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성에 기반한 총력투쟁을 만들어가자!
민주노총 총력투쟁에 대한 제언
노동자들에게 한여름은 뜨거운 투쟁의 계절이다. 대부분 봄부터 시작되는 사업장별(혹은 산업별) 임금 및 단체협상 투쟁이 서서히 무르익어 급기야 거리로 분출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그래왔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 혹은 날선 전경방패 앞에서 '노동자'는 다시 태어났다. '옆 공장 근로자'는 '동지'가 됐다. 반도의 동남부, 공업도시 울산에서 87년 대투쟁의 시동을 걸었던 현대엔진노조가 공설운동장으로 향하며 앞세운 덤프트럭에 걸린 현수막에는 '임금 25% 즉각 인상하라'고 적혀있었다. 94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전지협 공동투쟁 결의대회 무대 왼편에는 '승리 94년 임투'라고 쓰인 세로 현수막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임단투의 종착역은 '임금인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머리띠에 서툰 글씨로 선명하게 박힌 '노동해방'이 이를 웅변했다. 노동자는 '계급투쟁'으로 전진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여름을 달구는 노동자 투쟁은 계급의 학교이자 연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올해에도 임단투는 본궤도에 올랐다. 6월10일 보건의료노조 산별파업을 신호탄으로 택시(16일)가 이미 파업을 진행했고, 금속 (29일)-궤도(7월 중순)로 꼬리에 꼬리를 문 파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총력투쟁은 매년 펼쳐오던 '임단협 시기집중 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예년과 같은 시선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과거와는 구분되는 몇 가지 조건과 쟁점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임단투 주요쟁점
민주노총의 이번 상반기 투쟁은 이수호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치러지는 첫 전국차원의 집중투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탄핵사태 뒤 더욱 강력해져 돌아온 노무현의 자유주의 정부와의 승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때도 7월1일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공공연맹 등 대부분의 투쟁사업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노동조건 유지와 인력충원 문제도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주5일제를 두고 노사정 대리전 양상마저 띠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산업공동화 저지' '노동연대기금(산업발전기금 혹은 지역사회발전기금)' 등과 같이 이전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의제들이 주요 요구로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도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다. 민주노총은 '원·하청 공동임단투를 통한 사업장내 차별철폐' 등을 올 임단투 지침으로 내린 상태다.
특히 민주노총의 입장에선, 최근 시작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주최한 노사정 토론회에서 전격 합의돼 꾸려진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8월까지 시한부 운영되지만 '노사정 대화틀 재편' 하나만을 의제로 하고 있는 만큼, 8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맞물려 공식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다시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으로선 상반기 투쟁을 통해 노사정 대화틀 내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뒤 처음 치러지는 총력투쟁이란 점도 예년과 색다르다. '10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민주노총의 대중투쟁이 필수'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확인해 온 민주노총으로선, 주5일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가두투쟁을 통한 쟁점화를 이룬 뒤 공을 국회의원들에게 넘겨 법·제도개선으로 나아가는 고민도 있는 듯 하다.
2004년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쟁점
총력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인 만큼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관찰'이 아닌 '연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평가할만한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총력투쟁'이란 이름의 싸움에서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전국전선'이란 물론 지역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산업과 부문이 '단일한' 전선에 서는 것은 임단투가 '임금인상'에 만족하지 안도록 하는 핵심이다. 모두가 경험으로 알다시피, 이 같은 전국전선이 자연스레 그냥 생기진 않는다. 중앙지도부의 역할은 관건 중의 관건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스스로도 <6∼7월 세부투쟁계획(안)> 문건에서 '지금 드러나고 있는 양상을 보면, 연맹별 각계약진 양상이 우려되고 있으며, 요구에 있어서도 백화점식 나열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 이유로 '민주노총 차원의 대중적인 목표제시가 뚜렷하지 못하고, 전반 상황을 총괄적으로 파악-분석-대책수립-집행으로 이어지는 집행체계가 원활치 못한 것'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상반기 총력투쟁을 맞아 '전략지원단'을 꾸려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임원과 사무총국 일부로 구성된 전략지원단은 △당면투쟁 △산업공동화 △공공부문 △제도개혁 등 네 개의 팀을 구성해, '총연맹을 중심으로 통일단결된 투쟁대열을 구축해 상반기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게 목표다. 이전 투쟁시기 때 각 산별연맹 위원장 등으로 구성됐던 '투쟁본부' 보다는 축소된 형태다. 다만 중앙임원과 사무총국 일부의 권한과 역할을 높여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기존 골간 체계가 아닌, 중앙지도부가 직접 현장을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만든 셈이다. 민주노총도 위 문건을 통해 '연맹별 투쟁상황을 총연맹이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드러나는 양상은 (민주노총 스스로도 평가하고 있듯이)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투쟁이 이뤄지고 있는 산별노조·연맹에 많은 인원이 달려들어 '총력지원'에 나서다 보니, 당연히 해당 투쟁현장의 쟁점이 최대현안으로 떠오른다. 이를테면 보건의료노조의 '주5일제'가 그런 형국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보다 중심을 둬야 하는 것은 노동·자본 사이의 전국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쟁점을 투쟁으로 기획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오를 형성하려는 노력이다. 예컨대 지난해부터 불거지기 시작해 올해 입법이 추진될 '노사관계 로드맵' 등이 그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 투쟁의 경우, 민주노총의 핵심지침 중 하나는 '원·하청 공동임단투'다. 이 경우 금속·화학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두 단위가 아직 본격적인 쟁의국면으로 넘어가지 않아 관련 투쟁이 아직 눈에 띠는 수준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나 형국을 보면, 지난주의 파업에 들어갔었던 금호타이어와 앞으로 파업에 돌입할 현대자동차 이외에 내용상의 공동 임단투를 기획하고 있는 단위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공동투쟁본부' 등을 구성하고 있는 사업장은 지금까지 단 곳도 없다. '원하청 공동투쟁'은 그 특질 상 제조업 대기업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노조'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는 지난 2003년 임단투를 거치며 '귀족 노동자'로 낙인 찍혀 왔다. 물론 이 같은 정권과 자본의 공격은 노동자 분할통치 전략의 일환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자,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노동유연화의 결과다. 경총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규직 임금은 노조가 결정하는 독점임금이고, 비정규직 임금이야말로 진정한 시장임금"이라는 말은 이 같은 원인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오류다.
그러나 날로 확대되는 기업규모간·고용형태간 임금격차로 노동자 사이의 생활격차가 벌어지고 이것이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해쳐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우리는 노동자 연대성이 점차 훼손되는 것을 막아낼 수 없다. 기업규모·고용형태간 차별해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을 뒤엎어 독과점 위주의 경제구조와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가능할 때까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나온 고민이 바로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과 임단협 공동투쟁'이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노동계급 내 침투해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신분의식'을 깨부수고, 이런 투쟁을 통해 한국사회를 전변시켜 내기 위한 큰 싸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공동투쟁의 기획과 수행 자체가 '연대성의 회복'이다. '대기업노조를 향한 정권·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으로서의 공동투쟁을 넘어, 노동자 스스로 계급내부의 단결과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원·하청 공동 임단투' 지침이 과거와 같이 '협상 막판 슬그머니 포기할 수 있는 카드'로 전락해선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대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각 산별노조는 올해 임단투의 주요내용으로 산별최저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비록 많은 단위노조나 산별연맹에서는 최저임금현실화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주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확산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또한 최근에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현실화 쟁취하자'라는 슬로건 하에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 아침집회에 결합하는 투쟁사업장은 비록 투쟁과정에서 한두번의 결합이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 하는 것이고, 시혜적이며 동정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회동원이나 제도개선의 내실화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총연맹과 각 연맹의 비상한 노력 또한 요구된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연대성의 회복과 더불어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의 주체를 발굴한다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공동투쟁은 최저임금·최저생계비 결정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산정기준 또한 최저생계비에 기반하여 최저임금 산정을 모색하고 있는 측면에서 향후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의 내용과 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연대기금' 문제도 관심거리다. 노동연대기금(보건의료노조),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완성차 4노조), 지역사회발전기금(화학섬유연맹 여수산단)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연대기금'은 타결여부는 물론, 타결 과정에서 구체화될 기금의 내용과 성격 등도 중요하다. 일단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주5일제를 둘러싸고 노사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연대기금에 대해선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완성차 4사 노조의 경우, 사용자 쪽에서 "사회공헌기금은 받아들이되, 산업발전기금은 추후에 논의한다"는 내부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연대기금'은 최근 민주노총 이수호 체제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노사정 합의주의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물적 조건이 될 우려가 높다. 그 용도의 범위가 너무 넓어 하나하나 지적할 순 없지만, 일단 비정규직 문제와 맞물려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에는 '면죄부'를, 민주노총에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줄 수도 있다. 이는 민주노총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의 노사정 관계에서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효과다.
중요한 것은 조성될 기금의 내용과 성격이다. 민주노총이 밝힌 것처럼 '주택구입자금 보조 등 노동자 재산형성 지원' '자녀 학자금 보조' '지역탁아소 설립' 등도 중요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 관련한 문제를 '연대기금'을 통해서만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주의'의 혐의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또 연대기금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상으로 격상시키기보다는,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과 비정규직 투쟁주체 조직화 등의 유의미한 경로로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구조적 문제'임을 늘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노사가 함께 기금을 출연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돼선 곤란하다.
전진을 위하여
우리는 앞서 올해 민주노총에서 제기한 '원·하청공동임단협', '연대기금', '산별최저임금요구와 법정최저임금개선'등을 연대지향적이며 계급주체형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려 하였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총연맹에서 내세웠던 데로 '투쟁과 교섭의 병행'기치아래 투쟁과 더불어 '사회적(?) 교섭'을 위한 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파업을 예고하고 있고 보건의료노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선두에 서서 싸우고 있다. 여기에 진정으로 연대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지원하는 것이지, 직권중재시 노사정위참여 여부를 전면 재검토한다는 협박(?)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강경 발언일 수 있지만, 이미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시기 노사정위가 어떠한 역할을 했고, 민주노총과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잊었단 말인가? 경험했듯이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합의주의는 함께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규모 있고 투쟁력 있는 대중조직이다. 민주노총이란 이름의 거함이 어느 방향으로 돛을 올리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운동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임단투 시기에 어떤 쟁점과 과정을 거쳐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만드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에도 임단투는 본궤도에 올랐다. 6월10일 보건의료노조 산별파업을 신호탄으로 택시(16일)가 이미 파업을 진행했고, 금속 (29일)-궤도(7월 중순)로 꼬리에 꼬리를 문 파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총력투쟁은 매년 펼쳐오던 '임단협 시기집중 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예년과 같은 시선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과거와는 구분되는 몇 가지 조건과 쟁점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임단투 주요쟁점
민주노총의 이번 상반기 투쟁은 이수호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치러지는 첫 전국차원의 집중투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탄핵사태 뒤 더욱 강력해져 돌아온 노무현의 자유주의 정부와의 승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때도 7월1일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공공연맹 등 대부분의 투쟁사업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노동조건 유지와 인력충원 문제도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다. 특히 보건의료노조는 주5일제를 두고 노사정 대리전 양상마저 띠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산업공동화 저지' '노동연대기금(산업발전기금 혹은 지역사회발전기금)' 등과 같이 이전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의제들이 주요 요구로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도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다. 민주노총은 '원·하청 공동임단투를 통한 사업장내 차별철폐' 등을 올 임단투 지침으로 내린 상태다.
특히 민주노총의 입장에선, 최근 시작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주최한 노사정 토론회에서 전격 합의돼 꾸려진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8월까지 시한부 운영되지만 '노사정 대화틀 재편' 하나만을 의제로 하고 있는 만큼, 8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와 맞물려 공식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다시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으로선 상반기 투쟁을 통해 노사정 대화틀 내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원내진출 뒤 처음 치러지는 총력투쟁이란 점도 예년과 색다르다. '10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민주노총의 대중투쟁이 필수'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확인해 온 민주노총으로선, 주5일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가두투쟁을 통한 쟁점화를 이룬 뒤 공을 국회의원들에게 넘겨 법·제도개선으로 나아가는 고민도 있는 듯 하다.
2004년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쟁점
총력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인 만큼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관찰'이 아닌 '연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평가할만한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총력투쟁'이란 이름의 싸움에서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전국전선'이란 물론 지역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산업과 부문이 '단일한' 전선에 서는 것은 임단투가 '임금인상'에 만족하지 안도록 하는 핵심이다. 모두가 경험으로 알다시피, 이 같은 전국전선이 자연스레 그냥 생기진 않는다. 중앙지도부의 역할은 관건 중의 관건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스스로도 <6∼7월 세부투쟁계획(안)> 문건에서 '지금 드러나고 있는 양상을 보면, 연맹별 각계약진 양상이 우려되고 있으며, 요구에 있어서도 백화점식 나열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 이유로 '민주노총 차원의 대중적인 목표제시가 뚜렷하지 못하고, 전반 상황을 총괄적으로 파악-분석-대책수립-집행으로 이어지는 집행체계가 원활치 못한 것'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상반기 총력투쟁을 맞아 '전략지원단'을 꾸려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임원과 사무총국 일부로 구성된 전략지원단은 △당면투쟁 △산업공동화 △공공부문 △제도개혁 등 네 개의 팀을 구성해, '총연맹을 중심으로 통일단결된 투쟁대열을 구축해 상반기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게 목표다. 이전 투쟁시기 때 각 산별연맹 위원장 등으로 구성됐던 '투쟁본부' 보다는 축소된 형태다. 다만 중앙임원과 사무총국 일부의 권한과 역할을 높여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기존 골간 체계가 아닌, 중앙지도부가 직접 현장을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만든 셈이다. 민주노총도 위 문건을 통해 '연맹별 투쟁상황을 총연맹이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드러나는 양상은 (민주노총 스스로도 평가하고 있듯이)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투쟁이 이뤄지고 있는 산별노조·연맹에 많은 인원이 달려들어 '총력지원'에 나서다 보니, 당연히 해당 투쟁현장의 쟁점이 최대현안으로 떠오른다. 이를테면 보건의료노조의 '주5일제'가 그런 형국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보다 중심을 둬야 하는 것은 노동·자본 사이의 전국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쟁점을 투쟁으로 기획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오를 형성하려는 노력이다. 예컨대 지난해부터 불거지기 시작해 올해 입법이 추진될 '노사관계 로드맵' 등이 그것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정규직화 투쟁의 경우, 민주노총의 핵심지침 중 하나는 '원·하청 공동임단투'다. 이 경우 금속·화학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두 단위가 아직 본격적인 쟁의국면으로 넘어가지 않아 관련 투쟁이 아직 눈에 띠는 수준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나 형국을 보면, 지난주의 파업에 들어갔었던 금호타이어와 앞으로 파업에 돌입할 현대자동차 이외에 내용상의 공동 임단투를 기획하고 있는 단위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공동투쟁본부' 등을 구성하고 있는 사업장은 지금까지 단 곳도 없다. '원하청 공동투쟁'은 그 특질 상 제조업 대기업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노조'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는 지난 2003년 임단투를 거치며 '귀족 노동자'로 낙인 찍혀 왔다. 물론 이 같은 정권과 자본의 공격은 노동자 분할통치 전략의 일환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자,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른 노동유연화의 결과다. 경총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규직 임금은 노조가 결정하는 독점임금이고, 비정규직 임금이야말로 진정한 시장임금"이라는 말은 이 같은 원인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오류다.
그러나 날로 확대되는 기업규모간·고용형태간 임금격차로 노동자 사이의 생활격차가 벌어지고 이것이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해쳐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우리는 노동자 연대성이 점차 훼손되는 것을 막아낼 수 없다. 기업규모·고용형태간 차별해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을 뒤엎어 독과점 위주의 경제구조와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가능할 때까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나온 고민이 바로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과 임단협 공동투쟁'이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노동계급 내 침투해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신분의식'을 깨부수고, 이런 투쟁을 통해 한국사회를 전변시켜 내기 위한 큰 싸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공동투쟁의 기획과 수행 자체가 '연대성의 회복'이다. '대기업노조를 향한 정권·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책'으로서의 공동투쟁을 넘어, 노동자 스스로 계급내부의 단결과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원·하청 공동 임단투' 지침이 과거와 같이 '협상 막판 슬그머니 포기할 수 있는 카드'로 전락해선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대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현실화투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각 산별노조는 올해 임단투의 주요내용으로 산별최저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비록 많은 단위노조나 산별연맹에서는 최저임금현실화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할 수 있는 주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확산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또한 최근에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현실화 쟁취하자'라는 슬로건 하에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 아침집회에 결합하는 투쟁사업장은 비록 투쟁과정에서 한두번의 결합이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투쟁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 하는 것이고, 시혜적이며 동정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회동원이나 제도개선의 내실화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총연맹과 각 연맹의 비상한 노력 또한 요구된다.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은 연대성의 회복과 더불어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의 주체를 발굴한다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공동투쟁은 최저임금·최저생계비 결정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산정기준 또한 최저생계비에 기반하여 최저임금 산정을 모색하고 있는 측면에서 향후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의 내용과 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연대기금' 문제도 관심거리다. 노동연대기금(보건의료노조),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완성차 4노조), 지역사회발전기금(화학섬유연맹 여수산단)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연대기금'은 타결여부는 물론, 타결 과정에서 구체화될 기금의 내용과 성격 등도 중요하다. 일단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주5일제를 둘러싸고 노사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연대기금에 대해선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완성차 4사 노조의 경우, 사용자 쪽에서 "사회공헌기금은 받아들이되, 산업발전기금은 추후에 논의한다"는 내부입장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연대기금'은 최근 민주노총 이수호 체제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노사정 합의주의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물적 조건이 될 우려가 높다. 그 용도의 범위가 너무 넓어 하나하나 지적할 순 없지만, 일단 비정규직 문제와 맞물려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에는 '면죄부'를, 민주노총에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줄 수도 있다. 이는 민주노총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의 노사정 관계에서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효과다.
중요한 것은 조성될 기금의 내용과 성격이다. 민주노총이 밝힌 것처럼 '주택구입자금 보조 등 노동자 재산형성 지원' '자녀 학자금 보조' '지역탁아소 설립' 등도 중요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 관련한 문제를 '연대기금'을 통해서만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주의'의 혐의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또 연대기금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상으로 격상시키기보다는,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과 비정규직 투쟁주체 조직화 등의 유의미한 경로로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구조적 문제'임을 늘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노사가 함께 기금을 출연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돼선 곤란하다.
전진을 위하여
우리는 앞서 올해 민주노총에서 제기한 '원·하청공동임단협', '연대기금', '산별최저임금요구와 법정최저임금개선'등을 연대지향적이며 계급주체형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려 하였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총연맹에서 내세웠던 데로 '투쟁과 교섭의 병행'기치아래 투쟁과 더불어 '사회적(?) 교섭'을 위한 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파업을 예고하고 있고 보건의료노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선두에 서서 싸우고 있다. 여기에 진정으로 연대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지원하는 것이지, 직권중재시 노사정위참여 여부를 전면 재검토한다는 협박(?)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강경 발언일 수 있지만, 이미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시기 노사정위가 어떠한 역할을 했고, 민주노총과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잊었단 말인가? 경험했듯이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합의주의는 함께 갈 수 없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규모 있고 투쟁력 있는 대중조직이다. 민주노총이란 이름의 거함이 어느 방향으로 돛을 올리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운동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임단투 시기에 어떤 쟁점과 과정을 거쳐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만드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