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는 ‘연대와 확장’이다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관리와 최저임금제도
9.2%의 인상률, 시급 3,100원, 이것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70만 600원. 이 금액이 올해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적용되는 법정 최저임금이다. 법정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자가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의 최하한선이다. 이는 노동자가 생계를 이어가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절대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최소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노동계와 사·정의 입장 차이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최저임금의 기준과 최저임금에 관한 사회적 적정선을 정하자는 노동계 입장보다는, 경제지표에 따라 결정하자는 사·정의 입장이 주로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올해 최임위의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이 노동위원들의 사퇴, 사·정 위원들의 일방적 처리로 귀결된 표면적 이유이다. 올해 노동계에서 요구한 최저임금의 수준은 상용직 노동자 정액급여의 50%인 815,100원이었는데, 사·정이 내세우는 ‘유사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생산성에 대한 고려’에 밀려 무산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과 여성연맹은 ‘최임위 결정 무효화, 최임위 해체’를 주장하며 즉각적으로 투쟁에 돌입한 상태이다. 최저임금투쟁의 집중시기였던 6월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최저임금투쟁의 제 2막이 오른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고, 최저임금투쟁 역시 해를 거듭할 수록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최저임금 현실화’의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 노동자들의 빈곤이 심각한 수준이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시적이고 구조적인 빈곤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위기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문제가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이라는 문제로 곧바로 치환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대부분 위기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문제의 본질을 가리거나 왜곡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최저임금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사회적 기능이 온전히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만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어떻게 관철되는지에 따라, 그리고 다른 정책들과 함께 어떠한 일관된 흐름으로 배치되고 있는지에 따라, 최저임금 제도는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투쟁에 대한 의의와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일보 전진하는 최저임금투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노무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들의 일관된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신자유주의 하 진행되는 다양한 제도 개혁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한국사회 재편 속에서 ‘최저임금제도’와 ‘최저임금투쟁’이 가지는 의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신자유주의 하 최저임금제도의 한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착취관계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재생산하기 위한 조건들, 즉 자본축적의 지속을 결정적으로 보장하는 조건들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어떤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만큼의 급여와 혜택을 제공하는가를 넘어서 그 제도가 착취구조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담당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면, 그 재편의 맥락에서 국가의 정책 및 정책수단, 제도 등이 판단되어야 한다. 1986년 말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권리’의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되고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이 있어왔던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 신자유주의 하 국가의 노동시장 관리
신자유주의 국가의 두드러지는 노동시장 정책은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조성 및 유지와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노동시장 유인이다. 이때 산업예비군의 확대는 장기화된 실업과 청년실업의 증가로 인해 자연스레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국가가 여성-이주-장애-고령 인구의 노동시장 편입을 촉진시킴으로서 인위적으로 그 규모를 확대시키기도 한다. 국가가 이러한 전략을 채택하는 이유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통해 저임금과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해줌으로써 기업의 노동력 구매에 긍정적 효과를 주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이는 경제의 금융화가 가속화되면서, 단기주의가 확산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반복되는 추세에 조응하는 노동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시장 정책은 ‘실업률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늘고 있는 체감실업률’이라는 모순된 상황 전개를 통해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체감실업률의 급격한 증대는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노동시장 왜곡(경쟁적 노동시장에서 취업과 실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단기 실업자의 수 증가)과 노동시장의 양극화(중간소득 일자리 감소와 최상 및 최하위 일자리 증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산업예비군 속해 있는 사람들을 큰 저항 없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유인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시장 내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정책 전반에 대한 ‘개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시장과 복지의 연계’가 등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해체’는 단순히 복지의 축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의 양적 축소의 문제는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세계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위계화된 위상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핵심적인 문제는 복지 및 사회정책이 케인즈주의와 결합된 보편적인 권리의 방어라는 측면에서 경제구조조정을 위한 유인 및 관리의 측면으로 이전하는 경향이다. 과거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은 사회적 위험(실업 등)에 빠진 시민들로 하여금 생활상의 심각한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탈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면,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핵심은 사회 전반(복지의 영역조차도)을 시장과 밀착시키면서 이들을 재상품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노동당의 경우 복지개혁을 통해 임금비용이 가능한 한 저렴한 상태에서 산업예비군과 노동시장이 큰 마찰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추동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저임금 고용에 대한 보조금의 개발과 보호장치 마련’이라는 측면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측면은 노동가족세금공제(Working Family Tax Credit), 국가육아전략(National Childcare Strategy), 국가최저임금(National Minimum Wage) 등의 정책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구직 노력을 하지 않는 실업자에게 복지급여 상의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강화하는데, 이는 복지의 수급이 최악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보다 열등한 선택이 되도록 하기 위한 ‘형벌로서의 복지’를 실현한 것이다. 요컨대 영국은 노동으로의 인센티브 강화와 사회복지에서의 압력이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사회정책을 재조정함으로써 경제 구조조정에 적합한 노동시장 환경을 노동자들의 저항을 우회하면서 조성해낸 셈이다.
- 한국사회에서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산
IMF 이후 제기되는 사회적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빈곤의 확산이고, 이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가속화된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의 심화는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에 따른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필연적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시장’, 즉 자본에게 부여하여 경쟁적 노동시장을 필연적으로 창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저임금노동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125만 명에 이르고 있고, 그 중 비정규직은 118만 명(94.2%)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그 중 기혼여자가 65만 명(51.8%)으로 가장 많고, 그 외 기혼남자 25만 명(19.8%), 미혼여자 19만 명(14.8%), 미혼남자 17만 명(13.5%)순으로 나타난다. 이는 가구의 생계를 담당하는 기혼자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령계층별로는 55세 이상 37만 명(29.6%), 25세 미만 26만 명(20.5%)으로 고령층과 저연령층이 절반을 차지했지만 25세 이상 55세 미만 계층도 62만 명(49.9%)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통계결과는 저임금 노동이 가계의 생계를 담당하는 기혼자와 노동력 활용이 가장 활발한 연령층에도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 전통적인 빈민층이 근로능력이 취약한 장애, 아동, 노인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데 비해, 현재는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의 증가가 빈곤의 주된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고착화는 한국사회의 위기를 대변하는데, 그러므로 노무현 정부에게는 이에 대한 관리가 사활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관리’라 함은 (임금상승 압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면서,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효과적으로 무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반영된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계를 보장한다는 취지와 다른 위기관리 정책으로서의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 최저임금, 노동자 권리의 확장인가 지배계급의 관리인가 : 노동시장 유인과 임금하향 압박에 기능하는 최저임금제도
최저임금제도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따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른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협약의 외형 속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관리하고 전사회적으로 임금하향을 압박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최저임금제도는 앞서 살펴본 영국의 사례처럼, ‘노동으로의 인센티브 강화와 사회복지 상의 압력’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제도는 지금 도입 추진중인 EITC(근로소득보전세제)와 함께,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노동 일색인 노동시장에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후자의 문제인데, 그것은 최저임금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저임금 수준의 소폭 인상 정도는 허용하지만,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자본으로 하여금 최저선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하도록 압력을 넣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최저임금 영향률이 3.2%에 그치고 있고, 일부 공공부문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현실의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경쟁적 노동시장’에서의 ‘가혹한’ 노동을 은폐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묶어 놓는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투쟁, 현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 발짝 전진할 것인가?
최저임금투쟁은 이제 노동자운동을 포함한 전체 민중운동 내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연맹 소속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매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노동자운동 내에서 미조직 대상이자 소외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주체화되는 과정은 분명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상징성을 획득하였다. 최저임금투쟁이 침체일로에 있던 노동자운동의 對사회투쟁에 유의미한 활력소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드러나듯이 미조직 노동자로서 노동권의 예외자로 존재해왔던 저임금 불안정노동 종사자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경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투쟁의 중요도는 매우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저임금투쟁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신자유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현 정부의 기만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허구적 사회협약 및 사회정책 개혁의 본질을 폭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제도가 현 정부가 주력하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허구적 사회협약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근로연계복지’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저임금투쟁의 사회적 확장은 매우 가능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 최저임금투쟁에 대한 비판적 지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최저임금투쟁의 실리적 경향이다. 이는 최저임금투쟁이 최저임금위원회를 압박해서 높은 인상률을 쟁취하는 방향으로 경도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6월 인상률을 결정하는 최임위가 열리는 시기에만 최저임금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임금투쟁이 협상일정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불안정노동과 이를 양산하는 ‘경쟁적 노동시장’이 최저임금을 사실상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고임금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는 점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구조적으로 저임금을 강제하는 최저가 낙찰제도나 용역제도 등은 최저임금투쟁의 당면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투쟁이 확장된 대중투쟁으로 온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매개로 확장된 투쟁의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각 지역과 사업장에서 일상적 투쟁으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최저임금투쟁을 노동자들의 공동임금투쟁으로서 적극적으로 사고하여 지역 연대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 살려야 한다.
실질소득의 감소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가 축소되는 가운데 단지 임금최저선의 인상이라는 데 국한된다면 최저임금투쟁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권리의 확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노동시장 통제전략에 조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기조가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대를 통한 자본의 이윤율 제고’이고, 이를 위한 노동시장 유인책, 광범위한 산업 예비군 조성을 통합적으로 입안하고 보았을 때, 최저임금투쟁은 노동자들의 소극적 방어의 측면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투쟁의 의제를 확장하고 다른 운동들-빈곤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나 지역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일상적인 지역 공동투쟁을 활성화하는 것은 최저임금투쟁이 현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 발짝 전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관건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는 ‘연대와 확장’이다.
기존 우리의 운동은 부문과 영역의 구분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는데 이는 정권과 자본의 사회재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었다. 지난 수 년 동안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구조화되는 과정을 경험했고, 정권과 자본이 선동하는 ‘대세’에 밀려 그 폭력에 무기력했던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전체 민중운동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대중적인 운동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각 운동들이 영역과 부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도 개선’투쟁에 머무르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대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게도 급부를 제공하고 생계급여의 수준을 높이는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전의 생활보호제도에 비해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정을 밟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의 강화는 노동유연화가 양산하는 실업자 및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여 사회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활성화 역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1997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 내 공익위원들이 한 해는 노동계 편을 다음 해는 재계 편을 드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관리해오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임금제도는 여전히 한계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이다. 최저임금제도가 (1인 최저생계비에 비해 최저임금이 높게 인상되면서) 복지수급 대상자들에 대한 노동시장 유인효과가 점차 강해지고, 정부의 노동시장 부착형 복지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 실제 강하게 임금을 하향압박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최저임금투쟁을 단면적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권은 내용에서는 비정규직과 빈곤층을 ‘적당히’ 보호하는 ‘비정규보호법안’이나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등 사회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올해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정에서 정부측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이 소폭 상승되는 수준에서 합의안을 제출했다. 합의라는 틀을 추구하면서 비정규직이나 실업․최저임금의 문제를 적당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그만 성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투쟁의 원칙이고, 기존 운동의 영역에 갇히지 않는 열린 구조의 대중운동으로의 확장, 연대를 통해 지역과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주체에 기반한 운동공간의 창출이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했을 때,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의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기만성을 경계하면서, 대중운동의 확장과 발전을 가져오는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최저임금투쟁의 발전방향을 찾아야 한다.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고, 최저임금투쟁 역시 해를 거듭할 수록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최저임금 현실화’의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 노동자들의 빈곤이 심각한 수준이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시적이고 구조적인 빈곤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위기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문제가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이라는 문제로 곧바로 치환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대부분 위기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문제의 본질을 가리거나 왜곡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최저임금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사회적 기능이 온전히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만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어떻게 관철되는지에 따라, 그리고 다른 정책들과 함께 어떠한 일관된 흐름으로 배치되고 있는지에 따라, 최저임금 제도는 전혀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투쟁에 대한 의의와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일보 전진하는 최저임금투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노무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들의 일관된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신자유주의 하 진행되는 다양한 제도 개혁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한국사회 재편 속에서 ‘최저임금제도’와 ‘최저임금투쟁’이 가지는 의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신자유주의 하 최저임금제도의 한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착취관계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재생산하기 위한 조건들, 즉 자본축적의 지속을 결정적으로 보장하는 조건들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어떤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만큼의 급여와 혜택을 제공하는가를 넘어서 그 제도가 착취구조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 속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담당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면, 그 재편의 맥락에서 국가의 정책 및 정책수단, 제도 등이 판단되어야 한다. 1986년 말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권리’의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되고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이 있어왔던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 신자유주의 하 국가의 노동시장 관리
신자유주의 국가의 두드러지는 노동시장 정책은 광범위한 산업예비군 조성 및 유지와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노동시장 유인이다. 이때 산업예비군의 확대는 장기화된 실업과 청년실업의 증가로 인해 자연스레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국가가 여성-이주-장애-고령 인구의 노동시장 편입을 촉진시킴으로서 인위적으로 그 규모를 확대시키기도 한다. 국가가 이러한 전략을 채택하는 이유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통해 저임금과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해줌으로써 기업의 노동력 구매에 긍정적 효과를 주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이는 경제의 금융화가 가속화되면서, 단기주의가 확산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반복되는 추세에 조응하는 노동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시장 정책은 ‘실업률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늘고 있는 체감실업률’이라는 모순된 상황 전개를 통해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체감실업률의 급격한 증대는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노동시장 왜곡(경쟁적 노동시장에서 취업과 실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단기 실업자의 수 증가)과 노동시장의 양극화(중간소득 일자리 감소와 최상 및 최하위 일자리 증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산업예비군 속해 있는 사람들을 큰 저항 없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유인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시장 내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정책 전반에 대한 ‘개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시장과 복지의 연계’가 등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해체’는 단순히 복지의 축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의 양적 축소의 문제는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세계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위계화된 위상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핵심적인 문제는 복지 및 사회정책이 케인즈주의와 결합된 보편적인 권리의 방어라는 측면에서 경제구조조정을 위한 유인 및 관리의 측면으로 이전하는 경향이다. 과거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은 사회적 위험(실업 등)에 빠진 시민들로 하여금 생활상의 심각한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탈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면,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의 핵심은 사회 전반(복지의 영역조차도)을 시장과 밀착시키면서 이들을 재상품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노동당의 경우 복지개혁을 통해 임금비용이 가능한 한 저렴한 상태에서 산업예비군과 노동시장이 큰 마찰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추동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저임금 고용에 대한 보조금의 개발과 보호장치 마련’이라는 측면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측면은 노동가족세금공제(Working Family Tax Credit), 국가육아전략(National Childcare Strategy), 국가최저임금(National Minimum Wage) 등의 정책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구직 노력을 하지 않는 실업자에게 복지급여 상의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강화하는데, 이는 복지의 수급이 최악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보다 열등한 선택이 되도록 하기 위한 ‘형벌로서의 복지’를 실현한 것이다. 요컨대 영국은 노동으로의 인센티브 강화와 사회복지에서의 압력이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사회정책을 재조정함으로써 경제 구조조정에 적합한 노동시장 환경을 노동자들의 저항을 우회하면서 조성해낸 셈이다.
- 한국사회에서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산
IMF 이후 제기되는 사회적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빈곤의 확산이고, 이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가속화된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빈곤의 심화는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에 따른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필연적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시장’, 즉 자본에게 부여하여 경쟁적 노동시장을 필연적으로 창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저임금노동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125만 명에 이르고 있고, 그 중 비정규직은 118만 명(94.2%)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그 중 기혼여자가 65만 명(51.8%)으로 가장 많고, 그 외 기혼남자 25만 명(19.8%), 미혼여자 19만 명(14.8%), 미혼남자 17만 명(13.5%)순으로 나타난다. 이는 가구의 생계를 담당하는 기혼자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령계층별로는 55세 이상 37만 명(29.6%), 25세 미만 26만 명(20.5%)으로 고령층과 저연령층이 절반을 차지했지만 25세 이상 55세 미만 계층도 62만 명(49.9%)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통계결과는 저임금 노동이 가계의 생계를 담당하는 기혼자와 노동력 활용이 가장 활발한 연령층에도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 전통적인 빈민층이 근로능력이 취약한 장애, 아동, 노인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데 비해, 현재는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의 증가가 빈곤의 주된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고착화는 한국사회의 위기를 대변하는데, 그러므로 노무현 정부에게는 이에 대한 관리가 사활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관리’라 함은 (임금상승 압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면서,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효과적으로 무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반영된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계를 보장한다는 취지와 다른 위기관리 정책으로서의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 최저임금, 노동자 권리의 확장인가 지배계급의 관리인가 : 노동시장 유인과 임금하향 압박에 기능하는 최저임금제도
최저임금제도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따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른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협약의 외형 속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관리하고 전사회적으로 임금하향을 압박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최저임금제도는 앞서 살펴본 영국의 사례처럼, ‘노동으로의 인센티브 강화와 사회복지 상의 압력’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제도는 지금 도입 추진중인 EITC(근로소득보전세제)와 함께,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노동 일색인 노동시장에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후자의 문제인데, 그것은 최저임금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저임금 수준의 소폭 인상 정도는 허용하지만,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자본으로 하여금 최저선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하도록 압력을 넣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최저임금 영향률이 3.2%에 그치고 있고, 일부 공공부문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결과적으로 현실의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경쟁적 노동시장’에서의 ‘가혹한’ 노동을 은폐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묶어 놓는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투쟁, 현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 발짝 전진할 것인가?
최저임금투쟁은 이제 노동자운동을 포함한 전체 민중운동 내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연맹 소속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매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노동자운동 내에서 미조직 대상이자 소외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주체화되는 과정은 분명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상징성을 획득하였다. 최저임금투쟁이 침체일로에 있던 노동자운동의 對사회투쟁에 유의미한 활력소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드러나듯이 미조직 노동자로서 노동권의 예외자로 존재해왔던 저임금 불안정노동 종사자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경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투쟁의 중요도는 매우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저임금투쟁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신자유주의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현 정부의 기만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허구적 사회협약 및 사회정책 개혁의 본질을 폭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제도가 현 정부가 주력하는 ‘경쟁적 노동시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허구적 사회협약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근로연계복지’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저임금투쟁의 사회적 확장은 매우 가능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 최저임금투쟁에 대한 비판적 지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최저임금투쟁의 실리적 경향이다. 이는 최저임금투쟁이 최저임금위원회를 압박해서 높은 인상률을 쟁취하는 방향으로 경도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6월 인상률을 결정하는 최임위가 열리는 시기에만 최저임금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임금투쟁이 협상일정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불안정노동과 이를 양산하는 ‘경쟁적 노동시장’이 최저임금을 사실상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고임금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는 점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구조적으로 저임금을 강제하는 최저가 낙찰제도나 용역제도 등은 최저임금투쟁의 당면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투쟁이 확장된 대중투쟁으로 온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매개로 확장된 투쟁의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각 지역과 사업장에서 일상적 투쟁으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최저임금투쟁을 노동자들의 공동임금투쟁으로서 적극적으로 사고하여 지역 연대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 살려야 한다.
실질소득의 감소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가 축소되는 가운데 단지 임금최저선의 인상이라는 데 국한된다면 최저임금투쟁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권리의 확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노동시장 통제전략에 조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기조가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대를 통한 자본의 이윤율 제고’이고, 이를 위한 노동시장 유인책, 광범위한 산업 예비군 조성을 통합적으로 입안하고 보았을 때, 최저임금투쟁은 노동자들의 소극적 방어의 측면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투쟁의 의제를 확장하고 다른 운동들-빈곤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나 지역운동-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일상적인 지역 공동투쟁을 활성화하는 것은 최저임금투쟁이 현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한 발짝 전진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관건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투쟁이 나아가야 할 바는 ‘연대와 확장’이다.
기존 우리의 운동은 부문과 영역의 구분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는데 이는 정권과 자본의 사회재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었다. 지난 수 년 동안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구조화되는 과정을 경험했고, 정권과 자본이 선동하는 ‘대세’에 밀려 그 폭력에 무기력했던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전체 민중운동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대중적인 운동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각 운동들이 영역과 부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도 개선’투쟁에 머무르면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대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게도 급부를 제공하고 생계급여의 수준을 높이는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전의 생활보호제도에 비해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정을 밟은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의 강화는 노동유연화가 양산하는 실업자 및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여 사회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활성화 역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1997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 내 공익위원들이 한 해는 노동계 편을 다음 해는 재계 편을 드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관리해오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저임금제도는 여전히 한계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이다. 최저임금제도가 (1인 최저생계비에 비해 최저임금이 높게 인상되면서) 복지수급 대상자들에 대한 노동시장 유인효과가 점차 강해지고, 정부의 노동시장 부착형 복지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 실제 강하게 임금을 하향압박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최저임금투쟁을 단면적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권은 내용에서는 비정규직과 빈곤층을 ‘적당히’ 보호하는 ‘비정규보호법안’이나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등 사회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올해 최저임금 인상 결정과정에서 정부측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이 소폭 상승되는 수준에서 합의안을 제출했다. 합의라는 틀을 추구하면서 비정규직이나 실업․최저임금의 문제를 적당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그만 성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투쟁의 원칙이고, 기존 운동의 영역에 갇히지 않는 열린 구조의 대중운동으로의 확장, 연대를 통해 지역과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주체에 기반한 운동공간의 창출이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했을 때, 신자유주의 위기관리정책의 조삼모사(朝三暮四)식 기만성을 경계하면서, 대중운동의 확장과 발전을 가져오는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최저임금투쟁의 발전방향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