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09호 | 200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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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회진보연대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2003년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이제 2003년이 저물어가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년(忘年)이 아니다. 2003년은 노동자 민중에겐 잊을 수 없는 죽음과 절망의 한 해였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중들의 삶은 빈곤과 처참함의 수렁에 빠져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노동자, 민중에게는 어떤 이익도 없는 '외자유치'라는 허울좋은 명분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생존의 요구와 저항은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당하며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다. 농민들은 WTO와 자유무역협정의 물결 속에서 잊혀지고, 존재하지 않는 국민들이 되었다. 이 땅의 누구 하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없는 한 해였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2004년도 암울한 전망을 지속할 뿐이다.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끔찍하고 이례적인 사건들이 이제는 매일같이 TV와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앞서 이 빈번한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제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이 땅 민중의 삶이다. 극복될 것 같지 않은 경제불황 속에서 삶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자본의 위기를 민중에게 전가하고, 더욱 착취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 민중의 삶에 남은 것은 빈곤과 불안, 절망과 죽음이다.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 민중의 절망과 분노 앞에서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폭력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런 정권의 대응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시간의 단위에 따라 바뀌는 한 해가 우리에겐 어떤 의미도 될 수 없다. 무엇 하나 전진하지 못하고, 여전히 제자리에서 신자유주의 공세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우리에게 2004년은 여전히 2003년의 연장이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투쟁을 통해 지금의 상황을 바꿔내는 것일 뿐이다. 올해 내내 진행해왔던 많은 투쟁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진행해왔고, 지금도 끝나지 않은 투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망년과 송년이 아닌 멈출 수 없는 투쟁으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자. 지금 당장 강력하게 진행되어야 할 투쟁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확인하자.

학살동맹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 규탄한다!

노무현 정권은 23일 국무회의를 열고 국회에 상정할 이라크 추가 파병동의안을 최종 확정했다.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 즉시 파병동의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국회에 상정하고 가능한 연내에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미 올해 초 서희, 제마 부대의 파병 결정은 노무현 정권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제 또 한 번의 파병 결정으로 노무현은 자신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파병동의안은 자본 투자의 불안요인을 제거하고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난 극단적인 배제와 억압에 따른 저항을 진압하기 위한 미국의 '예방전쟁'에 자신들의 전망을 일치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해서 확인시켜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파병 결정의 과정은 노무현이 이야기해온 '대화와 타협'의 기만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파병동의안을 처리하기 앞서 노무현은 '국민의 합의'를 누누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국민과의 합의 과정은 순전히 말뿐이었고, 파병은 반대하는 수많은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무현의 대화법이 결국은 민중을 기만하고, 달래기 위한 겉치레에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이 정한 룰에 따른 대화, 자신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화가 아니면 무시와 탄압으로 일관하는 그의 정치기술이 파병문제에 있어서라고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라크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미국이 애초에 의도했던 것처럼 '악의 축'을 '산뜻하게' 제거하고 새로운 통치성을 구축하는 것으로 결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패권과 점령에 맞선 이라크 내부의 저항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이라크 민중들을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폭력적인 점령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 파병에 동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전투병, 비전투병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파병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군대라고 할지라도 곧 미국의 점령통치와 대테러 전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더불어 유의 깊게 봐야할 점은 전 세계적으로 추가파병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예방전쟁', '선제공격 독트린'이라는 미국의 군사전략 재편과 깊은 연관을 맺는 문제다. 이 새로운 전략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된다. 그 이유는 우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신흥시장으로 미국 경제에 중요한 위치라는 점, 지역적 수준에서 군사적인 패권 국가가 불분명하고 이에 따라 대규모 군사적 경쟁 혹은 충돌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잠재적으로 미국에게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의 부상을 제어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 구상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파병 결정이 미국의 군사전략에 동참하겠다는 굳은 의지임을 더욱 확인하게 된다.
파병을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한 투쟁은 올해 내내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병을 막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에 동참하려는 정권의 전망을 비판하는 것, 나아가 미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의 강고한 기초와 흔들리지 않는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광범위한 대중들의 참여로 강력하게 불붙어야 한다. 파병반대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제추방 분쇄! 이주 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

현재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에 맞서 농성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명동성당 농성단의 경우 현재 농성 40일을 넘었다. 정부는 내년 8월부터 시행될 고용허가제에 앞서 현재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정리'할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바로 4년 이상 불법체류자를 자진신고를 통해 출국시키거나, 강제추방시키는 것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제추방과 예정되어있는 고용허가제는 이미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일부가 되어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와 통제 정책이라 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이 필요는 오히려 자본과 지배계급 측이 더욱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점점 더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키고,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통해 노동력의 공급과 노동조건을 조절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의도하는 바이다. 불안정 노동층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이제 필수조건이다. 하기에 정부도 더욱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말로는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준다고 하지만, 노동기본권은 하나도 보장되지 않으며, 한 술 더 떠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통제한다. 결국 고용허가제의 목표란 불법체류자들을 정부의 관리가 가능하도록 등록시켜, 적절히 조절, 통제하겠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투쟁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은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투쟁의 한복판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남한에서 오늘을 함께 살아내는 당당한 노동자로서 스스로 일어섰다. 강제추방을 박살내고, 고용허가제를 철폐시키는 것은 이들이 노동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요구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자유주의 정책은 불안정 노동의 확산을 통해 노동자들을 분할시키고, 관리한다. 함께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그저 불법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으로 차별하는 것, 함께 노동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그저 남성보다 열등한 여성으로 차별하는 것,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 이미 수많은 분할과 차별이 우리 내에 존재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투쟁은 노동자들 스스로 내부의 분할을 극복하고, 단결하고 연대함을 통해서만 승리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러한 차별과 분할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단초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로서의 단결을 이루는 투쟁은 우리 운동의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해야 할 불안정 노동을 철폐시키는 투쟁이다. 명동성당에서, 전국 곳곳에서 고용허가제를 철폐하라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 진행중이다.

핵폐기장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대체 에너지 개발!

핵폐기장 건설을 막아내기 위한 부안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은 결국 노무현이 한 발 물러서도록 만들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부안에 핵폐기장이 건설될 수 없음은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투쟁이 끝났다고 섣부르게 말할 수 없다. 부안 주민들은 스스로 투쟁의 과정에서 핵폐기장이 핵 산업의 확장, 강화를 위한 것임을 알게되었고, 따라서 문제는 부안에 건설될 핵폐기장을 막는 것을 넘어서 남한의 어느 곳에서도 핵폐기장이 건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국가'임을 천명하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이 어떻게 짓밟히는지, 정부와 군수가 이야기하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기만하는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촛불집회를 벌였던 민주광장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함께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자치와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이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핵폐기장 건설 계획이 전면 백지화되고, 주민들이 투쟁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 획득한 자신들의 민주주의가 성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정부의 입장은 주민투표를 통해 유치여부를 결정하고, 다른 지역의 유치 신청을 받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재 국회에서 통과 절차에 들어가 있는 '주민투표법안'을 통해 이후 지방자치단체 등의 주요 정책에 대해 주민투표를 시행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주민투표를 통한 부지 선정은 크게 두 가지 지점을 은폐, 왜곡한다. 우선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문제다. 노무현 정권이 천명한 외자유치를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전략에 따르면 지역경제는 발전은커녕 오히려 지역은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 대부분의 금융인프라가 서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금융 투기가 주를 이루는 외국인 자본의 투자가 지역으로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보니 지역경제는 날로 쇠퇴하고, 인구도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방책이라는 것은 지역별로 '알아서' 살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경제특구, 관광특구 등 실제로 경제 성장의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지만 노동권과 공공성, 환경을 파괴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조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핵폐기장도 그것의 위험성이나 그것이 향후 핵 산업의 확장에 가져올 영향은 고려되지 않은 채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해 유치해야 한다는 논리가 앞서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부안에서 핵폐기장 건설이 불가능해진 지금의 상황에서도 지역경제 운운하는 기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는 지역의 배제와 소외가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은 채, 핵폐기장 건설을 통한 지역경제 회생이라는 불가능한 정책을 던져놓고 주민들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오히려 '핵폐기장이라도 유치해 먹고 살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겠다며 주민투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민투표라는 방식이 가지게 되는 문제가 드러난다. 주민투표법안을 만들면서 정권은 부안이 아닌 다른 지역에 유치할 때도 주민투표라는 방식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역발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주민투표는 주민들의 민주적인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기보다는 정권의 정책을 갈등 없이 추진할 수 있는 '50% 이상의 찬성'이라는 허울을 만드는 방식일 수 있다. 부안 주민들이 정권과 공권력의 폭력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탄생시킨 민주주의가 '주민투표법안'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안 주민들은 촛불 집회와 민주광장에서 일궈낸 자신들의 민주주의 속에서 핵폐기장 건설이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가지는 의미를 배웠고, 지역경제 회생이 정부가 던져준 시설을 유치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여기까지 전진했다. 이 성과를 온전히 남기는 것은 자신의 미래와 그를 위한 투쟁을 민중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주민투표법안'으로 민중이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투쟁의 가능성마저 봉쇄하는 것은 부안이 남긴 성과를 왜곡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전국의 어느 지역에도 핵폐기장이 들어설 수 없도록 계속해서 투쟁해가는 것, 부안 주민들이 남긴 소중한 민주주의를 주민투표로 갈음하려는 시도를 막아내는 것. 우리가 이후의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것이다. 부안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병과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그리고 부안의 핵폐기장이 아니더라도 끝낼 수 없는 저항과 투쟁이 민중의 삶 곳곳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서있는 오늘이고, 끝나지 않은 2003년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민중에게 새해의 해맞이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주제어
정치 노동 생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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