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01호 | 2003.10.18
첨부파일
social201.hwp

노무현 재신임 정국의 성격과 대응방향

사회진보연대




재신임 국민투표 정국의 의미


출범 8개월만에 노무현 정권은 재신임과 탄핵 불사라는 극단의 정치현실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이 공론화 되었으며, 국민투표와 선거, 권력형태에 관한 헌법적 논란들이 정치현안으로 부상했다. 이 비상한 사태의 원인과 배경이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실패로 인한 장기불황과 이라크침략전쟁, 북핵 위기에 대한 비주체적 대응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연이은 권력형 부정부패에 있음은 분명하다. 민생파탄 민주상실로 요약되는 사회현실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변화의 요구야말로 현 정세의 근간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으로 촉발된 현재의 정치구도는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무관한 지배계급의 내부갈등으로 출발했다. 재신임 여부와 국민투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수록 지배정치의 장벽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변화의 요구는 지배계급 내부 정쟁의 효과에 종속될 것이다. 더욱이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통치 행태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전형이다. 국민투표라는 직접 민주주의적 외양은 그 겉모습일 뿐이다. 노무현이 제안한 국민투표가 가지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외양은 결국은 약한 정권과 강한 의회 다수당이 빚어낸 대의제 통치체계의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한국사회 위기에 대한 어떤 비전이나 대안제시 없이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면 혼란뿐이라는 식의 정치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의 탄핵요구와 노무현의 국민투표안은 각각 의회적 수단과 포퓰리즘적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만 구분되며, 기존 권력체계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체제 붕괴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불안으로 전환시켜 국정의 재안정화, 안정적 지배정치권력 재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오히려 기존 지배체계 밖의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다는 의미에서 노무현의 방식은 가히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라 불릴만하다.




우리의 대응방향 : 무엇과 대적할 것인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위헌시비로 인해 국민투표의 시기와 실제 실시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이에 노무현은 4당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민투표안을 정치적으로 철회할 수도 있음을 내비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내년 총선에서 전국적인 독자세력 확보에 위협을 느낀 민주당과 자민련은 권력분점을 위한 개헌론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이 혼탁한 정세에서 올바른 대응방향을 찾아가는 선차적인 수순은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들을 정확히 분별해내는 것, 과연 우리는 무엇과 대적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역시 가장 근본적인 난관은 노무현정권의 재신임 여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중단/반민중 정권 심판의 여부와 일치되지 않는 정세적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 같은 조건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민중운동의 주체적 대안조건 부재에 관한 계급역관계상의 곤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지배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불신이 만연한 가운데,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수 있다는 폭탄선언을 내지른 상황이지만, 그 효과는 대중 불만의 급진화와 피지배계급의 권력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보나파르티즘적인 국민투표전략으로 화려한 재기를 노리는 노무현과 기존의 권력을 수구하려는 한나라당의 권력투쟁이 그 자체로 대중의 불신과 불만을 체제 붕괴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압박하는 것으로, 사태를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게임으로 관리해내고 있다. 현안으로 떠오른 부정부패 사건의 전시적 해결과 선거용 정치개혁프로그램이 이 흐름의 중심 지지선을 이루며, 여기에 버블붕괴를 회피하기 위한 부동산투기 안정화 대책과 일련의 경기부양책, 이라크 파병과 부안 핵 폐기장 문제와 같은 주요현안들에 관한 허구적인 개혁대보수 논란이 그 저변을 형성해 갈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무현이 재신임 될 경우, 그 결과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친위쿠데타 성공과 정책개혁의 강화로 귀결될 것은 너무나 명확한 반면, 국민투표를 통한 불신임 관철만으로는 현 정세의 중심축을 지배계급 내 갈등으로부터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단결의 국면으로 역전시켜내는데 무력하다. (한나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에서 추진되는 대통령 탄핵의 경우는 더 이상 말할 나위조차 없으며, 점점 불분명해지는 국민투표의 실현 가능성은 전혀 다른 쟁점이다.)
그러나 주체적 대안조건에 대한 판단은 계급역관계에 대한 주객관적 조건을 동시에 판단하면서 계급투쟁의 역동적 발전방향을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한다. 주체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반대투쟁의 성과가 자칫 한나라당에게 갈 수 있다는 식의 판단은 정세의 양면성을 보지 못한 채 변화하는 정세의 역동성을 사장하는 오류이다. 당면 정세의 기본 성격은 정상적인 위기관리에 실패한 지배계급이 내부 권력투쟁의 전면화를 통한 체제위기의 적극적 관리국면으로 돌입한 상황이다. 이에 우리 투쟁의 기본 방향은 노무현정권의 재신임 여부 및 국민투표시행 여부에 구애됨 없이 지배계급의 권력게임을 실천적으로 압도해낼 수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정권 심판과 이를 통한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연합의 실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투쟁의 조건은 주체적 대안조건 부재로 인한 투쟁의 단계적 접근이 아니라 부재한 주체조건을 확보해 나아가는 자기혁신과 재조직화를 통해서 달성해야한다.
또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난 2001년 DJ정권퇴진투쟁의 교훈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01년 정권퇴진투쟁의 교훈은 혁신군 창출 없는 권력대안 투쟁은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명분용 정권퇴진투쟁에 그칠 뿐이라는 점이었다. 더욱이 (우리의 투쟁과는 무관한 이유로) 자기 정당성의 복구를 위해 정권이 스스로 물러날 수 있음을 공공연히 하는 현 정세는 우리에게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조건부 정책요구안을 넘어서는 주체적 대응을 요구한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냉정히 버려야한다. 이것은 어떤 도덕적이고 사상적인 순결성을 강변하고자함이 아니다. 더 이상 내줄 것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닌 정권에게 무언가를 요구함으로써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자기 조직대중의 이해로 국한되는 코포러티즘적인 운동형태와 구조는 현실적으로 시효만료 되었다. 재신임을 구걸하는 정권의 요구를 계산하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운동구조와 맞서야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조건부 재신임/불신임안이 아닌 노무현정권 심판투쟁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비전을 잃고 자기방어에 골몰하면서, 이미 그 실패가 명백해진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어거지 재정당화를 획책하는 정권은 마땅히 물러나야한다. 이러한 주장과 실천에 아무런 망설임이 있을 수 없으며, 초점은 어떤 권력투쟁을 어떻게 벌여나갈 것이냐이다. 그리고 그 대안은 한나라당과 노무현 간의 권력게임의 부산물 더미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의 코퍼러티즘을 극복하는 혁신-재편 계획의 실행에 있다. 이미 지난해 4/2발전파업 패배와 올 상반기 철도/화물연대 투쟁을 경과하며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광범위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운동의 위기를 진단하고 혁신을 주장해왔으며, 정권과 자본의 공세는 우리의 아픈 곳을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으로 정확히 찔러왔다. 이에 무엇보다 분명한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은 올 초부터 논의되고 준비되어온 민중연대 하반기 총력투쟁과 당면한 이라크파병저지 반전투쟁을 전면적인 무능부패/반노동자-반민중적 노무현정권 심판투쟁의 장으로 재조직하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2004년 초에 있을 민주노총 선거와 총선은 이 재신임 정국을 가르는 노무현 정권 심판투쟁의 성과와 평가 하에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선거를 중심으로 하여 짜여지는 운동질서는 총선 결과의 성패여부에 상관없이, 또 기존의 어느 세력이 민주노총의 지도적 지위를 점하느냐에 상관없이 (지배계급의 권력게임에 복속된 채) 현재의 무력한 운동진영 내 기존세력들 간의 부정적인 분열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한나라당의 벼랑 끝 강수를 진정한 지배체제위기와 노동자 민중운동의 전진적 재편투쟁의 조건으로 전변시켜가자.



주제어
정치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