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12호 | 200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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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세계사회포럼이 우리에게 남긴 것

사회진보연대
세계사회포럼이 4회에 접어들면서 많은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장소를 아시아로 옮겨오면서 새로운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논의가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였기에, 이번 호에서는 아쉽게도 다양한 쟁점과 과제를 소개하는 데 그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전-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풍부히 하고, 스스로 표방하는 '다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촉발되기를 희망한다.

빈곤의 한 가운데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지난 1월 16일~21일 4차 세계사회포럼이 열렸다. 이번으로 4회를 맞이한 세계사회포럼은 시작된 이래로 3년 동안 개최지였던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를 떠나, 대륙을 옮겨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그동안 열린 국제위원회(IC) 회의 등에서 세계사회포럼의 효과를 전 세계로 확산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출된 데에 따른 것이다. 세계의 지배 엘리트들이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 모여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어떻게 회복시킬지를 논의하고 있는 동안, 전 세계의 민중들은 세계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그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사회포럼의 제반 사항을 총괄한 인도조직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인도의 200여 개 사회운동 단체들이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준비했으며, 조직위원회에 등록되어 진행된 행사만 해도 1200개, 참가자는 10만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총 30억원 정도의 금액이 후원금, 참가등록비, 연대기금 등으로 모금되었고 행사를 진행하는 데 총 36억원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최초로 리눅스를 이용한 디지털 통역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힌디어, 한국어를 비롯한 13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여 총200여명의 통역을 위한 자원활동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대륙에서 처음 열린 이번 4회 세계사회포럼은, 이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렸던 세 차례의 세계사포럼과 비교해보면 규모나 준비정도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그러나 에어컨 시설이 잘 갖추어지고 깨끗이 정돈된 대학교 등 행사장 주변에서는 빈곤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브라질과는 다르게, 인도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더욱 심화된 빈곤의 참혹함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거리를 학교 삼아 구걸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 아이들에서부터 먼지로 가득한 고가도로 밑에서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하는 가족들까지. 이 빈곤의 한 가운데 위치한 용도 폐기된 박람회장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손길을 더해 만들어낸 허름한 행사장은 우리가 맞서야 할 세계의 적나라한 모습 그 자체였다.
참가자들의 구성 또한 크게 달라졌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구성하는 계급 중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고, 법적으로도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people)'라 분류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극심한 노동착취와 학대에 시달리고 있는 달릿 (Dalits) 계층이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참가 단위였다. 성매매를 직업으로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성노동자(Sex worker)'라 호명하며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 또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티벳을 해방된 공간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독립을 요구하는 티벳의 승려들도 대규모로 참석했다. 행사장 곳곳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의 면면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는 현재 아시아 대륙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이 실로 다면적이며, 복합적임을 드러냈다.

반전-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활성화가 주요 논의 과제

이번 포럼에서 가장 부각된 의제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계기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반전운동을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인지 하는 문제와, 99년 시애틀 3차 각료회의에 이어 지난 9월 5차 칸쿤 각료회의를 또 한번 무산시킨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여러 종류의 회의를 통해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지난 해 5월 자카르타에서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에 저항하는 지구적 반전운동의 향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자카르타 평화 회의'에 참석하여 "자카르타평화선언문"을 채택했던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마련한 '세계반전운동총회(A General Assembly of the Global Anti-war Movement)'이다. 이 회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각자의 인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작년 2월 15일과 9월 27일 두 차례 진행되었던 국제공동행동과 미국과 남미, 유럽, 아시아, 중동지역 등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전운동의 현황이 보고되었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1년이 되는 오는 3월 20일, 다시 한번 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을 요구하는 국제 공동행동을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 한국의 활동가들은 한반도에서 냉전 상황이 지속되고 북미 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반미반전투쟁이 동아시아 반전운동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연대를 호소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일본의 참가자들과 함께 한일 양국 정부의 파병결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전개했다.
지난 9월 멕시코 칸쿤 WTO 5차 각료회의 저지투쟁에 대한 평가와 향후 투쟁을 어떠한 방향에서 전개할지에 관한 논의도 다양한 회의를 통해 전개되었다. 각료회의가 무산된 것이 사회운동의 진정한 승리인가,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농업보조금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한 의견그룹을 형성하여 무산을 이끌어낸 농산물 수출 개도국 그룹(G22)와 사회운동이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이 제기되고 토론되었다. 그리고 올 10월에 개최되는 것으로 예상되는 WTO 차기 각료회의를 겨냥하여 일국적 차원의 투쟁, 국제적 차원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함이 확인되었다. 특히 WTO 각료회의 무산 이후 더욱 확산되고 있는 지역 혹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노동권을 박탈하고 토지와 종자에 관한 농민들의 권리를 파괴하면서,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소유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보고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또한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함이 강조되었다
더불어, 세계적인 빈곤의 심화와 함께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가, 노동의 불안정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와 인권유린, 농민들의 빈곤과 토지와 종자에 대한 권리의 박탈, 빈곤에 노출된 민중들에 대한 배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카스트 등의 신분제 등 역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국제농민조직)가 조직한 '국제농민총회', 여성포럼 등 부문별 회의를 통해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전반적으로, 중요하게 제기된 문제는 전 세계 민중들의 삶과 노동을 파괴하고 이들을 극단적인 빈곤으로 내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계적인 저항에 직면하여, 이러한 저항을 억누르고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반전운동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 상호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전쟁반대', 'WTO 반대투쟁' 등이 개별적인 이슈가 되어 각 운동세력이 이러한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서, 이러한 이슈에 따라 운동이 분할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양상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에 걸 맞는 총체적인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로 제기되었다.

세계사회포럼의 미래

세계사회포럼은 자본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스스로 삶의 대안을 모색해가려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를 통해 새롭게 분출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며 연대의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세계사회포럼은 전 세계 민중들의 진정한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더 많은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 사회포럼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쟁점으로,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들이 이번 포럼의 중요한 논의과제였다. 올해는 특히 '정당과 군사조직 배제의 원칙'과 초국적 기업과 결탁한 재단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는 문제 등을 제기하며 세계사회포럼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포럼이 조직되기도 했다. '뭄바이 레지스턴스 2004'등 세계사회포럼에 대항하는 포럼을 조직한 세력들은, 스스로를 '조직'이 아닌 '공간'으로 표상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이 '중심이 없고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차원의 계획을 수립하는데 한계적일 뿐만 아니라 포드 재단 등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은 NGO들의 발언력이 강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어떤 세력들은 '브라질 노동자당(PT), 인도 공산당(CPI) 등 정당은 이미 세계사회포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을 배제한다면 세계사회포럼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고 단언하고 있다. 물론 초국적 기업과 결탁한 재단이 지원하는 기금이 많은 사회운동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동하는 세력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는 NGO들의 활동은 비판의 대상이 충분히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앞에 '정당 참여'를 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오늘날 정당운동이 선거정치를 매개로 대중운동을 분할하며, 이러한 대중운동들 간에 공동의 인식을 확보하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비껴 가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가 그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내세우고 있는 처방이 더 많은 민중들을 배제하고 극심한 빈곤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때, 전 세계의 사회운동들에게 던져진 문제는 '정당을 참여시킬 것인가 배재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다양하게 분출하는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동의 지반을 창출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급속히 분출한 운동들을 진전시키고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는 사회운동들 사이에서 인위적인 중심을 세우기보다는, 이들 간의 공동의 인식을 확보하기 위한 직접적인 교통과 연대의 기회를 더욱 넓혀가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이러한 교류와 소통을 위한 진정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들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의 포럼은 '건물 안에서의 포럼'과 '건물 밖에서의 포럼'으로 나뉘었다고 묘사된다. 건물 안에서 이루어진 토론과 세미나를 중심으로 한 포럼과 건물 밖에서의 시위와 각종 퍼포먼스 형식의 포럼을 각각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포럼 안에서 이루어진 행사들의 형식이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어와 지식의 차이를 뛰어 넘어 의사를 표출하고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첨단 통역장비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견해를 청취하는 것 역시 주로 통역이 제공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다수의 아시아 참가자들은 건물 안에서의 토론보다는 건물 밖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쪽을 선호했다. 남미와 견주어 볼 때 훨씬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아시아로 그 장소를 옮기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장애인들의 참석 문제도 문제가 되었다. 3회 사회포럼까지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다가 이번 포럼에는 300명의 장애인들이 참석했다. 장애인 참가자들은 포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과 수화 통역, 점자로 된 자료 등을 제공할 것을 조직위원회에 요구했으나, 이는 시행되지 않았다. 행사장 앞에는 "왜 당신도 장애에 무관심한가?" 하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걸렸고, 장애인의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할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도 몇 차례 진행되었다.

이러한 쟁점들은 세계사회포럼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이와 결합한 군사주의에 맞서 민중들이 주도하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에만 국한되는 쟁점이 아니다. 날로 거세지는 신자유주의의 폭력과 야만에 맞서 투쟁하는 전 세계 민중들의 미래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들이다. 전 세계의 다양한 운동들이 지향해야 할 '다른 세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다양한 운동들이 공동의 지반을 넓히고, 연대를 강화할 것인가? 차이를 차별과 배제로 구조화하지 않는 운동의 윤리와 교통의 방식은 무엇인가? 이러한 쟁점들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모든 운동들에게 던져진 문제이며, 바로 우리, 남한 운동들도 깊이 숙고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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