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강요, 도심집회 원천봉쇄! 집시법 개악 규탄한다.
무능과 기만은 폭력과 파쇼로 이어질 것이다.
12월 11일 오후 국회 법사위에서 집시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번 집시법 개정안은 그 내용과 처리방식 모두에 있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헌법상에도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완전 말살하고 민중의 저항과 요구를 침묵과 암흑의 구렁텅이에 쳐넣겠다는 공공연한 선전포고에 다름 아닌, 말 그대로 개악안임에 틀림없다. 이 집시법 개악안의 통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일년간 끊이지 않았던 국정운영의 혼란, 경제위기의 가중, 민생파탄 등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저항에 목소리에 대해 초강경탄압이라는 가장 확실한 입장 제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침묵 강요, 도심집회 원천봉쇄, 사실상 허가제로 탈바꿈하는 집시법
이번 집시법 개악안은 안의 상정과 논의의 과정에서부터 그 반민주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집시법 개악안에 반대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음에도 공청회, 홈페이지에 내용공개 등의 기본적인 여론 수렴과정을 거치는 것은 고사하고 행자부와 국가인권위 등의 정부 각 부처간 협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청의 의견대로 국회에서 비밀리에 졸속 입법 추진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노동자집회 등에 강경대응을 지시했던 청와대가 버티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다렸다는 듯 지난 8일 전경련 등 경제 5단체 부회장단은 국립경찰병원을 방문, 부상당한 전·의경을 위로한답시고 '집시법 규제가 약하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집시법의 조속한 개악을 공공연히 촉구하여, 국민불편을 앞세우며 집시법 개악의 실질적인 배후조종에 가담한 바 있다.
이번 집시법 개정은 그 방향성이 명백한 기본권의 말살이라는 점 때문에 정권과 자본의 요구에 따라 졸속적으로 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개정되는 집시법은 명실상부한 집회금지법으로 기능할 것이다.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제1항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제2항" 라고 헌법에는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집시법에 존재하는 독소조항은 관할경찰서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지금까지도 무수히 악용되어왔다. 얼마나 많은 집회·시위들이 경찰에 의해 불법·폭력시위로 매도되고 얼마나 많은 무고한 집회참가자들이, '시민' 이하의 '불법집회가담자'가 되어 몽둥이와 방패에 피 흘리고 구속되어갔는가. 그런데, 이제 도심의 거의 모든 집회는 불법·폭력시위로 법적으로 판정될 수 있고, 경찰의 몽둥이와 방패는 더욱더 자유로이 춤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 집시법에서도 유일하게 경찰의 재량권 남용이 규제되는 영역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도로 행진의 경우 질서유지인을 두는 경우에 금지통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고(제12조 제2항), 다른 하나는 주거지역이나 특정장소(대사관, 법원, 국회 등) 인근이 아닌 이상 장소를 이유로 경찰당국이 이를 통제하는 수단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주요도로 행진도 교통 소통에 지장이 있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경찰의 선택에 따라 금지통고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등 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시설 인근지역이 장소제한 범위에 포함되게 된다. 따라서 서울시내에만 2229개의 학교시설이 산재해 있다고 할 때, 모든 집회와 시위는 경찰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일상대화의 소음수준이 60dB(데시벨)인데, 집회음량을 주간 80dB, 야간 60dB로 규제하는 항목은 앞으로 모든 집회가 침묵시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집회 시 소음발생에 대한 손해배상 등의 형사처벌을 정당화할 근거가 될 것이다. 더구나 공사 등으로 인한 장기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규정인 소음규제진동법을 집회·시위의 경우에 적용시키는 것은 단시간의 소음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말살하는 처사다.
또한 집회신고기간을 720∼48시간으로 제한해 장기적인 집회 준비를 어렵게 하고 있으며, 외교기관과 군부대 앞 집회제한의 요건을 엄격히 하고, 과도한 신고사항을 추가하여 피켓의 내용이 신고사항과 다르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가 불법집회 성립요건이 될 수 있게 했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이제 집회와 시위는 경찰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나마 허가되는 집회도 인적 드문 곳에서, 행진은 금지되어 발이 묶인 채 경찰에게 허락 받은 피켓만을 들고 진행하는 침묵시위로 이루어져야하는 참담한 상황이 온 것이다. 결국 이번 집시법 개정은 지금까지 신고제로 운영해온 집시법을 사실상의 허가제로 개악하는 것이다.
집시법 개악을 통해 무능의 책임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노무현 정권
노무현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참여민주주의를 역설하며 참여와 대화를 지향하는 정치를 펼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정권이 이야기하는 참여와 대화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위기와 삶의 파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이 결코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은 절차적 합법성을 강조하고 자신이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의 수호자인양 선전해내며, 다 들어줄테니 대화하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라는 대화의 규칙은 이미 정해져있으며,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대화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즉, 정권과 자본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와 불만이 제기되면, 그 세력들을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악의 무리들", 이라 선언하고, 손가락 하나로 "그들에게 철퇴를∼!"이라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손배가압류 철폐를 외치는, 기초 생활 보장을 외치는, 한칠레 FTA 체결반대를 외치는, 파병 반대를 외치는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은 "편협한 이익집단"으로 매도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의 극악무도함은 위기에 대한 해결불능과 불만과 생존에 대한 불안의 책임을 때로는 보수야당에게, 때로는 저항세력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떠넘기기 급급하다는 점에 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민중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손을 피로 물들여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구성원들에게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덮어씌우려는 책임회피. 정치는 보수야당이 다 말아먹었다며 국민들이 모아준 돼지저금통에 정치자금 꾸역꾸역 집어넣어 흔들어대며 자랑스럽다는 듯 국민들에게 정치개혁을 선동하고 있는 기만. 동북아 중심국가의 장밋빛 미래를 호도하고 국민소득 2만불시대를 외쳐대는 이면에 늘어가는 개인파산, 가계부채급증, 생활고로 인한 끝없는 자살·죽음의 행렬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무능.
이 모두를 은폐하고 희망에 목말라하는 민중들을 또다시 재신임국면과 총선을 통해 동원해내려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 무책임, 기만은 필연적으로 폭력과 파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이 그 자체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민중들의 불만과 저항마저도 갈갈이 해체하여 자신의 위계질서 속에 층층이 배치함으로써 대중의 민주주의와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열망을 조작하는 노무현 정권의 기만이 바로 이번 집시법 개악의 내면에 숨어있는 본질이다.
대중을 분열하고 반민주 대열에 동조시키려는 기만성
서울시의 교통혼잡비용 분석이라며 "2001년 6월 2일 민주노총 상경결의대회 약 3억, 통일연대 2001년 6월 3일 대학로 집회 약 1억 4천만원, 2001년 3월 31일 민중대회 17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청이 펼치는 주장이 있다. 민주주의 실현이나 기본권의 실현을 비용으로 분석하는 이 천박한 논리를 확대적용한다면, '손배가압류 등의 노조탄압에 항거하여 고공크레인에서 농성하다 자결했으니 노동생산력 얼마 감소시켜 피해액 얼마, 인간답게 살고싶다, 비정규직 철폐하라며 노동자대회에서 분신하여 사회적 불안 증가시켰으니 피해액 얼마'라는 기막힌 논리도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참여민주주의 운운하는 정부의 손에서,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고 국민들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는 집시법 개악안이 펼쳐져 나오는 순간,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을 우리는 똑똑히 보아야 한다. 집시법 개악을 통해 민중들의 저항의 권리를 묵살하겠다는 것은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궁극적인 원인인 자신들의 무능과 사회적 위기상태에 대해 인고하고 침묵하라는 지침을 폭력적으로 하달하는 것이다. 집회로 인한 교통불편, 소음으로 인한 불편은 있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결단은 이미 존재해왔던 바이다. 주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되는 사항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고 자신의 주장을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주변에 있는 시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소통'이야말로 집회의 목적이다. 정권은 지금까지의 집회에서도 '시민'과 '집회참가자'를 가르고, 같은 처지의 민중들을 대립하게 만들었다. 이제 정권은 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단시간의 소음과 혼잡에 대해 "참지 말라, 손해배상 청구하라"며, 민중들에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대열에 동참하라고 교묘히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해결되지 않는 삶의 고통이라는 "민중"들의 불만을 체제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한 욕설로 돌리는 기막히고 분통터지는 기만 앞에서 이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삶을 위해 목숨걸고 저항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신의 무능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위기의 책임을 민중들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것이 정권의 이번 집시법 개악의 의도이다. 노무현정권은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을 원천봉쇄하는 가운데 다시금 절망과 희망의 줄타기에 위태로이 서있는 민중들의 열망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전면화하고 있다. 이번 집시법 개악은 저항세력의 입을 봉하고 민중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은 채, 민중들이 스스로의 연대를 발견하기 이전에, 암흑 속에서 손을 더듬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차악으로서 자신을 선택하라는 노무현 정권의 강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배권력이 스스로 보장한 권리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보장할 수 없으니, 인내하고 침묵하라는 선언.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기만은 폭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통탄할만한 집시법 개악에 맞서 민중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길은 입을 열고, 눈과 귀를 열어 노동자 민중의 확장된 단결과 연대로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의 폭력과 기만에 대한 투쟁의 길을 열어가는 것 뿐이다. 노동자 민중의 더 많은 저항과 연대! 그것이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집시법 개악을 막을 유일한 길이다.
침묵 강요, 도심집회 원천봉쇄, 사실상 허가제로 탈바꿈하는 집시법
이번 집시법 개악안은 안의 상정과 논의의 과정에서부터 그 반민주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집시법 개악안에 반대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음에도 공청회, 홈페이지에 내용공개 등의 기본적인 여론 수렴과정을 거치는 것은 고사하고 행자부와 국가인권위 등의 정부 각 부처간 협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청의 의견대로 국회에서 비밀리에 졸속 입법 추진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노동자집회 등에 강경대응을 지시했던 청와대가 버티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다렸다는 듯 지난 8일 전경련 등 경제 5단체 부회장단은 국립경찰병원을 방문, 부상당한 전·의경을 위로한답시고 '집시법 규제가 약하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집시법의 조속한 개악을 공공연히 촉구하여, 국민불편을 앞세우며 집시법 개악의 실질적인 배후조종에 가담한 바 있다.
이번 집시법 개정은 그 방향성이 명백한 기본권의 말살이라는 점 때문에 정권과 자본의 요구에 따라 졸속적으로 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개정되는 집시법은 명실상부한 집회금지법으로 기능할 것이다.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제1항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제2항" 라고 헌법에는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집시법에 존재하는 독소조항은 관할경찰서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지금까지도 무수히 악용되어왔다. 얼마나 많은 집회·시위들이 경찰에 의해 불법·폭력시위로 매도되고 얼마나 많은 무고한 집회참가자들이, '시민' 이하의 '불법집회가담자'가 되어 몽둥이와 방패에 피 흘리고 구속되어갔는가. 그런데, 이제 도심의 거의 모든 집회는 불법·폭력시위로 법적으로 판정될 수 있고, 경찰의 몽둥이와 방패는 더욱더 자유로이 춤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 집시법에서도 유일하게 경찰의 재량권 남용이 규제되는 영역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도로 행진의 경우 질서유지인을 두는 경우에 금지통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고(제12조 제2항), 다른 하나는 주거지역이나 특정장소(대사관, 법원, 국회 등) 인근이 아닌 이상 장소를 이유로 경찰당국이 이를 통제하는 수단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주요도로 행진도 교통 소통에 지장이 있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경찰의 선택에 따라 금지통고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등 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시설 인근지역이 장소제한 범위에 포함되게 된다. 따라서 서울시내에만 2229개의 학교시설이 산재해 있다고 할 때, 모든 집회와 시위는 경찰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일상대화의 소음수준이 60dB(데시벨)인데, 집회음량을 주간 80dB, 야간 60dB로 규제하는 항목은 앞으로 모든 집회가 침묵시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집회 시 소음발생에 대한 손해배상 등의 형사처벌을 정당화할 근거가 될 것이다. 더구나 공사 등으로 인한 장기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규정인 소음규제진동법을 집회·시위의 경우에 적용시키는 것은 단시간의 소음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말살하는 처사다.
또한 집회신고기간을 720∼48시간으로 제한해 장기적인 집회 준비를 어렵게 하고 있으며, 외교기관과 군부대 앞 집회제한의 요건을 엄격히 하고, 과도한 신고사항을 추가하여 피켓의 내용이 신고사항과 다르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가 불법집회 성립요건이 될 수 있게 했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이제 집회와 시위는 경찰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나마 허가되는 집회도 인적 드문 곳에서, 행진은 금지되어 발이 묶인 채 경찰에게 허락 받은 피켓만을 들고 진행하는 침묵시위로 이루어져야하는 참담한 상황이 온 것이다. 결국 이번 집시법 개정은 지금까지 신고제로 운영해온 집시법을 사실상의 허가제로 개악하는 것이다.
집시법 개악을 통해 무능의 책임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노무현 정권
노무현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참여민주주의를 역설하며 참여와 대화를 지향하는 정치를 펼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정권이 이야기하는 참여와 대화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위기와 삶의 파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이 결코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은 절차적 합법성을 강조하고 자신이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의 수호자인양 선전해내며, 다 들어줄테니 대화하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라는 대화의 규칙은 이미 정해져있으며,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대화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즉, 정권과 자본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와 불만이 제기되면, 그 세력들을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악의 무리들", 이라 선언하고, 손가락 하나로 "그들에게 철퇴를∼!"이라 명령을 내리는 식이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손배가압류 철폐를 외치는, 기초 생활 보장을 외치는, 한칠레 FTA 체결반대를 외치는, 파병 반대를 외치는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은 "편협한 이익집단"으로 매도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의 극악무도함은 위기에 대한 해결불능과 불만과 생존에 대한 불안의 책임을 때로는 보수야당에게, 때로는 저항세력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떠넘기기 급급하다는 점에 있다.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민중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손을 피로 물들여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구성원들에게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덮어씌우려는 책임회피. 정치는 보수야당이 다 말아먹었다며 국민들이 모아준 돼지저금통에 정치자금 꾸역꾸역 집어넣어 흔들어대며 자랑스럽다는 듯 국민들에게 정치개혁을 선동하고 있는 기만. 동북아 중심국가의 장밋빛 미래를 호도하고 국민소득 2만불시대를 외쳐대는 이면에 늘어가는 개인파산, 가계부채급증, 생활고로 인한 끝없는 자살·죽음의 행렬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무능.
이 모두를 은폐하고 희망에 목말라하는 민중들을 또다시 재신임국면과 총선을 통해 동원해내려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 무책임, 기만은 필연적으로 폭력과 파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이 그 자체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민중들의 불만과 저항마저도 갈갈이 해체하여 자신의 위계질서 속에 층층이 배치함으로써 대중의 민주주의와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열망을 조작하는 노무현 정권의 기만이 바로 이번 집시법 개악의 내면에 숨어있는 본질이다.
대중을 분열하고 반민주 대열에 동조시키려는 기만성
서울시의 교통혼잡비용 분석이라며 "2001년 6월 2일 민주노총 상경결의대회 약 3억, 통일연대 2001년 6월 3일 대학로 집회 약 1억 4천만원, 2001년 3월 31일 민중대회 17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청이 펼치는 주장이 있다. 민주주의 실현이나 기본권의 실현을 비용으로 분석하는 이 천박한 논리를 확대적용한다면, '손배가압류 등의 노조탄압에 항거하여 고공크레인에서 농성하다 자결했으니 노동생산력 얼마 감소시켜 피해액 얼마, 인간답게 살고싶다, 비정규직 철폐하라며 노동자대회에서 분신하여 사회적 불안 증가시켰으니 피해액 얼마'라는 기막힌 논리도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참여민주주의 운운하는 정부의 손에서, 정치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고 국민들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는 집시법 개악안이 펼쳐져 나오는 순간,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을 우리는 똑똑히 보아야 한다. 집시법 개악을 통해 민중들의 저항의 권리를 묵살하겠다는 것은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궁극적인 원인인 자신들의 무능과 사회적 위기상태에 대해 인고하고 침묵하라는 지침을 폭력적으로 하달하는 것이다. 집회로 인한 교통불편, 소음으로 인한 불편은 있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결단은 이미 존재해왔던 바이다. 주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되는 사항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고 자신의 주장을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주변에 있는 시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소통'이야말로 집회의 목적이다. 정권은 지금까지의 집회에서도 '시민'과 '집회참가자'를 가르고, 같은 처지의 민중들을 대립하게 만들었다. 이제 정권은 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단시간의 소음과 혼잡에 대해 "참지 말라, 손해배상 청구하라"며, 민중들에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대열에 동참하라고 교묘히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해결되지 않는 삶의 고통이라는 "민중"들의 불만을 체제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한 욕설로 돌리는 기막히고 분통터지는 기만 앞에서 이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삶을 위해 목숨걸고 저항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신의 무능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위기의 책임을 민중들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것이 정권의 이번 집시법 개악의 의도이다. 노무현정권은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을 원천봉쇄하는 가운데 다시금 절망과 희망의 줄타기에 위태로이 서있는 민중들의 열망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전면화하고 있다. 이번 집시법 개악은 저항세력의 입을 봉하고 민중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은 채, 민중들이 스스로의 연대를 발견하기 이전에, 암흑 속에서 손을 더듬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차악으로서 자신을 선택하라는 노무현 정권의 강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배권력이 스스로 보장한 권리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보장할 수 없으니, 인내하고 침묵하라는 선언.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기만은 폭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통탄할만한 집시법 개악에 맞서 민중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길은 입을 열고, 눈과 귀를 열어 노동자 민중의 확장된 단결과 연대로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의 폭력과 기만에 대한 투쟁의 길을 열어가는 것 뿐이다. 노동자 민중의 더 많은 저항과 연대! 그것이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집시법 개악을 막을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