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0호 | 20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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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업계/벤처기업에서 노동자되기

벤처기업의 한 노동자
<편집자주>
이글은 모벤처기업에 근무하는 한 노동자가 기고한 글입니다. 현 금융화의 문제점을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씌여졌습니다. 사업장 사정상 기고자의 실명을 밝히지 못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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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라는 이름으로 왜곡되는 것들

종종 TV프로그램에서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에서 사발면을 먹으며, 몇 달째 합숙(?)을 하고 있는 인터넷 벤처기업 노동자들의 모습이 방영되곤 한다. 늘 그 초점은 아이디어와 기술력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을 하는 벤처기업의 모습에 대한 예찬이며, 초기의 고생은 정보통신 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로 묘사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장된 포장 속에는 감춰져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우선, 일컬어지는 데로 기술력, 혹은 아이디어를 갖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단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관련 분야에서의 상당한 경험과 축적된 기술력이 있어야 아이디어가 발굴될 수 있다. 이것은 산을 많이 타 본 사람이 등산의 요령과 필요한 것들, 유의할 점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노하우와 충분한 기술력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는 다른 사업분야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성공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누구나 쉽게 갖출 수 있는 것처럼 묘사를 하는 것부터가 왜곡이며, 그 이후부터는 ‘노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 또한 심각한 왜곡이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추는 과정 자체가 각고의 노력과 기간을 필요로 하며, 개발의 목표와 아이템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성공적으로(남들보다 빨리, 좀 더 좋게) 만들어 낼 수 있느냐하는 것도 극히 불투명한 문제라는 것이다.
둘째로, 많은 벤처기업들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아닌 정보통신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로 회사를 유지하고,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가 갖추고 있는 아이템과 기술력들은 이미 동종 분야 타회사들에서도 갖고 있는 것이며, 동일한 내용을 갖고 경쟁을 할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근거는 노동자들의 초과노동 밖에 없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초과근무와 그것을 넘어서는 야근과 철야가 일상화되어 있으며, 아주 흔히 접하는 현실이 ‘열시불퇴(10시 전에는 퇴근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야근과 철야는 노동자 자신들이 갖춘 기술력의 부족분에 대한 연구와 자기 투자로 돌려지게 되어, 초과근무에 대한 법정수당이나 제반 권리들을 전혀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회사는 직원들의 기술력으로 엄청난 이윤을 얻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니 ‘열심히(!)’라도 일을 해라라는 사측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조금만 고생하면 성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를 위해서라면 초창기의 고민 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형태로 이미 노동자들에게 체화되어 버린 것들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몇 년째 임금 안 받고 일하고 있다. 사장도 같이 고생하는데 나만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정보통신업계의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즉, 정보통신 업계의 ‘신화’는 산뜻한 아이디어와 기술력 하나로 사측과 노동자 모두가 성공하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그 현실은 여느 산업분야와 다를 바 없이 자본가들은 저임금, 초과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노동자들에게는 계급적 갈등마저 봉합되어 버린 칠흑같은 암흑이다.
셋째, 주식시장에의 상장이라는 환상이다. 이 분야 많은 노동자들은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기만 하면 그 동안의 고생을 모두 갚아주겠다는 말로 수년을 고생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코스닥 및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노동자로서 일하는 동안 정당한 임금조차 못 받고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다가 회사가 망하거나 사장이 도망가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인터넷 벤처기업에서 노동자의 이름찾기

우리 회사는 93년에 세워졌고, 94년에 벤처기업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병역특례업체로 선정이 되었다. 회사의 주요 업무내역은 웹호스팅(홈페이지 제작대행에서 IP를 빌려주는 수준까지)과 수익을 위한 몇 개의 홈페이지 운영, 조그만 규모의 전자상거래(인터넷 경매), 게임 개발 등이다. 얼마 전까지는 CD롬 타이틀 제작도 하였으나, 시장이 축소되면서 현재는 손을 뗀 상태다. 이런 회사들에서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는 주식시장에 상장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우리 회사는 올해(2000년) 안에 코스닥 상장을 계획으로 삼고 있고, 이미 제3시장에서는 상당한 가격으로 주식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사의 연혁과 업무내역, 그리고 주식시장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회사는 소위 말하는 정보통신 분야의 인터넷 벤처기업이다. 회사 스스로도 그렇게 내세우고 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부르며 얼마 전에는 한 투자회사로부터 몇 십억의 돈을 투자받고 주식을 팔기도 했다.
회사의 규모는 사측은 사장을 포함해서 2명, 그 외의 관리직 사원 없이 대리 이하 20명 정도이다. 임금은 이 분야의 업계에 있어서는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낮다. 수습기간 3개월 동안은 40만원을 받으며, 수습을 마치면 55만원을 받으며, 입사 2년이 된 대리가 65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이러한 저임금과 더불어 매일 거듭되는 초과근무, 야근, 휴일근무 등의 열악한 근무조건이 ‘우리노조’를 결성하게 된 가장 커다란 요인이다. 그러나, 낮은 임금과 일상적인 초과근무는 우리 회사만의 특징이 아니라, 정보통신 업계의 많은 벤처기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기에 다른 많은 회사들에서도 우리와 같은 논의가 오가고 있으리라 예상이 된다.

‘우리노조’의 결성이 얘기된 것은 지난 해(99년) 12월 초부터이다. 임금이 워낙 낮기 때문에 이전부터 간헐적인 불만의 표출들은 있었고, 노조나 만들어볼까 등의 이야기도 나오곤 했으나 12월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을 해보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리 한 명의 노조를 만들어보는건 어떻겠느냐는 말에 의외로 주위사람들도 적극적으로 그러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일단은 기본적인 생활조차가 불가능한 낮은 임금이 모두의 불만이었고, 노조를 만들면 그런 것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들이 있었던 것이다.
노조를 현실화시키는데에는 병역특례 사원들이 많다는 회사의 특징도 큰 몫을 차지했다. 정보통신 업계는 전직/이직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는 노조 결성을 시도하다가도 좋은 조건의 자리가 생김에 따라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불가능했다는 얘기들도 들었다. 심지어는 노조 결성을 주도하던 사람이 이직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회사의 경우 20명 조금 넘는 직원들 중 2/3 이상이 의무적으로 3년을 근무해야 하는 산업기능요원 혹은 전문연구요원들이다. 매년 2, 3명씩 뽑아온 병역특례 직원들이 3년 동안 그렇게 누적된 것이고, 그 사이에 일반사원들은 저임금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회사를 옮겼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따라서 가장 큰 걸림돌도 병역특례직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느냐였지만, 병역법과 근로기준법에 준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로는 ‘우리노조’결성은 급속도로 추진되었다.

노동조합을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에 우선 외부에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에 연락을 해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직 우리의 준비가 전무한 상황에서 외부단체를 만나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노동법, 근로기준법, 병역법을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각 법률들을 다운받아 한번씩 훑어본 다음에 상담할 상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원 중의 한 명이 아는 선배가 노무사 일을 하고 있었던 관계로 우선 그 분을 만나서 1차적인 상담을 갖기로 했다. 주도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6, 7명이 노무사와의 간담회를 통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임금문제 및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 후에 전직원들이 함께 중국집에 모여서 간담회 보고를 하고 노동조합을 만들 것인가 말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직원들 전부가 현재의 임금 및 노동조건에 불만이었고, 그 해결책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라면 한 번 해보자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 동안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집단적으로 사장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해 볼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했으나, 간담회와 전직원 모임을 기점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게 된 것이다. 이 때까지의 기간이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였다.
이 맘 때쯤, 노동법 등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 통화를 했었던 민주노총에서 연락이 왔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한 분과 지속적인 상담을 갖게 된다. 3, 4차례에 걸친 서울본부 활동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노조’는 본격적으로 윤곽을 갖추게 되고, 활동을 주도하던 6, 7명의 직원들도 자신감과 힘을 얻게 된다. 노조를 결성하는데 또 하나의 난관은 위원장 및 임원을 누가 맡을 것인가였다. 해고나 여러 가지 불이익을 염려한 망설임 등이 있었지만, 결국 2명이 위원장을 결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중 한 명이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위원장이 결정되고 나서 임원 및 집행부를 결정하는 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세번째의 직원 전체 모임에서 내부적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임원진과 집행부가 결정되었다.
내부적으로 결성된 임원진과 집행부를 중심으로 창립총회 준비를 시작했다. 근무시간에는 일하고, 그 이후에 모여서 밤을 세워가며 노동조합 규약안과 요구안, 단체협약안을 만들었다. 어설프고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사장을 혼내주자, 우리의 권리를 찾자는 의견들 속에서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고, 다들 노력했던 날들이 지나갔다. 창립총회 장소를 물색하다가, 그 동안 민주노총 활동가와 내부 임원진의 회의 장소를 제공해 주셨던 한 노동조합의 점거농성장에서 창립총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2000년 2월 9일,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직원 2명을 제외하고 전 직원이 모여서 창립총회를 치뤘다. 그리고 창립총회 이후로, 구청 사회복지과에 신고를 하고, 노동조합 인증을 받아서 지금은 1차 단체협상을 진행하고, 이후 계속될 단체협상과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당연히 모자라는 점이 많고, 직원들 사이에 이야기하고 논의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 쟁의행위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지 등등. 사측에 대한 대응도 강경해야 할 때, 대충 넘어가고, 넘어가야 할 때 강경하게 하기도 하고 어수룩한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힘으로 노조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크고, 앞으로도 ‘우리노조’를 중심으로 끝까지 싸우자는 사기는 풍부하다.

투쟁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통신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어서 높은 임금과 사회적인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좋아보이기만 하는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웹서퍼 등의 이름들은 그것 자체가 고소득과 자유분방한 삶을 표상하는 것처럼 사회화되고 있고, 여기에 프리랜서라는 단어까지 붙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업계의 평범한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현실적 갈등은 이러한 것들과 거리가 멀다. 우리 회사에서도 많은 직원들이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내가 기술력이 안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얼마 없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여겼다. 또, 그러한 생각은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서 비싼 사람이 되겠다는 것으로, 회사에서는 경쟁이데올로기를 가속화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보통신 업계의 왜곡된 현실과 더불어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주의와 경쟁이데올로기는 열악한 노동현실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 업계의 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 회사의 직원 중에도 우리는 힘든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조직화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공부해서 경쟁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투쟁의 실마리는 언제나 가장 문제가 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일하는 댓가만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현실적인 것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일단, 우리의 노동현실이 매우 열악한 것이며,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것이라도 쟁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서부터는 노동조합은 그러기 위해서 당연히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미래에 훌륭한 기술자가 되는 것과 현재의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동의받아야 한다. 우리가 노동한 댓가를 받아내자라는 의견이 모아지면서, 조금씩 우리 모두 노동자라는 의식이 생겨가는 것이다.
지금 현재 노동자라는 이름과 현실을 긍정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투쟁의 실마리가 생길 것이다. 모든 면에서 왜곡되어 있는 정보통신 업계, 인터넷 벤처기업의 현실에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노동자’라는 이름을 잉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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