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14호 | 200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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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사교육비 경감방안을 비판한다.

사회진보연대
천박한 방안, 천박한 논란

사교육비 문제와 고교 평준화를 둘러싸고 연초부터 공방이 뜨겁다. 물론 둘 다 그다지 신선한 주제는 못된다. 지겹고도 지겨운 그런 메뉴. (평준화도 도입 초반부터 논란이 있었다.) 치고 받다가 결국은 '우리 교육은 어떻게 해도 안 돼. 학벌주의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이렇게 다소 비관적인 그러나 '정확한' 결론에 이르고야 마는.
사교육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평준화가 공방이 벌어지는 지금의 맥락은 8년 간 전개된 시장주의 지배연합의 막바지 교육재편 공세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지닌 근본모순에 더하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이 폭넓게 시도되면서 노동의 현실, 생존권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졌다. 이를 건너뛰고는 사교육비 문제든, 평준화 문제든 제대로 된 논의는 전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주의 지배연합은 나름대로 일관된 기조 하에 두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속셈은 교육을 사적논리의 지배에 맡기고 경쟁구조를 더욱 견고화하여 교육의 사회통제 기능을 강화하고 더불어 이를 안정적인 대물림 구조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에 담기조차 짜증나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격론의 귀결점은 결과적으로 공교육, 민중교육권의 향방과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사교육비를 잡아보겠다고 정부가 나섰지만 그 꼴이 소 잃고(팔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데다 의지도 대단히 의심스럽다. 극단 수준까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팽창"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은 '국민의 의식'이 아니라 지난 몇 년 간의 정부 정책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부분을 생략한 채 사교육비 문제를 그간의 정부 정책기조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공교육 부실' 운운하며 실효성마저 의심스런 방안을 내놓고 일방통행식으로 진행하면서, 여론조작을 포함 보수언론과 합작하여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 덕택인지 무엇인지, 현재의 논란은 대단히 '천박하고 비생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교육적, 사회적 파장을 판단하기에 앞서 교육부 방안을 놓고 "전교조는 왜 맨날 딴지만 거냐, 교육부가 내놓은 방안이 문제도 많고 마음에도 안 들지만 일단 그거라도 해봐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반응조차 만들어지고 있다.
손댈 수 없어 보일 지경으로 심각해져버린(일단은 이걸로 먹고사는 집단이 너무 많다. 실업대책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사교육 증가 문제나 평준화가 봉착한 어려움은 한국의 독특한 교육기회 확대 면모와도 관련이 있다. 한국은 무상이 아닌 유상(사립, 사부담에 과잉 의존)이라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기반하여 교육기회가 확대되었으며 강력한 국가주의적 통제 모델 속에서 정통성 확보라는 정치적 이해마저 중첩되었다. 국가 교육정책은 특정 집단에게 독점되어 경제논리나 정치논리에 휘둘렸으며 여기에서 노동자, 민중은 교육권의 주체로서 전면에 나서기 어려웠다. 이런 탓인지 교육에 대한 대중의 관념도 왜곡된 방향으로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봉건적 신분질서가 급격히 와해되고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공공성에 입각한 근대적 교육질서를 세우기도 전에 교육은 지배자들에게는 통치의 수단, 대중들에게는 계층상승을 위한 유력한 도구로 비춰질 수밖에. 사실, 중등교육 단계에서 공교육은 계층분해의 장치로 기능했으며 이에 따라 교육을 계층 상승의 사다리로, 일종의 '투자처'로 인식하는 것이 만연했다. 좁디좁은 '성공'의 가능성 속에서, 엄청난 사회불평등, 이를 직접 대면하고 해체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개개인의 죽기살기식의 경쟁에의 몰입. 이는 우리 노동자, 민중의 계급성에 입각한 교육문제 인식의 기회를 봉쇄하는 장치였다. 이처럼 교육권은 '기본권'의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한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개인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재화처럼 각인되었다. 이런 속에서 지배계급은 치열한 경쟁 메커니즘의 확대재생산을 통해 제도교육을 사회통제기구의 일환으로 활용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교육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드높았으나 비본질적인 차원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런 한국적 지형을 너그럽게 헤아려 백보 양보한다 치더라도, 그래서 이런 공모 아닌 공모 속에서 그 누구도 마땅한 대안을 선뜻 내놓지 못할 정도로 교육문제가 심각할 대로 심각해져버렸음을 인정한다 해도, 대중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기득권층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천박하고 비본질적인' 차원에 묶여 있음을 수긍한다 해도, 정부 정책의 과오와 그 노선의 반민중성, 반교육성을 비판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다. 교육문제를 더 얽히게 만들고 교육권과 공공성의 토대를 훼손한 최대 주범은 바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따져보자. 90년대 사교육비 폭등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94년의 수능 도입, 99년의 '과외금지 위헌판결'로 인한 과외 규제정책의 무력화, 02년 입시전형의 다양화로 인한 입시부담 가중 등이다. 여기에 덧붙여 7차 교육과정 도입에 따른 교과의 난이도 상승, 우열반 편성, 입시중심 과목 선택 등의 부작용과 함께, 무분별한 특목고 확대에 따른 초·중학교의 입시경쟁 격화 등이 사교육 폭발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학교교육만으로 대비할 수 없는 수능의 도입, 운영 및 선택권 확대를 빙자하며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은 의도적으로 학교교육을 무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불안심리에 휩싸인 학생, 학부모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아 온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논란을 천박한 수준으로 격하시킨 일차적/직접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흔히 거론되는 "한국교육의 위기"와 그 원인에 대해 정확히 짚고 다시 공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이야기가 모아져야 할 시점에 불필요한 쪽으로 논란이 번지게 만들고 총선용으로 활용하려 들고 있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마녀사냥 하듯 평준화를 두들겨 패 만신창이를 만들고, 사교육 의존 구조의 문제를 비용의 문제로 환원하여 대중의 의식을 현혹하기에 바쁘다. 근본적인 원인을 깊게 따지고 들면 교육부의 방안이 그야말로 "유효시한이 지난 해열제"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부지기수고, 전 계층은 불안한 심정에 교육에 '출혈적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교육 수요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짚지 않은 채 진행되는 단시안적 대증요법은 이미 폭넓게 번져버린 사교육 의존 행태는 전혀 바꾸지 못한 채 80년대 식의 엄혹한 학교입시체제까지 얹어버릴 게 뻔하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10년, 20년이 지나 지금 학교교육을 경험한 세대가 '학교에 대한 안 좋은 추억' 아니 끔찍한 추억만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 뻔하지 않은가.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방안의 본질은 학교시장화 견인책

정부가 발표한 방안을 한 번 살펴본다. 전교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바가 정확하다. 단기대책은 학교 학원화 방안, 중기대책은 학교 시장화 방안, 장기 대책은 구색맞추기 용에 불과한 추진 의지가 심히 의심되는 방안.

정부가 2월 17일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 종합대책"은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교육부로부터 1억 5천만 원을 지원받아 수행한 연구 프로젝트를 기초로 한 것으로, 작년 말 한국교육개발원이 처음 발표한 뒤 이미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교원단체와 교육시민운동단체의 문제제기가 반영되지 않은 채 애초의 안에 몇 가지만 추가된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같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안을 '종합대책'이라고 서둘러 확정 발표한 것은 결국 '총선용 공약'이 아닌지 라는 의혹마저 인다. 방안 자체도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재탕 삼탕'인데다 그 실효성마저 대단히 의심스럽고 결국은 학교교육마저 파행으로 이끌 위험스런 요소가 도처에 널려 있다.
실제로 이번 '종합대책'에 포함된 내용의 상당 부분은 종전에 이미 시행되었다가 실효성이 의심스러워 중단되거나, 지금 현재도 이미 편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정부는 현재의 교육부총리인 안병영 장관이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할 때인 지난 1995년, 교육방송(EBS) 위성과외를 학교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 많은 학교에 위성수신기와 위성방송 수신용 안테나, 교실에는 소형 텔레비전을 대대적으로 설치한 바 있다. 그러나 그토록 법석을 떨었던 위성과외는 결국 과외열풍 해소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채, 위성수신 안테나와 텔레비전은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녹슬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지금 와서 정부가 다시 'e-러닝'을 시도하겠다는 것은 방식만 약간 바꿔 같은 내용을 다시 재탕하겠다는 것이다. 수험생들에게 "대비해야 할 또 하나의 영역"을 추가하여 부담을 키워주는 것다.
'보충수업의 부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당국의 눈을 피해가며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을 입시준비를 위한 문제풀이위주의 교과수업으로 편법 운영해 온지 오래다. 만약 정부가 학교 내 보충수업을 허가할 경우, 학교 간 입시경쟁에 불을 붙여 '강제 보충수업', '심야 보충수업', 지도수당 조성을 위한 '불법 잡부금 징수' 등의 편법으로 나아갈 것이 뻔하다. 과거 이 같은 불법 편법을 근절하기 위해 학교 내 보충수업을 금지했던 전례에 비춰볼 때, 이는 곧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교육을 잡기 위해 학교를 파행으로 몰아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빼놓지 않고 수준별 반 편성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현장교사들은 금방 안다. 수준별 수업의 그 '유혹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수준차를 오히려 확대, 고착화시킬 뿐이며 학생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는 방안임을. 공교육은 계급을 가로질러 공통의 언어가 통용되는 '혁명적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상의 우열반 편성으로 귀결될 수준별 학습 집단 구분은 "나는 실업계 출신"이라는 자괴감말고도 "나는 10년 내내 하반"이라는 안 좋은 추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교사에게도 수업 준비 부담을 가중시켜 결국 수업의 질 저하로 연결된다.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교육철학이다. 하향 평준화 논의가 사실 상위 5%내지 상위 10% 이내에 맞추어져 이들의 '피해'만을 중점 부각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교육철학이다. 수준별 반편성은 상위에 초점을 맞춘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며 수준차를 좁히려는 목적과 전혀 상관이 없다. 트랙킹이 학교 안에 제도화될 때 교육자원이 상위 그룹에 집중되고 나머지는 '버린 자식' 취급하는 것은 이미 외국의 사례, 우리의 실험에서 증명되었다. 7,80%의 학습자를 소외시키는 못돼먹은 교육과정, 2001년 7차 교육과정 투쟁에서 쟁점이 되어 현장에서 무력화된 수준별 반편성을 은근슬쩍 사교육비 경감방안에 끼워 넣어 현장에 잠입시키려는 것이다.
'그들'도 인정하다시피 한국의 교육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는 형국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뉘 집 아그들이 서울대에 많이 들어가나" 발표만 보아도 불평등 현실은 금방 피부에 와 닿는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든 계급불평등과 교육불평등은 어떻게 해서든 매개되고 또 교육을 통해 불평등이 재생산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작동하는 방식은 다소 천박하고 극단적이다. 90년대 들어 누구나 알 수 있는 불평등을 매개하는 직접적인 고리는 바로 '사교육'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이 천박한 연결고리만 박살내면 교육불평등이 완화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사교육이지만 사교육의 수요를 생산하는 교육시스템을 혁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결실도 거두기 어렵다는 게 현재의 한국교육이 처한 난마처럼 얽힌 사태다. 초반에서 언급한 대로 '학벌주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서열화된 대학체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로또 심리를 부추겨 학력, 학벌경쟁을 만드는 진원지인 '노동의 문제, 계급의 문제'는 그래서 우리가 언제든 회귀해야 하는 출발지인 것이다.

교육시장화, 안정적 대물림 구조만들기 책동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철의 규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아니나 다를까다. '공교육정상화', '교육의 공공성강화'를 입에 올리지만 그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학교를 학원처럼 만들어 입시경쟁체제를 강화시키고 특목고, 자사고, 외국교육기관 따위를 대거 도입해 평준화의 틀을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한편 학교 내에서는 '갈라치기 반 편성'을 확대하여 교육에서의 '분리주의'를 실현하는 방책들이다. 사교육비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경감' 운운하고는 있지만, 이를 비용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는 오류와 '학력지상주의'적 교육관을 드러내고 있다. 사교육 문제는 경쟁의 방식을 바꾸거나 학교가 학원이 하는 기능을 일부 가져온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리가 없다. 어떤 기준에의 도달이 이미 목적이 아니고, 지금의 서열화된 대학체제, 고용불안 임금 차별 등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 하에서는 '남보다 더' 식으로 경쟁은 끝도 없이 격화될 소지를 안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교육개방, 시장화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개방을 위한 자발적 자유화 조치 및 교원 유연화, 평준화 정책 폐기의 움직임이 올해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연초부터 교육정세는 복잡하고 다기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본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전경련은 대학을 기업처럼 만들어야 된다 떠들고 자립형 사립고를 더 많이 만들어야 된다고 '교육개혁안'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KDI는 천박한 관념을 '숫자놀음'으로 숨기려들며 대중을 현혹한다.
교육운동은 '견고한 상식의 벽을 두드리는 비애 가득 찬 작업'일 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식'처럼 굳어진 '자본의 기준'을 노동자, 민중의 기준으로 대치하고 연대의 자리를 만드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학벌주의를 넘어서도 능력주의가 우리를 기다린다. 계급성에 근거하지 못한 채 개인의 차원에 매몰되어 부르주아의 교육관념을 자기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온 노동자, 민중이 교육권의 주체로 거듭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에서의 계급투쟁은 그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었음을 인식하자. 올해는 시장화냐 공공성 강화냐의 갈림길이다. 노동자, 민중이 우리의 교육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느냐의 기점이 바로 올해이다.
주제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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