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61호 | 200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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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비정규개악안 완전 폐기”를 전제로!

사회진보연대
꺼지지 않은 불씨,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지금까지도 노-사-정은 시한을 반복 연기하며, 협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보다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동자운동에 대한 관리전략의 차원에서 노동운동진영의 협상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또한 그들은 국민의 70% 이상이 현재의 개악법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는 잇단 여론조사의 결과들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에게 기간제/파견제 사용의 자유화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완성하는데 관건일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노동법 개악이라는 법제화 수단은 필수이므로, 지금 유보되더라도 국회의 차기 회기에서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은 자명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정리해고를 보다 자유화하고, 파업권을 최소화하며, 노동운동을 제도화하는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혹은 노사관계 로드맵)마저 올해 안에 법제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태다. 이를 가지고 지난 수년간 진척시켜왔던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운동의 제도화’를 완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97년 정리해고의 법제화를 시작으로, 파견법 제정,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근로기준법 개악, 비정규관련법 개악, 신노사관계선진화방안 법제화까지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재편전략의 일관된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두 달 연기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철회될 수 없는 정부/자본의 사활적 요구이다. 그러므로 아직 투쟁의 불씨는 살아있지만, 이번 노동법 개악 투쟁을 비롯해서 기간 진행되어 왔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평가는 앞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국면은 이번 투쟁의 결과가 다음 투쟁의 조건이 되는 끈질기고 일관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권위 안 중심의 사회적 교섭이 가지는 문제

민주노총은 4월 1일 이수호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이 노사정 대화를 통해 수정된다면 6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노동법 개악에 관련해 강한 교섭의지를 보여주었고, 4월 21일에는 11차 중집을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 현실화를 목표로 전향적인 안을 이끌어내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교섭에 있어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였다. 민주노총은 인권위 안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노사정 교섭으로 따낼 수 있는 최대치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교섭을 통해 비정규개악안을 막아내겠다고 공언해 온 이수호 집행부였지만, 협상 테이블만으로 무언가 전향적인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애초부터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교섭을 뒷받침할 대중 투쟁동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지 못하고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쟁점화도 아직 부족한 지금 상황에 대한 평가가 이러한 수세적 결정에 일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노총에게 인권위 권고안이라는 것은 그간 불안정했던 사회적 교섭의 모양새를 그럴듯하게 갖추면서,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성실한 교섭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갑자기 찾아온 호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노총의 교섭전략인 인권위 안을 중심으로 한 입법 추진이 가지는 위험성이다. 오히려 정부와 자본에게 그럴듯한 명분을 준 상태에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인권위 권고안의 내용을 보면, 기간제 고용에 관해서는 <사용사유 제한, 사용기간 제한, 사용사유 외 혹은 기간경과의 경우 정규직 간주, 서명요건주의>를, 파견제 고용에 관해서는 <업종 관련 포지티브방식 현행 유지, 파견기간 2년 현행 유지, 휴지기 확장, 불법 사용사유 발생 시 직접고용 간주, 사용사업주 책임 확대>를, 차별금지에 관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규정, 차별적 처우에 대한 개관적 기준 마련>를 명시하고 있다. 모두가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법안 각각의 개악 내용에 대해 시정을 권고하기 위한 취지의 언급들이다. 즉 인권위 안의 각 조항은 구체적인 규정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정부가 권고 조치를 별다른 충격 없이 흡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조항만 보더라도 동일가치노동에 관한 객관적 판단기준이 함께 명문화되지 않으면 사문화 되어버릴 것이고, 처벌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한 각 사업장 차원에서 충분히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비교적 실효성 있는 조항은 ‘현행 유지’를 명시한 조항 정도만 남는데 이는 실질적인 권리보장과 거리가 멀다. 정부와 자본은 기간제 사유 자유화, 파견업종 확대, 고용기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설사 인권위 안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정부와 자본의 요구 중 하나라도 허용해주거나 이런 요구를 조금씩 수정하여 허용해주게 되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엄청난 개악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인권위 안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이유는 인권위 안이 그래도 비교적 진전된 안이고,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공신력 있는 국가기구의 권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후 교섭에 있어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있다. 최대한의 실리주의적 전략을 통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섭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지도부의 계산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현재 노동자운동이 처해있는 내외적 어려움과 특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유회 사태로 불거진 사회적 교섭문제를 둘러싼 논쟁지형 등을 모두 고려해봤을 때, 이러한 민주노총의 실리주의적 경향이 이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조금이라도 수정하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주장과 교섭을 통한 실리주의적 전략 추구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수정하는 것은 공식화된 동의의 효과가 있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최악의 상황은 애매한 선택기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타협을 (무조건) 거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새겨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법안 수정이라는 애매한 교섭 전략을 즉각 철회하고, “비정규개악안 폐기” “비정규직 철폐”라는 우리의 원칙을 다시금 천명해야 한다.

교섭과 제도화인가 운동과 주체형성인가

이번 노동법 개악투쟁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점은 노사정 교섭을 중심으로 한 투쟁(일정 및 동력)의 배치가 기층에서는 대중운동의 혼란과 투쟁동력의 유실을 낳았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교섭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회만 바라보게 되고, 집회가 잡히더라도 교섭 압박용이 뻔해서 힘을 빠지게 하고 운동의 활력을 약화시켰다. 사실 이는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운동에 대해 관리와 포섭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한 이후, 매 사안마다 거의 빠짐없이 반복되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4월 투쟁의 본격적 투쟁에 앞서, ‘총파업으로 이번 개악안을 막을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라며 기층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교섭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나아가 이후의 노동자운동은 사회적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며,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요컨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총파업은 무의미하며, 사회적 교섭을 동반하지 않는 투쟁은 소모적이라는 말이다.
위에서 말하는 총파업이 불가능한 여건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 조직력과 현장 장악력을 일컫는 것이리라. 또한 그것에는 사회적으로 유포되어 있는 反노조 이데올로기로부터 파생되는 여론에 대한 부담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총파업의 후과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진 조직의 내구력도 감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가능한 여건이 가능한 여건으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는가? 명분과 원칙이 살아있는 투쟁의 경험들이 조직에 꾸준히 쌓여갈 때, 비로소 그들이 말하는 총파업이 가능한 여건들은 만들어 질 것이다. 마르크스도 말했듯,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은 확실시되는 패배, 혹은 여러 가지 패배와 부분적 승리의 혼합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 싸움의 진정한 성과는 즉각적인 결과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해 가는 노동자들의 결합에 놓여 있다. 현재 민주노총에게 이러한 성과들을 쌓아가려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 보인다. 한국사회의 조건상 사회적 합의란 절대 이루어 질 수 없음은 이미 노사정위를 둘러싼 뼈아픈 경험들로 충분히 증명되었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비정규직 주체들의 투쟁을 현장과 지역으로 확대하면서 아래로부터의 투쟁동력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투쟁의 대중적 확장과 새로운 주체형성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안착화하는 과정에서 불안정노동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지배계급의 노동 유연화 전략 속에서 정리해고의 자유화, 비정규직의 확대, 다기능 직무체계, 성과급 위주의 임금체계, 후퇴하는 노동조건 등이 꾸준히 그 강도를 더해 실행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땅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가 이 불안정노동층에 흡수되어 있다. 그 중에서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전략과 노동의 유연화 전략의 모순들을 가장 압축적으로 체화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이미 그 수는 전체 노동자들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점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요구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적 재편전략의 허구성과 한계를 폭로하는 투쟁의 최전선에 놓이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실제로 수많은 기층 사업장에서는 기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같은 사업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혜 내지는 관리의 대상으로만 편협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의 이러한 인식상의 한계는 각 투쟁이 처절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목적을 다시금 정립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비정상적인 예외적 고용형태로 간주하며, 비정규직 투쟁을 단순히 비정규직을 축소하는 투쟁으로만 사고하는 경향은 이제 극복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비정규직은 이미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고용형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고용형태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전면적으로 전복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줄곧 확대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수세적이면서 방어적인 투쟁만을 반복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주체형성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을 확대하는 것이자 여성과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새롭게 세워내는 방향이다. 그리고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스스로 조직하고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방향에 맞춰 전체 민중운동의 차원에서의 기획과 실천이 이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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