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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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275호 | 200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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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X-파일 정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X-파일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과 지배세력의 노림수

사회진보연대
지난 7월 21일 MBC 이상호 기자의 취재와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 舊안기부의 도·감청 테이프(이른바 ‘X-파일’)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국가정보원에 대한 검찰의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 그리고 관련된 두 고위관료(홍석현 주미대사와 김상희 법무차관)의 낙마는 X-파일이 지닌 잠재적 폭발력을 가늠케 하고 있다. 현재 검찰의 수사는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유무와 X-파일의 유출 경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노회찬 의원이 X-파일 녹취록을 근거로 전·현직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이후 이제는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공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현재 지배세력 상호 간의 ‘진실게임’ 공방, 그리고 검찰의 ‘엄정한 수사’및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요구 등이 서로 맞물려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운동진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정세는 대중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모는 남한의 사회구조를 전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삼성과 舊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정-경-검-언’의 검은 유착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사법적 해결방식,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투명한 정치를 이루겠다는 발상은 현재 지배세력의 ‘정치개혁’ 구상과 어떤 차별점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X-파일을 둘러싼 진행과정과 이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면 이는 지배세력에 대한 현재적인 비판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대중을 문제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최종적인 해결을 사법적 수단에 위임함으로써 오히려 지배세력에 종속시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X-파일 공방: 부패한 舊세력과 ‘개혁세력’ 간 대결구도의 재현

X-파일은 부패하고 낡은 舊정치인들과 이들과 유착관계로 얽혀있는 세력과 이들을 ‘청산’하려는 세력 사이의 대결구도의 연속이다. 그 정점에 위치한 삼성그룹은 지난해 순익만 1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초민족적 자본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증권거래소의 통계에 의하면 삼성전자의 상장 주식 총액은 7월말 현재 92조 378억원으로 단일기업으로서 주식시장에서 무려 1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에 대해 삼성이 행사하는 자본의 위력은 거미줄같이 촘촘한 인맥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로 이 삼성그룹이 현재 X-파일의 당사자로서 한겨레신문과 MBC, 열린우리당 일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삼성은 현정부의 주된 협력세력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舊세력의 또다른 축인 한나라당의 다수는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에 초점을 맞추며 현행법을 위반하는 X-파일의 공개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대결구도는 순식간에 삼성재벌과 한나라당을 위시한 부패하고 낡은 ‘청산의 대상’의 저항과, X-파일을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진실규명’에 대한 요구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과 신자유주의가 공명(共鳴)하는 방식

부패하고 낡은 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은 남미의 인민주의 세력의 집권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원한(怨恨)의 정치’를 통한 위기관리 방식이다. 인민주의는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직접적인 분노의 표출, 사회적 갈등과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엘리트와 기득권세력으로 이루어지는)가시적인 ‘공공의 적’을 발명하고 악마화한다. 남미 인민주의 정권들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개혁과 복지확충을 약속하며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지만 지난 4월 축출된 볼리비아의 구티에레즈 정권이나 브라질에서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올랐다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PT당의 룰라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예산 삭감과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철저한 신자유주의 세력으로서 면모를 유감 없이 과시한다.
남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연원은 1960-70년대 재야세력과 야당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재야세력은 정권의 반공-발전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념을 갖추지 못한 채 급격한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민중’이라는 모호한 수사에 의존하고 1971년 대선 패배 뒤 재야세력과 연대하는 DJ는 낙후된 호남지역 대중들의 불만과 원한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인민주의적으로 관리·봉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舊여권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재벌의 ‘족벌경영’체제는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DJ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사상 첫 정권교체의 당사자가 되는데, DJ 집권 시 국난극복의 돌파구로 지배세력이 선택한 것은 범국민적으로 전개된 ‘금모으기 운동’과 (이보다 열기는 훨씬 낮았지만) ‘제2건국운동’을 통한 대중동원이었다. 또한 조․중․동을 겨냥한 수구언론 세력에 대한 비난과 15대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낙선․낙천운동’ 역시 舊세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을 통해 현재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결과로 나타난 원한의 정치를 통한 위기관리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쟁점을 통해 조직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은 친일·독재·부패세력으로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舊세력 ‘수구보수’로 정의하고, 현재의 집권세력을 항일·민주화운동·개혁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현재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정당화한다.(DJ정권과 현정권 들어 속속 드러나는 무수한 금융비리나 열린우리당의 의장이 부친의 ‘친일경력’으로 사퇴하는 모습 등은 ‘개혁세력’이 조선일보 등으로부터 조롱받는 단초를 제공한다.) X-파일을 둘러싼 공방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지배세력의 통치 스타일은 구래 민중의 민주화운동의 쟁점을 화석화하며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가공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재벌해체와 정경유착을 둘러싼 사이비 논쟁이다.
당초 1980년대 정경유착에 대한 고발과 (독점)재벌해체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폭압적인 파쇼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중을 수탈하는 독점자본의 권력을 해체함으로써 남한 자본주의의 구조를 변혁한다는 맥락에서 출현한 것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이는 각각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며 주식시장에서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부정부패 근절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의제로 탈바꿈되었다. 재벌에 대한 공격은 ‘진보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운동진영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결국 당시의 재벌해체는 소액주주의 권리 확보와 투명한 경영 등을 위한 것으로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과거의 구습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개혁은 대중으로부터 정당을 분리하는 원내정당화와 미디어로 제한된 선거운동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개혁’은 舊세력의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지만 실상은 정치의 미디어화와 전문가주의를 조장하며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능동적 개입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현재 ‘정-경-검-언 유착’이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X-파일이 공개되고 관련자가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는 착취구조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체제에 대한 현재화된 비판과 대중들의 능동적인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최선의 경우 단지 특별법/특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문가적이고 사법적인 해결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대리적인 정서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최선의 경우’라고 했던 것은 ‘진상규명’에 대해서조차 현 집권세력이 진정한 의지를 지닌 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인데, 8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따라서 과거의 ‘정경유착’이라는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삼성에 대한 비판은 초민족적 자본으로 거듭난(?) 삼성이 가지고 있는 자본의 권력을 해체하는 데 미달할 뿐 아니라 현재 남한사회의 위기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할 現 집권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승부카드’로서 X-파일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개방한다. 현재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의 방식은 사회·경제 구조의 청산을 동반하지 않는 단지 ‘인적 청산’에 머무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청산’은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배세력 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는 활용될 뿐이다. 해방공간(1945-48)에서 민중들의 ‘친일파 청산’이라는 요구는 일제와 결탁한 대지주·자본가·지식인에 대한 단죄 뿐 아니라 새로운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경제적인 발전전망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극히 정세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 대한 전폭적 지지나 노동자·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군사독재 정권의 한반도 정책과 노동정책을 답습하면서도 과거 민주화 운동을 현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간판’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배세력이 과연 ‘과거사 청산’을 어떤 노림수 속에서 제기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민간이 참여하는) 국가기관을 경유하며 X-파일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혹은 규명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다. 지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에서 노동자의 죽음이나 국가개입의 (법리적인 관점에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의문사일 경우 대부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민주화보상심의회에서는 이른바 ‘민주화 기여도’를 만들어서 60%, 75% 등으로 기여도를 계량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때 특별법을 통해 X-파일의 진상을 규명할 기구를 만든다고 하여도 과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밝혀질 수 있는 진실이란 얼마나 될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배세력의 노림수와 운동진영의 무능력

‘과거사 청산’,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정치개혁’ 등 현재 집권세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구상들은 시민운동 진영을 규합하며 이른바 ‘진보’로 포장되고 있는데 이러한 구상들의 공통점은 비판의 시각이 철저하게 과거로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며 따라서 현재화된 체제 비판을 봉쇄하고, 지배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민중 스스로의 자기-조직화를 고사(枯死)시키는, 모든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 속에서 정치의 공간으로부터 대중들 스스로가 소외되는 ‘정치의 위기’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참여정부 전반기 보고서>의 결론으로 제시된 “정치적 분열과 소모적 정쟁 고착화시키는 지역구도 극복”이나, “적대적 역사에서 비롯된 분열 요인, 과거사 정리로써 해소”한다는 발상에서 현재 남한 사회의 구조적 위기의 원인을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역주의’와 ‘과거사’에 책임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에 대해 과거 야당세력의 책임을 완전 면제해줄 수 있겠는가?)
또한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설정하는 ‘공공의 적’에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수구보수’ 세력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나타났듯이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대기업 노동자의 특권 양보=전체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증대함으로써 불안정 노동층으로 재편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 현재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이러한 적대적 인식은 이른바 ‘국민여론’ 속에 깊숙히 침투하여 불황과 위기의 책임을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층을 확대·양산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지배세력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운동진영의 무능력이다. 이번 ‘X-파일 공대위’ 결성에서도 드러나듯이 오히려 민중운동 내부에서는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비판의 초점을 화석화하고 사법적 수단을 통한 문제해결에 의존하는 운동방식을 답습한다는 것이다. 구래의 특권세력과 집단에 대해 지배세력이 조직하는 ‘원한과 분노’를 ‘진보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대해 지지·협력하는 것은 큰 오판이 아닐 수 없으며 (설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교묘한 방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지배세력의 위기관리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이는 결국 자기 스스로가 ‘원한의 정치’에 사로잡혀 지배세력의 일원이 되거나 적어도 똑같은 방식으로 지배세력에 맞서려는 ‘거울쌍 논리’를 동원하면서 정치에서 대중의 능동적 개입을 질식시킬 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배세력의 가장 큰 비리와 부정은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탄압하고 체제 위기의 비용을 전가하면서 그/녀들의 희생을 이끌어내는데 일치단결하며 폭력과 기만을 활용한 자본-국가의 ‘합법적’ 결탁이 아닌가? 최저임금제, 자유무역협정 체결, 구조조정의 강행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제도의 개혁을 통한 대외신용도 제고와 주식시장 부양정책 등 사적 자본을 살찌우기 위해 국가가 마련한 법-제도 개혁을 통해 얼마나 엄청난 부와 자산을 자본이 향유하게 되었던가? 비리와 부정부패를 규명하자는 것이 현존하는 착취와 수탈의 구조에 대한 비판과 괴리되고, 단지 과거 몇몇 인사들의 ‘불법적인’ 금품수수를 들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성과는 민중과 운동진영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17대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견고한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인 남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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