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3호 | 200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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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제를 둘러싼 공방의 본질

편집부
-실용적 접근이 아닌 원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연봉제 삼진아웃제?

지난 3월 15일, 주요일간지에 소위 '연봉제 삼진아웃제도' 도입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연봉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의 발언을 빌어 나간 이 기사는, 주요 대기업들이 2-3년 연속적으로 연봉이 내려간 직원들을 자동퇴출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이것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즉각적인 비판성명을 불러 일으켰고, 다음날 전경련 회관을 항의방문한 민주노총이 "연봉제 삼진아웃 방안이 공식 인사 정책으로 검토된 바 없으며 능력과 성과 위주의 평가를 근거로 한 연봉제의 본 취지에 걸맞게 시행될 것"이라는 '비공식적' 해명을 받아내는 선에서 파문은 일단락지어졌다.
삼진아웃제 논란은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지만, 연봉제 전면화의 공세가 이 정도로 잠잠해 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미 새해 벽두부터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의 확산 움직임이 파상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LG그룹은 새해 시무식에서 37개 전계열사에 걸쳐 성과급연봉제를 확대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주요 대기업들이 속속 그 뒤를 따랐다. 경총은 지난 2월 15일 가졌던 회장단회의에서 '2000년 임금조정 기본방향'으로서 개인·집단별 성과보상 시스템 구축을 첫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지난 1월 노동부가, 100인 이상 사업장 5,116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연봉제를 실시하는 기업이 1년새 7.9%가 늘어났으며, 절반이 넘는 기업이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 등을 활용하고 있거나 활용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봉제 확산 움직임은 정부 정책을 통해서도 확고하게 지지되고 있다. 얼마전 노동부가 발표한 '2000년도 임금교섭 권고방향'에 따르면, "학력 경력 등 연공급 위주에서 능력·성과를 반영 하는 직능·직무급 위주 임금결정기준으로의 전환을 유도" "연봉제는 개인단위로, 성과배분제는 기업·부서 단위로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실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 등 임금체계 개편의 시도는 전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미 1992년 경부터 '신인사제도'나 '신경영전략'의 이름으로 임금과 직무체계의 개편시도가 진행되어 왔고, 특히 금융부분과 정부부문을 중심으로 연봉제 등이 상당수 도입돼 왔다. 그렇다면 현재의 연봉제 확산시도가 가지는 특성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는가?

노동 불안정화의 내포적 심화

첫째, 노동의 불안정화가 내포적으로 심화되는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노동유연화 시도는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외주하청 등 주로 인력규모와 고용형태의 탄력화를 특징으로 하면서 노동대중을 서로 이질적인 집단들로 쪼개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비해 연봉제의 전면화는 노동대중의 분절을 개개인의 차원으로까지 진척시키면서 동시에 업적·능력평가 등을 통해 노동과정에 대한 내밀한 통제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연봉제의 경우 1년 단위 임금지급을 계약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저연봉자에 대한 자동퇴직을 유도하는 제도로 이용되기 쉽고, 연봉제 도입으로 고용형태 자체가 계약직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재계의 '삼진아웃제'도입 방침에 대해 노총이 '정리해고제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고 반응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임금체계의 개편

둘째, 현재의 연봉제 확산 시도는 노동대중의 임금상승 요구를 '임금체계 개편'으로 맞받아치려는 자본의 의도에 의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작년 말부터 노동대중의 임금회복 요구가 감지되었고 경기회복에 따라 어차피 일정정도의 임금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소위 '성과급'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탄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임금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생산성이나 물가와 임금을 비교하는 식으로 임금인상폭의 기준과 수위를 주된 쟁점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임금이 결정되는 기준과 방식 자체를 자본의 논리대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올려줄 임금이라면 노동자들의 경쟁도 촉진시킬 수 있고 또 언제든지 삭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올려 주겠다는 것이다.

금융화의 확산

셋째,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의 확산이 스톡옵션제의 확산이나 우리사주조합의 개편과 맞물리면서 금융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 현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앞서의 노동부 '권고방향'에서도 "성과급은 가급적 현금 지급보다 장기적으로 근로자 재산형성, 주거안정, 기업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자사주 분배를 적극 권유"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주식시장의 폭발과 함께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뜨거워진데다가 소위 '억대 연봉 종업원'신화가 확산되면서, 연봉제와 경쟁체제의 도입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상당히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교섭체계의 변화

넷째, 현재의 임금체계 개편시도는 당연하게도 노동자들의 단결과 노사교섭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동요하게 만든다. 임금체계의 개편을 통해 노동대중의 개별화가 상당수준으로 진척되는데다가 집단적인 방식으로 통제되어왔던 가장 핵심적인 부문이 개별교섭에 맡겨지게 됨으로써 노동조합의 존립근거 자체가 무력화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일례로 재계의 관계자는 최근의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것 중의 하나가 '신노사문화'의 강조인데, 그 요체가 노사타협주의의 확산과 현장 단위 노조 통제력의 해체에 맞추어져 있고, 그것을 정책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사교섭체계의 전면적 개편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현재의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 확산의 움직임은 노자관계 재편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만큼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도 단호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모색되어져야만 한다. '삼진아웃제'를 비롯한 연봉제 전면화 움직임에 대한 비판에서 민주노총은, "사용자의 의지가 일방적으로 관철되고, 임금삭감이나 정리해고의 보조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하며, 연봉제나 성과배분제를 도입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노동조합과 사전협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사실 연봉제 도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가장 현실적인 불만은 연봉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과 개인별 임금차등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이 수준에서만 파악하게 되면 쟁점이 '연봉제의 개선을 위한 교섭'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실제 연봉제와 성과배분제가 도입되었던 금융부문에서, 노동조합의 방침이 '연봉제에 대한 반대'에서 '연봉제의 합리적 운영에 대한 개입'으로 바뀌었던 사례들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연봉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거나 '연봉제가 조합원의 실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연봉제와 성과배분제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와 집단적 통제영역의 해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실리적 조합주의'로는 연봉제의 칼날을 막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연봉제나 개별임금계약의 확대는 실리적 조합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실용성' 자체를 반감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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