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64호 | 200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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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정부가 노무현정부와 닮아가는 까닭은!

블레어주의의 본질

사회진보연대
영국 신노동당, 총유권자 22%의 지지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다.

1997년 총선을 통해 1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은 2001년 총선으로 전후시대 가장 큰 의석 수를 차지한 정당이 되었다. 2001년 선거결과 노동당 413석, 보수당 166석, 자유민주당 52석을 얻었다. 그리고 2005년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36%의 득표율로 355석, 보수당은 득표율 33%로 197석, 자유민주당은 23%의 득표율로 62석을 얻었다.
신노동당의 집권기간 성적표는 매우 뛰어나 보인다.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의 두 번째 경제강국이 되었다는 그들의 자랑에는 유럽연합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실업률, 세계 2위의 금융시장이 뒷받침된다. 그러나 19세기 말 ‘아름다운 시절’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은 부와 권력의 거대한 계급적 이동을 의미한다. 노동당이 전쟁 매파의 상징이 된 것은 노동당의 계급적 기반과 성격이 변했다는 분명한 지표의 하나다.
실제로 영국 노동자의 많은 수가 투표를 포기했다(1992년 키녹이 이끌었던 선거에서 패배한 노동당의 득표는 1,150만 표였지만, 2001년 선거에서 얻은 표는 1,070만 표였다. 2001년은 투표율 59%라는 사상 최하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2005년 선거 투표율은 61%로 근소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불가피한 차악”이라든지, “영국 노동당의 깊숙한 곳에 있는 진정한 노동자 전통과 영혼이 언젠가 되살아 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사실이다. (노동자에 대한) ‘우호가 아닌 공평’이라는 구호처럼, 노동당은 노동자 정당의 성격을 지워내고 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노동자들의 투표를 얻기 위한 온정주의에 입각한 정책구호와 예산지출이 적은 정책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영국 보수당의 와해는 1997년 이후 노동당의 도전 없는 지배의 전제조건이 되었고(보수당 득표는 1992년 1,400만 표. 그러나 1997년 960만 표, 2001년 830만 표로 감소했다), 노동당은 보수당 이슈를 재가공하여 정치적 구심을 잃은 부동층에게 구매력을 높이고 있다. ‘승자독식’의 선거체계는 낮은 득표율과 높은 의석비율이라는 괴리를 낳으며, 노동당이 과잉 대표성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대처의 금융빅뱅과 블레어 정부의 ‘아름다운 시절’

최근 한국경제에 관해 ‘윔블던 효과’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영국이 개최하지만 우승자는 항상 외국인이 차지하는 것과 유사하게, 이제 영국은 초민족 금융기업에게 거래장소만 제공한다는 뜻이다. 대처정부는 1979년 실시한 전면적인 외환거래자유화(대외금융거래 완전자유화)에 이어, 1986년 금융서비스법을 제정해 증권시장과 관련 규제를 철폐했다(은행의 증권업무 허용, 증권수수료 자유화, 증권회사 소유제한과 업무영역 폐지). 그 결과 SG워벅, 베어링, 모건-그레펠 같은 수 백년 전통의 투자은행이 외국자본에 인수되고,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와 같은 미국 투자은행이 런던에 진출하면서 외국계 금융기관의 활동범위가 급속히 늘어났다. 이제 런던의 금융산업은 선물, 옵션, 스왑 등 신종금융상품과 금융기법의 중심지가 되었고, 뉴욕에 이어 세계 2위의 금융시장 지위를 회복했다. 영국의 금융수출은 큰 폭으로 성장하여 대외수지에 기여하며, 금융산업은 GDP의 큰 몫을 차지하고(2002년 영국 GDP의 5.3%를 차지했고, 법률·회계·컨설팅 등 관련서비스분야를 합치면 8.3%에 기여한다), 2003년 현재 104만 명을 고용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결과로 영국사회의 모습은 과거 ‘젠틀맨 자본주의’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교외 건축물이 남부 잉글랜드까지 뻗어 나가고, 일본과 미국 자본이 투자한 실리콘 산업과 제약회사가 급속히 성장했다. 낡은 방직산업 공장은 폐쇄되었고, 철강산업은 갈아엎어졌다. 규제철폐, 낮은 노동비용, 세계언어로서 영어라는 이점 때문에 영국은 유럽단일시장으로 들어오는 해외자본의 가장 유망한 항구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서비스부문(미장원, 커피숍, 가든센터, 소매점 등등)이 강력히 성장하고 실업률이 떨어졌다. 주식거래에 대한 관대한 세금우대는 소규모 저축자들을 주식시장으로 유혹했다. 이제 영국은 과거 제국시대 거품의 축소판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대처리즘이 완전히 바꾸어 놓은 영국사회를 상속받았다. 처음부터 신노동당은 대처리즘을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기보다는 상속받은 모델을 강화할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블레어 혁명>이란 강령선언문은 대처의 성취에 대해 경외에 찬 존경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1992년 총선패배 이후 선언된 신노동당 구상의 핵심은 당헌 4조(“생산, 분배, 교환수단의 공공소유와 모든 산업과 서비스에 대한 인민의 관리와 통제체제”)의 공식적인 폐기 그리고 노조주의와 절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새로 집권한 신노동당은 1993년 이후 4년 간의 팽창을 선물로 여겼고, 보수당이 확립한 경향을 앞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 말은 그런 대로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2.4%였다(앞서 5년 간 평균 3.2%에 비해 다소 감소한 수치다). 1990년대 영국의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빈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2000년대에 들어서 정보통신산업의 위축으로 미국이 입은 타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금융거품은 실업률을 역사상 최저 수치로 낮췄다. 비록 그들 중 40%만 종신제, 풀타임 일자리에 근무했지만... 가계소비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평균 5.7% 상승했다. 영국은 이제 경제쇠퇴가 끝나고 새로운 활력의 시대로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 더하기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영국은 대제국 시대의 금융·상업강국으로 복귀하고, 가장 이상적인 국제자본의 역외서비스기반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시절의 절대적인 노동착취

그러나 영국의 ‘아름다운 시절’의 본질은 부와 권력의 계급적 이동이 탁월하게 성공한 것에 불과하며, 영국의 쇠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대처의 현대화는 생산성과 투자라는 장기적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명백히 부족한 것이었다. 그리고 1997년 이후 GDP 성장은 단위 노동시간 당 산출물의 증대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특히 저기술 분야의 노동시간 증대에 기인한 것이다. 경제전반의 생산성 수준은 G7 국가들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하고 투자는 지체되고 있다. 반면 인프라의 문제는 사유화를 통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기술경쟁에서 뒤쳐진 나라의 자본이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인플레이션을 통한 실질임금 삭감(생산된 가치의 이전)이나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즉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증가뿐이다(특히 후자의 방식을 오늘날 ‘노동신축화’라고 부른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자국통화의 가치절하와 맞물려 1970-80년대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경제파탄의 소용돌이로 휘말릴 가능성이 잠재하며,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은 노동자의 저항을 촉발할 수 있다. 영국이 유로존에 가입한다면(블레어는 유럽단일통화를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유럽중앙은행의 엄격한 인플레이션 통제를 수용해야 하며, 더더욱 절대적인 노동착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유럽연합은 생산성이 뒤쳐진 나라들의 회원가입 기피를 막으려면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결과로 가난한 자로부터 부유한 자에게 거대한 부의 이전이 발생했다(간접세 비율도 대처시대보다 더 높다). 전체적인 불평등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하고, 임금격차 특히 남성과 여성 간 격차는 노동당 집권 시기 동안 꾸준히 커지고 있다.

노동강제복지: 산업예비군 확대와 인플레이션 억제

또한 노동당이 최선의 ‘빈곤퇴치, 범죄근절, 가족장려’ 방법이라고 선전하는 복지개혁, 즉 노동연계복지(워크패어)는 인플레이션 억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된다. 실업을 실업자 개인의 인격과 특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산업예비군’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임금하향 압박을 형성하는 게 숨겨진 목적이다.
신노동당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을 도입했다. 첫 번째 방식은 산업예비군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특히 실업자로 공식 분류되지도 않았고 노동시장 참여를 기대하지도 않았던 편모나 실업자의 다른 가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였다(병자와 장애인도 점차 포함되고 있다). 정부는 그들이 일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복지는 없다며 급여 박탈이라는 위협을 가한다. 한편 자본은 늘어난 산업예비군이 ‘고용능력’(employability)을 갖춰야 한다며 그들의 태도와 기술 훈육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사실상 고용능력이라는 자본의 난해한 표현은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들을 고용하는 자본가에게 직접적인 보조금을 제공한다.
노동당이 채택한 두 번째 방식은 저임금 노동자에게 세금공제(tax credit)라고 부르는 취업자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노동당은 취업자급여를 25세 이상 모든 저임금 노동자로 확대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엄격하게 강제된다면 임금의 최저선을 제공하겠지만, 자본은 정부가 최저선 이상으로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최저임금제도가 없다면 재무성은 취업자급여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최저임금제도는 노동당정부에게 극히 중요하다.

전쟁정당

신노동당의 총선구호 중 하나는 “전쟁은 잊어라, 문제는 경제다”였지만, 블레어 정부를 말할 때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노동당의 지도자들은 보수당보다 더 미국에 아첨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영국이 한국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하는지를 보고 협력관계를 결정하겠다는 미국대사의 말에 놀라 애틀리 정부는 국가보건체계 기금으로 군대를 보냈다. 윌슨은 베트남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데에는 머뭇거렸지만 미국에게 박수를 보냈다. 누구보다도 블레어는 클린턴에게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나도 가겠다’고 맹세했고, 신노동당은 워싱턴의 노예가 되었다. 1998년 10월과 2000년 여름 <사막의 여우> 작전이나 NATO의 78일에 걸친 유고슬라비아 공중폭격 때 블레어는 백악관보다 더 매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부시로 바뀐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노동당의 외교정책은 국내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영국 금융자본과 초민족기업이 커다란 채찍을 휘두르는 미국에게 확실한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블레어의 전쟁정책도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물론 블레어가 주도한 정치개혁과 권위주의적인 정치스타일은 전쟁 결정이 신속하게 내려질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영국 노동당은 당헌개정을 통해 점점 더 노동조합과 관계가 멀어졌고, 블레어 같은 정치엘리트가 주도하는 정당이 되었다. 또한 정부 내각의 권한은 블레어의 사적 참모집단으로 대체되고 있다(블레어는 “장관들도 동의할 것이다”라고 종종 말한다). 이라크 무기 사찰관이었던 켈리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블레어가 전쟁수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정보를 왜곡했다고 폭로된 사실은 노동당 정부의 반민주적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핵보유국인 영국에서 블레어 정부가 “그렇소, 나는 핵 버튼을 누를 것이오”라는 식의 핵 정책을 고수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세계 경제·정치의 동조화

과거와 다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특징은 세계경제의 중심부 국가에게 바람직한 경제정책은 주변부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바람직하다는 가설이다. 미국과 국제경제기구는 바람직한 거시경제, 구조조정 정책을 제시하고, 경제위기를 매개로 강제적인 시행을 명령한다. 이로써 세계 각 나라의 경제정책의 동조화가 발생한다. 금융개방, 노동신축화, 복지개혁과 같은 경제, 사회정책이 서로 수렴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반영하여 정치·정당개혁, 교육개혁도 똑같이 닮아 가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외교군사 정책에 대한 충성심 경쟁도 강요된다. 영국 신노동당과 한국 노무현정권의 각종 개혁조치에서 극히 동일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범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민중의 심판대로”라는 구호가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블레어가 내세우는 ‘금융적 성장체제’, ‘노동신축화와 노동강제적인 복지개혁’의 미래가 극히 불투명하다는 사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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