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32호 | 200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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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사회진보연대
“지금도 불안한 요소가 있죠. 차 자체로만 봤을 때도 불완전한 요소가 있고 승강장에도 안전시설이 제대로 없어서 불안하죠. 차라는 게 아무리 정밀하게 고쳐도 본의 아니게 고장이 날 수 있는 건데 공사는 인원충원 안 하고 결국 검수 시간을 줄인다는 건데. 안전에 대한 방치나 다름없죠."
“참을 수 없을 정도면 잠깐 교대하면서 한 명을 불러다 놓고 갔다가 와요. 두 명일 때는 화장실 가기도 힘들죠. 식사는 진짜 어렵고요. 세 명이 근무해도 저녁에 출근하는 날에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저녁을 먹기가 힘들어요. 또 8시쯤 저녁을 먹게 되면 다음날 오후에나 먹는 거예요. 아침에 바쁜데 식사를 시켜먹을 수도 없고. 퇴근하면 11시에나 집에 도착하죠. 그러면 굶은 상태에서 녹초가 되서 그냥 자는 경우가 많아요. 오후 서너 시에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 먹고 또 저녁에 나오고."
“생체리듬이 안 맞아요. 우리는 몸으로 수명단축을 느낍니다. 일단 수면장애가 많아요. 수면 클리닉을 받아야 할 경우가 많고 신경적인 질환도 많고. 위나 장이 안 좋아지는 건 다반사고요. 야간근무에 적응하면 또 주간근무가 돼요. 첫날, 둘째 날은 정말 힘들죠. 또 적응하면 다시 야간근무고." ('미디어 참세상'에서)

이상은 인원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하철의 안전문제와 노동강도, 그리고 교대제의 문제 등에 관련된 궤도노동자들의 진술이다. 다음은 도시철도의 공황장애 노동자와 관련된 진술이다.

"이제 나이 38, 누가 보아도 건강한 운동매니아에다, 항상 밝았던 동료가 어느 날 초점 없는 눈으로 죽음을 얘기했다. 숨조차 쉴 수 없다면서 겪어보지 못한 네가 무엇을 알겠냐고 했다. 전동차 운전대에서 잠시 긴장을 늦추면 한 손으로 출입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하는 자신이 두려워서 두 손을 꼭 맞잡고 운전대를 잡는다고 고백했다. 처자식이 웃고 있는 거실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는 자신을 공포스럽게 인식한다고,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 운동을 하며 몸을 혹사시키고 그 힘으로 잠을 청하며 지내왔지만 이제는 한계라며 곧 죽을 듯이 말했다."('미디어 참세상'에서)

현재 각 사업장이 전쟁터 아닌 곳이 없듯이 궤도노동자들의 사업장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일/40시간 노동제도 도입되고 신규 호선이 개통되는 마당에 궤도노동자들의 인력충원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겠다. 게다가 정부통계에 의하더라도 실업자 약 80만명, 정상고용이라 할 수 없는 36시간노동 이하 노동자 230여만 명 등 실업 반실업 노동자가 현재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궤도노동자들의 요구가 실현된다고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도저히 없겠지만, 그래도 그 완화에는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철도와 지하철공사들의 대응이 가관이다. 인력과 관련해서는 업무당 소요인력을 무리하게 감축하고 노동시간 유연화를 극대화하여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근무제를 도입하고, 신규 호선 개통도 기존 인력을 대폭 솎아내 배치하거나, 그래도 부족하면 그 때는 정규직이 아니라 외주인력을 활용하여 해결하려 한다. 이뿐 아니다. 서울지하철은 주 40시간제를 생각하면 인력이 상당한 정도 늘어나야 하는데 흑자경영을 하겠다면서 2006년까지 2700여명의 인원을 오히려 감축하려 하고 있고, 철도는 기존 정규직 정원을 대폭 축소하고 신규사업, 24시간 맞교대의 개편, 40시간제 도입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인력 7-8,000여명의 인원을 대부분을 비정규직을 통해서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다.
임금은 또 어떤가?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교대/교번근무자 유급월차폐지, 월차폐지, 연차축소, 연월차 수당 지급률 축소, 토요일 무급휴일화, 선택적 보상휴가제 도입, 각종 수당폐지(도시철도수당, 생활안정수당, 퇴직수당 등), 법정수당 지급률 축소 등을 통한 임금삭감을 기도하면서 조합원들로 하여금 총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의 실노동시간을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는 사실 궤도뿐만이 아니다. 많은 제조업 사업장에서 낮아진 총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그리고 많은 사무직에서 늘어난 업무량을 처리하기 위해 토요일 일요일 근무가 일상화하고 있어 주 5일제 아래에서 실근무시간이 오히려 늘고 있다. 그래서 주5일제에서 일하는 날은 '월화수목금'이 아니라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문자그대로 무늬만 주5일제/40시간제, 누더기 노동시간단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경제위기/신자유주의 시기,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노동강도 강화의 길이 열려 있는 시기에 국가와 자본이 추진하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고용증대 효과가 약간 있다 하더라도 이는 비정규직의 증대뿐이라는 것을 얘기했었다. 불행하게도 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사태에 직면하여 공사들이 주 5일제에 대해 인력 충원, 소요 예산 증액 등과 관련하여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력충원과 예산증액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이들이 '만반의 준비'였다고 보고 있다. 재정수지도 계속해서 적자이거니와 정부부채도 늘어만 가는데, 그리고 공사도 적자인데 이들 입장에서도 별 수 없는 것이다. 투자부진과 성장저하라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들도 '용빼는' 재주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쉬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는 바에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는 궤도노동자들의 현재의 요구, 더 나아가 임금삭감이 없고 노동강도 강화 없는 실노동시간의 단축과 완전고용 달성은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를 통해 막대한 이익(배당, 이자, 자산이득)이 초민족적 금융자본에게 돌아가고 있으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투기거품과 거품붕괴가 단속적으로 재발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도 불구하고(오히려 이 개혁때문에?) '산업공동화'가 운위될 정도로 투자부진과 성장저하라는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네트워크에 포섭된 지배세력의 사회적 부의 탕진과 자본도피가 만연한 상황에서 온전한 노동권의 설자리는 없다고 판단한다. 미국 주도 '무장한 세계화'에 협조하여 이라크 파병에,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신무기 도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붇는 상황에서는 노동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안전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세계화, 무장한 세계화가 문제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투쟁은 달라져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을 교섭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파업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이어야 하고, 시간단축과 인력충원의 요구와 더불어 이라크파병 철회가 궤도노동자들의 투쟁요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하철노동자들의 파업에 이어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이 실질적으로 준비되어야 하고, 가능한 다양한 투쟁이 촉발되어 전국적 투쟁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끝장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과 이명박을 나누고 노무현정권이 직권중재를 하지 않아 합법파업이 가능하길 기대하는 태도로는 우리는 이번에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직시하자. 현재의 지배세력 모두가 신자유주의자들, 즉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자본의 위기를 탈출해 보려는 세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제 그만큼 속았으면 충분하다.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우리는 계속적으로 패배만 해 왔다. 그래서 '나만 아니면', '우리만 문제없다면' 하는 보신주의에 익숙해져 있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확보한 나의 자리, 우리의 자리도 계속해서 침식되어 오고 있지 않은가. 이젠 좀 달라져야 한다.

부디 이번 궤도노동자들의 투쟁이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때는 소를 모"는 삶, 노동이 고역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삶, 자본주의적 강제소비에 찌들지 않고 '청빈'을 구가할 수 있는 삶, 학문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삶을 쟁취하는 길목에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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