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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38호 | 200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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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가 농민을 죽인다."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 기본골격 합의안의 의미와 9월 10일 이경해열사 정신계승 식량주권 수호 투쟁의 의의

사회진보연대
"WTO가 농민을 죽인다"

오는 9월 10일은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농민 이경해 열사가 DDA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는 열사의 유언은 우루과이 라운드로 농산물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된 후 벼랑 끝에 내몰린 농민들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현재, 고작 10개의 농기업이 세계 농산물 시장의 90%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종자나 생명공학 분야, 농약, 비료 등을 생산하는 농화학 분야, 식품 가공 및 유통 분야 등 농업 및 식량과 관련된 모든 분야들을 통제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이 대량 생산한 농산물이 남반구 국가들에 싼값에 쏟아지면서 소규모 농가들은 경쟁에서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으로 초국적 농기업은 남반구에서 재배되는 품종을 개조하여 특허를 매겨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어, 종자를 채취하고 보관하는 과정에 대한 농민의 권리,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수천년에 걸쳐 계발하고 보존해온 전통적인 지식에 대한 권리는 초국적 기업으로 이전되고 있다. 식량을 자급자족하던 나라들은 이제 식량을 초국적 기업들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농민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거나, 값싼 임금에 이 기업들에 고용되어 착취당하고 있다. 당시 칸쿤 현지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 속에서 설 땅을 잃고 자살을 택한 농민들이 수없이 많았다는 사실이 증언되었다. 한국에서도 WTO가 출범한 이후 농산물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부채에 허덕이던 많은 농민들이 농약을 들이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우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WTO가 만들어낸 분노스러운 현실 자체였던 것이다.
WTO가 파괴한 농민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던 열사의 뜻은 현재 쌀 재협상과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에 반대하여 식량주권을 쟁취하고자하는 농민들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쌀 지키기 식량주권 수호 국민운동본부'는 오는 9월 6일~12일을 '이경해 열사 정신계승 추모주간'으로 선포하여, 이경해 열사의 1주기가 되는 9월 10일부터 전국 곳곳에서 100만 농민이 집결하여 투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소농조직 '비아캄페시나' 소속 각국 농민단체 대표들도 서울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한편, 지난 7월 말 WTO 일반이사회에서 초국적 농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도하개발의제( DDA) 협상 기본골격(Framework)이 합의되었다. 바로 뒤이어 정부는 '2005년 추곡수매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나섰다. 현재 진행 중인 쌀 재협상에서 노무현 정부는 '농민부담을 최소화 한다'는 공허한 말만 되풀이하며 쌀 개방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에, 농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은 기만이다! : 칸쿤 5차 각료회의 결렬∼ 7월 일반이사회 기본골격 합의

농업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은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매겨진 농산물 관세를 공산품 수준으로 대폭 인하하고 '무역왜곡적' 농업 보조금을 감축/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의 대규모 농기업이 세계 농산물 시장을 장악하기에 적합하도록 국제무역시스템을 재편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은 오히려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자유무역'의 원칙을 어기고 있다. WTO가 출범한 이후에도 미국은 농업보조금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관세화로 남반구의 농업시장은 개방되어 미국의 농기업이 생산한 싼 값의 농산물은 남반구로 덤핑되지만, 남반구의 소규모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은 가격 경쟁력에 밀려 미국으로 수출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산기반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부시행정부가 도하개발의제 원칙을 훼손하며 농업보조금을 대폭 확대할 것을 골자로 하는 2002년 농업법(2002 Farm Bill)을 재정하고 나서자, 미국의 일방주의와 무역 불평등에 대한 개도국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에, 2003년 칸쿤 각료회의에서 브라질, 인도 등 농산물 수출 개도국들은 G21이라는 의견그룹을 형성하여, 북반구의 시장 역시 남반구가 생산한 농산물에 개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대규모 보조금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높은 수출보조금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연합과 공조하여 농업 보조금에 대해 한치의 양보도 있을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결국 칸쿤 각료회의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모순을 드러내며 결렬에 이르렀다.
칸쿤 각료회의 무산 이후 미국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불만을 표한 개도국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협상 결렬에 결정적 역할을 한 G21을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G21에서 탈퇴하면 부분적인 시장개방을 제공하겠다는 사탕발림으로 결국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페루, 코스타리카, 과테말라를 이 그룹으로부터 이탈시켰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유럽연합, 호주, 브라질, 인도를 '이해당사자 5개국(Five Interested Parties)'이라 명명하며 팀 그로서 WTO 농업위원회 의장이 기본골격 초안을 작성하는데 브라질과 인도가 동참하도록 했다. 아예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브라질과 인도가 여타의 농업수출 개도국과 분리되도록 한 것이다. 결국 지난 7월 일반이사회에서는 이 5개국의 합의를 바탕으로 도하개발의제 협상 골격이 합의되기에 이르렀다.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 기본골격안의 의미

7월 일반이사회 합의문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속서 A는 이후 진행될 농업협상의 기본 골격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내년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6차 홍콩 각료회의 전까지 진행될 세부원칙 협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평가될 만큼 초국적 곡물기업의 농업시장 지배력 확대를 떠받치는 미국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우선 시장접근 분야에서는 '구간별 감축' 방식을 채택하여 선진국과 개도국의 차별을 두지 않고 관세율에 따라 대상품목을 구간으로 분류하여, 고관세일수록 높은 비율로 감축하도록 했다. 또한 개도국에 한해서 관세감축에 신축성을 부여할 수 있는 '특별품목(Special Product)'제도와는 별도로, 선진국 품목에도 해당되는 '민간품목(Sensitive Product)'을 새롭게 도입하여, 이에 대해서는 관세를 소폭으로 감축하되 의무수입물량을 확대하도록 했다. 수입국그룹이 요구한 관세상한 철폐는 추후로 미뤄지게 되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수출국 그룹이 주되게 주장했던 '스위스공식'의 변형으로 한국과 같이 고관세 품목이 많은 나라일수록 대폭으로 관세를 감축하여 개방으로 인한 타격이 커지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국내 보조분야에서 미국은 결국 2002 농업법이 보장하는 국내보조를 감축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는 농업에 대한 모든 국내보조정책을 신호등 분류방식에 따라 '철폐대상'(red box), '규제대상'(amber box), '허용대상'(green box)으로 분류했다. 추곡수매제와 같은 정부관리가격정책, 생산 및 판매에 관련된 농가소득지원, 투자 및 수송등에 대한 보조가 규제대상에 포함되며, 생산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소득보장, 재해보상, 식량비축 등은 허용대상에 해당한다. 그밖에 '생산제한계획하 직접지불'(Blue Box)과 최소허용보조(De-minimis-총 생산액의 5% 미만의 보조금)에 대해서는 감축의무를 면제했다. 그런데, 이번 합의안이 제시하고 있는 국내보조 감축 방식은 감축보조대상 총량(AMS), 최소허용보조(De-minimis), 생산제한계획하직접지불(Blue Box)를 모두 '무역왜곡보조'로 규정하여 이를 합한 총액에 따라 구간별 감축방식을 도입하되, 보조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더 많은 비율로 감축하도록 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미국의 주장에 따라 '생산제한없는 직접지불'이라는 새로운 블루박스가 도입된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이번 합의안이 미국의 대규모 국내보조를 대폭 감축할 것으로 보이지만, 감축대상이 되는 보조금의 총량을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양허된 수준이냐, 현행 수준이냐)에 따라, 그리고 현존하는 보조금을 어떤 종류의 보조금으로 분류할 것이냐에 따라 감축 비율은 크게 달라질것이라고 분석된다. 미국의 2002 농업법에 따라 새롭게 도입된 보조금들은 신설된 "새로운 블루박스"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지급되고 있는 보조금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경우 공동농업정책(CPA) 2003년 개정안에 따라 보조금의 상당부분을 '허용보조'로 전환함에 따라 현행 수준을 유지하게 될 전망이다.
수출경쟁 분야에서는 수출보조, 상환기간 180일 이상의 수출신용 및 보증보험은 철폐하도록 하고, 180일미만 신용·보증보험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감축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개도국에만 허용되었던 수출보조는 유지하되 '모든 형태의 수출보조가 철폐되는 시점을 지나서 합리적인 기간까지' 인정한다는 단서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철폐 기한은 명시하지 않고 이후 진행될 세부원칙 협상 결과에 맡김에 따라 이러한 원칙이 현실화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개도국들에게는 관세를 대폭 감축하도록 하여 개방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반면, 농산물 무역에 있어서 불평등을 심화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보조금은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취지와 어긋나도록 현행대로 유지할 여지를 남기게 된 것이다. 7월 일반이사회가 끝난 후 미 무역 대표 로버트 죌릭은 "현재 지급되는 보조금 총량이 191억 달러이지만, 기본골격이 제시하는 대로 계산했을 때 허용되는 보조금은 490억"이라며 "2002 농업법에 따른 보조금은 도하개발의제 협상에도 불구하고 현행대로 유지할 수 있어서 미국이 잃은 것은 없다"고 했다.

도하개발의제협상과 쌀 재협상

7월 일반이사회 합의문에는 "도하개발의제의 타결 시한을 2004년 12월 31일로 정했던 2001년 도하각료선언문 45항의협상일장을 연장하여 계속 협상을 진행하고 6차 각료회의를 2005년 12월 홍콩에서 개최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쌀 재협상의 만료시점 또한 2005년 말까지 연장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95년 농업협정이 개도국에 부여된 '특례지위'에 따라 쌀 관세화가 10년간 유예되었고, 이 유예기간을 연장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재 진행중인 쌀 재협상이다. 그런데, 이번 일반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95년 농업협정의 개도국 특례 지위 역시 2004년 12월 31일 이후로 연장되었기 때문에 쌀 재협상 만료시점 역시 동일하게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외교통상부의 협상대표들은 2004년 말까지 관세화 유예 연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2005년부터 자동적으로 관세화조치가 적용된다는 '자동관세화론'을 제기하며, 올 연말까지 쌀 재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외통부 조차도 관세화가 되더라도 관세율을 결정하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관세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어, '자동관세화'론은 타당성이 없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3차 협상의 단계에 들어선 쌀 재협상에서 미국·중국·캐나다 등 협상 대상국들은 관세화 유예의 조건으로 현행 국내소비량(1986년∼88년 기준) 4%로 설정되어 있는 최소시장접근물량(의무수입물량)을 대폭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최소시장접근물량으로 수입되는 쌀을 국내시장에서 민간업자에 의해 판매되도록 허용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관세화 유예'가 기본 원칙이지만 유예의 조건으로 의무수입물량 확대와 민간판매가 부과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관세화가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실제로 아무런 원칙도 입장도 없이 다수 민중들의 생존이 달린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더해 지난 8월 7일, 농림부는 추곡수매가의 국회동의 절차 폐지와 가격 관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 공공비축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 기본골격이 타결됨에 따라 농업협상이 급진전을 이룰 것이고, 이에 따라 추곡수매제는 농업협상이 지정하는 '감축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2005년 말까지 지속될 세부원칙 협상과 쌀 재협상 만료기간의 연장 가능성을 애써 눈감으며 농업개방을 서두르고 농민들의 제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민중의 보편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에 함께하자!

'실질적이고 완전한 무역자유화를 달성'하여 '그 혜택을 전 세계 민중이 고루 누리도록 한다'며 WTO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오히려 정 반대로 무역구조에 있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민중들의 권리를 고스란히 초국적 농기업의 손아귀에 넘겨주고, 위기의 비용을 남반구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에 남반구의 소규모 농가를 몰락시키고 수많은 농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세계적인 차원의 재앙을 불러온 WTO에 맞선 농민들이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토지를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데 이용하고, 고유한 종자를 유지 보관하며, 비료와 농약을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하는 등 농업 생산과 유통 전반을 통제하는 것은 생산을 직접 담당하는 농민들의 고유한 권리이다. 또한 안전한 식량을 필요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것은 민중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적인 권리이다. 세계의 농민들은 이를 '식량 주권'으로 정의하며, 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WTO가 농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9월 6일부터 12일까지 이경해 열사 정신계승, 쌀 재협상·도하개발의제 협상 중단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전국 곳곳이 그 투쟁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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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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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민주화 최장집 김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