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00호 | 200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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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색깔시비, 망령의 부활

사회진보연대
민주인사 33인의 고국방문과 국정원의 송두율 교수 조사

지난 9월 19일 33명의 해외 민주인사들이 꿈에도 그리던 조국을 방문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이유만으로 조국 땅을 밟을 수 없었던 해외 민주인사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들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민간민선 정부가 들어선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어 가건만 냉전과 군부독재가 갈라놓은 조국의 한편은 그들을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인색했다. 수구 보수 언론과 단체들은 그들을 여전히 빨갱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는 이번 일이 '특별한' 일임을 강조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부모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사무치는 세월이었건만 남한사회는 여전히 빨갱이인가 아닌가라는 냉전적 잣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9월 22일, 논란 끝에 송두율 교수가 입국하면서 이전에 기획되었던 '해외 민주인사 조국방문'의 취지와 역사적 의의는 자취를 감추었고 오직 송교수의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진위여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주인과 객이 자리를 바꾼 셈이다. 그리고 연이어 송교수를 둘러싼 다소 충격적인 사실들이 국정원으로부터 발표되면서 소위 '송교수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송교수에 대한 '진실게임'이 아니다

송교수가 정치국 후보 위원인가 아닌가는 것은 애초 국정원이 조사를 시작할 때 강금실 법무장관이 밝힌 바대로 핵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정원의 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핵심은 송교수의 거짓말로 바뀌었고 화해와 협력이라던 정부의 입장은 진보진영에 대한 마녀사냥을 방관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법무부와 국정원 그리고 청와대 관계자들을 경질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고 송교수를 포함한 해외 민주인사들을 다룬 KBS도 색깔시비에 휩싸였다. 또한 그에 이어 송교수를 초대했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마저 송교수가 참가하기로 되어있었던 심포지엄에서 송교수의 발표를 취소하는 한편 송교수에게 속았다는 순진한 자기고백을 했다. 이번 송교수 사건의 핵심은 그의 북한 노동당 입당여부도 그가 정치국 후보위원인가도 아니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국정원의 발표 이후 마치 연습한 것처럼 언론과 정치권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 색깔론과 시종 우왕좌왕했던 정부및 청와대다.


노무현식 개혁의 밑천 드러내기

민주화 운동의 계승자로 자처한 노무현대통령은 집권 초 지난 김대중 정권에서 미진했던 정치개혁과 사법·언론개혁을 핵심개혁과제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이어 민변 출신인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기용하고 같은 민변출신 고영구 국정원장을 임명하는 등 개혁성향의 인사들을 행정부에 대거 임용했다. 그리고 한총련 이적규정에 대한 재검토, 국정원개혁, 사법개혁 등 전향적인 조처들을 발표했다. 또한 대화와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처벌보다는 대화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 파병국면과 광주 묘역 참배 그리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들을 거치면서 애초 노무현 정부의 방침은 크게 변했다. 당초 이적규정 철회를 검토한다던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검거는 끊이지 않았고 국민의 여론을 수렴한다던 파병은 수많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 또 화물연대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동원한 파업 부수기에 들어갔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처리를 지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노무현 정부가 표방하는 개혁 이데올로기 자체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당초 확고한 지지세력이 부재했던 노무현으로서는 각종 현안들에 대한 보수세력의 역공세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개혁의 경우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의 역공에 흐지부지되어버렸고 개혁적 인사들의 장관 임명에서는 고질적인 색깔시비에 휩싸였다. 또 이 상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구상했던 신당 프로젝트는 분당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그 결과 정국 운영의 주도권은 사실상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에게 넘어갔다.
결국 송교수 파문의 배경에는 개혁이데올로기의 침몰이 있다.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등에 없었다고는 하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탓에 민중운동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정부로서는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등 억압적 통치기구를 청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내 취약한 지지기반이라는 외부적 한계와 함께 이런 내부적 한계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실내용이 없는 모양내기에 지나지 않게 했다. 처벌에 초점을 맞춘 국정원의 조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국정원과 검찰의 통제불능 그리고 국가보안법

여기서 우리는 송교수에 대한 혐의의 사실여부에 앞서 송교수가 받은 혐의 사실의 대부분이 국가보안법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수지 김' 사건과 '안풍' 등 국정원에게 불리한 사건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은 송교수를 디딤돌 삼아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그 결과 청와대의 뜻과는 상충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개가 주인을 문 꼴이다.
국가보안법은 '경계인' 송교수의 노동당 가입이라는 매우 민감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가치판단을 내렸다. 송교수의 노동당 가입에 대한 판단 근거는 냉전체제 하에서 북에 대한 내적 접근을 시도했던 그의 이론도 활동도 아닌, 국가보안법 상의 조항위반여부였다. 냉전의 결정체인 국가보안법이 모든 판단근거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권의 무능은 결국 송교수 사건의 본질인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하고 '사실' 여부에 대한 복잡한 진실게임에 모든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 결과 또 다시 국가보안법을 기준으로 빨강과 파랑이 갈리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보수세력의 법적 근거는 국가보안법이었고 국가보안법에 대해 변죽밖에 올릴 수 없는 개혁세력은 보수세력의 역공에 선제권을 내주었다.


다시 한번, 국가보안법 철폐!

결국, 송교수 사건은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데올로기가 갖는 허구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개혁세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조차 입증하지 못하는 모순이 송교수 사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송교수에 대한 광기에 찬 레드 컴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혁세력의 발빼기와 노무현 정부의 무능이 송교수 사건의 이면이라는 것이다. 이는 억압적 통제기구인 국정원과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온존하는 한 언제나 연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한총련 대표자들은 단지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되어야 하고, 도처에서 민주인사들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잡혀가고 있다.
송교수 사건을 단지 남북의 '경계'를 살고자 했던 한 지식의 좌절쯤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보수세력의 역공에 맞서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엄정한 수사도 명백한 진실규명도 아니다. 우리의 원칙은 국가보안법 철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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