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40호 |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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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악저지, 전체 노동자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
노동법 개악이라는 독약

정부가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을 입법예고했다.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며 정부는 자신만만하게 법안을 제출했다. 경총은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이 법안이 노동유연성 제고에 미달한다며 득달같이 성명을 발표했다. 분위기로만 보면 정부에서 비정규직에 관한 획기적인 보호입법안을 제출한 듯 하다. 그러나 달짝지근한 겉포장 속에 들어있는 것은 쓰디쓴 독약이었다. 그야말로 노동자를 한방에 보내기 위한 독약이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에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현재 노동법 개악에 관해 분명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투쟁 방향 및 계획을 설정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은 비정규직 확대법안이다.

이번 노동법 개악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파견법의 경우 첫째 파견허용업무의 전면적 확대(네가티브 방식)는 한국사회를 비정규노동과 중간착취의 온상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사용자들이 이 법안을 얼마나 환영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법에 묶여 파견노동자를 사용하지 못했던 수많은 업종에서 대대적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며 이 태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둘째 파견허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직접고용 간주규정'을 삭제한 것은 사용자에게 파견노동자를 '1년 더 혹은 그 이상'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도록 해준 조치다. 종전에는 2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면 직접고용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새 법안에 따르면 그 기간이 3년으로 확대된 것이다. 또 '직접고용 간주규정'의 삭제로 인해 사용자는 어떻게든 파견고용의 정당성만을 입증한다면 3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안정적 파견노동을 위한 것이라 떠벌리지만 3년 이내에는 사용자 마음대로 고용기간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 법안은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기간제 고용의 허용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대폭 연장한 것은 파견법 개악안과 똑같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유발한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1년 후 직접고용이라는 압박을 거의 완벽하게 제거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기간제 고용이 3년을 초과할 수 있는 예외사유를 애매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상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말장난만으로 손쉽게 정규직을 기간제 고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또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기간제 노동자를 3년 이상 사용할 경우 해고가 제한된다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입법예고안의 규정은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를 규제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정당한 이유'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일반적 경향은 비정규직의 해고정당성에 대해 사용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정부가 주장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를 도입했다는 것도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정부의 안은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종업종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차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현재의 업종을 더욱 세분화하여 '동종업종이 아닌' 업종을 만들어낼 것이고-말장난에 불과한-이런 업종에 대해 무제한적으로 파견 및 기간제 노동자들을 고용할 것이다. 게다가 설사 위법적 차별을 했다하더라도 그에 대한 징계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전부다. 결국 '조삼모사' 수준도 안 되는 차별금지 조항으로 정부는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노동법 개악은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의 문제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의 노동법 개악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악안의 내용은 파견법과 기간제 근로등 비정규직에 관한 내용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법안이 통과된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나 해고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파견 및 기간제 노동을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는 구조조정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 재고용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사실 이는 97년 IMF사태 이후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일들이다. 이는 직접생산공정이 파견업종에서 제외된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제조업인 완성차 산업의 경우 주 생산라인과 하부 생산라인에 대해 주 생산라인만을 '직접생산공정'으로 인정하게 되면 하부 생산라인은 파견이 가능하게 된다. 즉 지금까지 정규직이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파견 혹은 기간제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법안은 '차별금지'란 명목으로 정규직을 공격하여 비정규직을 더 많이 양산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태는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노동유연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만큼 정규직이 줄어들고 있음은 약간의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눈감고 눈앞의 실리만을 추구했던 우리 노동운동에게 지금의 노동법 개악안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법 개악안을 내놓은 이유

이번 정부의 입법안은 애초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던 공익위원안보다도 후퇴한 최악의 개악안이다. 정부가 이런 개악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신감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정부는 이 정도의 안을 내놓아도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리 거세지는 않으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상반기 투쟁과 최근 2-3년 간 노동자투쟁을 회고해보면 정부의 이런 판단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깊은 골로 인해 노동운동의 조직력은 심각하게 무너졌고 올 해 전개된 주 5일제를 둘러싼 투쟁들은 엄청난 여론의 비난 속에 고립되어버렸다. 현재 노동운동이 안팎으로 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다.
정부는 이런 판단에 기반해 지금까지 진행해온 노동유연성의 제고를 위한 큰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차후 예상되는 '유사근로자단결활동등에관한 특별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의 악법조항 등의 제정이 유연화의 완벽한 제도화라면 이번 개악안은 그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다. 따라서 이번 개악안이 별 '무리 없이' 통과된다면 노동유연화의 확산을 막을 길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또 시기적으로 봤을 때 우선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정부로서는 이에 대해 조만간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또 작년과 올해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사용자들은 파견업종의 확대 및 파견기간 연장 등 비정규직에 관한 규제 철폐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었다.
덧붙여 집권 중반기에 접어드는 지금 노무현정권으로서는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현 정권의 근본적 목표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화와 노동유연화의 완성이라고 했을 때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기 전 그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은 사활적 문제다. 이는 현재 정권이 추진중인 과거사청산, 국보법 개폐 등의 쟁점에 미루어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아직 본격적 레임덕 현상에 빠져들지 않은 지금이 노무현정권에게는 자신의 전략을 추진할 적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 시기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는 것이 가지는 정세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노동법 개악저지는 현재 수세에 몰려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는 투쟁이며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을 분쇄하기 위한 핵심적 투쟁이다.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힘차게 싸우자.

노동법 개악저지를 위해 현 시기 노동운동에 주어지는 과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릴 때가 아니다. 또 '비정규직 차별철폐'라는 수세적 구호로는 지금의 국면을 돌파할 수 없다. 이미 '차별철폐'는 이번 노동법 개악안을 계기로 무력화되어 버렸다. 정규직이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으로 떨어지는 마당에 '차별철폐'가 무슨 소용인가? 만약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번 개악안에 대해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이후 벌어질 사태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노동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노동권을 위해, 그리고 끝이 안 보이는 위기에 봉착한 노동운동을 다시금 굳건히 세워내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활을 건 투쟁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행보는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지금과 같은 개악안을 내놓는 정부와 이른바 '교섭'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 의도는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교섭'의 이름으로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오직 정부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사회적 교섭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회적 교섭에 지금까지 헛된 노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이상의 사회적 교섭을 위한 노력을 중단하고 투쟁의 전면에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사회적 교섭으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할 수는 없다.
또한 허울뿐인 차별금지조항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악조건 속에서 노동하게 될 파견, 기간제 노동자들은 지금 어려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어려운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들의 힘겨운 투쟁이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전체 노동운동의 몫이다. 현재 노동운동의 암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간의 분할을 극복하고 굳건한 연대투쟁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여러 가지 여건을 종합해봤을 때 현재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은 우리에게 만만한 싸움이 아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고 과거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을 되짚어 볼 때-국회 본회의로 넘어가면 사실상 저지는 힘들어진다-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2개월 남짓이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의 노동운동이 이런 긴박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만큼 순발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수세적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정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결이다. 전체 노동자의 총단결, 총투쟁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을 결정적으로 파탄내기 위한 전체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을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자.
주제어
노동
태그
노사관계로드맵 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