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9호 | 200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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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호황의 감추어진 진실

편집부
<편집자주>

요즘 신문의 경제면을 보노라면 마치 ‘자본의 엘도라도’가 발견된 것처럼 호들갑이다. 미국식 경제, 미국형 사회모델이라는 담론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저들의 찬미는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고, 불황과 공황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 자본주의라는 허황된 관념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미국경제 담론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고 왜곡시키는 물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던지고자 한다. 미국의 호황은 진정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출현인가? 과연 그것은 지속가능한가? 한국 경제의 이상은 미국경제인가? 미국 경제의 감추어진 이면에는 어떠한 현실이 존재하는가?
이번 29호의 다소 긴 주장글은 이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답변이다. 아쉬운 점은 보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분석과 비판이 지면사정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주장글은 출발일 뿐이며 우리의 분석과 비판작업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최장기 호황과 신경제

91년초 이래 시작된 미국경제의 호황은 지난 2월 1일부로 사상 최장의 호황 기간기록을 갱신했다. 기간만이 아니다. 호황이 시작된 91년 말 5조 9,862억달러였던 GDP(국내총생산)는 지난해 거의 두배에 가까운 9조1,462억달러로 증가했으며, 91년 4월말 2,887.9포인트였던 다우지수는 지난해말 1만1,497.1로 4배 가까이 올랐다. 특히 나스닥 지수의 경우 정보통신업체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91년 4월 484.72에서 지난해말 무려 8.4배 증가한 4,069.31포인트까지 치솟았다. 미국경제는 91년 이래 9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GDP) 4.2%, 3~4%대의 낮은 실업율과 (30년만의 최저)2.5%대의 낮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유지하면서(99년은 0.1%) 저물가-고성장-저실업율의 이상적 균형경제(Goldilocks Economy)를 실현하고 있는데, 일단의 언론과 학자들은 이것을 일컬어 소위 ‘신경제’이라 칭한다. 신경제론자들에 따르면 ‘고성장-저물가’으로 대표되는 신경제는 인터넷-IT산업의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결과이며 이에 따라 기존의 ‘수확체감의 법칙’이 아닌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어 기술발전에 따른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경제학계의 다수는 신경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인터넷 경제에 의한 국민경제 수준에서의 생산성 향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강한 달러정책 원인론

보다 설득력있는 설명은 이른바 강한달러(정책) 원인론에 의해 전개된다. `신경제론'이 주로 재계, 언론등 현실경제 진영의 주장임에 비해 `달러 강세론'은 주로 학계에서 제기되는 주장이다. 이들은 `신경제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물가-고성장'이란 현상은 무역적자와 강한 달러정책의 조합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90년대 미국의 고성장은 소비주도였다. 소비가 지나쳐 저축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수입품이 많이 들어올 경우 소비를 늘리더라도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 여기에 강한 달러까지 결합하면 수입물가는 더욱 안정돼 저물가기조 유지가 가능하다. 따라서 미 증시의 장기활황은 소비주도성장→주가 상승→해외자금 유입→달러 강세→주가 추가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진단된다. 그러나 강한달러를 호황의 원인으로 보는 설명은 강한달러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이 사후적인 설명일 뿐 진정한 원인을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앨런 그리스펀의 신화나 클린턴의 자화자찬이 이 대목에서 출현한다. 실제로 대선정국을 맞은 미국 정가에선 최근 장기 호황을 자기 공로로 돌리려는 각종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애초에 미국의 경제 호황은 걸프전 직후 전쟁특수를 타고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호황국면은 ‘냉전과 걸프전’ 완결에 따른 ‘평화분담금’에 의해 국방예산이 감축되고, 정부지출이 안정화된 9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문제는 93년의 호황이 94년으로 이어지고 97년이후 계속된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철저한 노동의 불안정화

원인의 하나는 ‘철저한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가혹한 희생의 결과’이다.
80년대를 거치며 괴멸되다시피한 미국의 노동운동은 기업의 다운사이징과 인건비 절감 경영, 고정자산 부문의 기술발전을 모두 수용했다. 경기팽창 덕분에 전체 실업율은 30년만의 최저치인 3%대로 떨어졌다고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모두의 것이 아니였다. 최근 밀턴 S 아이젠하워재단의 연구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도시 영세민의 실업율은 현재 위기수준에 도달되어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일부지역의 경우 젊은층 실업률은 30%를 넘어선 형편이다. 그러나 지역적 편차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용구조의 악화’이다. 10여년에 걸친 강도높은 구조조정의 결과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신축화(유연화)로 인해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해지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사용직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임시직으로 한단계씩 아래로 이동하고 있다.그뿐이 아니다. 터프츠대학 기아․빈곤연구센터는 최근 미국내 6명의 어린이 가운데 1명이 굶주리고 전국적으로는 3천만명이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어린이의 빈곤 비율은 서유럽의 평균보다 4배나 높고 미국 흑인남성의 수감률은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 당시의 흑인 수감률보다 4배가 높다. 9년간의 장기호황에 따라 미국 월가와 실리콘벨리에는 하루에도 수십명의 신흥 백만장자들이 탄생한 결과 최상위 소득계층 20%의 경우 98년까지 10년간 소득이 15%나 증가한 반면 최하위 소득계층 20%의 소득 증가율은 1%에도 못미친다.또한 최고경영자(CEO)들의 평균소득은 호황의 여파로 일반노동자 임금평균의 무려 600배에 달하고 있다는 통계보고도 있다. 전체 국민의 최상위 5%가 국가 전체수입의 약 50%를 차지하지만 하위 20%는 총 수입액의 5%에 불과하다.

주변부의 위기와 경제파탄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은 94년의 멕시코, 97년의 동아시아, 98년 러시아로 이어지는 ‘주변부의 계속된 외환위기와 경제파탄’이다. 이들 외환위기의 배후에는 미 투기자본의 절묘하고 거대한 입출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미경제의 더 큰 이익은 오히려 위기를 야기한 직접적인 투기이익보다도 ‘위기이후’에 발생했다. 달러강세에 힙입어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게된 자본시장은 전세계 자본을 미국으로 끌어들였고 미국 경제는 호황기간내내 자본 비용, 원자재 가격 등에 의한 인플레 압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호황기간내내 기록을 갱신하며 99년 사상최대규모인 2714억 달러에 다다른 무역적자는 경제위기를 불러오기는 커녕 호황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효자취급을 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호황의 마감 :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경제가 지난 8년간의 강세를 유지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의 호황을 올 상반기까지는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호황의 영구지속을 강조한 신경제의 완성을 선언했던 클린턴 행정부조차 호황의 연착륙을 예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앨런 그리스펀 연방준비위원장 또한 4차례에 걸친 다단계 금리인상에 이은 추가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어떤 호황도 영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떠한 마감인가이며, 그것의 양상은 전적으로 호황이 양산해낸 숨겨진 모순의 성격과 그 수위에 달려있다. 즉 미국경제호황의 끝은 그 시점을 예측하기에 앞서 극단적인 사회적 양극화와 세계적 불균형, 그리고 산업 전반의 금융화속에 위치해있는 미국경제의 모순적 성격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바르게 전망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산업기술의 압도적 우위와 지속적 성장, 바이오 산업에 대한 독보적 지위로 인해 미국경제자체가 유럽이나 일본경제에 의해 좌초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가올 미국경제의 위기는 (그 시점이 언제이든, 그 양상이 호황의 둔화를 통한 연착륙인가, 파괴적인 붕괴에 의한 경착륙인가에 상관없이) 장기호황의 이면에 숨겨져있던 미국경제내부의 문제점들을 (미국경제호황에 의해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는) 주변국 경제와 (오랜 불황의 탈출을 모색하고 있는) 일본경제로 급속히 이전(移轉)함을 통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수렴점으로 한 금융과 무역질서의 재편이 강제되는 과정을 통해 발생한 주변부 경제의 붕괴와 세계적 불균형은 미국경제호황의 기폭제가 되었지만 그러한 재편이 일단락되는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하강하게되는 미국경제는 ‘세계경제의 위기’로 나타남으로써 주변국 경제의 또다른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미경제의 성공사례를 거울삼아 김정권과 자본이 제출하고 있는 ‘한국형 신경제 전략’이란 신경제의 한국적 적용불가능성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또다른 재앙으로의 자기초대’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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