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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80호 | 200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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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를 앞둔 노무현의 딜레마

사회진보연대
지난 5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이번 미국 방문의 목적이 "한미동맹의 우호관계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안보환경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것"이라며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공조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안보환경이 경제에 끼치는 불안요인을 해소하기 위한 것"임을 재차 확인하였다. 노무현의 방미를 총괄하는 박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에 따르면, 이번 두 정상의 회동 결과가 과거 정상회담에 잇따른 공동기자회견이 아니라 격을 높인 '공동성명'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6일 '청와대 브리핑'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공동성명에는 성숙하고 완전한 동맹관계의 형성,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미 경제협력 강화가 포함될 것이며, 31명에 달하는 경제사절단이 동행하여 각종 투자설명으로 북핵문제로 인한 경제 불안 요인을 대거 일소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을 것이고 주장하는데. 은근히 방미결과를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은근한 자랑은 물론 국빈방문도 공식방문도 아닌 실무방문에서 오는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노무현 정부가 이번 방미를 통해 국민들에게 무언가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방미가 과거 역대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요식행위였고, 그래서 역대 정권의 대통령에게는 공동기자회견이면 충분했을 일이 노무현에게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는데, 바로 파병에 따른 '국익'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자신이 국민들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안 된다고 주장해왔던 '평화주의자'라는 사실을 대내적으로 확인시켜주어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권력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라곤 여론의 힘 말고는 없으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여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지지 기반이 지난해 대선 때 (반미 없는) 촛불의 후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후광은 그로 하여금 냉전적 보수세력과 변별점을 충분히 밝혀주었고, 이것이 자신의 대통령 당선에 톡톡한 역할을 했는데, 이걸 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가 틈만 나면 한 단계 진전된 한미관계 운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불필요하게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을 안심시켜야 하기도 했는데, 국내 정국운영을 위해서이기도 하거니와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과 일정한 공조관계 없이는 동북아 중심 국가는 고사하고 상대적인 경제안정조차 묘연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방미로 자신의 지지자들과 반대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과가 가능한지 의구심이 이는 것도 당연한데, 노무현은 여기서 잠정적이나마 일정한 해법을 찾은 듯하다. 역대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권기반을 가지고 있는 노무현으로서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쫓는, 정치적 견해보다는 실용주의적 태도로 일관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동등하고 자주적인 한미관계"라는 취임 전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국익'이라는 말 한마디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현재 방미를 앞둔 상황에서도 노무현은 예의 주장만을 되풀이할 뿐,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태도와 정견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초민족자본의 압력에 굴복한, '잘못 끼워진 첫 단추'―파병 그리고 '국익'

당선 직후 노무현의 정견을 의심해온 일부 언론의 호들갑, 즉 '노무현을 의심하는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루빨리 미국에 가야한다'는 주장을 논외로 한다면, 노무현의 방미 일정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취임 이후 북핵 위기가 해외자본의 한국 투자전망까지 위협한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히면서부터다.
취임 직전에 이미 무디스는 한국 신용등급전망을 두 단계나 낮춘 상태였고, 코스닥지수는 40선이 무너지면서 시장 존폐가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신용평가를 하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반기문 외교보좌관은 이를 만류하려고 급하게 미국 월가를 방문했고, 윤영관 외교통상장관은 3월 12일 라디오방송국과 행한 인터뷰에서 4월말 5월초 방미를 추진 중임을 시사했다. 3월 10일 미국은 청와대에 이라크전 지지를 공식 요청했고,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성의있는 답변을 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하면서 지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윤영관을 필두로 하는 외교통상라인은 한미동맹관계를 고려해 기본적인 것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노무현과 부시 두 정상은 14일 전화통화를 통해 이라크전 지지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지지 그리고 노무현의 방미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미 비전투병 파병방침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언론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유인즉 '국익'때문이라는 것이다.

파병 국회동의안 처리가 한참 논란이 일던 3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던 윤영관 외교통상장관은 3월 28일 미국에서 있었던 한·미 외무장관 회담의 성과로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는 파월장관의 언급을 공개하면서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합의하였다고 전했다. 파병에 따른 국익의 증거, 즉 한반도 평화의 보증 증거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4월 2일 파병 안이 통과된 후에야 당시 논의내용이 상세히 알려졌는데, 윤영관 장관의 요청은 한반도에서 무력 사용 배제(rule out)였지만 미국은 이를 완고한 자세로 거절하였고, 그나마 '평화적 해결'에 대한 미국의 이해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서로 공통의 이해 속에 순조롭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북한과 이라크는 다르다'는 의견뿐이었다.
2003년 벽두부터 이미 주한미군 재배치 가능성을 흘려왔던 미국은 국회파병안 통과가 지지부진하자 고위급 미국 관료들의 입을 통해 일제히 주한미군 제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남한의 보수 우익들은 주한미군이 재배치되면 북의 도발을 어떻게 막느냐며, 한미 군사동맹관계의 정상화와 파병안의 신속한 통과를 주장하고 나섰고, 대규모 군중집회를 벌이기도 하였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것이 마치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한·미 동맹관계 요청에 따라, 공군력과 해군력에 주안을 두는 방위체계를 위해서라지만 실상은 전혀 반대다. '예방전쟁'이라는 미명아래 자국의 선제공격을 합리화해 온 미국의 최근 작전개념에 비추어 보면, 주한미군 재배치는 주한미군의 한강이남 재배치를 통해 북한의 공격 표적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보복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미국의 선제공격 기회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3월 말 한·미 연합 연습 군사훈련 차 한반도에 임시 배치된 F-117 스텔스 전폭기 6대와 F-15E 전폭기 20여대가 되돌아가지 않은 채 한반도에 배치되고, B-1, B-52 폭격기는 괌에 배치되었다. 노골적으로 무력시위를 전개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므로 임기 전에는 주한미군이 재배치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고, 윤 장관은 당시 외무회담에서 유동적인 안보상황, 투자자 동요를 이유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신중히 다뤄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은 일말의 재고 가치도 없다는 듯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거절했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의 반민중성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외무부장관을 역임했던 한승주 주미대사는 4월 16일 워싱턴 부임에 앞서 연합신문과 벌인 인터뷰에서 '다자회담이라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미국 측 제의가 농축우라늄 핵개발 논란 당시 '핵 폐기선언(의지)을 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초기 미국의 입장에 비해 상당히 진전된 자세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상은 정반대인데 제네바 협정의 고의적인 지연/파기 과정에서 한국, 일본의 역할을 강조한데서 확인할 수 있듯, 미국이 다자회담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소요되는 비용을 다자 국가들이 분담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구나 다자간 협상의 틀은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한 제반의 시도보다는 북에 대한 다자간의 압력으로 드러났고, 이는 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는데 적합한 수단이 될 뿐이다. 이를 극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3자 회담을 전후한 최근 북한의 핵개발 시인/보유 논란, 미국의 북 핵무기 보유 용인 논란과 폐연료봉 재처리 징후 포착 보도들이다. 최근 들어 미국은 회담 때마다 북한의 핵무장과 연관있는 크고 작은, 지극히 부분적으로만 사실인 정보를 흘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그것의 효과를 아주 톡톡히 보았는데, 이는 다자간 협상 테이블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국가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하였고, 더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직접 북에 압력을 행사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정부는 이를 공공연히 부추기기도 하였는데, 3자회담의 윤곽이 그려지기도 전에 윤영관 장관은 이 모든 것을 미국 혼자서 감당하기는 곤란하다며, 일본, 러시아, 한국 등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미국입장을 거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무현의 행보는 단지 현재의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합의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평화번영정책' 구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를 이끌어 낸다는 계획에서 비롯된다. 주지하다시피 '평화번영정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새로운 경제성장의 비전으로 제시한 '동북아 중심 국가 구상'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와 입지를 유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남한 내에서 이들의 활동에 장애가 되는 장벽을 해체하는 한편, 동북아시아의 군사적·정치적 안정을 강화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된다. 노무현 정권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은 방미 과정에서 남한 자본주의가 더욱 강력히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편입되기 위한 활동을 벌일 것이다.
예컨대 부시 일가의 유력한 지역구인 텍사스 주에 대규모 반도체 공단을 조성한다든지(삼성), 파병으로 한국에 대한 신인도가 제고되어 투자전망이 밝다느니, 이라크 재건 건설 사업에 지분을 요청하겠다는 따위의 말들이 그것이다. 단적으로, 노무현 정부는 문화인들의 집단적인 반발로 스크린쿼터 축소가 불가능해지면서 사그라든 한·미 투자협정 논의를 데외 신인도 제고라는 명목으로 미국측에 먼저 제기하고 나섰다. 재경부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 역시 "양자간 투자협정(BIT)"이 체결되면 40억달러의 투자유치 효과에 대외신인도 회복까지 얻게 될 뿐만 아니라, 한·미 관계에 대한 불안감 시비도 사그라질 것"이라며 BIT 논의 개시를 주장하고 나섰다. BIT까지 논의될지 여부는 아직도 불투명하긴 하지만,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도하개발아젠다(DDA) 세계무역기구(WTO) 아태경제협력체(APEC) 등을 통한 다자 및 지역 차원의 무역·투자자유화 문제까지 논의할 것임은 분명하다. 얻을 것보다 내줄 것이 많은 투자협정에서 내줄 것이 많은 나라가 먼저 나서는 것이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라면 이쯤에서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미국에 대한 굴종이 불러올 진정한 비극

결국, 노무현 행정부의 대미종속적 외교는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공고화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노무현 자신은 거듭 '어떤 경우에도 아프간이나 이라크전처럼 한반도에 전화의 재앙이 몰아쳐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 부시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를 이끌어내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언과 달리 결과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선제공격 위협은 위협대로 남아있으며, 한반도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판국이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노무현 행정부가 애써 외면한다는데 일차적 원인이 있고, 두 번째로 한반도 위기에 대한 비판 즉, 미국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실용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위기 대응 능력을 상실하게 된 탓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노무현 행정부는 반미감정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려는 노력에 앞장선 나머지, 반미감정을 제어해야 한다는 명목만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촛불시위 자제, 반미를 동반하는 반전시위 자제, 전교조의 반전 교육 실태를 조사하라는 지시에서 엿볼 수 있듯 노무현 행정부는 대중들의 자주적 요구를 외면한 채 한미 동맹의 강화만을 주문처럼 읊조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명백한 민주주의의 파괴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행위는 생존권을 위한 민중들의 투쟁에까지 미치고 있는데, 투자유치를 향한 대규모 세일즈 외교에만 매달리고 있는 노무현에게는 화물연대 대규모 쟁의행위가 짜증나는 일이었고, 급기야 빠르게 대책을 강구하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드러나고 만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외교정책을 과거 냉전적 보수 정권의 그것과 똑같이 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반도 위기에 대한 노무현의 대응책 역시 현재의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 구상과 이를 보장받기 위해 미국에 대해 취해온 종속적 태도(반미없는 평화주의)는 그 의도와 달리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의 열망을 무디게 하는 것이었고, 이는 결국 미국의 뜻대로 전쟁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무기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식 외교의 딜레마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히도 지금부터 조금씩 흘러나오는 정보를 살펴보면 사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미국은 북한에게 '선핵포기'원칙만 강조할 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떤 진지한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일본 역시 23일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제봉쇄 등 북핵에 대한 강도 높은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미국의 한반도 전쟁 책동을 막을 수 있냐는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노무현과 미국이 제어하려고 하고 있는 반미와 민주주의, 평화를 향한 대중들의 투쟁, 이것만이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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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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