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18호 | 200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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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그 절박한 삶의 요구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심판하자.

사회진보연대
'사회적 타살',

지난달 3월, 대통령 탄핵과 17대 총선이라는 시끄러운 정국 속에서 죽음의 행렬이 소리없이 이어지고 있다.
카센타 운영하던 39세 마모씨는 1000만원 빚을 갚지 못해 모텔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 우유대리점 직원, 트럭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34세 전모씨는 작년 2월부터 지속된 실직상태를 견디지 못해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주식투자 실패로 1억원의 빚을 지던 아버지가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였고, 실직상태에 있던 45세 이모씨는 아내를 죽이고 두 딸과 극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어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객사한 아버지와 뇌종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난한 생활을 비관하며 밥을 한솥 가득히 해놓고는 자신의 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가난으로 인한 인간적 생활의 불가능함, 그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의 늪에서 선택하는 극단적인 죽음들...이 끔찍한 사건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빈곤문제의 심각함은 단지 가난한 몇 명들의 딱한 사정이 아니다. 도시에서만 하루에 3명 꼴로 생계를 비관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용불량·단전단수·실업으로 인한 생활고는 대다수 서민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800만이 넘는 빈곤계층의 극도의 불안정한 삶. 이제 빈곤의 문제는 다수 국민의 삶의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그들의 변명

총 29개의 빈민, 장애, 실업, 노동, 주거, 복지단체들로 구성된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은 지난 3월 30일 강남 타워펠리스 앞에서 발족기자회견을 열고 최옥란 열사 등 가난으로 숨져간 이들을 위한 위령굿을 진행하였다. 극단적 빈곤과 과잉된 부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빈곤문제의 심각함과 잇따른 생계비관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이 한국사회 경제구조와 정부의 의도적 외면에 있음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연대의 호소하고자 했던 이 행사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첫 발걸음이었다.
한국경제를 비롯한 각 언론들은 이 기자회견과 위령굿 행사에 대한 기사를 상세히 보도하며 지배계급의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들은 "빈곤문제가 심각한 것은 인정하나, 경제가 어렵다", "소외된 소수의 문제를 다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 "정부에게 빈곤층 소득확보기회보장, 부동산 가격 안정책 실시 등의 제도개선을 요구할 문제"로 일축했다.
결국 빈곤문제는 살풀이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회생만이 해결책이고, 괜히 사회계층간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행동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도의 불안한 삶, 그마저 지탱할 수 없는 이들에게 '경제가 먼저'라는 망발은 문제를 해결하는가. 또한 타워펠리스 앞에서 외친 빈곤사회연대의 목소리가 어찌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인가.
급증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특정한 소수집단의 불만과 삶의 파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대다수의 불안정한 노동, 교육, 의료, 주거 등 생활수준의 후퇴를 말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실업 등 노동의 위기와 가족의 해체, 교육의 붕괴는 이제 일상의 문제가 되었고 서민의 절망의 늪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경제회생은 진정 가능하긴 한 것일까?
2004년 실업률이 다시 급등하였고, 경기침체가 만성화되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재편의 안정적 정착 단계로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노무현 정부는 금융자본의 자유화, 탈규제화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문제와 동시에 김대중 정부 5년 간 금융자본의 활로를 위해 조장한 카드발행확대, 벤처육성의 거품이 붕괴된 이후 신용불량자의 대거양산, 구조조정으로 인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의 확산, 이로 인한 투자심리의 위축의 문제를 감당해야만 한다. '고용없는 성장', 아니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한자본의 운동은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산, 파괴된 서민의 삶을 짓밟으며 그 체인을 계속 돌리는 것이 남한경제성장의 유일한 길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 1년 동안 기존의 사회복지정책으로는 도저히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계층의 삶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실업과 빈곤은 점차로 확산되고 있다. 정권 출범당시 스스로의 개혁성을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참여복지'라는 신조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경제의 상황 속에 이제는 어디 명함도 못 내미는 신세이다. 경제회생이 결국 서민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빈곤계층의 파탄난 삶은 정부와 지배계급으로서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
남한사회 신자유주의 재편 완성단계에서 노동유연화가 법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급한 빈곤문제 해결방안으로 정부가 기껏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전·단수가구, 도시가스 중단가구 등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긴급구호대책 마련 같은 것들뿐이다.
실업과 빈곤에 내몰린 수많은 대중들의 삶의 불안에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는 못하는 지배계급'경제회생'이라는 궁색고 거짓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정치권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도박판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속사정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빈곤문제'로 표상되고 있는 현재의 대중의 삶의 문제를 우회하고서는 그 어떠한 정치세력도 안정적인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기화된 경제침체와 실업의 만연,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인한 불안정 노동이 경제의 구조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떠한 정치세력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17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달라진 것은 죽음 앞에 서있는 빈민들의 울분 앞에 이제는 너도나도 제출하고 있는 선심성공약들 뿐이다.

차악의 선택?

각 정당들이 민생파탄의 현실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공약들은 여전히 빈약하다. 그러나 각 당의 복지정책의 양이 적다고 새삼스럽게 비판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 신용불량자 구제대책, 소외계층에 연금지원, 노후대책 확장, 부동산 가격 안정과 주택공급 등의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각 당들의 세부정책들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경제성장'이 우선이라는 인식은 동일하다. 또한 그 경제회복의 방식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모두 어떠한 차별성도 없이 동일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 투자활성화 방안'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희망공약 50>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제도의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데 R&D(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넘어 대덕밸리, 대구테크노폴리스, 광주첨단과학단지를 R&D특구로 지정하기 위한 법률제정, 이 특구를 위해 외국인병원과 학교, 고급주거단지를 조성할 것을 말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사후적 규제방식으로 우대조치를 시행하고 외국기업 국내투자에 대해서 One-Stop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한국외국인 투자유치전문기관(Invest Korea)을 반관반민기구로 확대 개편하여 외국인 투자관련사항을 전담한다는 공약이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4대비젼과 6대실천과제'에 명시되어있는 '기업하기 편한 나라'로 그 정책기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금융환경조성"을 위한 다양한 탈규제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한가지 똑같이 제시하고 있는 주요공약으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정립을 통한 사회적비용의 최소화'와 당장 시급하게 노사분규를 자제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이를 외국인 투자기업에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목해야 할 점은 노무현 정부가 경제적 불안과 대중의 삶을 파괴하면서 안정적인 집권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이유, 즉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과 금융화로의 안정적 편입이라는 그 노선에 대해 지배계급 내에서는 어떠한 이견도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현 시기 '빈곤의 해결'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정망인 사회복지정책의 문제이며, 그래서 부차적인 정책차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총선시기 생색내기식 선심성 복지공약의 남발 이후, 가난한 이들의 이 극단적인 삶은 또다시 얼마나 파괴될 것이며 또 어떠한 방식으로 배제되어 갈 것인가?

누구의 공약이 더 현실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과정과 대중의 삶의 문제가 충돌하는 모순은 결국 '빈곤의 문제'로 폭발하고 있다. 이제 빈곤문제는 어떤 하한선을 넘어 극단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지배계급 누구도 이에 불안과 분노의 행렬에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지경임을 이제 그들도 시인하고 있다.
오직 지난 5년간 노동자, 농민, 빈민의 피어린 투쟁들만이 신자유주의가 위협하는 대중의 삶의 문제를 제기했었고, 그 돌이킬 수 없는 그 파괴의 과정에 끈질기게 저항해왔다. 총선시기, 그들의 다급한 정치도박으로 전선은 흔들리고 있으며 민중의 투쟁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조건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을 새롭게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도곡동 타워펠리스에서나 볼 수 있는 극단적인 빈부의 차이를 개탄하는 빈민의 목소리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투표함에 '국민발의제 쟁취'가 적힌 종이를 넣으며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제기하는 행동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17대 총선에서 원내진출을 예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공정한 분배'를 원칙으로 사회복지예산의 확충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부유세 제정을 통한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탈루액 회수, 불필요한 전력증강 중단, 등 세제개혁을 통한 재원확보정책이 그것이다. 이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현재의 시급한 빈곤대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책 입안은 빈곤 문제를 제기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실제 대중들이 인간으로 살 권리를 제기하는 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정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더욱 요긴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제출되고 있는 이런 정책공약의 현실성 여부가 빈곤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고 이를 중단시키고자 하는 빈민 스스로의 목소리와 투쟁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결국 '공정한 분배'란 여타의 지배계급의 사회복지정책 개선 약속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단지 하나의 정책'이 될 뿐이다.
800만이 넘어서는 이 땅 빈곤한 자들의 목소리로 반신자유주의를 발언해야 할 때이다. 이를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을 복구하는 민중의 요구로 확산시키자. 현 시기 사회운동의 임무는 여기에 있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이라크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