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22호 | 200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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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실질화 투쟁과 최저생계비현실화 투쟁으로

집중하자!

사회진보연대
심화되는 빈곤의 구조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1999년 이후, 한국의 국민총생산과 국제수지, 실업률 등의 많은 경제지표가 IMF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위기는 지속되고 노동자민중의 삶은 그다지 나아보이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격차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빈곤의 일상화가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가난이라는 굴레'가 더 이상 극소수의 사회적 부적응,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다는 것은 이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800만이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결과도 제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을 하는 인구 중 5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들의 임금 수준이 최저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도 이미 밝혀진 바다. '가난한 노동자'는 이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이러한 고통은 더욱 집중되고 '빈곤의 여성화'라는 용어는 일반화되었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수도 이미 150만 가구에 이른다. 국민연금가입 대상자 중 40%는 연금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 이들의 노후생활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또한 신용불량자는 400만에 달하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2,3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중 10%가 실업상태에 놓여 있으며, 설사 고용된 처지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리고 2003년 들어서만 생활고나 빚에 내몰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하루 평균 3명 꼴로, 지난 2000년에는 생활고, 사업 실패에 따른 자살이 786건이었지만,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 등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03년 7월까지만 해도 이미 408명이 목숨을 잃어 2003년 한해에만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를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일반화”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세계경제에 깊숙이 종속되어 있는 한국경제의 위치를 은폐하며, 노동자민중에게 미래에 대한 환상과 현재의 고역을 강요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동북아 중심국가'니 '2만 달러 국민소득 시대'니 하는 허울좋은 구호 아래 행해진 극소수 자본과 그 자본운동에 기생하는 소수 계층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IMF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수년간 자본과 정권은 노동유연화 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었고, 노동의 조건과 삶의 조건 역시 지속적으로 후퇴하였다. 특히, 양산된 불안정 노동층의 권리와 삶의 조건은 집중적으로 파괴되었다. 또한 민중들의 삶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생산적 복지’와 ‘참여복지’는 국민의 빈곤화를 막아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빈곤에 대한 대책도 되지 못했다. 단지 신자유주의 전략 속에서 노동의 불안정성과 빈곤을 고착화시키는 기제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보완물로서 기능해왔던 것이다.

고립되어 각개 약진했던 지난 시기의 투쟁

이러한 삶의 위기 속에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은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지속되었다. 이미 2000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만들어져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선언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투쟁을 벌이며 장애민중들이 본격적으로 장애인들의 권리를 선언했고, 여성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여성노동권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직접적인 결과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이러한 투쟁들은 그 사안의 중요성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투쟁’으로 진행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안정노동층의 투쟁을 아우르는 중심체도 없이 각자 개별적 과제를 갖고 고군분투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투쟁들은 선도성과 전투성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노출했고 지배계급의 각개 격파에 진압되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계는 불안정노동층의 투쟁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삶의 위기를 강제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대중운동의 토대자체를 뒤흔든다. 정권은 노동자들을 분할 관리하면서 투쟁을 통한 성과를 나눌 때 노동자 전체에게 주어진 한정된 몫을 노동자 내부에서 나누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결국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전선이 전체적으로 설치되지 못하고, 개별의 투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족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때로는 자신의 투쟁으로 불안정노동층을 억압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위기의식 확산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중심의 운동방식을 고수하며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지 못하고 불안정노동층의 확산과 무권리 상태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본의 방식에 조응해왔던 민주노조운동의 한계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빈곤계층의 투쟁은 “주체 없는” 투쟁으로 인식되었다. 주체 조직화의 어려움은 극복되지 못했고 투쟁들은 단기 “이벤트”성에 머무른 것이 사실이었다. 이것은 주로 청원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계급적 운동진영은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판적 견해는 제출했으나 이것을 투쟁으로 전환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대중조직을 놓고 시민단체가 동원하느냐, 계급적 진영이 동원하느냐 하는 싸움이 있었을 뿐 독립적인 투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내용상으로 볼 때 대중조직은 시민단체로 동원될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미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복지’ 요구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원이라 하더라도 전체적인 동원은 어렵다. 대중조직은 이미 ‘고용’을 통해서 자신의 기본생활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이것 이외의 확장은 단지 운동을 책임지는 중요한 주체의 ‘의무’로서만 다가올 뿐이었다. 특히 빈곤과 관련된 문제들은 ‘노동’과 분리된 상태로 접근되며 마치 ‘취약한 노동자 보호’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서 보편적인 권리를 ‘시혜’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또한 무상의료나 주택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담론’ 수준으로만 제출되었고, 그나마 노동자와 민중이 누리고 있었던 부분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이 문제가 공세적으로 제출된 바가 없다. 또는 그것을 향해 가기 위한 낮은 수준의 요구도 확장되지 못했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투쟁이 필요하다!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은 전체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일 수밖에 없기에 이를 위해 각각의 투쟁의 공통의 요구를 정식화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민중운동 전체에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기계적인 ‘공동투쟁’으로 당장 묶어서 이를 강제하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전망 하에 각각의 투쟁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도록 지지 연대하고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의 틀을 형성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조직들의 공동투쟁이 회복되어야 한다. 주체들의 요구와 내용은 정치적인 상징성을 갖고 통일되어야 하고, 그 공동의 요구에 입각한 공동행동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안정노동의 문제와 빈곤의 문제를 동시에 사고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곤의 문제는 더 이상 ‘노동’과 분리되어 접근할 수 없다. 지속적인 노동의 불안화로 인해 예전처럼 “고용=생활의 안정”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빈곤화를 낳고,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의도이기도 하다. 빈곤화와 복지의 축소를 통해 노동자들을 위계화하고 자본에 복속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도록 경쟁시킨다. 이런 구조를 통해 신자유주의는 재생산된다. 그런 점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중요한 전선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내부의 위계를 정규직과 불안정노동층의 대립으로 만드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불안정노동철폐 공동투쟁을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이주노동자와 한국국적 노동자,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영세사업장과 대기업노동자 할 것 없이 노동의 불안정화는 모두가 공통으로 직면하게 되는 상황이며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은 모두의 과제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관성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주체들이 혁신해야 하며, 또 한축으로는 투쟁으로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불안정노동층 노동자들이 만나 말 그대로 ‘전체 노동자 총단결’ 기치를 세워야 한다. 개별 사업장이나 개별 부문이 처해있는 요구를 뛰어넘어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를 제기하고, 이것을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대중투쟁전선으로 확장해가야 한다.

최저임금실질화투쟁/최저생계비현실화투쟁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투쟁으로

최근 민주노총과 빈곤사회연대,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실질화 투쟁 /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투쟁에 대한 연대와 적극적 참여/행동으로부터 공동행동의 첫 발걸음을 내딛고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투쟁의 유의미한 계기로 만들어 가야한다.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가운데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최저임금■최저생계 보장”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로부터 ‘시혜’를 얻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 계측에 있어서의 정부■자본 논리의 비현실성을 폭로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어떻게 빈곤을 양산하고 심화시키고 있는가를 고발/폭로하면서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지난 시기 투쟁의 한계를 극복한 대중적 공동행동이 복원될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 삶의 나락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과 함께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에 우뚝 서는 길이다.
주제어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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