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17호 | 200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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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세력'의 동원 속에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선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화와 노동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이에 대한 공방으로 날새는 줄 모르던 여야정당들이 총선 준비를 위한 신속한 체계 정비에 돌입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탄핵역풍'으로 인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야당은 이러한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내부적인 논쟁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의 대표선출과정, 민주당의 선대위장 선임과정 등 야당들의 내부 논쟁에 있어서 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총선 득표이다. 이들 야당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판을 뒤엎을 수 없는 바에야 '탄핵역풍'의 효과를 인정한 가운데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야당 내부의 '탄핵취소'를 둘러싼 논란이나 박근혜, 추미애를 둘러싼 당내 체계개편 논란 모두 현재 이들의 지지율 하락이 총선 시기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로 인한 것이다. '탄핵역풍' 이후 탄핵반대 여론은 총선 지지율 속에 일단은 안정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탄핵반대' 여론도 지난 20일 광화문 촛불집회 이후 대규모 대중동원보다는 열린우리당과 그 후보에 대한 지지로 수렴되고 있다. 쟁점은 총선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으며 '총선에서 심판하자'가 주된 구호다. 탄핵반대 촛불시위 등을 주도했던 <범국민행동>의 활동도 차차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범국민행동>의 기조가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주의 투쟁의 급진화"와 같은 방향을 억압하거나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국민행동>은 '탄핵반대', '민주수호' 등의 제한된 요구를 내걸고 이라크 파병문제 등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는 쟁점에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따라서 다른 모든 쟁점을 '탄핵반대'이하의 부차적인 쟁점으로 전락시킨다.) 운동의 쟁점 자체가 제한되어 있고 더 이상 운동의 요구를 확대하지 않으면서, 시효가 만료된 기존의 구호를 단순하게 반복하고 있다. 이미 압도적인 탄핵반대 여론을 통해서 애초 야당이 노린 탄핵의 정치적 효과를 무력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탄핵 반대' 구호가 계속 외쳐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계속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대중동원의 축소와 함께 열린우리당은 예정된 계획대로 탄핵반대 여론 전체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안정적으로 전환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동원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탄핵 국면에서 촉발되었던 대중의 광범위한 지배정치에 대한 불만은 이렇게 거칠게 봉합되고 있다.


현 시기 탄핵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입장이다.


한편 민중운동 진영은 탄핵정국을 둘러싼 사회운동 내의 논쟁이 공통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지 못한 채 각 단체, 대중조직들의 각각의 대응으로 흩어졌다. 시민운동단체의 대부분은 탄핵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데 앞장섰고, 민중운동 진영은 탄핵사태 이후 <탄핵무효 민주수호 범국민행동> 참가여부를 놓고 크게 양분되었다. <범국민행동>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연대 소속의 상당수 단체들이 참가하고, 민중연대 간부들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가운데, '탄핵 반대' 슬로건에 대한 논란 속에서 민주노총이나 민중연대 등은 어떠한 내부적인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임기응변 식으로 대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을 통해 형성되어온 최소한의 합의가 해체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한 순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민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의 균열은 각 운동의 역사성, 물질성을 반영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잠재되어있던 입장의 차이가 이번 탄핵사태를 계기로 전면화되고 있다. 시민운동 중 일부는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적 과제 예컨대 '재벌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디딤돌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고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탄핵반대 운동이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고 광화문으로 나섰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행자가 된 이른바 '개혁세력'은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대의 입장을 공유하면서 같은 전선에 서있다고 믿었던 단체, 대중조직들이다. 물론 이들 조직 내부에서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제까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공동의 목표로 전국민중연대 건설과정을 만들어냈던 조직들의 혼란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내부의 혼란을 넘어서기 위해서 명확히 해야 할 출발점을 각인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탄핵국면에서의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곧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쟁점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에도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번 탄핵사태로 폭발한 대중의 분노는 이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파괴적인 영향에 내재되어 있었다. 신자유주의 개혁과 그 실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투기화 속에서 부패비리를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실패 속에서 지배계급 스스로도 안정적인 지배연합을 구축하지 못한 채 대립국면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개혁과 정치의 무능, 혼란 속에서 대중의 분노는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동원전략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불만을 그들에 대한 지지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의 대립은 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을 봉합하고 (그들 스스로가 파괴한)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으로 포장되었다. 이런 상태로 총선을 경과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 방향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강력한 대중동원을 통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집권은 그들의 정책 추진을 가속할 것이다.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지난 23일 개최된 한국의 탄핵관련 세미나에서, 일부 참가자들 주목할 만한 의견이 있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IMF 구제금융 위기와 유사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98년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 IMF와 미국은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의 수행을 위한 정권교체를 지지하였다. 이전의 지배정치 분파는 구조조정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선행하는 위기, 야당에 대한 억압/분열, 변화의 비전을 가지는 국민적 지도자 출현, 신속하고 종합적인 정책의 변화, 의회 내의 정치적 기반 확보 등 이른바 워싱턴 콘센서스에 따라 한국사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국면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수행을 위한 지배정치를 재구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정치적 주체, 즉 노무현/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와는 달리 외부적 충격이 아니라 내부적인 정치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는 차이점을 가질 뿐이다.
한편 지배 정치의 극도의 불안정은 총선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에 일시적으로 그것이 봉합된다 하더라도, 현재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탄핵반대 여론을 단기적으로 흡수한 것일뿐더러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국경제의 위기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불만과 분노에 휩싸인 대중들을 외면하는 지배정치의 쟁점없는 대립은 지속될 것이다. 설사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장악한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위기와 불안정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 등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주장하는 '총선 심판'이 아무리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이후에 바뀔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변한 것 없는' 지배정치에 대한 '심판'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극심한 환멸 말고 아무것도 불러오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전선의 복구가 절실하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탄핵반대' 여론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끌어내고 이를 통해 총선 이후 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민중운동진영 일부가 이러한 동원 전략에 편승하는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이 해체될 위기에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목적한 바의 효과적인 달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중동원 전략이 성공하고 총선에 이들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들이 추진해오던 민중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비정규직 확대, 노동통제·탄압, 전쟁지원·파병결정, FTA를 비롯한 개방정책의 승인 등 수많은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정책들이 노골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중동원 정치 속에서 '정상적인' 부르조아 의회 정치마저도 마비상태에 빠진 후 남는 것은 무엇인가? 부르주아 분파들 사이의 분열 속에서 안정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구축되기 힘들 것이며 무한 정쟁 -민중적 요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만이 반복될 것이다. 대중의 정치에 대한 극심한 환멸 속에서 폐허가 된 의회정치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민중운동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동원되는 한, 그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피해갈 수 없다. 신자유주의 반대의 쟁점을 억압하는 '탄핵반대' 물결에 휩쓸려간 민중운동의 '자발적 동원'의 결과, 남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해체 뿐이며, 총선을 경과한 이후 민중운동은 그간 힘들게 쌓아온 투쟁의 성과를 스스로 허물게 되는 무력함을 맞이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향하지 않기 위해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민중운동 전체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만들어놓은 허구적인 대결구도를 벗어나 스스로 전선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현재의 탄핵 찬/반 구도에 머문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꼴이 될 뿐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동권 쟁취", "파병철회",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의 요구들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며 탄핵 찬/반을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쟁점을 형성해 가야한다. 특히 스페인에 대한 테러 이후 가속화된 미국의 군사동맹의 약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의 살해 이후 점증하는 저항과 중동의 불안 속에서 한국군의 파병이 시간을 다투고 있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곧 파병찬성 세력이었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적' 이라는 이미지는 거짓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폭로해내야 한다. 대중적인 전쟁반대, 파병반대 투쟁을 조직하면서 탄핵 정세에 개입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탄핵 찬/반으로 표상되는 수구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모두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담지자임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총선에 개입해야 할 것이다. 민중에 의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심판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실질적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민주노총 등 대중운동 단위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쟁점을 전면에 부각하고 투쟁을 전개해야한다. 27일 예정된 비정규노동자 대회를 시작으로 총선 시기에 민주노동당지지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제한되지 않는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총선에 '올인'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예의바른 조언자'의 역할에 주저앉으면서 득표에만 몰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선 복구를 위한 투쟁 속에 배치하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총선 국면를 돌파하여아 할 것이다.
현재의 정세적 전환 국면은 운동진영이 차분히 대응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정세가 급격히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대중의 불만을 지배정치의 강화를 위해 동원하는 작업이 단기간에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의도하는 결과로 나아가지 않기 위한 운동진영 내의 적극적인 토론과 행동계획이 절실하다. 어느 때보다 운동진영의 신속한 공동의 투쟁을 통한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복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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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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