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의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몰락뿐이다
강승규 비리사태와 민주노총 집행부의 안이한 사태인식에 부쳐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되었다. 민주노총의 핵심 임원인 수석부위원장이 파렴치하게도 사용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여 구속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조합원들과 사회운동 진영은 이번 비리 사건을 근본적이고 철저한 혁신의 계기로 삼고 민주노총이 환골탈태(換骨奪胎) 할 수 있도록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민주노총 혁신과 대중투쟁을 책임질 비대위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러한 요구를 외면하고 중집, 상집 회의를 통해 결국 현행체제 유지 - 조기선거로 입장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1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어쩌면 비리사건 그 자체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하반기 투쟁‘을 위해서 현행체제를 유지하고 내년에 조기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민주노총의 집단적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안이한 상황인식, 종파적인 태도가 결국 민주노조 운동 전반을 몰락시킬 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출발점을 확인하자
87년 이후 폭발한 남한 사회의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민주노조운동‘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자주적이며 진정으로 조합원 대중에 기반하는 노동조합, 바로 ‘민주‘노조를 세워내고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때까지 한국노총 소속의 어용노조 집행부들은 일상적으로 사용자가 제공하는 뇌물을 받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해왔다. 이들은 조합원 대중의 요구가 폭발하지 않도록 자본측의 관리를 대행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기 때문에, 87년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현장의 1차적인 과제는 어용노조를 척결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은 단위 노조를 넘어 전국 차원에서도 한국노총의 어용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총연맹 조직을 건설하자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시도는 90년 전노협 건설을 거쳐, 비록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기는 했지만 95년 민주노총의 건설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민주성은 총연맹 조직의 건설을 거치면서 오히려 지속적으로 쇠퇴해왔다. 많은 단위노조가 조합원 대중의 자발적 투쟁을 끌어내고 결집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을 대리해 사측과 협상하고 이 결과에 따라 현장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해갔다. 총연맹은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거쳐 98년 정리해고제를 합의한 노사정위원회, 2005년 노사정대표자회담에 이르기까지 정부, 자본과 대등한 협상주체로 인정받는 데 몰두해왔다.
자본은 노조를 다시 조합원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지도부에 대한 물질적 회유도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와 같은 사건이 은밀하게 확산되었고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결국, 노조 집행부의 비리는 타락한 개인의 품성의 문제가 아니다. 금품비리는 자본이 노동자 조직을 관리하고 이를 위해 노조운동의 지도자를 회유, 포섭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노조운동이 이미 조합원 대중의 자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운동‘조직이 아니라 자본의 현장관리를 대행하는 ‘관리‘기구로 변질되면서 현실이 되고 구조화된다.
따라서 이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자주성, 민주성이라는 기본적인 정신을 상실하고 다시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질되어 온 역사가 총연맹 핵심간부의 비리라는 형태로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현재의 민주노총 집행부가 노사정 협상에 몰두해온 과정, 민주노총이 조합원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노사정 협상 틀에서 관리하려고 했던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도부의 사퇴는 민주노총 혁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일진전을 위한 출발점이다
단위노조에서도 노조 집행부의 비리 사건은 간부 한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해당 집행부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 관행이다. 노조의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리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책임지는 것은 민주노조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민주노조의 총연합조직이라는 민주노총에서 이러한 상식이 깨지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 현 지도부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을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노조 지도자의 비리는 노조운동 자체의 변질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해당 집행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물론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평가하고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노력에 백의종군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과 그 지명자인 위원장만이 ‘무한책임‘을 진다는 식의 민조노총 기자회견 발표는 결국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현 지도부는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내세운다. 그러나 지도부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상황, 이미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하반기 투쟁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비정규직 투쟁 등 절박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팔아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11일 기자회견 이후 주요 언론들은 현 체제유지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하반기 투쟁을 사전에 억누르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민주노총 나아가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도부의 얼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활로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선명성과 투쟁성이라는 낡은 구호를“ “국가경제에 기여할 방안을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로 대체하라고 주장한다. 한겨레신문도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하여 “지도부 사퇴는 내부 혁신을 뒤로 한 채, 선거 정치 등 조직 안팎의 정치적 긴장만을 전면화시킬 우려가 있었으나 일단 현 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대정부 투쟁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노사정 협상에 복귀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론의 주장에서도 확인되듯이 지금 지배세력은 내부로부터의 혁신의 요구를 강경파의 정파적 이해관계의 산물로만 매도하고 민주노총의 위기가 과도한 정치투쟁에서 기인한 것으로 호도하며,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하반기 투쟁은 물론 중장기적인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예봉을 꺾으려 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 가는 것으로는 이러한 정세를 돌파할 수 없다. 오히려 내부에서의 불신과 외부에서의 공격에 휘말려 하반기 투쟁 자체가 좌초될 위험이 크다. 더구나 지금의 사태를 명확히 규정하고 철저한 혁신을 시작하는 것과 하반기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은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다. 현안 대중투쟁을 조합하여 적당히 대중을 동원하고 정부와 협상을 하겠다는 식의 시기집중투쟁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앞서 말한 민주노조운동의 변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동의 철저한 혁신을 제기하고 결행하는 한편 아래로부터 비정규직 투쟁을 강화하고 노동자운동 전체의 연대투쟁으로 확장해 나가는 길만이 현 정세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구나 “지금의 결정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각 정파간의 경쟁을 부추겨 투쟁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현 지도부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수호 지도부의 관심이 혁신이나 투쟁이 아니라 선거 당선에만 쏠려 있다는 것, 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하반기 투쟁‘이 선거 승리의 발판을 다지기 위한 생색내기 투쟁에 불과하다는 것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현행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진정한 책임을 회피하고 조기 선거를 다시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정략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아래로부터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이 자주성과 민주성, 동시에 투쟁성과 연대성을 상실하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으로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도 역으로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복원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책임회피와 이후 선거를 위한 정략적인 판단으로 일관하는 한 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을 근절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을 다시 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조합원, 노동자 대중들에게 환멸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는 ‘어느 놈이나 똑같다‘는 광범위한 회의, 무관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전체를 바꾸어나가는 것은 지속적으로 쇠퇴한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집행부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이 나서서 책임지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현장으로부터 문제제기를 통해서 민주노조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보여줄 시기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러한 요구를 외면하고 중집, 상집 회의를 통해 결국 현행체제 유지 - 조기선거로 입장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1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어쩌면 비리사건 그 자체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하반기 투쟁‘을 위해서 현행체제를 유지하고 내년에 조기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민주노총의 집단적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안이한 상황인식, 종파적인 태도가 결국 민주노조 운동 전반을 몰락시킬 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출발점을 확인하자
87년 이후 폭발한 남한 사회의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민주노조운동‘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자주적이며 진정으로 조합원 대중에 기반하는 노동조합, 바로 ‘민주‘노조를 세워내고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때까지 한국노총 소속의 어용노조 집행부들은 일상적으로 사용자가 제공하는 뇌물을 받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해왔다. 이들은 조합원 대중의 요구가 폭발하지 않도록 자본측의 관리를 대행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기 때문에, 87년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현장의 1차적인 과제는 어용노조를 척결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은 단위 노조를 넘어 전국 차원에서도 한국노총의 어용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총연맹 조직을 건설하자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시도는 90년 전노협 건설을 거쳐, 비록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기는 했지만 95년 민주노총의 건설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민주성은 총연맹 조직의 건설을 거치면서 오히려 지속적으로 쇠퇴해왔다. 많은 단위노조가 조합원 대중의 자발적 투쟁을 끌어내고 결집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을 대리해 사측과 협상하고 이 결과에 따라 현장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해갔다. 총연맹은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거쳐 98년 정리해고제를 합의한 노사정위원회, 2005년 노사정대표자회담에 이르기까지 정부, 자본과 대등한 협상주체로 인정받는 데 몰두해왔다.
자본은 노조를 다시 조합원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지도부에 대한 물질적 회유도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와 같은 사건이 은밀하게 확산되었고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결국, 노조 집행부의 비리는 타락한 개인의 품성의 문제가 아니다. 금품비리는 자본이 노동자 조직을 관리하고 이를 위해 노조운동의 지도자를 회유, 포섭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노조운동이 이미 조합원 대중의 자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운동‘조직이 아니라 자본의 현장관리를 대행하는 ‘관리‘기구로 변질되면서 현실이 되고 구조화된다.
따라서 이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자주성, 민주성이라는 기본적인 정신을 상실하고 다시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질되어 온 역사가 총연맹 핵심간부의 비리라는 형태로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현재의 민주노총 집행부가 노사정 협상에 몰두해온 과정, 민주노총이 조합원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노사정 협상 틀에서 관리하려고 했던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도부의 사퇴는 민주노총 혁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일진전을 위한 출발점이다
단위노조에서도 노조 집행부의 비리 사건은 간부 한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해당 집행부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 관행이다. 노조의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리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책임지는 것은 민주노조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민주노조의 총연합조직이라는 민주노총에서 이러한 상식이 깨지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 현 지도부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을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노조 지도자의 비리는 노조운동 자체의 변질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해당 집행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물론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평가하고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노력에 백의종군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과 그 지명자인 위원장만이 ‘무한책임‘을 진다는 식의 민조노총 기자회견 발표는 결국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현 지도부는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내세운다. 그러나 지도부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상황, 이미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하반기 투쟁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비정규직 투쟁 등 절박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팔아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11일 기자회견 이후 주요 언론들은 현 체제유지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하반기 투쟁을 사전에 억누르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민주노총 나아가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도부의 얼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활로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선명성과 투쟁성이라는 낡은 구호를“ “국가경제에 기여할 방안을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로 대체하라고 주장한다. 한겨레신문도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하여 “지도부 사퇴는 내부 혁신을 뒤로 한 채, 선거 정치 등 조직 안팎의 정치적 긴장만을 전면화시킬 우려가 있었으나 일단 현 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대정부 투쟁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노사정 협상에 복귀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론의 주장에서도 확인되듯이 지금 지배세력은 내부로부터의 혁신의 요구를 강경파의 정파적 이해관계의 산물로만 매도하고 민주노총의 위기가 과도한 정치투쟁에서 기인한 것으로 호도하며,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하반기 투쟁은 물론 중장기적인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예봉을 꺾으려 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 가는 것으로는 이러한 정세를 돌파할 수 없다. 오히려 내부에서의 불신과 외부에서의 공격에 휘말려 하반기 투쟁 자체가 좌초될 위험이 크다. 더구나 지금의 사태를 명확히 규정하고 철저한 혁신을 시작하는 것과 하반기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은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다. 현안 대중투쟁을 조합하여 적당히 대중을 동원하고 정부와 협상을 하겠다는 식의 시기집중투쟁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앞서 말한 민주노조운동의 변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동의 철저한 혁신을 제기하고 결행하는 한편 아래로부터 비정규직 투쟁을 강화하고 노동자운동 전체의 연대투쟁으로 확장해 나가는 길만이 현 정세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구나 “지금의 결정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각 정파간의 경쟁을 부추겨 투쟁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현 지도부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수호 지도부의 관심이 혁신이나 투쟁이 아니라 선거 당선에만 쏠려 있다는 것, 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하반기 투쟁‘이 선거 승리의 발판을 다지기 위한 생색내기 투쟁에 불과하다는 것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현행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진정한 책임을 회피하고 조기 선거를 다시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정략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아래로부터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이 자주성과 민주성, 동시에 투쟁성과 연대성을 상실하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으로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도 역으로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복원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책임회피와 이후 선거를 위한 정략적인 판단으로 일관하는 한 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을 근절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을 다시 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조합원, 노동자 대중들에게 환멸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는 ‘어느 놈이나 똑같다‘는 광범위한 회의, 무관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전체를 바꾸어나가는 것은 지속적으로 쇠퇴한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집행부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이 나서서 책임지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현장으로부터 문제제기를 통해서 민주노조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보여줄 시기다.