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85호 | 200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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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동북아 위기 고조에 맞서 '촛불'을 치켜들자

미군장갑차 중학생 사망사건 1주기를 맞이하여

사회진보연대
월드컵의 광풍이 전국을 휩쓸던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의해 중학생 두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있으되 책임질 자는 없었고, 살인자는 있으되 처벌할 수 없는 모순이 드러났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미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두 중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촛불시위는, 따라서 살인자 처벌과 부시의 공개 사과를, 불평등한 SOFA 개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광범위한 반미시위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죽음과 죽음의 원인을 분리하고자 하는 불순한 음모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지배세력은 촛불시위와 반미를 분리시키고 촛불시위를 '비정치적 추도집회'로 변질시키려 했다. 또 촛불시위와 반전투쟁에서 드러난 남한 내에서의 반미 여론을 '등미(等美)'로 조작했다. 그리고 '종속적 한미 군사동맹 반대'를 '한미동맹의 현대화'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력증강'으로 둔갑시켰다.


햇볕정책의 모순과 한계, 그리고 '촛불탄압'

노무현은 작년 대선 후보 시절, 현 단계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경우 그것에 대한 대응책은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는 순서밖에 남지 않는다며 햇볕정책의 유지, 계승을 주장하였다. 민주당의 당론 역시 경제적 압박보다는 신뢰 우선주의, 대화와 설득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특히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남쪽이 기존 대북 경협 등과 북한 핵 문제를 연계할 경우 북한이 대화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남북대화와 경제협력를 바탕으로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미 동북아 내에서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강화를 전제함으로써 북한을 군사적으로 자극할 여지를 가졌던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될 수 없었다. 햇볕정책이 모태로 삼고 있는 '페리 프로세스'는 미국의 유일한 관심사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제거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재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동북아 내에서 미국의 군사력 증강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철저히 종속된 채,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킬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하지 않고 현대 등 재벌을 앞세워 대북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햇볕정책을 유지,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노무현이 '반미주의자'라는 것은 애시당초 어불성설이었다. '반미시위'에 대한 미국과 보수진영의 우려를 인식한 노무현은 당선 직후 '촛불시위' 자제를 호소하며 촛불시위와 반미·주한미군 철수라는 쟁점을 의도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며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를 표방했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우방국인 미국의 체면을 봐서라도 촛불시위가 과도한 반미시위로 번지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그 결과 한반도 위기가 조장되고 있음이 너무나 자명한 상황 속에서 새정부는 촛불시위가 반미는 아니라며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반미시위 자제를 호소하며 다른 한편으로 햇볕정책의 유지, 계승을 주장하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자임한 노무현의 자가당착은 이내 드러났다. 이른바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 송금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은 이 균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현대 상선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계기로 엄격한 상호주의 원칙 하에 대북 지원의 투명성을 주장하는 여론에 떠밀려 대북 현금지원이 밑바탕이 된 남북교류사업은 일대 위기를 맞게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동조하며 한반도 평화를 구걸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방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미명 하에 부시 행정부의 신군사전략에 조응하고 말았다. 그리고 미국과 초민족자본에게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동북아 역내에서 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분단의 안정화를 통해 동북아중심국가로 웅비한다는 구상을 내포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북핵'이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공통 목표로 수렴되었다.


방미에서 드러난 평화번영정책의 실체

여기에 북한과의 협상을 일체 거부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인식이 투영된 것은 물론이다.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반테러 전쟁'을 경과하며 사실상 페리 프로세스의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직후,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사문(死文)으로 간주한다는 단언을 했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의 발발은 사실 '자기실현적 예언'의 성격을 띠는 일이었다. 또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한 다음인 2002년 1월 워싱턴은 예방적 전쟁 전략을 위한 미국의 억제정책을 포기하면서 "악의 축"이라는 것을 고안해 내었다.
노무현은 방미 과정에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한다'는 말과 달리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할 것임을 명시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군사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동시에 노무현은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이 북핵문제의 전개상황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연계정책'에 따라 남북교류협력 방향의 변화가능성을 시사하였다. 한술 더 떠 노무현은 정상회담 직후 5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북한이 하자는대로 따라해선 안 된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대북 제재의 물꼬를 틔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즉 "미국의 동맹국들[남한과 일본]이나 중국은 미국이 핵문제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 스스로의 우려를 노무현 자신이 앞장서서 불식시켜준 것이다. 그 결과 대북 제재를 향한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한 미국은 동북아 내에서 무소불위의 전횡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개최된 일련의 외교 드라이브에서 재확인되고 있다.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결국 ①한미동맹의 현대화·공고화 속에서 ②북핵문제를 해결하고 ③그 성과로 동북아중심국가 방안으로 상징되는 남한 자본주의의 발전전망을 미국 및 초민족적 자본으로부터 승인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1990년대 말 콘돌리자 라이스, 폴 크루그먼 등이 포함된 미국 국익위원회는 '세계화의 옹호가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미 군대가 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평화번영정책이 이러한 미국의 대외전략에 철저히 종속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망 속에서 노무현이 표방한 대미자주외교란 냉전적 보수세력과 자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리하기 위한 수사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고, 방미 외교는 노무현 정권의 평화번영정책의 한계와 모순을 단적으로 드러낸 계기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북간의 본질적인 화해,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한미동맹 대 북한의 대결국면이 첨예화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장관급 회담(4월 27∼29일)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5월 19∼23일)가 예정대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일견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당초의 기조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안위할 수도 있으나 이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가 한반도 위기의 원인을 '북한의 핵개발'로 인식하는 한, 그 해결책 역시 한미(일) 동맹의 강화 속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을 동반하는 셈이며 무엇보다 군사적 해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 정상이 합의한 동맹 현대화란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와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자주국방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군의 전반적인 전략 및 전력개편, 군비확충과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구나 동맹 현대화는 한반도에서의 남한군의 역할 증대를 넘어 미국의 더욱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남한군의 '자주국방 비전'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지역의 불안정성의 심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주의와 동북아 역내에 점증하는 군사적 경쟁

이 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노골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국방비 예산 증액 및 벙커버스터 등 소형핵무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또 동북아에서 주한, 주일 미군의 재배치와 전력증강을 꾀하고 있으며 미사일방어망(MD)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는 냉전체제 종식과 함께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새롭게 출몰하는 '비대칭적 위협'을 제어하기 위해 미국 본토 및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군전력의 첨단화·경량화·유연화 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주의가 연일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동북아 역내의 군사적 긴장도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역내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긴장관계라는 기본 구도 하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최근 일본 내 보수화 흐름과 맞물리며 '보통국가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5월 23일부터 벌어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추후 북한에 대한 강경조치를 취하고, 향후 북한과의 회담은 남한-일본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일 경우에만 재개하며, 미국이 추진중인 미사일방어망에 적극 동참키로 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 미일 정상회담을 전후로 미국의 MD 계획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일본의 MD 구축은 외형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는 듯 보이면서,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최대 잠재적으로 설정돼 있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동북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게 확실하다. 남한 역시 현재 국방부가 북핵위기 발발후 당초 구입할 계획을 세워놓았던 3척의 이지스함과 300여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조기에 구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 여기서 미국의 의도는 결국 한반도 주변 3국에 MD를 실전 배치시킴으로써, 군사력의 증강을 기도하고, 그 결과 '악의 축'으로 지명된 북한에 대한 고립, 압박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이의 부수적 효과로서 거대 미 군수자본을 살찌우려 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경우 동북아 내에서 미일동맹과 가시적인 충돌 없이 전략적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고 또 미국이 한미일 동맹과 연계해 미군을 남한에 주둔시키는 목적이 자체 지역 전략에 따라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 한반도를 끌어들이는 데 있기 때문에 중국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국 역시 MD 등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염두에 둔 듯 최근 최첨단 이지스함을 건조하여, 미-일 등에 이어 대양해군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이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군비 경쟁을 조장하여 동북아 전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셈이다.


반미-반전-평화군축 투쟁으로 나아가자!

중학생의 죽음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평화를 향한 보편적 요구와 마주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로 거듭나기도 했다. 반면 지배계급의 집요한 방해 책동 속에 '주한미군 철수'와 '반미'에 대해 동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인미군 처벌'과 '부시 사과' 그리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이라는 요구와 '주한미군 철수'와 '반미'는 본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죽음의 직접적 원인 자체를 제거하지 않는 한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는 언제든 나올 것이며 살인미군은 처벌되지 않고, 미국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력증강만을 꾀하며 한반도에 대한 전쟁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학생사망 1주기를 맞이하여 광범위하게 조직된 촛불시위는 미국의 군사주의와 한반도 위기에 맞서 더욱 강력한 반미반전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 미국과 초민족자본이 주도하는 금융 세계화와 이를 보호, 유지하기 위한 군사 세계화 양자가 양산하는 폭력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보편화되어야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민중의 투쟁은 전쟁의 원인으로서 세계화와 미국에 대한 비판과 결합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자. 미군의 군사력 증강이 한반도를 더욱 위기에 빠뜨린다는 점을 적극 폭로하고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의 현대화와 동아시아 미군 재배치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자.이는 또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편승하여 역내의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미일 삼각 공조 체제에 대한 반대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화' 시도에 반대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동조, 한반도와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남한의 '자주국방 비전'과 국방 예산 증액에 대해서 철저히 비판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한의 민중운동은 군사화된 정치, 군사주의적 체계에 대해 반대하는 평화군축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두 중학생의 죽음을 기리는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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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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