반동적 '약탈전쟁'이 창궐하고, 중심부 국가들은 그 부를 다시 착취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민중학살에 대해서는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들은 종종 "약탈 경제"의 발전과 관련하여 성장하는데, 그 전쟁에 참여하는 전사(戰士)들은 천연자원에 대한 약탈을 통해 자신의 활동 자금을 조달하는 지역의 엘리트와 실패한 국가의 분파들에 의해 지휘되고 있다. 이러한 자원들은 바로 거래되며 그러한 거래로부터 생긴 자금은 세계 무역과 금융 시장을 통해 세탁된다.
요컨대, 현시점의 전쟁은 '새로운 유형의 폭력'을 지칭하는 것이며, 냉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세계질서는 폭력과 잔혹을 일상화·구조화하고 있다.


'무장한 세계화'와 새로운 전쟁 경제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 군사화가 금융의 세계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약속'과는 반대로, '세계화'는 평화의 최고 단계를 상징하지 않는다. 금융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중심으로서 미국은 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상 군사화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무장한 세계화'). 그 결과 미국의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는 때때로 특정 지역에서 무장그룹의 봉기나 테러 위협과 같은 적대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또다시 실재의, 그리고 가상의 잠재적 적들에 대한 제국적 지배를 강화하려 한다. 악순환...
결국 '무장한 세계화'는 잠재적 분쟁들을 해소해 나가기보다는 무역 및 금융의 사유화와 자유화의 결과로서 세계적 규모의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세계화'는 특정 국가의 불안정성(insecurity)을 증대시킴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보다 악화시켰다. 세계은행에 의해 제시된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은 저발전국가들로 하여금 정당성의 상실, 점증하는 무질서와 군사적 파편화 상태에 처하게 했고, 그러한 상태는 새로운 전쟁들이 발생하는 맥락을 창출하였다.
한편, 미국에 그 중심을 두고 있는 거대 군수기업들은 9·11 이후 '국가안보국'의 설립과 함께, 새로운 '이윤창출'의 계기를 찾고 있다. 군수기업들은 수송과 첨단 통신장비와 같은 하드웨어의 보안과, 동시에 '민간' 보안 시장에 매우 용이하게 적용될 수 있는(이른바 '스핀-업 Spin-Up'), 기술적 발전들을 도모해 왔다. 게다가, 미 의회와 주정부들은 안보사안에 대한 법적 규제를 상당한 정도로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정부와 밀접하게 연관된 군수기업들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그래서 거대 방위기업들은 미국에서 21세기의 벽두에 부상한 '군사-보안 복합체'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또 9·11 이후 정부에 의한 시민권의 제한에 반대하는 일체의 사회적 저항은 범죄시되었다. 다시 말해 자본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적들이며 이들은 군사적 방식으로 다뤄져야 할 범죄자라는 무의식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자체가 군사-안보 복합체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특히 보안 산업의 성장은 군사-안보 복합체의 영향력이 민간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의 세계화가 사회의 황폐화를 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도-정밀 무기들을 장착한 군인들에 의해 수행되는 '시가전'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보안 복합체는 새로운 무기시스템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국방예산이 대부분이 여기에 소요되고 있다. 그 목표는 남반구 국가들의 응집력있는 주민들에 맞선, 그리고 결국에는 북반구의 도시들 내부의 '위험 계급들'에 맞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요컨대, 세계화를 강화하는 것은 초민족적 거대 자본의 소유권 보호와 강화에 기초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에 걸친 복지국가적 정책의 해체는 불안정의 부상으로 귀결되었다. 미국과 NATO에 의한 군사개입들은 인민들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생산의 하부구조들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남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는 모두 혼란 속으로 내던져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간 자본주의 경제를 특징지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맥락에서, 그들은 오직 투자를 위한 전망들을 개발할 뿐이다. 미국의 금융분석가들은 이라크와의 전쟁 개시에 따라 방위회사들의 주식에 대한 '시기적인 급매'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는 주식시장의 호황을 상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과 더불어 이라크의 석유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실한 전망도 더해되고 있다.
이러한 '전쟁 경제'는 지난 전후 수십년 동안의 상황과는 매우 상이한 맥락에서 형성되고 있다. 즉 거시경제적 수준(선진 국가들의 고도성장과 사회 발전)과 지정학적 수준(미국과 소련의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계의 분할), 양 수준 모두에서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1970년대 말 이후, 금융 자본은 지배적 지위를 재확립했다. 금융 시장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에서 중심적이게 되었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권력을 집중하게 하였고 부르주아와 금리 계급이 상당한 정도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게 해주었다. 여타 부문들에서처럼 군수기업들에게, '주주들을 위한 가치의 창조'는 절감된 임금비용과 증대된 판매를 필요로 한다. 군수기업의 무기판매는 미 국방부로부터의 증대된 주문들과 증대된 수출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쟁에 끝은 있을 수 없다. 끝이 없는 전쟁은 승리도 없고 평화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리를 갈구하고 끝내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차라리 '낡은' 방식의 전쟁이다. 미국과 군수기업들, 그리고 금융가 및 주식투자자들은 끝도 목적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만들고 있다. 또한 미시적, 거시적 외교분야, 정치에서 거대한 군사화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유지와 형성이 아닌 국가의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중심부가 주변부에서 국가들을 건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것에는 어떠한 이득도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초민족적 기업의 합리성에 따라 국가를 해체하는 것이 보다 유용하다. 악순환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결국 패배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자신의 명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라크와의 전쟁의 주요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그렇기에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전쟁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패배할 것이다. 결코 이라크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주지하다시피, '테러리즘'은 분명 구체적인 적(敵)이 아니며, 단지 정치적 폭력의 한 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재적인 적들에 대한 '예방 전쟁'은 승리나 평화로 종결될 수 있는, 전통적 전쟁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또한 최근의 역사에서도 목격했듯이 反테러 행위는 보다 잔혹한 국가 테러와 인권유린과 항상 연관되었으며 '테러와의 전쟁'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국가 폭력과 인권 유린은 다시 저항과 테러리즘의 극단적 형태들의 주요한 원천이 되어 폭력의 악순환은 연장된다.
따라서, 미국이 왜 공격당했는지 그 원인을 제거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악순환은 언제나 연장되고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 이라크 전쟁이 무관하다는 것은 지난 2월 15일 전세계 1천여만명의 반전 시위대에 의해 낱낱이 목로되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미국이 단독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사례나, 단독으로 지상군을 투입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전에서조차 북부동맹과 다국적군이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그들은 준군사조직을 사용했다. 미국은 지금 스스로 가보지 않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이 없는 전쟁'은 그러한 전쟁에 개입했던 군인들과 그들의 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단지 시대의 질문일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사람들의 생존을 유지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의 장인(匠人)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악순환을 주도적으로 연장하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진한' 평화주의적 외침은 이제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특히 이상의 분석에서 제시한 것처럼, 현재의 금융세계화와 세계적 군사화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과 반미·반전 운동은 결합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결합에의 요청이 단순한 의지주의적 선언이 되지 않기 위한 실천적인 모색이 절실한 때이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몰인식은 미국에게 해당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제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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